- Travel - 지구 끝자락에 솟은 망루

해안에서 수㎞ 떨어진 인도양에 나가 퍼스(Perth)를 바라보면 도심 상업지구의 들쭉날쭉 솟아오른 마천루 무리가 마치 요새의 망루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꾸로 그곳에서 밖을 내려다 보면 온 사방이 공허함 뿐이다. 퍼스는 호주 서부 해안의 유일한 대도시다.
난 오래 전부터 퍼스를 사랑했다. 이유를 설명할 순 없다. 도시를 짓누르는 고립감, 고풍스러운 공원에 늘 매력을 느꼈다. 요즘은 순진한 분위기에 더 끌린다. 퍼스는 투기꾼의 빈 아파트가 가득한 카이로와 다르다. 뭄바이와도 다르고, 갱이 날뛰는 상파울루와도 다르다.
호주 사람들은 퍼스를 순박한 도시로 생각한다. 도시이면서도 도시 색채가 옅다는 뜻이다. 다른 도시들은 영(英)연방 속에서 정당한 자리를 찾으려고 수십 년 동안 고생했지만 퍼스는 후발 도시로서 혼종적 정체성에 따르는 보상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퍼스에 세련미가 없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퍼스의 순진함은 이곳 사람들이 외부 세계를 보는 태도를 반영한다. 그들은 “우린 동부가 아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냉소적이고 지친’ 시드니나 멜번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살기 좋은 온화한 기후도 장점이다.
유칼립투스 나무 냄새가 밴 훈훈한 공기에 싸여 새파란 하늘 아래 걸으며 스완강 수면에서 떨리는 햇빛에 눈을 팔고 높이서 울부짖는 흰앵무새 떼의 소리를 들으면 마치 낙원의 경계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나는 퍼스에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다른 곳의 도시 생활에서 필수적인 조심성과 경계심·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직감을 퍼스에선 가질 수 없다. 예를 들어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국내 실향민인 호주 원주민의 어둡고 굳은 얼굴이 훨씬 적다. 분쇄된 문화 전통의 난민 말이다. 그들은 산업 발달로 인해 주변 존재로 밀려났다.
호주 시인이며 저술가인 내 친구 마크 트레디닉은 퍼스의 ‘위험할 정도로 선명한 빛’과 주민의 ‘연약한 고결함’을 이야기한다. 한번은 그와 호주 서북부 그레이트 샌디 사막을 걸었다. 그곳에서 철광석 수출 항구도시인 포트 헤들랜드로 다가갔다.
퍼스에서 북쪽으로 1300㎞ 떨어진 곳이다. 마크는 광석 더미와 붉은 먼지 가득한 하늘, 절망한 표정의 원주민, 열 지어 늘어선 화물선 때문에 포트 헤드랜드가 ‘모르도르’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암흑군주 사우론의 본거지로 검은 땅이라는 뜻이다) 같다고 표현했다.
인도양의 범선 갑판 위에서 퍼스의 망루 스카이라인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호주 광업 대기업 BHP 빌리턴 건물의 상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막 건너 포트 헤들랜드를 지나 멀리 중국 고객의 탄소를 뿜어내는 용광로를 쳐다볼 때 무엇이 눈에 들어올까?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곳 사람들에게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는 걸까? 아니면 퍼스의 순진함은 하나의 술수나 간절히 바라는 기도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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