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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대법원 선거자금 제한 폐지 - 합법적으로 무제한 기부 허용

美 연방대법원 선거자금 제한 폐지 - 합법적으로 무제한 기부 허용

재계 큰손들 영향력 막강해질 듯 … 2016년 대선 자금 25억 달러 돌파 전망
2016년 미 대선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정치자금이 몰리고 있다.



미국에서 선거자금 기부총액 제한이 폐지돼 2016년 대통령선거를 치르는 정치권에 후원금 유입이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정치권에 대한 재계 등 ‘큰 손’들의 영향력이 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4월 2일 선거 후보나 정당, 후보후원조직인 ‘수퍼정치행동위원회(수퍼팩, Super Political Acion Committee)’에 대한 개인의 선거기부금 총액 제한 규정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개인이 선거 후보자나 정당, 수퍼팩에 지원할 수 있는 선거 후원금 총액을 2년 간 12만3200달러로 제한한 연방선거법 조항의 폐지 결정을 내렸다. 전체 9명의 대법관 가운데 선거자금 제한 규정에 대해 5명은 위헌, 4명은 합헌으로 판단했다. 현행 조항은 정당과 수퍼팩에 대한 총액은 7만4600달러, 여러 후보들에 대한 기부금 총액은 2년 간 4만8600달러로 상한선을 뒀었다.

특정 후보에 대한 기부는 2600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한 현행 조항은 유지된다. 하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수퍼팩은 설립의 제한이 없다.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군데의 수퍼팩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면 후보자 개인에 대한 직접 기부금을 2600달러로 제한한 규정은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거액 기부자는 선거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에 합법적으로 무제한 기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금규제 족쇄 풀린 ‘수퍼팩’앤서니 케네디와 클래런스 토머스 등 보수성향의 대법관 5명은 선거자금 제한규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지만 소냐 소토마요르와 엘레나 케이건 등 진보성향의 대법관 4명은 합헌 의견을 냈다. 위헌판결에 동참한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후보에게 후원금을 기부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 표현을 통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라며 “선거자금 총액을 제한한다고 해서 부패나 뇌물을 방지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소수 의견을 낸 브레이어 대법관은 “2010년 선거자금 규제를 푼 데 이어 이번 결정으로 수문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연방대법원은 최근 4년 간 정치자금 규제를 완화하는 판결을 잇따라 내며 정치자금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2010년에도 기업이나 노조 등 단체가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기 위해 쓰는 광고와 홍보비에 제한을 둘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려 정치자금 규제 완화의 시동을 걸었다. 연방대법원은 당시 정치적 목적의 홍보와 광고비 지출은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한 표현 및 언론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제한할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2012년에도 연방대법원은 기업의 선거운동 자금 지출을 규제한 주 법률이 합헌이라는 몬태나주 대법원의 판결을 5대 4로 뒤집어 파기환송하기도 했다. 기업의 선거자금 집행 상한선에 대한 족쇄를 푼 것이다. 몬태나주 정부는 기업의 선거자금 한도를 제한하는 법을 엄격히 집행해 왔다. 주대법원도 이 같은 내용의 주 선거법이 주헌법 취지에 맞는다는 판결을 내렸었다.

이 같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나오자 특정 후보자를 위해 정치자금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수퍼팩’이 탄생,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팩(정치행동위원회)’은 개별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한국의 정치인 후원회와 같은 성격으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2010년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정치자금 제한이 없어지자 정치자금의 모금이 눈덩이처럼 급증하며 지지후보와 선거를 치르는 상대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활발히 벌이며 금권선거 논란을 일으켰다.



소로스 등 재계 거물들 힐러리에 정치자금 후원하지만 미국의 정치는 선거로 결정되고 선거의 승패는 선거자금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연방대법원이 정치자금 규제 해제로 생긴 수퍼팩에 정치인들이 너나없이 러브콜을 보내며 수퍼팩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예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선거가 국민의 결정이 아닌 강력한 이익집단의 자금에 의해 좌우되면 안 되며 이는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하지만 수퍼팩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금권선거를 우려하던 오바마 대통령도 재선에 도전한 2012년 정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악관 전직 보좌관 두 명이 만든 오바마 후원 수퍼팩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Priorities USA Action)’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수퍼팩과 정치자금 상한선 폐지에 부정적인 입장인 반면, 공화당은 이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치자금 상한선 폐지의 혜택은 2016년 대선의 유력한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받을 것으로 정치권은 예상하고 있다.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아직 대선 출마를 공표하지도 않았는데 후원 수퍼팩이 12개나 생겼으며, 일부는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물망에 오르는 정치인들에 앞서고 있는 클린턴 전 장관에게는 대선을 2년여 앞두고 이미 상당액의 정치후원금이 답지하고 있다. 지난해 활동을 개시한 힐러리 지지 수퍼팩인 ‘레디 포 힐러리 팩(Ready For Hillary PAC)’은 올해 1월 말 현재 400만 달러를 모금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263억 달러를 가진 미국 부자 순위 9위인 월마트 상속녀 앨리슨 월턴과 200억 달러 대 재산가이자 전설적인 펀드매니저인 조지 소로스 등 후원자 33명이 힐러리를 지지하며 정치자금을 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세일즈포스닷컴의 마크 베니오프 최고경영자(CEO)와 엘리엇 스피처 LLC그룹 수석과 대형 로펌인 스티브앤앰버 모스틴 로펌도 힐러리에게 정치기부금을 지원했다. 이들의 정치후원금은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 전에 지급된 것이기 때문에 향후 얼마나 많은 정치자금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개미 유권자 입지는 좁아져이와 달리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들과 관련한 거액의 정치자금 모금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랜드 폴 켄터키 상원의원,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등 유력 대선주자를 지지하는 수퍼팩이 아직 조직되지 않았거나 활동을 활발히 벌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화당의 정치자금 ‘큰 손’인 셸던 애덜슨이 최근 대선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위한 정치자금 모금행사를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라스베이거스의 샌즈 카지노 제왕인 애덜슨은 2012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9200만 달러를 후원한 최대 기부가인데 힐러리에 대항할 유력한 후보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젭 부시 후원행사를 열어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올해 11월 치러질 중간선거를 위한 정치자금 모금에서 일단 공화당이 민주당을 앞서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공화당 전국위원회(RNC)가 지난해 모은 정치자금은 모두 8060만 달러. RNC는 기존의 선거로 인한 채무가 없어 이 같은 정치자금은 언제든 정치권에 투입될 수 있는 실탄 역할을 한다. 이 중 현금 규모가 92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당인 민주당 전국위원회(DNC)는 지난해 6220만 달러를 모금했다. 하지만 2012년에서 이월된 부채만 1056만 달러이기 때문에 실제 선거에 투입될 자금은 공화당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과 조셉 바이든 부통령이 정치자금 모금에 나서지 않았지만 올해 본격적인 활동을 하면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미국 정치권은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선거자금의 규모가 향후 사상 최대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치후원금이 가장 많이 몰리는 대통령 선거의 경우 2000년 대선 정치자금 규모는 6억700만 달러였으나 2004년 8억8050만 달러, 2008년 17억4880만 달러로 증가하다가 2012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20억 달러를 돌파했다.

정치권은 정치자금 모금액 상승세에 후원금 상한선 폐지로 인해 오는 2016년 대선의 정치자금 규모가 25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자금 규모가 커질수록 막강한 재력가들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어 일반 유권자들의 정치적 입지가 점점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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