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은퇴 세대 몰려 … 노래방·테마파크 주력 고객도 노인 도쿄의 한 게임센터. 오락실에서 게임 중인 고객 중에는 은퇴 세대가 자주 눈에 띈다.
은퇴(隱退)는 물러남이다. 현역 시절과의 단절을 느끼는 첫 경험은 ‘갈 곳’ 없는 냉엄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때 비로소 은퇴를 절감한다. 행복한 노후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많다. 돈도 돈이지만 비재무적인 함정이 적잖다. 관계(사람)·취미·건강 등이 그렇다. 집안에선 맘편히 있을 공간조차 없다. 30~40년을 출·퇴근했으니 자신만의 공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힘들게 소파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가족의 시선은 갈수록 차가워진다. 미약한 존재감을 뼈저리게 느낀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남녀노소 예외가 없다. 특히 청년그룹의 스트레스가 문제다. 취업·결혼 등 생애 최초의 대형 이슈에 직면하게 마련인데도 돌파구를 모색할 경험이 부족해서다. 이럴수록 스트레스를 풀 만한 공간이 절실하다. 고민 공유와 부담 경감에 도움이 되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공간이 오락실(게임센터)이다. 게임센터가 일종의 아지트로 장시간 사랑 받는 이유다. 장수대국 일본에선 이런 게임센터의 주인공이 달라졌다. 젊은이에서 노인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다. 노래방·테마파크·파친코의 주력 고객도 노인으로 바뀌고 있다. 젊은이의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본의 소비시장은 아베노믹스로 활로가 뚫렸다지만 여전히 내수침체로 고전 중이다. 생필품을 비롯한 필수재화 부문이야 버틴다지만 레저·오락 등은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실제 레저를 포함한 여가시장은 장기에 걸쳐 뚜렷한 감소세다(2013년 레저백서). 1996년 91조엔을 정점으로 2012년 65조엔대로 떨어졌다. 백서는 “여가활동의 주력 연령층이 10대에서 60대 이상으로 변화한 게 나타났다”고 했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소비가 줄었다. 돈은커녕 여유조차 없이 생존전선에 내몰린 결과다. 유일한 소비 버팀목은 고령 인구다.
일본 전체 금융자산(1500조엔)의 60%를 보유한데다 연금까지 받아 지갑이 꽤 두둑하다. 특히 2011년부터 베이비부머인 단카이(團塊) 세대의 선두주자(남성 1947년생)가 65세가 돼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고령 인구의 금전 여유가 더 늘어난 것이다. ‘고령 인구가 일본 경기를 떠받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대지진과 전력 부족 등으로 최악의 불경기였던 2011년에도 소비지출은 고령자만 늘었다.
60대 이상이 여가 활동 주력 세대2030세대는 돈 적게 들고 눈치 볼 일 없는 집안에 은둔한다. 반면 6070세대는 금전·시간 여유를 내세워 적극적인 소비 주체로 변신했다. 전체 노인의 80%가 건강하다는 점도 한 몫 했다. 한적한 오후라면 십중팔구 노인 고객이 레저시설을 독점한다. TV 도쿄는 “매출 감소를 막고자 상당수 레저시설이 고령 고객을 적극 유치하면서 시설·서비스가 적잖이 달라졌다”고 밝혔다.
요금 할인을 비롯한 고령 특전은 물론 음료·과자를 무료로 제공한다. 인터넷·만화 등을 제공하는 복합공간의 경우 치매예방프로그램을 비롯해 혈압측정 기계와 마사지 프로그램도 갖췄다. 바둑·마작·장기 등은 기본이고 일부는 동일 공간에 손자용 놀이시설도 뒀다.
노인 전용 레저점포도 있다. 회비를 내면 노래방·요가 등 80종류의 레슨을 받고 건강식까지 제공하는 사업모델이다. 노인 한정의 회원제로 고가지만 카페스타일을 지향해 인기다. ‘다이이치흥상(第一興商)’은 시험 운영 후 고무돼 올해까지 100개 점포를 개업할 예정이다.
게임센터는 노인 고객의 천국으로 변신했다. 유력한 신규 고객층으로 고령자를 지목한 결과다. 공통점은 노인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서비스다. 장시간 앉아 게임을 즐기도록 푹신한 의자로 대체했다. 직원들이 고령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도록 교육했다. 급증하는 단신 노인을 유치한 결과 주 3~4회 방문하는 단골 노인이 흔해졌다.
