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도금한 태아 시체부터 숫자 ‘9’로 시작하는 휴대전화 번호까지…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환영 받는다 태국 사회에는 주술의 힘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카오소드는 태국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일간지다. 태국의 다른 모든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 신문 역시 방콕 길거리에서 벌어지는 정치 세력과 시민 간의 싸움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린다. 잉룩 친나왓 총리를 축출하려고 일어선 혁명적인 시민들의 모습, 최루가스와 고무탄, 실탄이 난무하는 시위현장, 정치적 살인, 경찰 봉쇄선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불도저의 이야기가 매일 지면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지난 1월 4일엔 좀 색다른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태국의 미래를 위해 싸움에 나선 새로운 세력, 주술에 관한 이야기다.
2010년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방콕의 정부청사 앞에 피를 뿌리며 시위를 벌였고, 지난 1월엔 같은 자리에서 태국개혁학생국민단체가 그 때 내려진 저주를 씻어낸다며 종교 의식을 거행했다.카오소드는 이렇게 보도했다. “태국개혁학생국민단체(STR) 회원들이 오늘 오전 11시 정부청사 2번 출입구 근처에 방콕시의 천사와 귀신, 혼령들을 위한 제단을 설치했다. 시위대는 이 제단에서 정부청사로부터 악령을 몰아내는 종교 의식을 거행했다.”
STR의 보안 책임자는 이 의식이 2010년 ‘붉은 셔츠’(막강한 정치 왕조 친나왓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 대원들이 시위대로부터 헌혈 받은 피를 이곳에 뿌림으로써 내려진 저주를 씻어내기 위해 거행됐다고 말했다. “ ‘붉은 셔츠’의 지도자들은 ‘피를 뿌리는 의식은 국민들이 흘린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말했지만 그 자리에 브라만 계급의 주술사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이 종교적 의도가 숨어있었다는 점을 시사했다”고 카오소드는 보도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태국을 묘사할 때 마법에 걸린 듯하다 말을 자주 하는데 그 말은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옳다. 최근 카오소드에 실린 또 다른 기사에서는 주술의 힘을 믿는 태국인들이 숫자 ‘9’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사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경쟁을 다뤘다. (태국어로 숫자 ‘9’는 ‘발걸음’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태국인들은 숫자 ‘9’로 시작하는 번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그런 전화번호로 주고받는 전화에 하늘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부유한 태국인들은 운명을 바꿔줄 숫자 ‘9’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받으려고 휴대전화 판매업자들에게 최대 3000달러까지 지불한다. 최근에는 태국 전역의 숫자 ‘9’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판매를 권유하는 심카드 중개업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거액의 현금을 들고 전국을 돌면서 시중에 유통되는 전화번호 중 숫자 ‘9’로 시작되는 번호를 모조리 사들인다.
방콕에서는 운명을 바꿔줄 심카드가 수천 달러에 팔린다. 한편 “당신의 인생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어줄 행운의 번호”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태국 스마트폰 업체 i-모바일의 최근 광고는 휴대전화의 마법에 한층 더 불을 붙였다. 이 업체는 숫자 ‘9’로 시작되는 번호에 큰 돈을 지불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점성술사가 신의 가호를 빌며 특별히 선택한 행운의 번호를 판다.
마법의 휴대전화 전쟁은 소비자들 사이에 일시적으로 번지는 유행을 넘어서서 태국 고위층까지 파고든 주술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반영한다. 2002년 태국 내각은 예산을 태국 현지화(바트화)로 9999억으로 조정했다. 그 다음해에는 교통부 장관이 자신의 아들에게 숫자 ‘9999’가 들어간 자동차 번호판을 받게 해주려고 국영 자동차 대리점에 9만5000달러를 지불한 사건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다.
이런 사건들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기 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주술 의식을 행했다는 소문에도 신빙성을 부여한다. 국제시장에서 수십억 달러의 자산 가치를 인정받는 굴지의 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미신이 판친다.
