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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김훈作 『화장』의 ‘립스틱 효과’

Management - 김훈作 『화장』의 ‘립스틱 효과’

경기 불황 판단하는 생활지표 … 스커트 길이, 넥타이 판매량도 경기 반영



우리가 흔히 쓰는 ‘화장’이란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죽은 뒤 불을 태워 한줌의 재로 만드는 화장(火葬),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얼굴을 단장하는 화장(化粧).

하나는 사라지고 잊혀지는 과정이라면 다른 하나는 주목 받고 기억되는 과정이다. 죽음과 삶을 가르는 단어라고나 할까.

김훈의 소설 『화장』은 2004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심사위원들은 “병들어 소멸해가는 인간의 몸과 젊고 아름다운 인간의 몸에 대한 적나라하고 세밀한 묘사는 새로운 소설 쓰기의 한 전범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죽은 아내, 그리고 화자가 마음 속에 품었던 여인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탁월하다.

화자는 화장품 회사에 상무로 근무하는 ‘나’다. 2년 동안 뇌종양을 앓고 있던 아내가 사망했다. 나는 전립선염을 앓고 있다. 그래서 오줌을 잘 누지 못한다. 아내의 장례절차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짬을 내 병원에서 부풀어오른 방광에서 오줌을 빼냈다. 상중인데도 회사 회장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광고 콘셉트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한다. ‘여름에서 가을까지-여자의 내면여행’과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 전혀 다른, 둘 중 하나 선택이다.



죽어가는 인간과 아름다운 인간의 몸 묘사 탁월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광고파트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5년차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추은주는 그 사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가졌다. 나는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녀도 내가 사랑하는지 모른다. 나만의 철저한 짝사랑이다. 저녁 7시가 되자 문상객들이 몰려든다. 거기에는 추은주도 있고, 광고국 직원들도 있다. 아내의 화장장. 2시간 만에 아내는 재가되어 사라졌다.

이야기 속에 두 가지 이미지가 계속 교차된다. 죽어가는 아내의 육체는 습기가 빠진 바스락거리는 피부에다 검버섯이 피어있다. 살아서 꽉 찬 추은주의 여체는 빗장뼈 위로 드러난 푸른 정맥이 선명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존심이 있지만 여성은 남성과 또 달라 보인다. ‘여자’로서의 자존심은 때로 죽음보다 더할 때도 있다. 아내의 똥물을 닦아내는 ‘나’에게 아내는 연신 말한다. “여보 미안해”라고. 여자로서의 수치심이다.

화장(化粧)은 여성들의 자존감을 북돋아주는 치장도구다. 메이커업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자신 있는 부분은 더욱 강조한다. 경제를 굴리는 큰 내수시장에는 여성화장품도 있다. 여성이 사는 립스틱은 마케터와 경제학자의 관심사항이 됐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는 그렇게 탄생했다. 립스틱 효과란 경기가 불황일 때 여성의 립스틱이 잘 팔리는 현상을 말한다.

돈이 없다 보니 신발이나 옷을 사는 것은 부담스럽다. 대신 저렴하면서도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는 물품을 선호하는데 그게 립스틱이다. 특히 빨간 립스틱을 주목한다. 빨간 립스틱 하나만 입에 발라도 얼굴 전체를 화사하게 연출할 수 있어 립스틱 구입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립스틱 효과란 이처럼 가격이 싸면서 소비자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상품이 잘 판매되는 현상을 말한다.

유래는 오래됐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에 미국 경제학자들이 만든 용어다. 당시 산업별 매출 통계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미국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로더는 립스틱 판매량으로 경기를 가늠하는 립스틱 지수(Lipstick Index)를 만들었다. 2000년대 초 경기 불황 때 립스틱 판매가 증가하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경기 불황기에는 립스틱 말고도 고급 커피, 초콜릿 등도 잘 팔린다고 한다. 저렴하면서도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것들이다.

립스틱과 함께 여성 소비품으로 경기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또 있다. 스커트, 즉 치마다. 치마 길이 이론(Skirt Length Theory)은 짧은 스커트가 유행하면 경기가 좋아지고, 긴 스커트가 유행하면 경기가 나빠진다는 내용이다. 소비자가 자신감이 생기면 다리를 내보이는 미니 스커트를, 자신감을 잃으면 다리를 가리는 롱 스커트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1926년 경제학자인 조지 테일러는 경기가 좋을 때 여성이 실크 스타킹을 보여주기 위해 치마를 짧게 입고 경기가 나쁠 때는 스타킹을 살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마를 길게 입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마브리도 1971년 뉴욕의 경제 상황과 치마 길이와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면서 “경기 호황은 미니 스커트의 인기를 몰고 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치마 길이가 짧아지면 주가가 오른다고 주장했다. 치마길이 이론을 지수화 한 것은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다.

아이어러 코블레이의 ‘강세장과 벌거벗은 무릎’도 흥미롭다. 그의 분석을 보면 1946년 여름 주식시장이 급락한 다음해인 1947년 새로운 모습이라며 롱 스커트가 등장했다. 주가가 기울던 1968년 치마길이가 길어졌다. 1987년 초에는 디자이너들이 늘어진 옷단을 말아 올리면서 미니 스커트가 유행했다. 하지만 10월이 되자 여성들이 롱 스커트를 입기 시작했는데 10월 17일 주가 대폭락이 일어났다.

여성의 치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어김없이 길어졌다. 2010년 에라스무스대학 계량경제연구소는 1921년부터 2009년까지 치마길이와 경기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경기와 치마길이가 3~4년의 간격을 두고 동행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경기가 불황이면 미니 스커트가 짧아진다는 것은 속설이다. 과거 영국에서 전시 불황 때 천을 아낀다며 스커트 길이가 짧아진 것에서 유래한 것 아니냐는 애기가 나온다.

여성에게 립스틱이 있다면 남성에게는 넥타이가 있다. 불황일 때 넥타이 판매량이 늘어난다. 비싼 정장을 사기는 어렵고, 넥타이 하나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넥타이 효과’라고 부른다.



장기 침체와 양극화로 불황 수혜주도 옛날과 달라판매가 늘어나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식시장에서는 불황 수혜주가 있다. 물론 불황에도 립스틱이 잘 팔리지 않고, 불황 수혜주도 옛날 같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비자들이 장기침체와 거대 부채의 늪에 빠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소비패턴이 과거와 많이 바뀌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보자. 납골당에 유골함을 맡기고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추은주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내는 현실에서, 추은주는 마음 속에서 각각 나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광고 콘셉트로 ‘가벼워진다’를 정했다. 화장을 하는데 무겁고 복잡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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