돋보기 무료 대여는 게임센터의 기본 서비스로 정착됐다. 노인 인구에 익숙한 방언을 사용하는 직원도 배치해 친근감을 높였다. 지방자치단체·병원에서 게임교실 티켓을 배포하기도 한다. 게임센터 놀이방법을 무료로 가르치는 티켓을 돌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략이다. 노인 고객을 위해 포인트 제도를 강화한 곳도 있다. 게임 후 자동으로 포인트가 쌓이는 디지털 카드와 스탬프로 점수를 모으는 아날로그 카드 모두 준비했다.
원래 게임센터는 고급화와 대형화로 효율성을 추구했다. 젊은 이미지를 강조한 건 물론이다. 하지만 청년 고객이 줄어들면서 고전했다. 게임센터 시장 규모는 2007년 7000억엔에서 2010년 5000억엔대로 급감했다. 오락 다양화와 게임기 공급 과잉으로 적자 점포가 늘었다. 소프트웨어는 그나마 히트상품이 나오면 매출이 늘었지만 하드웨어인 게임센터는 그렇지 않았다. 그만큼 수익 개선이 절실했다.
이런 와중에 건강한 고령자를 새로운 고객으로 삼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과는 긍정적이다. 노인 타깃의 접객 서비스를 강조한 회사일수록 미약하나마 매출이 증가했다. 게임센터의 고육지책은 노인 문제 해결의 힌트까지 제공한다. 고령자의 유력한 여가·취미활동으로 떠올라서다. 치매방지에 좋을뿐더러 파친코보다 경제적이란 게 장점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경로당같은 커뮤니케이션 장소로도 각광을 받는다. 일부는 전용 휴게실까지 설치했다. 노인 사교장으로의 변신이다.
고객을 빼앗긴 파친코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원래 파친코의 최대 고객은 중년 이상 고령 고객이다. 출퇴근하듯 파친코에 몰두하는 탓에 중독 환자도 끊이지 않았다. 1950년대 ‘엄지족(親指族=파친코 레버를 엄지로 당긴다는 뜻)’이란 유행어까지 나왔다. 하지만 파친코 업계는 요즘 불황에 시달린다. 2006년 구슬 1개에 4엔씩 하던 걸 ‘1개=1엔’까지 떨어뜨린 ‘1엔 파친코’까지 내놨지만 여전히 적자 압박에 고전 중이다.
시장 규모는 1990년대 중반 30조엔에서 최근 20조엔대(2011년)로 줄었다. ‘레저=파친코’의 이미지마저 사라지고 있다. 게임센터에도 밀린 영향이 크다. 더구나 파친코 시장이 자금력을 갖춘 소수 업체의 과점 형태로 재편되면서 중소업체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고령 고객을 잡고자 기기를 교체하고 당첨 확률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자멸행위에 가까워 부담스럽다. 결국 파친코 업계는 게임센터를 벤치마킹 해서 노인 이탈을 막고자 사활을 걸었다. 눈높이 접객 서비스는 물론 몸이 불편한 노인 고객에겐 송영(送迎)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덕분에 일부 업체는 노인 고객을 일부 다시 끌어들였다.
불황의 파친코 업계, 노인 고객 잡으려 사활게임센터만 노인 고객에 애정을 쏟는 건 아니다. 노래방도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갈수록 6080세대의 단골 방문객이 늘고있다. 스트레스 해소와 기분 전환에 제격이란 점에서 고객의 30%가 노인 계층으로 알려졌다. 젊은 고객만 노려서는 생존 자체가 힘들다는 판단에 할인행사를 비롯한 각종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테마파크라고 다를 게 없다. ‘테마파크의 주인공은 노인’이라는 카피가 있을 정도로 현재 실버 마케팅이 한창이다.
만혼·비혼(非婚)화로 청춘남녀의 발길이 뜸해지자 타깃 연령대를 높이는 추세다. 2012년 도쿄디즈니랜드의 광고는 반백 노인이 등장해 과거 추억을 떠올리는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놀이터조차 미끄럼틀·그네 대신 스트레칭 기구나 통증 경감 의자로 바뀌는 마당에 테마파크의 주력 시설이 건강한 노인 인구에 맞춰 바뀌는 건 당연한 결과다. 도쿄디즈니랜드 등 대부분의 테마파크에서는 시니어 티켓 할인 등의 특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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