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NEUROSCIENCE - 당신의 뇌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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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인도 법정에서 한 여성이 전 약혼자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을 뒷받침한 가장 큰 증거는 뇌전도(EEG) 검사를 활용한 거짓말 탐지였다. 머리에 뇌 검사 장치를 장착한 용의자를 방에 앉혀 놓은 다음 비소가 첨가된 사탕을 먹고 사망한 피해자 우디트 바라티의 사건 진술서를 낭독해 들려줬다. 용의자가 듣는 사이 뇌전도 검사로 읽은 신호에 따라 조사 당국은 용의자 아디티 샤르마가 바라티 살해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가졌다고 보고했고, 판사는 그 의견을 따랐다.
9월 초 방영된 미 방송사 PBS 특집 프로그램 ‘재판받는 뇌’(Brains on Trial)는 기억, 안면인식, 감정, 편견, 의도 등을 조사하는 뇌 검사를 가상의 편의점 강도 사건을 통해 검증했다. 이 기술이 증인, 배심원, 판사와 용의자에게 어떻게 활용되는지 보여줌으로써 향후 과학이 어떻게 법에 간섭하게 될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과학이 범죄에 승리를 선언하기엔 아직 이르다. 뇌 기반 증거는 소송 등에서 환자의 뇌 손상을 판정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회색 덩어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아직 제한적이다.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 유죄의 증거로 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TV 드라마에서는 맥박, 혈압 등 생리적 반응을 검사하는 거짓말 탐지기가 밥먹듯이 등장하지만 이 기기는 과학적으로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신경과학은 이와 달리 참과 거짓 구분에 잠재적으로 훨씬 나은 방법을 제공한다. 사물을 인식할 때 일어나는 뇌 활동의 변화를 활용한 기술이다.
예를 들어 용의자 한 명에게 수많은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 중 누가 공범이거나 피해자인지를 가려낼 수 있다. 용의자의 뇌 활동은 그가 어느 얼굴 사진을 익숙하게 여기는지 알려준다. 아니면 범죄 현장 등 다양한 설정 사진을 보여줄 수도 있다. 용의자의 뇌 활동이 범죄 현장을 알아보는 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뇌의 인지구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기술을 법정에서 활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스탠포드대의 인지신경학자 앤서니 와그너는 수 년 동안 자신의 분야가 사법 체계에 적용될 수 있을지 연구했다. 와그너는 판사들을 위한 신경과학 안내서를 발간하며 기능적 뇌자기공명영상(fMRI)을 거짓말 탐지에 사용하는 데 놓인 한계를 설명했다. “이 기술은 조심스럽게 취급해야 하며 주의를 요한다”고 와그너는 말했다.
와그너는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를 피하는 방법(가장 인기 있고 효과적인 방법은 호흡을 조절하면서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이 있듯이 뇌 검사 기반 거짓말 탐지 또한 대응책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지능력과 진실 말하기에 연관된 뇌 영역은 다른 이유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주로 검사대상자가 기기를 속이려 하는 등 정신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때 그렇다. 뇌 검사를 통한 거짓말 탐지를 피하려면 이미지나 진술이 주어졌을 때 머릿속으로 숫자 계산을 하거나 음식, 벽지 등 중립적인 사물에 정신을 집중하면 된다.
현재 작성 중인 논문에서 와그너는 피험자들이 “뇌 검사 기술을 피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 결과를 보여준다. 와그너는 올해 4월 인지신경학회에서 그 실험을 묘사했다. 기억 검사 도중에 와그너와 그의 연구단은 실험을 중단하고 참가자들에게 실험 목적을 설명했다.
실험자들의 뇌 반응이 친숙한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연구단은 피험자들에게 낯선 얼굴을 보았을 때 낯익은 얼굴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아는 얼굴이 나오면 그 얼굴의 익숙하지 않은 부분에 집중해 새로운 것처럼 생각해보라고 요구했다. 연구자들은 실험 초기까지는 뇌 반응을 올바르게 구분할 수 있었지만, 실험이 절반이상 진행되자 구분하지 못했다.
