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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에세이 - 다시 보는 개성상인 회계장부

CEO 에세이 - 다시 보는 개성상인 회계장부



최근 가슴 벅찬 뉴스를 접했다. 2월 문화재청이 근대 시기의 회계장부를 문화재 제587호로 등재했다는 소식이다. 개성지역에서 활동했던 박재도 상인 집안의 회계장부 14책과 다수의 문서가 문화재로 등재된 것이다.

여기에는 1887년부터 25년 간 약 30만 건의 거래내역이 기재돼 있다고 알려졌다. 필자는 회계사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우리 선조들의 꼼꼼함과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존경을 표한다.

고려시대에 ‘사개송도치부법’이 있었다. 대차의 이치, 계정과목의 운용, 장부의 분류 등이 적용된 회계기록이다. 기록 내용으로 볼 때 이탈리아 수도사 베네치아 파치올리가 세계 최초로 체계화했다는 복식부기보다도 200년이나 앞섰다는 주장이 있다. 학계에서도 우리에게 고유한 회계법이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유산과 전통 덕분에 개성상인들이 회계장부를 130여년 동안 대대손손 전해왔다. 사대부와 유학이 중시되고, 상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여건에서 회계를 이만큼 발전시켰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더욱이 회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지식층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게 자리잡고 있었다니 말이다.

최근 들어 회계의 중요성과 회계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시작은 대기업들의 회계 부정과 관련된 이슈였지만, 정부 부처를 비롯한 각계의 관심이 회계투명성에 모아지고 있다. 또 이를 위한 제도개선과 회계업계 발전까지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어 바람직스럽다. 그렇다면 회계기록이 역사적 유산인 ‘문화재’로 인정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오래됐고, 잘 정리돼 있다고 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회계를 역사적 기록물로만 보지 않고, 창의성이 담긴 발명품이라는 점은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개성 복식부기 장부는 일기장(분개장)·장책(원장)·주회계(결산서) 등으로 돼 있어 구성면에서 합리성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현대식 회계방식과 동일하게 대차 균형의 원리를 적용했다고 한다. 즉, 돈의 입출금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경영활동을 위한 의사결정 자료로 활용되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둘째, 잉여금 분담까지 기록하고 있어, 투자자와 경영인의 이익배분계약 관계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자본시장에서 기업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신뢰성을 줄 수 있는 이해관계자 보호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끝으로,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성실하게 기록된 어음·증서·서간 등 부속문서를 함께 보관했다고 한다. 이는 개성상인 가문에서 회계를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인식하고, 지적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높인 것이다.

최근 회계에 대한 논쟁을 보면 안타깝다. 회계의 본질적 가치와 역할보다 회계산업과 감사인의 체질 개선, 외부감사법 개정, 외부감사인 의무교체 등 회계의 기능과 역할 미흡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어서다. 현행 회계감사 구조상 기업과 갑을 관계인 감사인을 신뢰할 수 없어, 이들의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에 주된 고민이 있다. 심지어 감사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수백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회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꼼꼼하고 정교하게 정립해 왔는데, 우리 회계의 자랑스런 전통은 어디 갔는가. 회계는 회계사들만의 몫이 아니다. 회계는 모든 경제주체가 든든히 세워야 하는 사회의 기본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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