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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러시아의 전방위적 밀월 - 불곰(러시아)과 판다(중국)의 이유 있는 동침

중국·러시아의 전방위적 밀월 - 불곰(러시아)과 판다(중국)의 이유 있는 동침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5월 20일(현지시간) 상하이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중국 현대사에는 세상을 뒤흔든 역사적 외교가 몇 번 있었다.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도 그중 하나다. 당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손잡기는 소련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충격 자체였다. 사실 가장 크게 쇼크를 먹은 나라는 일본이다. 팽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 올 5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의 중국 방문은 중국 현대사에 닉슨의 방중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자라날 잠재력이 있다. 핵 보유국, 경제대국 사이의 새로운 전략적 재편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조합은 그들 입장에서 훌륭하다. 경제와 군사·안보 면에서 서로를 제대로 보완하고 있다. 러시아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 앞선 군사기술과 우주·항공기술, 소프트웨어의 강점과, 중국의 소비재·전자제품의 대량생산 능력, 13억 인구, 넘쳐나는 달러, 갈수록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는 ‘국제무역은 왜 생기는가’에 대한 교과서적 답을 제시하고 있다.



파이프라인 건설에 550억 달러 투자한 때 가격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지만 결국 푸틴의 중국 방문 기간 중 천연가스 협상은 타결됐다. 러시아 가즈프롬은 30년 간 매년 380억㎥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한다. 전체 규모는 40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로써 10년을 끌어온 양국 간 가스공급 계약은 체결됐다. 1등 공신은 미국이며 2등 공신은 유로존과 나토·우크라이나 등이다.

서구의 경제봉쇄에 맞서 푸틴은 중국이라는 13억 인구의 에너지 시장에 접속하는데 성공했다. 시베리아 가스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는 새로 건설되는 파이프라인을 타고 중국 연안 일대로 공급된다. 가스를 실어 나를 파이프라인 건설에는 550억 달러가 투자되는데 이 가운데 200억 달러는 중국이 인프라개발 투자 형태로 지원한다.

향후 천연가스의 구체적인 대금지급 방식은 알려져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인민은행 금고에서 매년 130억 달러 가량을 꺼내 쓸 수 있는 통장이 푸틴에게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양국은 단순 에너지 공급계약뿐만 아니라 자원 개발 부문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안보 부문에서 두 나라는 더 가까워졌다. 푸틴의 중국 방문 첫 날이던 5월 20일, 양국의 동중국해 해상 합동훈련에 두 정상이 참석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 미·일 연대에 맞설 중·러 연대의 출범을 알리는 듯하다. 상징성뿐만 아니라 향후 구체적 결과물을 가져올 것인데, 중국이 러시아산 헬리콥터와 수호이 전투기, 미사일을 수입하기 위한 협상이 최종 조율단계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 현지에 중·러 간 합작 군수공장을 짓는 방안 역시 논의되고 있다고 러시아 언론은 전했다.

시진핑은 5월 20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 교류와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지역안보를 위한 새로운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아시아판 나토의 냄새를 풍긴다. 시진핑의 이번 제안은 독자적인 역내 안보기구를 설립해 우리끼리 뭉치자는 이야기로 푸틴은 박수를 보냈다.

푸틴과 시진핑의 의지는 영토에만 머물지 않는다. 5월 24일 푸틴이 외신 기자들과 나눈 대화는 흥미롭다. “러시아와 중국은 금 보유고와 외환보유액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으로 예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국과 러시아는 함께 그 방법을 찾을 거다. 우리 두 나라는 향후 루블과 위안을 이용한 양자 간 교역결제 비중을 더 늘릴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저 둘은 용서할 수 없는 달러 질서 파괴범일 것 같다. 푸틴의 금 보유고 이야기는 바클레이즈 등 서구 투자은행(IB)들의 금 시세 조작을 상기시키는 한편 서방 중앙은행 금고에 예치해 놓은 금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러시아의 금이 어디에 얼마나 보관돼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경청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다. 저들(미국을 비롯한 서구)을 믿지 말라는 선동(?)이자, 향후 변고가 생기면 저들이 위탁 받은 당신네 금을 온전히 내버려두겠는가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러시아에 대한 계좌동결·경제 봉쇄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이야기다.

푸틴의 이날 발언은 러시아의 천연자원과 경제에 투자하라는 이야기 중 나온 발언이지만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바꿔보자는 거다. 그렇다고 시진핑과 푸틴이 단숨에 세상을 바꿔 놓을 수는 없다. 단지 세상을 향해 대안이 있음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물론 구체적 청사진을 갖고 접근하기보다는 미국에 맞서는 압박용이다.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얼마 전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은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달러 질서를 지키려는 자와 무너뜨릴 수 있다고 협박하는 자들 사이의 대립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돌아가는 판이 이러하니 미 연방준비제도로선 출구전략 속도를 높이기 한층 조심스럽다. 달러 이탈로 신흥시장이 다시 혼란을 겪으면 신흥시장 국가들은 달러를 긁어 모으려 애쓰기보다 자칫하면 시진핑과 푸틴 편에 붙어 달러를 던져버리겠다고 위협 할지 모른다.

중국 입장도 마찬가지다. 약점을 보여 물어뜯기지 않으려면 경기 경착륙 상황과 위구르의 혼란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막아야 한다. 경기 안정 대책을 잇따라 내놓는 이유다. 5월 들어서만도 수출촉진책이 나왔고 인민은행의 모기지 지원책이 나왔으며 지방정부 중심의 부동산 규제완화책이 발표됐다.

이러한 노력(?)의 부산물들이 당장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지금의 신흥시장처럼. 연준의 돈줄 죄기 우려에, 중국의 경착륙 우려에, 얼어있던 큰 손들은 한 시름 놓고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신흥시장으로 밀려들고 있다. MSCI이머징 주가지수는 뉴욕의 S&P500 지수를 계속 앞지르고 있다. 물론 때가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돈들이다.

한편 중국이 노골적으로 푸틴 편에 서자, 미국도 경고사인을 계속 보내는 중이다. 중국의 사이버 해킹 문제를 비난하며 지적 재산권 문제를 다시 공론화하고 있다. 시진핑의 응수도 즉각적이다. 미국 지식산업에 잇따라 장벽을 치고 있다. 관공서에 MS윈도8 사용금지 명령을 내렸고, 미국을 겨냥해 외국 업체의 IT서비스와 IT제품 수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국유기업에 미국 컨설팅 그룹과 관계를 끊어라 명령했고, 은행들에게는 IBM의 서버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국의 정치적 입지 갈수록 좁아져외관상 환율전쟁 수준이 아닌 보복적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시진핑의 의도는 ‘우리를 건드리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된다. 사실 중국이나 미국이나 으르렁거릴 뿐 서로가 치고 받아 좋을 것은 없기에 적당히 할 것이다. 그래도 7월 미·중 경제전략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둘 사이의 불협화음은 커질 수 있다.

세상은 늘 불안했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싸움질로 실존을 확인해온 게 인류다. 다만 우리 입장에선 한반도 상공의 기류가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푸틴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전략은 한반도까지 뻗쳐 북한과 철도 가스전 경협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외자를 끌어들이려는 북한과 원조를 미끼로 내건 일본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대북문제에서 우리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오바마가 우리에게 내민 MD(미사일방어시스템)카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우리를 더 곤혹스럽게 한다. 아시아 중시의 원조 오바마는 심복인 마크 리퍼트, 그것도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의 전략을 짰던 인물을 주한 미국대사로 보내 ‘줄 똑바로 서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틈을 타 일본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나라로 변신 중이다. 멈춰있던 수레바퀴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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