2012년 방콕 수바르나부미 공항에서 여객기 착륙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사람들은 유령 때문이라고 했다. “초기 수사에서 랜딩 기어의 결함이 원인으로 지목됐다”고 카오소드는 보도했다. “하지만 타이 항공의 상무는 회사 측이 이 공항에 붙어사는 악령을 달래기 위해 성대한 의식을 행하겠다고 말했다.” 대다수 태국인들이 이 오래된 악령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태국 판매 1위 신문 타이 래스는 공항 개항식에 참석한 고위관리 한 명이 “할아버지 귀신에 홀렸다”고 보도했다. 뱀이 많이 살던 습지에 공항이 건설될 때 막강한 힘을 지닌 뱀 신이 노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뱀 신의 화를 달래고 수바르나부미 공항의 악령을 몰아내기 위해 공항 직원들이 8개의 대형 사원을 세웠다.
근래 들어 태국에 도착한 사람 중 가장 섬뜩한 인물은 대만계 영국인 차우 혹 쿠엔일 듯하다. 타이 항공이 공항의 악령을 달래던 바로 그 해에 이 흑마술 사기꾼은 방콕의 한 호텔에서 태아 시체 6구가 든 여행가방을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됐다. 이 태아들은 주술 의식이 행해지는 가운데 낙태돼 말려진 다음 문신이 새겨지고 금색 페인트가 입혀졌다. 일부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굉장한 마법의 힘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상품이다.
쿠엔은 그것들을 구당 4만 달러에 대만으로 밀수하려다 체포됐다. 하지만 같은 해 그보다 더 끔찍한 유사 사건이 발생했다. 2012년 5월 한국 세관당국은 중국에서 들어온 인육 캡슐 수천정을 압수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렇게 보도했다. “당국은 이 캡슐들이 중국 북동부에서 만들어졌으며 아기의 시체를 잘게 잘라 난롯불에 말린 뒤 가루로 만든 내용물이 들어있다고 발표했다 … 이 캡슐은 정력에 좋으며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인기를 끈다.” 태국에서 숫자 ‘9999’가 들어간 자동차 번호판은 최고의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진다.
배우 앤절리나 졸리는 태국의 문신 전문가 아자른 누 캄파이로부터 등에 문신(그의 문신에는 마법적인 보호력이 있다고 알려졌다)을 새겼다. 태국에서는 행운의 펜던트 사업도 성행한다. 3만 달러를 호가하는 상품들도 있다. 펜던트를 몸에 지닌 사람들은 때때로 마법의 문신으로 더 큰 힘을 얻기도 한다. 배우 앤절리나 졸리는 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문신 전문가 아자른 누 캄파이로부터 등에 문신을 새겼다. 그의 작업은 주문이 낭송되고 향불이 피워진 방안에서 의식을 행하듯 이뤄진다. 그의 문신에는 마법적인 보호력이 있다고 믿어지는데 신봉자들은 그의 문신 덕분에 총에 맞거나 심한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았다고 주장한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세계 최고인 태국에서는 사고만 막을 수 있다면 어떤 방편도 환영 받는다. 태국의 택시 기사들은 각자 나름대로 마법의 상징물들을 지니고 다닌다. 택시 천장에 구불구불 그려진 선들은 사고 등 불운을 막아주는 주문이다. 내 친구 아엠과 나는 지금 방콕의 교통 지옥 속을 한 뼘씩 헤치며 나아가고 있다.
아엠의 새 차 계기판에 놓인 금부처가 작은 위안을 준다. 국제 물류 회사의 간부인 아엠은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로 여유시간엔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한다. 그녀는 행운의 휴대전화 번호를 둘러싼 소동을 비웃는다. 하지만 친한 수비학자에게 자신의 자동차 번호판 분석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번호판에 숫자 ‘13’이 들어있어서 불안하지만 뒤따라 나오는 ‘56’이라는 숫자가 불운을 떨쳐낸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하지만 아엠이 번호판을 바꾸지 않고 내버려둔 건 미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이미 숫자점으로 더 좋은 의미를 지닌 글자를 조합해 성을 바꾸었다.
