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닷속 난파선 보물의 주인은 누구?

마이크 밀로시는 자신의 발 아래 2.2㎞ 지점에 있는 난파선 내부의 영상을 보여주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원격 모니터링 기기 니모(Nemo)가 바다 밑의 침전물을 휘저어 뿌옇게 흐려진 화면이 선명해지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마침내 화면이 선명해지자 50개의 금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료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환호했다”고 밀로시가 말했다. 그는 난파선 SS 센트럴 아메리카에 화물로 실렸던 보물의 인양작업(1989년 시작됐다)을 이끄는 수석 엔지니어다.
목조 선체에 구리판을 덧댄 이 외륜 증기선은 미국의 골드 러시가 한창이던 1857년 캐롤라이나 해안에서 침몰했다. 지금까지 이 난파선에서 4000만 달러어치 이상의 금이 인양됐다. 이번달 SS 센트럴 아메리환호했카는 20여 년 만에 첫 방문객을 맞게 된다. 일단의 난파선 전문가가 남아 있는 보물을 인양하기 위해 바다 밑으로 내려갈 계획이다. 일부 추정에 따르면 이 배에 남아 있는 보물의 가치는 1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19세기 타이태닉’으로 불리는 SS 센트럴 아메리카가 세간의 이목을 끄는 부분은 심해 발굴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엄청난 부를 회수하기에 이르렀다는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바다 밑에 가라앉은 보물을 둘러싼 야심과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 법적 투쟁, 금간 우정, 발굴 작업에 돈을 투자했다가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요동치는 대서양 바닥으로 가라앉다SS 센트럴 아메리카가 파나마항을 출발해 마지막 항해에 나섰을 때 배의 짐칸과 약 580명 승객의 호주머니에는 금괴와 갓 주조된 금화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들끓는 캘리포니아 광산에서 방금 나온 것들이었다.
배는 하바나항에 잠시 머물렀다가 항해하던 중 허리케인을 만났다. 배에 물이 새들어 오면서 연료용 석탄이 젖고 엔진이 멈췄다. 침몰하기 직전 여성과 어린이 승객들은 근처를 지나던 작은 선박으로 옮겨 탔다. 남성 승객들과 금은 곧 요동치는 대서양의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배에 실린 금괴는 뉴욕의 은행들로 향하던 것들이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이 배의 침몰은 1857년 미국 경제공황(기간은 짧았지만 극심한 경기침체로 이어졌다)에 기여했다.
찾은 사람은 임자 아닌 패자?SS 센트럴 아메리카는 1세기가 넘도록 2.2㎞ 깊이의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불가사리와 그린란드상어의 놀이터가 돼 왔다. 이 배에 얼마나 많은 금이 실려 있었는지는 수수께끼다. 공식적인 화물 접수 기록에는 3t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보물선(Ship of Gold in the Deep Blue Sea)’의 저자 게리 킨더에 따르면 승객 개개인이 상당량의 금을 소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군대에서 선적한 기밀 화물에도 금이 들어 있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 배에 실린 금의 총량은 최고 21t으로 추정된다.
이 배를 찾아내는 데는 난파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최첨단 기술, 무한한 인내심, 그리고 엄청난 돈이 들었다. 토머스 G 톰슨은 이 중 맨 마지막의 돈만 빼고는 모든 걸 다 갖췄다. 오하이오주 디파이언스 출신의 연구과학자로 바텔연구소에 근무하던 그는 1980년대의 대부분을 심해 탐험에 필요한 기계 개발에 매달렸다.
당시 그는 SS 센트럴 아메리카가 침몰한 해역의 해저 지도를 작성하면서 배의 수색과 인양에 필요한 자금을 댈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콜럼버스 디스패치(오하이오주의 유력 일간지)를 소유한 디스패치 출판사를 포함해 오하이오주의 부자들이 톰슨의 작업에 1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1987년 이 난파선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약 260㎞ 떨어진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직후부터 니모가 금괴와 금화를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은판 사진, 결투용 권총 등 지난 세기의 유물들이 따라 올라왔다. 금빛 산호 등 희귀종 해양식물도 발견됐다.
톰슨은 유명인사가 됐다. “인양 작업이 진척되면서 톰슨은 훌륭한 사업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고 밀로시가 말했다. “상황이 달라지자 그의 성격도 바뀌어 이전보다 훨씬 더 은둔형이 됐다.”
