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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 ‘트렁크’를 열면 루이비통이 보인다

LUXURY - ‘트렁크’를 열면 루이비통이 보인다

TV 광고·영화·유튜브 등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를 활용해 고객에게 ‘스토리’를 전하는 명품 브랜드가 늘고 있다.



가스통 루이 비통이 사용하던 공책(왼쪽). 루이비통이 출간한 소설책 ‘더 트렁크’(오른쪽).
‘시리아 태생의 회계사 미셸 트레이드는 그의 상사를 살해하고 목을 자른 시체를 트렁크에 넣어 항해 중 시체를 버릴 계획으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코르디예르호에 오른다. 이 배의 일등항해사는 그가 트렁크를 바다에 버리려는 계획을 눈치챈다.’ (후략)

프랑스 작가 비르지니 데팡크가 쓴 단편소설 ‘일등석(First Class)’의 일부다. 이 소설은 다른 10명의 작가가 쓴 소설과 함께 『더 트렁크(The Trunk)』라는 제목으로 3월 출간됐다. 이 소설집은 루이비통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와 함께 펴냈다. 책을 구성하는 각각의 소설은 모두 트렁크와 관련한 이야기다.

1850년대 초 루이비통의 창업자 루이 비통이 직사각형 여행 가방을 처음 개발해 팔았고 이후 트렁크는 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소품으로 자리잡았다. 영화 ‘타이타닉’부터 상류층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가십걸’까지 부자들은 명품 로고가 박힌 여러 개의 트렁크로 부를 과시한다. 이처럼 트렁크는 루이비통의 역사를 말해준다.

루이 비통의 손자 가스통 루이 비통은 오랜 세월 트렁크를 비롯해 여행에 관한 물건과 이야기를 수집했다. 그가 죽고 40년이 지나 회사는 이를 공개하기로 했다.

프랑스 작가 11명이 차례로 루이 비통 저택에 초대돼 가스통 루이 비통이 모은 옛 사진, 신문 스크랩, 고객과 관련한 일화를 마음껏 음미했다. 그 결과를 모은 책이 ‘더 트렁크’다.

# 몇 년 전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잔니니와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프랭코가 마주 앉았다. 한 잡지사의 요청으로 서로를 인터뷰하는 자리였다. 잔니니가 “다음 프로젝트가 무엇이냐”고 묻자 프랭코는 “당신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잔니니는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그와 몇 번 협업을 한 후 영화 출연에 응했다.

잔니니의 18개월 동안 작업을 담은 영화 ‘더 디렉터(The Director)’의 탄생 비화다. 이 영화는 4월 미국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에서 처음 상영됐다. 6월 24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2014 봄·여름(SS)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서도 공개돼 패션계의 이목을 끌었다.

2006년부터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해온 잔니니는 브랜드의 역사를 재해석해 현대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들어 유행한 ‘재키백’을 2009년 ‘뉴재키백’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2010년에는 63년 전 출시된 ‘뱀부백’을 ‘뉴뱀부백’으로 다시 선보여 패션 피플을 설레게 했다. ‘더 디렉터’는 잔니니의 일하는 방식, 영감을 받는 요소, 브랜드와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 등을 담아 구찌 컬렉션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명품 브랜드가 왜 영화를 만들고 소설책을 낼까. 간호섭 홍익대 교수(패션디자인)는 “명품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품에 얽힌 이야기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종의 스토리텔링 마케팅이다. 역사·장인정신·희소가치 등이 어우러진 스토리는 소비자들에게 환상을 심어준다.

간 교수는 “예전에는 명품이 특정 고객층을 공략했지만 고객층이 확대되면서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마케팅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도 영향을 미쳤다. 꽁꽁 언 소비심리를 녹이려면 만족을 넘어선 감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객층 넓어지면서 홍보 방식 달라져지난해 3월 지상파 TV에 방영된 까르띠에 광고 ‘르 오디세이 드 까르띠에’는 단숨에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광고는 3분 30초의 긴 러닝 타임과 감각적 영상이 특징이다. 까르띠에의 상징인 ‘팬더(검은 표범)’가 세계 주요 나라를 여행하는 과정을 따라 브랜드 역사가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 광고는 진짜 표범을 조련해 등장시키는 등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에서 6개월 동안 촬영됐다. 주로 제품을 지면에 노출하는 다른 명품 광고와 다르게 TV에 이미지 광고를 한 점에서 화제가 됐다. 3월 2일 단 하루 방영으로 높은 관심을 받아 ‘까르띠에’가 포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며칠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올 1월 1일 다시 방영돼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찬경 까르띠에코리아 대리는 “165년의 역사를 보여주기에 지면보다 영상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며 “광고 방영 후 홈페이지 방문객 수는 물론 제품 문의전화와 고객들의 매장 방문횟수도 늘었다”고 말했다.

