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nagement - 방심이 회복불능의 패착 부른다

바둑에서 승리를 가져온 수를 승착(勝着)이라고 한다. 반대로 패배를 불러온 수를 패착(敗着)이라고 한다. 매스컴에서도 ‘패착’이란 말을 종종 쓴다. 상대 정당의 행태를 두고 패착이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아베 일본 총리의 우경화 행보를 패착으로 묘사한다. 패착을 두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그 결과 패배를 당하게 된다. 기업경영이나 인생살이에서도 패착을 두면 패망에 이르게 된다. 작은 실수나 사소한 악수(惡手)는 만회가 가능하지만 패착은 회복불능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패착은 어떤 경우에 두게 될까. 기예를 겨루는 스포츠나 게임에서는 기술상의 미숙에서 패착이 나온다고 봐야 할 것이다. 축구에서 메시나 호날두와 같이 뛰어난 선수가 볼을 몰고 오면 상대편은 기술력이 모자라 골을 허용하곤 한다. 이런 경우 패착은 기술력의 차이에서 온다. 그런데 많은 경우 바둑이나 세상사에서 패착은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수가 많다. 부주의나 방심에서 생각지 않은 패착을 두게 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때로는 자만심이나 지나친 욕심 때문에 패착을 두는 경우도 있다.
최근 몇몇 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가 대량으로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고객들의 중요한 신상정보가 노출됐으니 신용업체로서는 중대한 실착이다. 고객의 피해가 커지면 패착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실수가 나온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심이 부른 실수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었고,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 같은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었다. 고객의 신용정보를 토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업체라면 보안에 철저하게 대비를 하는 것이 사업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느냐는 방심이 심각한 사태를 불러왔다.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느냐…기업 경영에서 방심으로 인한 실수는 이번 일만이 아니다. 공사장의 구조물이 무너진다거나 화학물질이 누출되는 사고 등 부주의로 인한 사건들이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다. 바둑에서도 방심으로 인해 실수나 패착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방심이란 마음을 놓는 것을 말한다. 승부를 할 때는 적절한 긴장이 필요한데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 방심이다. 방심을 하면 바둑판 도처에 숨어있는 위험 요인을 놓치기 쉽다. 실전에서 나온 예를 하나 살펴보자.
[1도]는 예전에 필자가 둔 공식 타이틀전 대국의 종반 상황이다. 상대는 유명한 고수로 필자가 고전했던 바둑인데 흑1·3으로 끝내기를 한 장면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백A에 이었으면 그대로 백집이 완성되며 백의 승리. 그러나 문제가 없다고 보고 백4에 두었다.
[2도]에서는 다음 흑1에 단수를 해도 백2에 나가 이상이 없다고 본 것이었다. 흑3·5로 단수해도 백4·6으로 받아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흑7에 찔러 들어가는 수가 있었다. 흑9로 1선에 둘 때 오른쪽 흑돌 세 점 때문에 백이 단수를 할 수가 없다. 결국 왼쪽 백돌 네 점이 잡혀 역전되고 말았다.
[3도]에서는 흑1로 찌를 때 백2쪽으로 단수하면 흑3·5로 나간다. 백A에 이을 때 흑B로 역시 백돌이 잡힌다. 경계선이 거의 완성된 백집 속에서 수가 났으니 백의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고수도 순간의 방심으로 낭패 보기도이 역전극은 백의 입장에서 조금만 주위를 기울였다면 피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 프로기사들은 이런 정도의 수읽기는 2초 안에 할 수 있다. 그러나 별 수가 있겠느냐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실수가 다 된 밥에 재를 떨어뜨리는 패착이 되고 말았다.
천하의 고수라도 방심을 하면 위험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방심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약간만 주의를 기울이면 막을 수 있는 화를 방심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으로 만든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이다.
사실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사고는 순간의 방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적지 않다. 음주 운전이나 졸음 운전과 같은 부주의나 방심으로 일생일대의 패착을 두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일상생활이나 기업 경영에서 이런 유형의 패착은 줄여야 한다. 천재지변에 의한 사건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부주의나 방심에 의한 실수는 충분히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바둑에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충고한다. 꺼진 불이라고 해도 혹시 불씨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후회막급의 패착을 줄이는 데 확실히 효과가 있다. 비슷한 기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 승리할 확률이 높다. 돌부처로 불린 이창호 9단이나 이중허리로 불린 린하이펑 9단 같은 기사는 돌다리도 두들기며 걷는다는 평을 받았다.
위험 요인을 체크하여 혹시라도 물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 길을 피해서 다른 길로 갈 만큼 안전관리에 철저했다. 두 기사의 이런 관리가 바둑계의 정상으로 올라서는 데 숨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기업이나 여타 조직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은 경영능력 이전에 방심으로 인한 실착이나 패착을 피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꺼진 불도 다시 확인하고 돌다리도 두들기며 걷는 관리를 한다면 그만큼 더 건강한 회사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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