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MAN VS. NATURE - 미국 화학무기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 FEATURES MAN VS. NATURE - 미국 화학무기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곳은 한때 미국에서 가장 독성 강한 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평선으로 녹아 들어가는 푸른 초원으로 변했다. 들소들이 우리 차를 사납게 노려보고 붉은 꼬리 매들이 머리 위를 맴돈다.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16㎞ 떨어져 있고 맨해튼 넓이 정도인 이곳 로키 마운틴 아스널(RMA)에서 미군은 사린 가스를 생산했다.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자국민들에게 사용했다는 바로 그 치명적인 화학무기다.
미국 화학무기의 탄생지이자 무덤이기도 한 RMA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화학작용제와 살충제는 오래 전에 폐기처분 됐고, 부산물과 생산 시설은 땅 아래 묻혔다. 따라서 그런 면에서 RMA는 속죄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땅을 인간의 가장 어둡고 가장 호전적인 충동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자연으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쾌청한 9월 가을 날씨 아래이 초원에 서 있는 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일뿐이다. 기이하고 모순적이지 않는가? 공해방지 특별기금 ‘슈퍼펀드’ 프로그램을 통해 RMA를 정화한 미 환경보호청(EPA)과 현재 야생보호구역으로 이곳을 관리하는 어류야생동물보호국(FWS)에서 나온 안내원들을 제외하면 70㎢나 되는 이 넓은 공공 자연보호지에 나 외에 다른 사람은 없다.
왜 그럴까?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사린 가스 폭탄이 발굴됐을까? 그건 아니다(그러나 2000년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비소 같은 독성 화학물질이 매립지의 방호막을 통과해 유출됐을까? 그것도 아니다(그러나 인접 도시로 근로계층이 많이 사는 덴버 교외 커머스 시티에 사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런 우려가 크다).
출입이 금지된 것은 최근 콜로라도주를 휩쓴 홍수로 댐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현지 신문 덴버포스트에 따르면 약 4.5m 높이의 범람한 강물로 인해 RMA 인접 지역 주민들이 대피했다. FWS 관리들은 10월 초 RMA의 출입금지 조치를 해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안 통과 불발로 인한 연방정부 부분 업무정지(셧다운) 때문에 일정이 연기됐다.
나는 그곳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작은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초원에 코요테가 뛰어다니고 황조롱이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프레리도그가 구덩이에서 나오더니 갑자기 바쁜 모습을 보이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인간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가장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사린 가스다. 사린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독일 과학자들이 발명했다. 미국이 보유한 사린 가스의 대부분은 지금은 초원인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노란 카우 데이지와 푸른 세이지가 가득한 넓은 미루나무 숲이 있는 곳이다. 멀리 도시 스카이라인이 보이지만 현실이 아닌 듯하다. 가끔씩 덴버 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의 소음만이 잠시 원시의 자연이라는 상상에서 나를 깨웠다.
한때 북미 원주민들이 누볐고 19세기 중엽엔 이주한 농민들이 정착했던 곳이다.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후 미군이 이곳을 사들였다. 동서부 해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공습에 취약하지 않고 관개가 용이하기 때문에 선정된 장소였다. 동원할 수 있는 근로자들도 많았다. 1945년 약 3100명(절반이 여성)이 머스타드 가스(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사용했다)와 미란성 가스 루이사이트(비소 기반의 수포작용제) 같은 화학물질을 생산했다.
아울러 RMA에는 ‘로즈힐’로 불리던 독일군 포로 수용소도 있었다. 지금은 로즈힐의 감시탑 기초만 남아 있는데 FWS 안내인이 가리킬 때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다. RMA를 구성했던 약 1600개의 건물들은 흔적도 없고, 1912년 들어선 정착촌 중 집 하나만 남아있다. 그들이 농사를 짓던 밀밭과 알팔파밭도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조상이 그 집주인인 루실 에글리 매킨타이어가 아직도 그곳을 찾는다고 한다.
1950년대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군은 ‘노스 플랜트’라는 새로운 공장 단지를 건설해 RMA를 ‘자유 세계의 사린 제1 생산지’로 만들었다. 노스 플랜트는 넓이 0.36㎢에 103개 건물로 구성됐다. 그중 ‘빌딩 1501’로 알려진 곳이 1953년부터 57년까지 사린 생산 공장이었다. 그 공장은 핵공격도 견딜수 있게 지어졌다고 EPA의 원상 복구 책임자 그레그 하그리브스가 설명했다.
