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6.6㎞, 남북 4.2㎞ 타원형 500~600m급 봉우리 줄 지어 대암산에서 바라본 초계분지. 산줄기로 빙둘러싸인 원형분지 형태가 확연하다. 오른쪽 높은 산이 외륜봉 중 최고봉인 미타산(662m).
위성사진을 보면 초계분지의 특별함이 한결 두드러진다. 대암산은 서쪽 끝에 있고, 동북쪽으로는 물길이 빠져나가는 직선의 협곡이 보인다.양구 해안 펀치볼(punch bowl)은 화채 그릇처럼 오목하게 패여 있어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다. ‘운석의 충돌 흔적이다’ ‘자연적인 침식분지다’ 등 설이 많은데 침식분지라는 것이 정설이다. 해안 펀치볼과 규모와 형태가 매우 흡사한 곳이 또 있다. 바로 경남 합천 초계분지다.
분지 안쪽의 평지만 해도 동서 6.6㎞, 남북 4.2㎞에 타원형을 이루고 규모와 형태 모두 양구 해안 펀치볼과 흡사하다. 분지를 에워싼 산줄기가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은 것도 똑같다. 초계분지를 에워싼 산줄기의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다.
남쪽은 최고봉 미타산을 필두로 천황산(655m)을 위시해 500~600m급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다. 북쪽은 200~300m로 훨씬 낮다. 분지에 모여든 물은 북동쪽으로 실낱 같이 터진 협곡으로 빠져나간다. 이 좁은 골짜기에는 적중농공단지가 길쭉하게 들어서 있다. 물길은 합천댐에서 흘러온 황강과 합류했다가 곧 낙동강 본류와 만난다.
초계분지 내부 모습. 수구(水口)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계단식 선상지 지형이 뚜렷하다. 뒤쪽은 미타산.몇 년 전 학계의 조사결과, 분지 내부는 퇴적암으로 이뤄져 있고, 화산암이 없어 화산분출로 형성된 분화구는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대신 암(岩) 밀도조사와 중력조사에서 중심의 암석층이 외부 충격으로 부숴진 파쇄대로 나타나 운석 충돌에 따른 ‘크레이터’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암산 표지석과 뒤쪽으로 우뚝 선 가야산(1430m).분지 중심부의 파쇄대는 지하 600m까지 분포한다니 운석 충돌설에 더욱 힘이 실린다. 하지만 해저지형이 융기한 것일 수도 있고, 침식분지의 가능성도 여전히 커서 운석 충돌 크레이터로 단정하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만약 운석 충돌공이 맞다면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지형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운석 충돌 크레이터는 많지만 형태가 제대로 남은 것은 드물다.
초계분지를 가까이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대가 있다. 분지 서쪽에 솟은 대암산(591m) 정상이다. 해안 펀치볼의 최고봉과도 우연하게 이름이 같은데, 정상에 있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까지 임도가 나 있어 자동차나 자전거로 오를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 이륙을 위해 숲을 제거해 전망이 탁 트인다.
초계분지는 물론, 지리산과 가야산까지 잘 보이는 천혜의 전망대다. 꼭 비행기나 위성사진이 아니더라도 대암산 정상에 서는 순간, 발밑으로 푹 꺼진 원형 분지는 과연 기이하다. 완벽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평탄한 분지는 마치 별세계처럼 동떨어져 있고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소외된 듯 고요히 잠겨 있다.
왜 이런 지형이 생겼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침식분지라면 어떻게 이런 기묘한 형상이 됐을까. 느낌으로는 화산 분화구나 운석 충돌 크레이터가 분명해 보인다. 대암산 정상 산불감시소를 지키는 노인은 학계 조사를 근거로 “운석 충돌로 생겨난 크레이터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또 하나 흥미를 끄는 것은 “이곳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대야성 터라고 옛날부터 전해져 온다”는 그의 말이었다. 대야성(大耶城)은 백제와 신라의 격전지로, 김춘추의 딸인 고타소의 남편 김품석이 성주로 있다가 백제군의 계략과 부하의 배신으로 성을 빼앗긴 곳이다. 이 과정에서 김품석과 고타소가 죽는데, 애지중지하던 딸을 잃은 김춘추의 분노와 복수심이 삼국통일의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곳이다.
대야성 터로 알려진 합천읍내의 성터는 규모가 너무 작아 정말 대야성이 맞는지 논란이 분분했다. 그런데 초계분지 토박이 노인은 분지 전체가 천연의 성벽을 이룬 대야성이라는 전설이 예로부터 전해온다고 말한다. 분지를 에워싼 외륜산이 성벽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정상부 곳곳에는 성벽의 흔적도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대암산 정상에도 무너진 성벽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흩어져 있다. 거대한 분지가 발 밑으로 광활하다. 크레이터인가 아닌가, 대야성인가 아닌가.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신비의 대지 앞에서 발길은 떠날 줄 모른다.
찾아가는 길 자가용이든 대중교통이든 합천읍을 경유하는 것이 편하다. 대암산 패러글라이딩장은 동쪽의 초계분지나 서쪽의 대양면 무곡리 양쪽에서 오를 수 있다. 산 아래에서 대암산 정상까지는 동서 각각 4㎞ 정도. 자동차로 오를 경우, 차 1대가 지날 정도로 좁은 임도여서 마주 오는 차가 없는지 주의해야 한다. 정상 직전에 주차공간이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지금이 타이밍" 규제 피한 중국인, 서울 아파트 싹쓸이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프로레슬링 전설’ 故 헐크 호건은 누구? [왓IS]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하루새 115% 급등"…미국 개미들 쓸어담은 무명의 종목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슈퍼달러에 웃었던 국민연금, 올해 환율 효과는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삼천당 상한가 만든 비만치료제 BE Study...전문가들은 ‘반신반의’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