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초저금리 탓에 빚어진 딜레마
비정상적 초저금리 탓에 빚어진 딜레마
전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가 양적완화를 축소할지 말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왜 시중 금리가 오르는지는 설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는 0~0.25%지만 실제 시중 금리를 나타내는 지표인 미국 국채 수익률, 특히 기준이 되는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다르다.
4월 말의 1.6%에서 8월 중순 2.9% 부근까지 급등했다(국채 수익률 상승은 국채 가격 하락을 의미). 연준은 이 같은 금리 상승에 화들짝 놀라, 애초 발표한 양적완화 축소 방침도 후퇴할 의사가 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나 이미 불붙은 금리 상승의 흐름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연준과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의 잇단 ‘초저금리 유지’ 발언에도 국채 수익률 상승 추세는 가라앉지 않았다.
‘초저금리 유지’ 확인은 금리 상승 억제용왜 중앙은행들의 ‘오랜 기간 저금리 유지’ 발언에도 금리가 계속 상승할까? 시장 분석 기관인 핀토 포트폴리오 스트래티지스의 마이클 핀토 의장은 연준이 뭐라고 하든 금리가 상승할 것이라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통해 국채 가격 상승(수익률 하락)을 계속 보장해 주지 않으면 미국 국채의 50%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금 가격에는 너무 비싸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 국채를 사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 보유 국채도 더 가격이 하락하기 전에 팔아 치우려 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국과 일본이다. 6월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한 것은 중국과 일본의 투자자들이 약 400억 달러 어치 이상의 미국 국채를 매도한 때문이었다. 마이클 핀토는 만일 연준이 양적완화가 없는 ‘정상적인 상태’라면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약 7% 정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솔직히 말해서, 만일 연준이 계속 (양적완화를 통해) 미 국채를 되산다는 보장이 없다면, 누가 (지금 가격에) 미국 국채를 사주겠는가?”라고 묻는다. 8월 29일 현재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2.75% 정도니 만일 국채 수익률이 7%에 달한다면, 기존 국채 보유자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오랜 기간 저금리 약속’정도로는 국채 수익률 앙등을 막기 어렵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연준이 인위적으로 국채 가격을 너무 비싼 가격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국채 버블’이다. 6월 영란은행의 통화위원인 앤드류 홀데인은 의회 청문회에서 “우리(중앙은행)는 역사상 가장 큰 (국채) 버블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지난 30년의 긴 과정을 통해서 중앙은행들은 명분은 ‘경기 회복을 위한 통화 정책’이라는 명목 하에 지속적으로 국채 가격을 상승(수익률 하락)시켜왔다. 그리고 2008년 이후에는 아예 돈을 찍어내서(양적완화) 국채 가격을 올렸다. 만일 중앙은행이 더 이상 국채를 사주지 않는다면, 중앙은행을 믿고 비싼 가격에 국채를 사들인 투자자들은 한 순간에 보유 국채를 던져버릴 것이다.
국채 수익률이 상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엇보다도 미국 연방 정부의 재정 부담이 크게 증가한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현재 약 16조8000억 달러 규모다. 만일 핀토가 주장한 것처럼, 정상적인 통화 정책 아래에서 국채 수익률이 7%에 달한다면, 더 이상 국가 부채가 증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단순 계산으로는 연간 이자 지불 비용만 1조1700억 달러에 달한다.
물론 금리가 낮은 단기 국채 위주로 발행하고, 이미 연준이 보유한 약 3조4000억 달러에 대해서는 전혀 이자를 물지 않으며, 정부간 부채를 제외하는 등의 요인을 고려하면 실제 이자 비용은 이보다는 훨씬 줄어든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연간 약 5000억~6000억 달러 규모는 될 것으로 추정한다.
양적완화 없으면 美 국채 투매 가능성올해 미국 정치권이 그토록 대립해가면서 소동을 벌인 재정 적자 자동 감축(시퀘스터)으로 인한 재정 지출 감소분이 고작 10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더구나 미 연방 예산은 상당히 경직적이어서 다른 부문에서 지출을 감축하고 적자를 줄이거나 이자 비용을 감당할 만한 여지가 매우 적다.
다른 측면은 고사하고 미국 정부의 이자 부담 때문 만에라도 연준이 ‘정상적’인 통화 정책을 쓸 수 있는 조건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연준은 부작용 많은 양적완화가 아니더라도 다른 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낮은 금리를 유지해야만 하는 조건에 놓여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금리 상승의 원인이다. 연준의 불가피한 저금리 정책이 오히려 금리 상승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헤지펀드 GMO의 창립자인 막스 하워드나 컨설팅 업체 글루스킨 셰프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빗 로젠버그는 연준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미국의 장기 잠재 성장률 추세는 약 1.8% 정도에 불과하다고 추산한다.
연준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잠재 성장률 추이가 약 2.5%에 달하는 것으로 밝혔다. 연준의 계산대로라면 미국의 실질 성장률은 잠재 성장률에 못 미치기 때문에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더 쓸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잠재 성장률이 이보다 낮다고 보는 하워드나 로젠버그가 보기에는 돈을 푸는 게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하워드는 미국 국채 10년물의 적정 금리는 1.8%+인플레이션율이 될 것으로 본다. 이 계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8%였기 때문에 이미 연준은 과잉의 통화정책을 수행한 것이 된다.
또 올해 상반기까지의 성장률도 잠재 성장률에 거의 근접하기 때문에 연준이 계속 완화적 통화 정책을 쓴다면 잠재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JP모건의 수석 분석가인 톰 페롤리도 이 같은 하향된 잠재 성장률 주장에 동참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미국의 장기 잠재 성장률은 연간 약 1.7%에 불과하다.
올 상반기 미국 실질 성장률을 약 1.7%로 계산하고(아직 확정치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물가상승률 1.7%를 더하면 현재의 미국 국채 10년물 적정 수익률은 3.4~3.5%가 될 것이다. 따라서 8월 말 현재의 수익률이 2.75% 부근인 것은 연준의 인위적인 양적완화에 따른 가격 왜곡에 해당한다.
더구나 연준의 예측처럼 앞으로 경기가 회복돼 연간 2.5%대의 성장률을 기록한다면, 물가상승률을 낮게 잡아도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대에 달해야한다. 버냉키 의장조차도 4월의 리포트에서 이 같은 점을 인정했다. 그는 좀 더 조심스럽게 2015년에는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4%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적완화의 역설, 그리고 연준의 딜레마가 놓여있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양적완화가 없으면 금리가 상승하고 이는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반면 양적완화를 계속한다면, 당장의 국채 금리 상승은 막을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져 일정시기가 지나면 오히려 국채 수익률 상승 압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심한 버블만일 지속적으로 국채 수익률 상승을 막으려면 연준은 양적완화축소는커녕 규모를 오히려 늘려야 한다. 그리고 국채 수익률 상승은 연방 정부의 이자 부담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연준으로서는 국채 수익률 상승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진퇴양난인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의 양적완화 둘러싼 혼란과 금리 상승의 이유는 바로 이런 조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모든 버블이 정점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버블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양적완화)이 필요하지만, 바로 그 ‘더 많은 돈’ 때문에 버블은 꺼지는 게 아니라 터져버릴 위험성이 커진다. 다시 한번 영란은행의 앤드류 홀데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중앙은행은 역사상 가장 큰 버블을 만들었다.” 그리고 역사상 버블의 끝이 좋았던 적도, 단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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