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say - 불쌍해 보이는 잘난 남자가 최고

잘난 척 하는 사람 싫어하는 것은 남녀불문, 만국공통이다. 불쌍해 보이는 사람이 꺼려지는 것 역시 만국의 남녀공통이다. 질문을 던져보자. 여자들은 잘난 사내를 좋아할까 불쌍한 사내를 좋아할까. 답부터 말하자. 잘난 사내가 불쌍해 보일 때 가장 좋아한다.
뒤집어 말하면 불쌍한 사내가 잘난 척할 때 가장 멸시를 당한다. 객관적으로 잘난 사람이라고 꼭 연애가 시원한 것도 아니고 대단히 불쌍한 처지인데 연애전선에서는 항상 위너인 경우도 많다. 문제는 잘남이든 불쌍함이든 그 ‘척’에 비밀이 담겨 있다. 그런데 아, 뭔가 줄기는 있는데 말하다 보니 뒤죽박죽인 기분이네.
여자의 가슴 촉촉하게 만들어야왜 뒤죽박죽인지 규명해 보자면 뭐가 잘난 것인지 혹은 못나고 불쌍한 것인지가 애매한 탓이다. 일단 잘남을 따져보자. 뭐 부·명성·지위 그런 것이다. 세속사회를 사는 한 사회적으로 우월한 것이 잘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연애는 사회적 저울을 초월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여자에게 사내의 잘남은 사회적 평판의 순이 아니라 여자가 그 면모를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주관적 지점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어떤 여성에게 한 사내의 잘남은 자기와의 커넥션 여부에서만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이 연애론이 중년 나이에 이른 사내의 여자 공략법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40년쯤 살았다면, 그러고도 목숨이 붙어있다면 다들 성취의 무용담을 갖고 있다. 정말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세월을 허무해 하며 사추기 오뇌의 무도만 출 것 같은가. 오뇌의 무도야 기본적으로 추는 것이고, 가슴 속 다른 한쪽에 이글대는 영웅설화가 숨어있다는 얘기다(그렇지 않으면 벌써 자살했다). 당연한 것이다. 10대에서 30대 말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아무튼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잘 믿기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인간론을 예로 들어보라. ①모든 사람은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는다. ②모든 사람은 자기가 잘 생겼다고 믿는다. 나는 옳은데 세상이 잘못됐고, 남들이 아무리 못 생기게 보아도 자기만 아는 비밀의 매력 포인트를 본인이 반드시 찾아낸다. 그래서 인류가 멸종되지 않았다고 본다. 자기를 긍정하는 것은 생존본능의 하나다.
잘남은 타인과의 비교평가에서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잘남을 인정하는 심리는 주관적이다. 동창생 모임을 떠올려 보라. 대체로 누군가를, 특히 ‘난 놈’을 씹는다. 탓할 수 없는 생존본능이다. 하물며 여자라면 어떻겠는가. 사회적 위치와 평판 순으로 남자를 고를 것이라는 예단은 잘못 알려진 신화다. 쇼핑할 때 가장 비싼 물건을 찾는 여자는 없다. 지불할 능력 내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찾을 뿐이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재벌 회장에 비해 중소기업 회장이 더 불쌍해야 맞다. 그러나 그럴까. 그 중소기업 회장은 재벌 회장의 성취를 아버지 덕으로 돌릴 것이다. 그 중소기업의 만년 과장은 자기보다 젊은 엘리트 부장 때문에 불행하고 불쌍할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 과장은 그 부장의 가정사가 불행하다거나 어떤 치부가 있다거나 하는 점을 찾아내기도 할 것이다.
공원이나 등산로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명퇴자들이라면 게으름의 철학이나 느리게 살기 따위의 에콜로지컬(!)한 사상에 귀 기울일 확률이 높다. 차라리 가치관을 변경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너나없이 죽지 못해 산다고 쉽게 말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면 살 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는 것. 그 배경에는 의외로 강력한 프라이드나 자기 긍정이 숨어있다는 사실이다.
가진 것, 이룬 것으로 한 인간의 불쌍함 여부를 판정하기가 쉽지 않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비루함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잣대를 벗어나 진짜 불쌍함, 멋진 불쌍함을 탐구해 들어갈 필요가 있다. 어떤 사내가 스스로 불쌍하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멋져 보이는 모습, 그건 뭘까. 수 십년 전에 읽느라 끙끙댔던 하이데거를 원용하고 싶은데 좀 고약하게 복잡하다.
한 마디로 인간은 시간 앞에서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사는 존재라는 것. 그 정도면 됐다. 중년의 사내라도 아직 펄펄 날며 활동할 수 있고 돈 버는 재미에 미쳐 다른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전혀 멋지지 않고 그저 불쌍하기만 한 모습이다. 하이데거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시간의 유한성을 성찰하지 못한, 그야말로 청춘기 상태에 머물러 있는 탓이다.
여자가 매혹을 느끼는 중년의 사내는 일에 미치고 성취에 불타는 정력남이 아니다. 뒤돌아봄. 뒤돌아봄을 통해 삶의 가엾음과 무상함을 느끼고 그런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할 수 있는 사내를 만났을 때 여자 가슴은 촉촉해진다. 이득의 눈초리를 번득이는 여자도 마음의 갑옷을 벗는다. 너무 순진한 얘기라고?
가끔 사적 경험을 홀딱쇼처럼 꺼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충동으로 아내에게 작살나고 아들에게 망신당할 수는 없다(왜 나는 소설가가 되지 못했을까. 소설가 친구들은 나도 알고 있는 자기 ‘범행’을 줄거리에 슬쩍 잘도 끼워 넣는다). 그저 불쌍의 진실이 주는 효용을 만끽했다는 정도만 밝혀둔다. 스스로 잘남이 넘친다고 믿는 사람, 그것이 여자에게 어필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밀고 나가는 수밖에. 하지만 잘난 척하는 위세로 비치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해야 한다.
존재의 불쌍함 공감하는 여자가 애인중년기 사내의 잘난 ‘척’은 정말로 치명적이다. 그 잘남의 과시가 거짓 없는 진실이어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거부감보다도 그 잘남의 영역이 클수록 여자 쪽이 취할 몫이 적어진다는 걸 상대는 본능적으로 안다. 잘남의 반대쪽, 내가 불쌍이라고 명명한 연민의 공감대는 존재의 발가벗은 모습과도 같다. ‘가정이 불행해서 언젠가는 이혼을 할 예정이고….’ 운운의 삼류 신파극은 물론 제외한다. 과장된 불행감의 토로는 불쌍한 ‘척’으로 분류되는 악덕이고 유치한 행동이다.
중년기에 이르러야 이해되는 근원적인 존재의 초라함, 존재의 불쌍함이 공감될 때 여자는 자기가 보탤 수 있는 몫을 생각해 본다. 그럴 수 있는, 그러려고 하는 여자가 바로 애인이다. 거의 대부분의 여자는 그렇지 않아서 몇 번의 잠자리로 끝나버리겠지만 일부일처제의 근원적 모순을 해소하는 관계로서의 출발점은 바로 존재의 불쌍함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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