그곳에 관한 미 육군의 공식기록에는 “사린 관련작업은 누출 탐지를 위한 정교한 경보 시스템으로 보호됐다”고 돼 있다. 그러나 ‘정교하다’는 표현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당시의 사진은 보호장구로 전신을 감싼 근로자가 토끼를 넣은 우리를 들고 다니며 사린 공장의 가스 누출을 조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 육군 기록에 따르면 노스 플랜트는 신경가스 VX 제조만이 아니라 “적린, 염소산칼륨, 유리”가 든 단추 폭탄과 “유리, 산화납, 사이클로나이트(RDX 화약)”를 채운 소형자갈지뢰를 생산하는 데도 사용됐다. RMA에서는 베트남전에서 사용된 네이팜, 아폴로 11호에 사용된 로켓 연료도 생산됐다. 동시에 머스타드 가스와 나중에 사린 같은 노후화된 화학무기는 RMA에서 폐기됐다.
1952년부터 화학회사 셸 케미컬 컴퍼니가 이곳에서 매우 유해한 살충제를 제조하도록 허락 받았다. 거기서 나온 폐기물은 그냥 땅에 버려졌다. 대기와 지하수 오염은 관심 밖이었다. 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은 유명한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그 합성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했다. 카슨의 그런 노력으로 현대적 환경운동이 시작됐다.
그녀는 RMA에 관해 이렇게 썼다. “공장에서 수㎞ 떨어진 곳에 사는 농민들이 설명할 수 없는 가축병을 신고했다. 그들은 작물 피해가 크다고 호소했다. 나뭇잎이 누렇게 변했고, 작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사람의 질병도 보고됐다. 일부는 모든 현상이 서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카슨은 셸케미컬 컴퍼니가 이미 황폐해진 그 땅을 더욱 망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화학작용제의 생산과 ‘해체’에서 나온 폐기물이 쌓이자 군 당국은 기발한 해결책을 찾았다. 1962년 미 육군 공병단은 지하 3.6㎞의 선캠브리아대 암반에 폐기물을 주입할 수 있는 주입정을 설치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했다. 그 건설 공사로 덴버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알려지면서 작업이 중단됐다.
그럼에도 미군과 셸 케미컬 컴퍼니가 사용한 RMA의 참호와 분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독성이 강한 1평방 마일”이라고 EPA 관리가 농담처럼 말했다. 현지 주민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곳과 RMA 북부 섹션의 두 매립지는 미군이 복개한 뒤 관리하지만 지금도 출입금지 구역이며 앞으로 수년 동안 그런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국제사회는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사린 가스를 파괴하라고 요구한다. 화학무기금지협정(CWC)을 비준한 국가가 189개국이다. 그 조약은 화학무기의 제조와 비축을 금한다. 며칠 전 화학무기 폐기 작업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시리아도 그 조약에 가입하고 싶어한다. RMA에서 사린, 머스타드 가스 등의 화학물질을 제조한 공장을 포함한 시설이 마침내 완전히 파괴됐을 때 “미국의 화학무기 제조 능력 중 60%가 제거됐다”고 EPA는 말했다.
EPA가 복원한 RMA는 1992년 국립 야생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어류, 야생동식물과 그 서식지의 자연적 다양성을 보존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보호구역의 땅과 물을 보존하고 개선할” 목적으로 의회가 제정한 법에 따른 조치였다. 화학무기가 생산되고 폐기된 지역치고는 감동적이고 희망에 찬 임무였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1992년 10월 9일 RMA 국립 야생보호법에 서명했다. 그곳에서 대머리 독수리가 처음 목격된 지 6년 후였다. 그 독수리의 귀환이 원상 복구의 첫 조짐으로 간주됐다.
화학무기 생산지에서 야생보호구역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셸 케미컬 컴퍼니와 미 육군이 지불한 약 20억 달러로 EPA는 그곳에서 확인된 화학물질 600종 이상을 제거했다. 지하수와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고 현지에 남아 있는 폐기물이 오염 지역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하는 작업이 포함됐다. 그 작업의 대부분은 2003년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는 남아 있다. 2010년 EPA는 셸 케미컬 컴퍼니와 미 육군에 1,4-디옥산 수치를 조사하도록 요구했다. “지하수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산업용 화학 안정제”를 말한다. EPA의 하그리브스는 1,4-디옥산 수치가 “아주 높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인근 주민들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우려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2000년 사린 ‘소형폭탄’ 10개가 발견된(안전하게 해체됐다)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에 그곳에 소풍을 가려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미 육군의 RMA 복구 프로그램 책임자 찰리 샤먼은 주민을 위협하는 요인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말했다. 화학무기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내가 콜로라도주를 방문한 것은 물론 사린 가스가 남긴 유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중요한 이야기를 무시하기는 불가능했다. 인간이 실험실에서 자연을 정복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압도한 이야기를 말한다. 지난 9월 콜로라도주 동부를 휩쓴 홍수는 그 파괴력이 대단했다. 나는 과학의 유린은 이미 봤기 때문에 자연의 유린도 보고 싶었다.