난파선의 발견과 금괴 인양의 희열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첫 번째 금괴가 인양되자마자 135년 전 이 증기선의 화물에 대한 보험을 판매했던 미국과 영국의 보험회사들이 금괴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1990년에 버지니아주 노퍽의 연방 지방법원은 ‘발견자 점유의 원칙(the principle of finders-keepers)’에 따라 금괴를 인양한 톰슨과 그의 회사 콜럼버스-아메리카 디스커버리 그룹에 그 금괴의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했다.
보험회사들은 항소했다. 1992년 한 연방 항소법원은 콜럼버스-아메리카가 보험회사들이 금괴를 포기했다는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1심 법정의 판결을 뒤집었다. 1993년 열린 2차 재판에서 법원은 콜럼버스-아메리카가 보험에 들지 않은 금괴에 대해서는 100%, 보험에 든 금괴에 대해서는 90%의 권리를 지닌다고 판결했다. 콜럼버스-아메리카와 보험회사들은 결국 금괴를 나눠 갖는 데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인양된 금괴의 약 92.5%를 콜럼버스-아메리카가 차지했다.
하지만 톰슨은 탐사 프로젝트의 자금을 대기 위해 엄청난 빚을 졌다. 2000년 그가 SS 센트럴 아메리카에서 건져 올린 금괴를 캘리포니아 골드 마케팅 그룹에 매각했을 때 투자자들의 주머니에는 한푼도 돌아가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골드에 금괴를 팔아 얻은 수입은 모조리 소송 해결에 쓰였다.” 톰슨의 친한 친구이자 투자자 중 한명일 길먼 커크가 말했다.
난파선을 찾아낸 해양과학자는 행방불명보험회사들은 2005년 톰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이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톰슨이 2012년 이 소송과 관련된 공판에 출두하지 않자 한 연방판사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톰슨의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 아반티 캄피냐-바코트는 톰슨으로부터 연락이 끊어져 그의 변호인 자리를 그만뒀으며 그에게 다른 변호사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콜럼버스 디스패치에 따르면 톰슨은 도주하기 전 플로리다주 베로 비치에 있는 한 저택을 세내 살았다. 현재 그는 행방불명이다. “난 톰슨을 무척 존경했다. 그가 정직한 사람이며 돈 못지 않게 과학적 도전에 이끌려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고 믿었다.” 톰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 중 한 명인 마이크 윌리엄슨이 말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시점에선가 그의 윤리관과 세계관이 바뀐 듯하다.”
톰슨을 잘 아는 사람들조차 이런 결과에 황당해 하고 있다. “내가 확실히 아는 네 가지 사실이 있다”고 킨더가 말했다. “그들이 금괴를 찾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 금괴가 상당한 가치를 지녔다는 것. 투자자들이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토미가 정직하다는 것.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톰슨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톰슨에게 한 일은 범죄다. 그들이 그를 쫓아냈다. 그들은 그를 사기꾼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는 과학자다.” 투자자 중 한 명인 도널드 갈리코프가 말했다. 그는 금괴에서 얻은 수익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톰슨의 충실한 지지자로 남아 있다.
지난 3월 초 오디세이 마린 익스플로레이션(플로리다주에 본부를 둔 상장기업으로 심해 난파선 탐사를 전문으로 한다)은 SS 센트럴 아메리카에 남아 있는 금괴의 인양을 위한 독점 계약을 따냈다고 발표했다.
톰슨이 SS 센트럴 아메리카 프로젝트의 자금을 대려고 설립한 회사들을 대표하는 파산관재인이 오디세이를 선택했다. 오디세이 측은 4월부터 이 난파선 주변의 발굴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디세이는 인양되는 보물에서 얻는 수익금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수익금의 80%를, 그 후에는 45%를 받게 된다.
인양 보물의 수익금은 상당액수에 달할 듯하다. 2013년에는 이전에 인양된 금화 한 개가 헤리티지 경매에서 1만1750달러에 팔렸다. 금괴의 경우 무게가 약 36㎏으로 모나코 레어 코인스(희귀 주화 거래업체)에 따르면 “현존하는 금괴 중 가장 크고 무겁다.” 2001년 경매에서 그 중 하나가 800만 달러에 팔렸다. 법원이 선정한 파산관재인은 SS 센트럴 아메리카에 아직 남아 있는 금을 1857년 가치로 따지면 34만3000~140만 달러어치가 된다고 추정했다.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최고 9700만 달러어치에 이른다.
앞으로 진행될 탐사를 금전적 이득의 기회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평생의 임무를 완수할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초기 프로젝트의 수석 과학자 밥 에반스는 23년 만에 SS 센트럴 아메리카를 다시 찾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현대화된 장비로 난파선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탐사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새롭고 멋진 것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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