영상은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패션계는 패션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오래 전부터 고객의 감성을 건드려왔다. 김도훈 영화 칼럼니스트는 “패션 필름의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넓은 의미로 패션을 다룬 영상물을, 최근에는 특정 브랜드가 자사의 새로운 컬렉션을 광고하기 위해 만든 단편영화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고 말했다.

1970·80년대 유행한 2차원의 패션 화보를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익숙하게는 ‘코코샤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대중영화부터 브랜드 자체가 주연이 되는 ‘루이비통의 기차여행’ ‘구찌의 자동차’ ‘프라다의 테라피’ 같은 짧은 영상물까지 포함된다. 패션 브랜드는 세계 유명 감독과 2000년대 후반부터 패션 필름을 활발하게 제작해왔다.

최근 작품으로는 아르마니가 영화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와 함께 작업한 ‘원 플러스 원’, 에르메스의 ‘하트 앤 크래프트’ 등이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영화는 패션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두 영화는 각각 한 여성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 장인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았다.



유튜브·페이스북이 매개체 역할책 역시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펜디는 지난해 대표 품목인 바게트 백 출시 15주년을 맞아 『바게트(Baguette)』를 출간했다. 이 책은 그동안 나온 바게트 백의 실제 크기 디자인과 일본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지은 바게트와 관련한 시,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의 바게트 백과 관련한 일화, 유명 아티스트가 촬영한 바게트 백 사진 등을 실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6월 책 출간 행사와 함께 바게트 백 한정판이 출시됐다. 최지인 펜디코리아 과장은 “당장 구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가고 이미지가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루이비통의 『더 트렁크』는 좀 더 은밀한 형식인 소설을 택했다. 영상보다 반응이 더디지만 훨씬 더 친근하고 오래 간다는 장점이 있다. 명품 브랜드가 소설책을 낸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불가리는 영국 작가 페이 웰돈에게 『불가리 커넥션(The Bulgari Connection)』이라는 소설을 써달라고 의뢰했다. 출판사는 소설에 등장한 불가리의 목걸이를 책 표지에 실었다.

간호섭 교수는 “과거 명품 회사들이 제품을 광고하기 위한 간접 홍보 목적으로 이벤트를 만들었다면 최근에는 이를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나 활동으로 선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형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 공연 역시 고객에게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구찌는 6월 1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트위커넘 스타디움에서 ‘사운드 오브 체인지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는 여성과 여자 어린이의 인권 문제를 알리기 위한 구찌의 글로벌 캠페인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의 일환이다.

콘서트에는 프리다 잔니니를 비롯한 영화배우 셀마 헤이엑, 가수 비욘세와 제니퍼 로페즈 같은 할리우드 스타가 참여했다. 130여 개국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된 이 콘서트의 수익금은 빈민국 여성을 위해 쓰였다. 구찌는 행사에서 브랜드 로고보다 캠페인 로고를 앞세웠다.

스토리를 전하는 마케팅이 활기를 띤 데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뉴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명품 브랜드들은 2~3년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식 계정을 만들어 소비자와 소통한다. 이곳은 패션 필름이 브랜드를 알리고 팬을 확보하는 주요 장이다.

까르띠에의 팬더 광고도 TV와 함께 유튜브·페이스북에 공개됐다. 루이비통은 지난해 11월 패션 필름 ‘여행으로의 초대’를 TV 광고로 방영하고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소개했다. 펜디는 펜디닷컴에서 모든 브랜드 관련 영상물을 볼 수 있게 하고 홈페이지에 각 SNS 계정을 연동했다.

패션컨설팅업체 컬쳐마케팅그룹의 김묘환 대표는 “영화나 소설을 활용한 마케팅은 문화 마케팅에서 한 단계 발전한 ‘이모셔널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며 “요즘 소비자는 결과물인 상품뿐 아니라 브랜드의 탄생 과정에서도 공감을 얻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소비자를 잡기위해 초기 브랜드 정립에 성공한 명품 브랜드들이 감성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며 “고객 층에 따라 마케팅 형식이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토리텔링 마케팅
상품에 얽힌 이야기를 가공·포장해 광고와 홍보 등에 활용하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역사나 주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기대와 환상을 갖게 되고 이는 제품 구매를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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