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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 너무 많아요

Travel -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 너무 많아요

인터넷에 넘쳐나는 각종 컨테스트에서 제멋대로 선정 … 공신력 잃은 공허한 타이틀
1.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2.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3. 영국의 스톤헨지 4.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5. 칠레의 토레스델 파이네 6.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애스트로돔



아픈 발목과 무거운 두 다리를 이끌고 무릎을 손으로 짚으면서 마지막 미끄러운 바위 위로 몸을 끌어올린다. 드디어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청록색 석호를 굽어보는 분홍빛 봉우리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다. 눈사태 소리가 얼어붙을 듯 차가운 공기를 채우고 전날 내려 쌓인 눈은 맑고 푸른 하늘을 비춘다. 숨은 여전히 가쁘지만 왜 이곳이 최근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로 꼽혔는지 이해가 갔다.

며칠 전 칠레 국경 검문소에서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은 신문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산의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 밑에 ‘토레스 델 파이네,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로 선포되다’라는 제목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60㎞가 넘는 울창한 숲과 바위투성이 계곡, 산 중턱의 녹아내리는 빙하를 지나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 기사 덕분이다.

또 이 공원이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로 선정된 사실을 뿌듯하게 여기는 레푸지오(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코스 곳곳에 있는 산장) 직원들이 늘어놓는 자랑도 내가 하이킹을 계속하는 데 힘이 됐다. 하이킹을 하는 동안은 나와 다른 여행객들도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다. 자부심과 동시에 약간의 특권의식마저 느꼈다. 우리가 매우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 뒤 호텔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토레스 델 파이네가 특별한 건 사실이지만 내가 들었던 만큼 특별하지는 않은 듯했다.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로 불리는 곳이 적어도 십여 군데는 더 있었다.

여행 정보 사이트 TripAdvisor가 소유한 여행 커뮤니티 사이트 www.virtualtourist.com은 보통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한 웹 캠페인을 바탕으로 토레스델 파이네를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로 선정했다. 보라보라 섬과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콜럼비아 커피 산지 등도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칠레 경제부는 11월 초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열고 VirtualTourist에서 이 공원을 세계 여덟번째 기적으로 선정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칠레의 관광·삼림 관련 관리 다수가 이 행사에 참석했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사실 세계의 첫 번째 불가사의다. 다만 여덟 번째로 선택됐을 뿐이다.” 칠레 경제·관광·개발 장관 펠릭스 데 비센테가 말했다.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로는 이집트의 대피라미드와 로도스의 거상,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바빌론의 공중정원,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 꼽혔다. 여기에 대해선 논란이 없지만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온라인 상에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주장되는 장소들을 살펴보면 규모가 크든 작든, 또 자연이든 인공이든 상관 없는 듯하다.

CNN은 2007년 한 온라인 조사(마지막 순간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투표 참여자가 몰렸다)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발표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과 중국의 만리장성,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멕시코 치첸이트사의 마야 유적지, 인도의 타지마할이다.

자칭 세계 불가사의 권위자인 하워드 힐먼은 이 목록을 수정해 갈라파고스 군도와 그랜드 캐년을 포함시켰다. 이밖에 호주 대보초와 에베레스트산, 빅토리아 폭포, 북극광, 멕시코의 파리쿠틴 화산 등을 포함시킨 목록도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서 투표를 진행 중인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에는 인터넷과 ‘해리 포터’,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영국의 스톤헨지 등이 후보로 올랐다. 현재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가 득표율 17%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애스트로돔(세계 최초의 돔 경기장)과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영양 이동, 뉴질랜드 로토마하나 호수의 핑크 앤 화이트 테라스도 여덟 번째 불가사의로 거론됐다.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는 이제 누구든 나서서 그렇다고 우기면 자격이 부여되는 듯한 공허한 타이틀이 됐다. 수많은 웹 컨테스트에서 제멋대로 선정된 타이틀이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엄숙하게 선포된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아름답고 스릴이 넘친다. 그곳에서 하이킹을 하다 보면 눈보라에 발이 묶이기도 하고 시속 110㎞의 강풍으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또 무지개를 보거나 눈사태 소리를 듣게 되기도 하며 물 위 15m까지 솟아오른 빙하와 맞닥뜨리고 수없이 많은 폭포를 지나게 된다. 하지만 그곳이 정말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일까? 모든 투표가 다 끝날 때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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