아엠의 여동생 역시 그녀처럼 성을 바꿨고 전화번호 또한 더 운이 좋다는 쪽으로 바꾸었다. 이들 자매는 그 다음 몇 달 안에 더 좋은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고 말했다. “태국의 신세대 일부는 주술에 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아엠은 말했다. “하지만 태국 사람들은 태어나는 그날부터 주술에 연결돼 있다.”
우리가 차를 주차한 쇼핑몰은 대리석과 유리로 된 건물로 고급 향수점과 디자이너 패션점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엠의 친구 누크가 스타벅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이 빠르고 옷을 맵시 있게 차려 입은 그는 다단계 판매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주술의 덕도 보았다) 30대의 백만장자 사업가다. 우리는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누크가 사무실 위치를 선택할 때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함과 동시에 주술의 힘을 빌린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시설과 주차, 가구 등 일반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선택의 범위를 좁힌 뒤 점술가에게 하늘의 뜻을 물었다.
이 과정에는 누크의 생김새를 바탕으로 성격과 운을 점치는 관상이 포함됐다. 여기에 그가 태어난 일시와 이름으로 푸는 숫자점이 보태졌다. 그런 다음 점술가는 태국인들이 ‘칼로르’라고 부르는 도구를 들고 사무실들을 돌아다녔다. 나침반처럼 생긴 이 도구 위에는 신비로운 상징들과 아시아 문자들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바늘이 가장 운이 좋은 사업 장소를 가리킨다. 점술가에게 준 150달러의 복채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누크는 사무실을 옮긴 뒤 수익이 4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누크에게 태국 업체들이 점술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태국 회사의 약 90%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점술가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나와 누크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던 아엠도 동의했다. 그들은 태국 대기업 중 일부는 사원을 채용할 때 관상을 보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응시자들은 물론 과거의 업무수행 실적을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이름을 숫자로 풀어 운명을 분석하고, 그것을 다시 생일의 숫자와 얼굴 생김새와 맞춰본다.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이 채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자격이 있는 후보자가 불길하게 생긴 귀나 운 없게 생긴 눈썹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누크의 경험으로 미뤄 볼 때 동업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점성술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태국의 대형 슈퍼마켓 브랜드 테스코 로터스는 새 지점을 열 때마다 건물 밖에 ‘정령의 집’을 세운다. 신성한 의식을 통해 축복을 받은 그 집들은 그 땅을 차지한 정령들을 달랜다. 이 지역에서는 주술이 사업의 일부다.
1월 4일의 의식이 증명하듯이 주술은 정치의 일부이기도 하다. 정치 세력과 시위대의 싸움이 끊이지 않는 방콕의 길거리에 혼령을 불러내는 행위는 미국인들에게 바보스럽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위엄 있는 미국 권력의 중심부에 주술의 힘이 얼마나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탁신은 주술의 힘을 빌려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는 소문만 돌았을 뿐이지만 미국 대통령 중 적어도 한 사람은 별자리를 보며 지구를 운영했다.
도널드 리건(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냈다)의 회고록 ‘포 더 레코드(For The Record)’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내가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레이건가 사람들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거의 매번 샌프란시스코의 여자 점성술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어떤 일을 위해 행성들이 좋은 구도로 정렬돼 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방콕 거리에서 그 좋은 구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도시가 혼돈으로 빠져들면서 태국 군부의 쿠데타 가능성에 관한 소문이 돈다. 사람들은 탱크가 길거리를 장악하고 중무장한 병사들이 철권을 휘둘러 시위를 끝낼까 두려워한다. 어쨌든 1월 4일의 의식은 큰 성공으로 받아들여졌다. “STR 측은 오늘의 의식이 4년 전 ‘붉은 셔츠’의 행위로 내려진 저주를 완벽하게 씻어냈다고 말했다”고 카오소는 보도했다.
이 의식이 폭동을 야기할지 평화를 이끌어낼지는 별들에게 달렸다. 방콕 길거리에서 여러 세력이 충돌하는 동안 세계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받은 이 땅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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