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Issue - 무법지대 ‘상가 권리금’ 정부는 수수방관

Issue - 무법지대 ‘상가 권리금’ 정부는 수수방관

“법제화 불가능”만 되풀이 … 서승환 국토부 장관, 교수 시절 ‘권리금 법제화’ 주장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재개발에 따른 권리금 보상 문제로 촉발돼 6명이 사망하는 사회적 비극으로 끝난 2009년 1월 용산참사 때나 지금이나 정부 당국 입장은 한결같다. ‘상가 권리금 법제화는 불가능하다.’ 과연 그럴까.

권리금은 상가(점포)가 보유한 고객이나 영업방식·입지·시설 등의 대가에 대해 나가는 임차인이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받는 돈이다. 권리금은 상가를 매입하거나 임차할 때 관행적으로 오가는 돈이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민법·상법 등 우리나라 어떤 법에도 권리금에 대한 규정이나 용어는 없다. 옛 소득세법 시행규칙에는 ‘토지·건물을 임대 또는 전대해 받는 권리금은 부동산 소득에 포함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2006년 소득세법이 개정되면서 이 조항이 삭제됐다.

법적 근거가 없는 무법지대에 있다 보니, 권리금을 둘러싼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약 600만명의 자영업자가 관여돼 있는데도, 정부는 권리금에 손을 데려 하지 않는다.

권리금이 치솟아도 제어할 방법조차 없다. 실제로 권리금이 보증금보다 비싼 상가는 허다하다.

상가정보업체인 점포라인과 부동산 정보업체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소재 점포 평균 보증금은 5668만원, 권리금은 1억2753만원이다.

약 8000곳의 점포를 조사한 결과인데, 보증금·권리금 모두 사상 최고치다. 자영업자가 몰리는 치킨·호프 업종 권리금은 1억7472만원으로 전년 대비 45%나 올랐다. 의류점과 피자집은 각각 29%(9983만원), 27%(1억832만원) 증가했다.



600만 자영업자 생존과 직결국내 권리금 규모는 추정조차 어렵다. 암암리에 막대한 돈이 지하경제 형태로 오가는데 역대 정부는 실태 파악이 어렵다며 수수방관했다.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권리금 분쟁으로 피해를 입는 세입자가 끊이지 않는다. 보통 권리금 분쟁은 임대인과 임차인, 정부와 임차인 사이에 벌어진다.

가령 건물주가 임대료를 상식 이상으로 올려 임차인 A를 내보내고,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 B에게 권리금을 받는 이른바 ‘권리금 빼먹기’를 해도 기존 임차인A는 손 쓸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임차인 A가 이전 임차인에게 준 권리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재개발 등으로 강제 퇴거를 해야 할 때도 권리금은 보상 대상이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권리금 자체를 정부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9년 2월 정부는 용산참사 관련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면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당시 국토교통부 도태호 주택정책관은 “권리금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제도로 (정부는) 공식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권리금은 임차인에서 임차인으로 이동되기 때문에 임대인이 직접 받는 경우가 거의 드물고 이를 객관화할 수 없으면, 세계적으로도 권리금을 인정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틀린 말이다. 외국에도 권리금 제도는 있다. 정부 출연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1년 발간한 ‘권리금에 대한 법경제학적 접근’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프리미엄(premium)’과 ‘영업권(goodwill)’이라는 개념이 권리금과 유사하게 사용된다. 영국은 권리금을 법으로 인정한다.

프랑스에는 ‘퐁 드 꼬메르스’라는 권리금 제도가 있다. 일본에도 권리금은 존재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권리금을 키머니(keymoney)라고 부르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야베’, 중국은 ‘전양비’라는 용어를 쓴다.

실태조사도 어렵다는 정부 입장과 달리 이 보고서에는 서울과 6대 광역시 점포 4000곳을 상대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보고서를 쓴 김정욱 KDI 부연구위원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실제 관행과 법제상의 괴리를 감안하면 권리금에 대한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권리금에 대한 분쟁 탓에 높은 수준의 사회적 비용이 야기된다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정당화할 수 있다.’

법제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0년 6월 유정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은 현행 법령에서 인정하지 않는 권리금에 대한 개념을 명시하고, 상가의 유·무형 재산적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권리금으로 평가하도록 하자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009년에는 법무부가 권리금 연구 용역 결과에 따라 특별법 제정을 검토했지만, 흐지부지 됐다.

지난해 초에는 국토교통부가 상가 권리금 등에 대한 보상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은 좀 다르다. 국토교통부 토지정책과 관계자는 “TFT를 구성한 건 맞지만 임차인 영업보상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었지 권리금 법제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임차인과 임차인 간 거래를 파악하는 게 사실상 어렵고 워낙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법무부 쪽에서도 법제화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물론 권리금 제도화·법제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권리금이 워낙 복잡하게 결정되고 상가나 임차인마다 사정이 모두 달라 이를 계량화하는 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권리금 거래를 금지하기도 어렵다. 이미 권리금을 낸 상가 임차인이 집단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엄연히 존재하는 권리금 관행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라는 목소리가 많다. 또한 비교적 산정하기 쉬운 시설 권리금은 물론 단골 숫자나 명성의 대가인 영업 권리금 역시 법적인 보장이 가능하다는 게 그동안의 연구 결과다.



권리금 관행조차 인정 않는 건 직무유기약 600만명의 자영업자가 권리금 무법지대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데도 ‘어렵다, 힘들다,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국토교통부와 다른 부처 당국자들이 참조할 만한 글을 하나 소개한다. ‘상가 권리금이 갖는 기본적인 문제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 규정된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 테두리 안에 있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 산정기준이 마련된 것도 아니며 사기 등 불법적 행위에 쉽게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중략)…권리금을 법제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권리금을 법제화하는 가장 큰 의의는 권리금을 법에서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직접적인 보호대상으로 한다는 데 있다…(중략)…서민들에게 빈말이 아닌 진정한 마음의 애정이 있다면 그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서승환 현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학교수 시절인 2012년 초 한 언론에 기고한 글이다. 관료들의 ‘진정한 마음의 애정’이 절실하다. 권리금이 기가 막힌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2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3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4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5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

6"전세금 못 돌려줘" 전세보증사고 올해만 2조원 육박

7한강 경치 품는다...서울 한강대교에 세계 첫 '교량 호텔' 탄생

8서울 뺑소니 연평균 800건, 강남 일대서 자주 발생한다

9가상세계 속 시간을 탐구하다

실시간 뉴스

1尹대통령 내외 사리반환 기념식 참석…"한미관계 가까워져 해결 실마리"

2 대통령실, 의료계에 "전제조건 없이 대화 위한 만남 제안한다"

3이복현 금감원장 "6월 중 공매도 일부 재개할 계획"

4정부 "80개 품목 해외직구 전면차단 아니다…혼선 빚어 죄송"

5 정부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