RMA를 둘러본 뒤 덴버를 벗어나 북쪽 산업 중심지 웰드 카운티를 찾았다. 또다른 아이러니가 나타났다. RMA처럼 독가스를 제조하면 나중에 야생보존으로 보상 받지만 웰드 카운티처럼 유정 2만 개를 가진 경우엔 철책선 뒤에 낡은 강철 저장 탱크가 쌓인 폐허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RMA에서 본 것 같은 콜로라도주의 아름다운 자연은 이곳에선 먼 곳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뉴욕타임스 신문의 추정에 따르면 최근의 홍수로 석유 약 3만7000갤런이 유출됐다.
“물에 잠긴 유정의 모습으로 미국 서부의 새로운 자원 러시를 둘러싼 감정적 논쟁이 불붙었다”고 그 신문은 지적했다. 물론 석유유출의 우려가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석유 업계의 로비단체인 콜로라도 석유가스협회 대표 티샤 코널리 슐러는 석유 유출이 “상당히 소규모”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소도시 에번스(덴버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아나다코 정유회사가 그곳에 저장한 석유가 사우스 플래트 강으로 유출됐다)를 방문했을 때 내가 만난 한 현지 주민(하청업자처럼 보였다)과 경찰관은 석유 유출보다 하수 역류를 더 우려했다. 실제로 서늘한 아침 공기 속에 매캐한 악취가 배어있었다. 홍수로 폐수처리 시설이 파손된 결과인 듯했다. 그 주민은 평원에 사는 사나이답게 그곳의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했다. “물은 넘치고 시간은 없다.” 경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의 프런트 산맥 기슭에 위치한 볼더의 경우도 시간이 부족한 게 분명했다. 사우스 플래트 강은 평소에는 물결이 잔잔하지만 지난 9월의 폭우 당시 범람해 시내가 침수됐다. 현지 식당에서 일하는 여종업원 애너(25)는 자신의 집에 하수가 역류해 가구가 망가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 다시 깨끗이 청소를 해도 그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 주민이 피해 상황을 기록한 볼더의 디지털 지도는 파손된 집과 건물을 한탄하는 글로 가득했다. “대형 지하 배수로가 터져 그 위의 도로가 훼손됐다”는 글도 보였다.
산악 지대의 작은 마을 제임스타운 쪽으로 향하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곳곳이 유실되면서 차단된 도로가 많았다. 한 도로에선 근로자가 일하는 곁에 ‘흙이 필요함’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비탈을 따라 내려오는 급류의 침식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약한 성냥개비처럼 부러져 있었다. 강변의 한 집은 미사일 공격을 받은 듯이 잔해만 남아 있었다. 그 너머 제임스타운으로 가는 도로는 차단돼 있었다. 내 차가 진흙에 빠져 돌아 나오는 데 애를 먹었다.
콜로라도주는 아주 역설적인 곳이다. 자연이 잘 보존된 동시에 인간이 자연을 철저히 오용한 곳이기도 하다(광산부터 핵무기 재료를 생산한 곳까지 오염 정화 구역이 18개나 된다).
마지막 한가지 아이러니가 있다. 콜로라도주를 휩쓴 폭우와 대홍수는 인간이 일으킨 지구온난화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린에 오염된 지역을 야생보호구역으로 만들어 속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EPA 관리 롭 스타이츠는 프레리 도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땅을 파헤치고 왜가리가 호수 위에 고요히 앉아 있는 RMA의 초원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진짜 헛소리다.”
- 필자 알렉산더 나자리언은 뉴욕데일리뉴스의 편집위원이며 현재 첫 소설을 쓰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트럼프-시진핑 90분 통화…“희토류 문제 해결, 中방문 초청 수락”(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일간스포츠
BTS 진, 한남더힐 175억원 현금 매입했다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트럼프-시진핑 90분 통화…“희토류 문제 해결, 中방문 초청 수락”(종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새정부 출범에 불확실성 해소…대체투자 탄력 붙는다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유럽공략 속도내는 루닛...독일 스타비전 계약에 잭팟예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