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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유세로 선진국 부채 해결?

10% 부유세로 선진국 부채 해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빚으로 빚 갚아 기업 활동 위축, 저축률 하락 우려
워런 버핏은 감세안 철폐를 지지하면서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위 10% 계층에게 한 번에 10%의 부유세를 매겨서 국가 부채 문제를 해결하자’.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행하는 ‘Fiscal Monitor’ 10월호는 ‘Taxing Times(이제는 세금 매길 때)’라는 보고서에서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위한 광범한 조세개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의 한 방안이 바로 ‘상위 10%에게 10%의 일회성 부유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 부유세는 순자산(net wealth:개인 보유의 자산-부채)에 대해 매겨지는 것이다. 예컨대 재산이 500억 달러인 워런 버핏에게 적용된다면, 한번에 50억 달러의 세금이 부과되는 셈이다. 이 보고서는 구속력은 없지만, 비공식적인 정책 제안서의 성격을 띤다.

국가 부채는 원래 미래에 들어올 세입(조세 수입)을 전제로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2008년 이후 선진국들이 금융회사가 뒤흔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가 부채를 짊어지면서 재정 건전성 자체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11년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도 바로 이 때문이었고, 올 10월의 미국 연방정부 폐쇄와 국가 부채 한도 확대 논란도 국가 부채가 너무 많다는 데서 출발한다.

선진국의 부채 위기는 세금으로 갚아야 할 부채를, 추가로 채권을 발행해 상환하면서 오히려 더 부채를 늘리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나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어느 한도를 넘어서면 더 이상 부채를 늘릴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친다. 그러니 세출을 줄이든지, 세금을 대폭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 얼마나 세금을 매길 지는 ‘피 튀기는’ 이해관계 다툼이다.

IMF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미국에서는 이미 세금 논쟁이 한창이다. 지난해 말 워런 버핏이 감세안 철폐를 지지하면서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채권펀드 핌코의 최고운용책임자(CIO)인 빌 그로스는 10월 투자레터에서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시절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감세가 미국 자본주의를 망쳤다면서 자본소득세율을 현재의 세율인 15%에서 두 배 이상으로 올릴 것을 주장했다.



선진국, 민간 부문 부채 짊어지면서 고전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들에 대한 간접세(부가가치세)로 세수는 늘지만, 오히려 소비를 감소시키고 대중생활을 악화시킨다. 또 소득세 한계세율을 높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부자들에 대한 세금은 경제를 크게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추가 징세의 여지가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상위 10%가 전체 부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선진국 평균으로는 약 50%를 상위 10%가 차지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이들이 가장 많은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으로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2%만 세금으로 납부한다. 물론 그 효과는 세금형태(즉, 주택보유세, 자본거래세, 부유세, 순자산에 대한 세금)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는 하다.

일회성 부유세가 아닌, 정기적인 부유세(예컨대 워런 버핏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에 대해서 이 보고서는 다소 회의적으로 평가한다. 이론상으로는 1%의 부유세, 즉 자산 수익을 3%라고 가정한다면 자산 소득의 33%에 달하는 부유세는 매년 GDP 세입을 약 1% 증가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경험적 증거가 부족하고, 또 이 같은 정기적인 형태의 세금은 세금회피를 용이하게 만들어 그다지 실효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 일회성 자산세(부유세)는 한번에 국가 부채 문제를 크게 완화시키고 재정 건전성을 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보고서는 유로존 15개국의 GDP 대비 국가 부채 수준을 2007년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상위 10%의 부자들에게 자산의 10%에 달하는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밝힌다. 이 같은 일회성 부유세는 그 충격은 크겠지만, 경천동지할 일은 아니다.

경제학자 가운데서 피구·슘페터·케인즈 등도 이 같은 해결책을 제안한 바 있으며, 실제 역사적 전례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과 2차 대전 이후의 독일과 일본에서 시행됐다. 만일 이번 부채 위기가 전쟁 한 번 치른 것만큼이나 심각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번에도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부유세를 매기는데 가장 큰 문제는 부자들이 사전에 재산을 빼돌린다는데 있다. 역사적 사례를 연구한 배리 아이켄그린 미 버클리대 교수에 따르면 일회성 부유세 논의가 본격화되면 엄청난 자금 탈출이 발생하며,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따라서 정책 당국자들은 비밀리에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 통제(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IMF 보고서는 사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2011년 보고서(Back to Mesopatamia)에 그 뿌리를 둔다. BCG는 이 보고서에서 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긴축, 고도성장, 채무 재조정, 금융 억압의 4가지로 제시했다. 그러나 긴축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하며, 고도 성장은 선진국들의 인구 구조와 경쟁력 약화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부채 재조정(부채 탕감)도 은행들을 부실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 또 금융 억압(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은 저성장·저인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실제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BCG는 여기에서 부가적으로 특히 유로존의 경우 10~30%의 부채 탕감과 더불어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을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실제로 일회성 부유세를 도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미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11월 4일 ‘Project Syndicate’에 기고한 칼럼에서 IMF의 제안은 실업률이 높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유로존에서는 도덕적으로 설득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이론상으로는 이 같은 일회성 부유세는 소득세율을 높이는 것보다 왜곡 효과가 덜하다.



부유세 부과, 유로존에선 통할 수도그러나 로고프 교수는 이 같은 부유세로 인한 재정 수입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부자들이 재산을 빼돌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같은 세금이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저축률을 낮출 위험도 있다. 부가적으로는 시행상의 어려움이 크다. 부자들이 소유한 자산의 가치를 얼마만큼으로 평가해야할지 다툼이 남는 것이다.

그럼에도 로고프 교수는 선진국들이 금융 억압을 통해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추는 ‘은폐된 세금(저축 이자율이 인플레이션율보다 낮은 것)’보다는 일회성 부유세가 더 낫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되기만 한다면, 재정 부담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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