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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의 금리인상 시기 논란 - 경각심 일깨워 경제의 거품 경계

美·英의 금리인상 시기 논란 - 경각심 일깨워 경제의 거품 경계

재닛 옐런 미 연준 의장(왼쪽)과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의장은 6월 18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월간 양적완화 규모를 100억 달러 더 줄이는 결정을 내린 회의를 마친 뒤였다. 기자들이 옐런 의장에게 던진 첫 질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최근 들어 미국의 물가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어떠하느냐는 것이었다.

바로 전날 발표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시장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2.1%로 뛰어 오르면서 1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물가를 걱정하던 미국 경제가 어느새 물가 급등세를 경계해야 할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한 옐런 의장의 답변은 단호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 물가지표에는 잡음이 섞여 있으며 이를 제외하고 보면 물가는 여전히 예상한 범위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징후를 ‘잡음’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해서 논란을 일축했다.

그러나 다음날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이 3% 이상 치솟았다. 장기 국채 금리도 대폭 뛰어 올랐다. 필라델피아 지역제조업체들의 원재료·중간재 구매가격이 3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올랐다는 소식 탓이었다. 옐런 의장은 ‘잡음’일뿐이라고 말했지만, 금융시장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옐런 의장은 물가위험이 없다는 판단 아래 제로 금리를 계속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금융시장은 반신반의했다. 이런 식으로 물가가 오른다면 조기에 금리인상이 단행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옐런 의장의 기자회견에 앞서 6월 12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가 폭탄발언을 했다. 영란은행의 정책금리가 예상보다 일찍 인상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했다. 금융시장이 화들짝 놀랐다. 시장금리가 파운드화 환율과 함께 뛰어 올랐다. 내년 5월로까지 미뤄졌던 첫 금리인상 예상 시기는 올 연말로 바짝 당겨졌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도 했던 것이, 카니 총재가 “금리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게 바로 5월 초였다. 하지만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아 말이 완전히 달라졌다. 영란은행은 올 초까지만 해도 ‘오는 2016년쯤이나 돼야 금리인상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혀 왔었다. 그러하던 금리인상 예상 시기가 몇 달 사이에 2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그런데 6월 24일이 되자 카니 총재는 다시 말을 바꿨다. 영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더디게 오르는 걸 보면 유휴 노동력이 예상보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금리인상이 급하지 않다는 쪽으로 되돌아왔다. 6월 12일에 조기 금리인상 경고를 한 것은 금융시장이 너무 장기간의 저금리를 기대하고 있기에 한 말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영국의 한 하원의원은 “뜨거운 듯하다가 금세 차가워지기를 반복하는 믿을 수 없는 남자친구 같은 태도”라고 카니 총재와 영란은행을 비난했다.

종잡을 수 없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옐런 의장이 장기간의 저금리 제공 약속을 재확인한 며칠 뒤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금리인상 시기를 대폭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날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준 총재는 “내년 중반쯤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는 금융시장의 전망이 타당해 보인다”면서도 “전망이라는 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니만큼 크게 무게를 두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늦게 금리가 올라갈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두 사람은 미국의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핵심인물들이다.



예상보다 빠른 물가 상승에 무덤덤지금은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에 미달하고, 실업률은 목표치보다 높은 상태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연준의 두 가지 책무를 모두 못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제로금리를 계속 제공하는 경기 부양책이 유일한 해법이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데 물가상승률이 먼저 목표치를 넘어서버리는 때가 올 개연성이 있다. 만약 물가의 이탈 정도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고용이 목표치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미달해 있다면, 이 때는 물가 부담을 무릅쓰고 경기 부양을 계속한다는 것이 연준의 전략이다.

옐런 의장의 ‘인플레이션 감수’ 발언은 기존에 정해진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었지만, 금융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일깨우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에 대해서는 인플레이션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매파 진영 인사들도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의 매파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인 플로서 총재는 “단기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빠른 회복세를 반영해 금리인상을 대폭 앞당겨야 한다”고 한 그의 주장은 그런 점에서 립 서비스 또는 엄포의 성격이 강했다. 카니 영란은행 총재의 ‘조기 금리인상’ 경고와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예상대로 내년에 금리를 올리게 되면, 이는 2004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긴축 사이클에 돌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려 7년 간 제공되던 제로금리의 온실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 연준은 전 세계의 자금 흐름을 직접 좌우하는 곳이기 때문에 금리인상 신호에 온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이 영란은행에 특히 주목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영국이 미국보다 한 발 앞서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 유력해 보이고, 영국과 미국의 통화정책 운용 방식이나 철학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금리인상에 대한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속내가 마침 6월 24일 영란은행의 하원 물가 보고에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찰리 빈 부총재가 행한 보고에서 영란은행은 이렇게 밝혔다. ‘출구전략이 너무 이르면 생산성의 회복이 저해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반대로 출구전략이 너무 늦어지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누적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금리인상으로 쉽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출구전략은 이른 것보다 늦은 게 낫다.’

영국과 미국의 중앙은행은 과거 일본처럼 성급하게 긴축에 나섰다가 경기 회복세를 망치느니 차라리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걸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앞으로 적어도 이 두 나라에서는 인플레이션을 목격할 가능성이 제법 커졌다. 그런데도 왜 두 중앙은행은 수시로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일까? 이 역시 영란은행의 물가 보고서에 의도가 담겨 있었다.

“장기간의 통화부양 정책이 거품을 일으켜 금융 불안을 다시 야기할 수 있는데, 일차적으로 이 문제는 금융감독 정책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지만, 금리인상과 같은 통화정책으로 막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경제 회복세에는 찬물이 끼얹어질 것이다. 따라서 금리를 성급하게 인상해야 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미리 시장 참여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게 긴요하다.



성급하게 긴축에 나서지 않을 듯물론 거품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까지 인상하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영란은행은 보고서에서 ‘통화정책의 동원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지난 2월 카니 총재는 향후 금리 정상화 계획을 설명하면서 “경제 회복세를 저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인플레이션도 감수할 수 있다는데 어지간한 거품쯤을 못 견딜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수년째 거품에 돈을 걸고 있다. 이제는 인플레이션이 베팅 대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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