와그너가 말하는 또 다른 문제는 우리의 기억이 뇌에 정적으로 새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변한다.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심리학 용어로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이라 불리는데, 지난주 바에 갔던 경험, 그 바에 갈때 입었던 옷, 바텐더의 수염이나 들어갈 때 흘러나오던 음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지식과 연관된 ‘의미 기억’은 어머니의 얼굴이나 구구단처럼 거의 경험과 관계 없는 것들과 연관돼 있다. 이 두 종류의 기억이 뇌의 같은 영역에 저장되는지 아니면 뇌 검사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법원에서 증언할 때, 그 사람의 머리 속에 단지 경험한 순간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와그너는 말했다. “사건이 법원으로 가는 동안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회성 사건은 더 이상 일회성이 아니게 된다.” 경험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증인은 자신의 진술을 변호사, 기자, 사법 당국 등 여러 사람에게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화 기억은 의미 기억에 가까운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이렇게 변화된 기억이 반드시 본래 기억을 담보한다고 할 수 없으며 의미 기억이 일화 기억과 다르게, 그러면서도 뇌의 다른 영역에 ‘새겨질’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수사 초기 단계의 뇌 검사 결과와 후속 조사가 다르게 나타난다.

fMRI를 활용해서 거짓 진술을 가려내는데 성공한 연구도 있다. 그러나 통제된 환경하에 실험을 하다 보면 피험자들이 거짓말에 질리고 만다. 이런 조건은 사람들이 진실을 숨기려 애쓸 실제 상황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고 MIT의 신경과학자 낸시 칸위셔는 말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거짓말은 실제로 하는 거짓말과 같지 않다.”
많은 과학자들은 fMRI를 활용한 거짓말 탐지기를 실제 법정에서 활용하기에 앞서 기준으로 삼을 만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칸위셔에 따르면 그런 연구는 아주 어려우며,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칸위셔는 말했다. “단순한 심리학 실험이 아니다. 사람의 인생이 달린 문제다.”
이 기술을 적용하려면 과학자들은 먼저 아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사람을 찾은 다음, fMRI 거짓말 탐지가 유효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한다. 또 피험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눈으로 확인 가능하면서 아주 확고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실험실 내 환경과 현실세계 간의 차이는 무고한 사람에게 신경과학의 이름 하에 유죄를 선고할 위험을 높인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fMRI 검사장치를 부착시키고 11월 17일 밤에 뭘 했냐고 묻더라도, 뇌 특정 부위의 활동만으로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판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날 밤 무엇을 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거나, 아니면 경찰서로 끌려왔다는 사실에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셀 수 없이 많다.
설령 거짓말을 탐지하는 보다 정확한 신경학적 방법이 있을지라도 적지 않은 사람이 이를 비윤리적이라 여길 것이다.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은 기술의 효율성에 상관없이 1950년대부터 거짓말 탐지기 사용에 반대해왔다. “설령 거짓말 탐지기의 신뢰도가 높아지거나 더 정교한 거짓말 탐지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우리는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 탐지는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ACLU 정책분석가 제이 스탠리는 2012년 8월 이렇게 썼다.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 보려는 기술은 미국 수정헌법 4조와 5조를 위반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모독한다.”
판사들은 판결을 내리면서 어렸을 때 피고인이 경험했을 아동학대나 정서적 상태같은 외적 요인을 고려할 수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판사들이 고려해야 할 외적 요소를 더 늘릴지도 모른다. MIT 맥가번 뇌연구소의 밥 디시먼 소장은 인간의 모든 활동이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 한다.
뇌 상태가 처벌 경감 사유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기 뇌를 통제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구분할까? 뇌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경우 자기 행위를 변호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디시먼은 소아성애자의 잘못된 성욕은 전두엽을 압박하는 달걀 크기의 뇌 종양 때문인 듯하다고 지적한다. 종양을 제거하면 그런 성욕도 함께 사라진다. “사람들이 ‘뇌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다.” 다만 디시먼은 아주 드문 경우에만 그렇게 되리라고 제한했다. 그런 사유는 정신이상을 이유로 선처를 호소하는 수법을 조금 더 진화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디시먼은 대중의 오해와 달리 정신이상을 이유로 한 무죄 선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아성애자의 경우, 종양이 그의 잘못된 행동을 온전히 변호해줄 수 있는지 여부는 철학적인 문제다. 종양이 그의 행동을 변화시켰을까, 아니면 억제된 욕구를 풀어준 데 지나지 않을까? fMRI 장치로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생물학적 설명과 생물학적 핑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디시먼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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