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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UME - 겨드랑이 냄새 향수라고?

PERFUME - 겨드랑이 냄새 향수라고?

‘스멜 미’ 전시회엔 바프르지니아크의 머리카락, 밤에 흘린 땀, 요가 중 흘린 땀, 눈물(왼쪽부터)의 냄새를 담은 향수가 출품됐다.



미국 패션잡지 하퍼스바자 5월호 앞부분에 실린 마르틴카 바프르지니아크의 ‘오드M’ 광고는 여느 향수 광고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머리카락이 촉촉히 젖은 아름다운 여성이 등을 훤히 드러낸 채 욕조에 엎드려 누워 유혹하듯 어깨 너머로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다. 끝 부분에는 직접 향을 맡을 수 있게 향을 넣고 코팅한 시향 종이가 밀봉된 봉투처럼 접혀 들어가 있다.

열대 꽃 향기와 암내가 섞인 듯한 기이한 냄새에 호기심을 느낀 오드 M의 잠재 구매자들은 즉시 Martynka.com을 방문했지만, 잡지 광고와 동일한 여성의 사진만 볼 수 있었을 뿐이다. 한 사용자(아이디:NH)는 웹사이트 문의 게시판에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하퍼스바자에서 향수 샘플을 맡아보고 호기심이 생겨 방문했는데, 다른 정보를 찾을 수가 없군요. 이 향수는 어디서 파나요?”

오하이오에 사는 타냐는 찬양의 글을 남겼다. “와우, 방금 패션 잡지에서 오드 마르틴카 샘플을 맡아봤어요. 여러분도 한 번 시도해 보세요. 다른 향수와 정말 달라요!”

그럴 만도 하다. 오드 M은 누군가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냄새를 추출한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냄새일까? 잡지 속 광고에 등장한 반라의 여성, 뉴욕 아티스트 마르틴카 바프르지니아크의 체취다. 웹사이트에는 오드 M에 관한 어떤 정보도 없고, 대신 마르틴카에 관한 정보와 지난해부터 시작한 그녀의 전시회 ‘스멜 미’를 홍보하는 정보만 있다.

자화상이라 하면 보통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나 그림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스멜 미’는 이와 완전히 다른출발선에서 시작한다. 바프르지니아크의 다양한 체취를 추출하고 정제해서 일종의 ‘후각 자화상’을 전시하는 아이디어다. 비크람 요가를 할 때 흘린 땀이나 밤에 흘린 땀, 머리와 눈물에서 냄새를 정제해 향수를 만들었다.

정제를 위해 헌터 대학 화학학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고, 바프르지니아크와 향수를 감독한 돈 골드웜, 조향사 얀 바스니어가 추출된 냄새를 맡은 후 다양한 원료를 통해 비슷한 향을 가진 향수를 만들어냈다. 패션지에 실린 오드 M 시향 종이에 들어간 향수는 비크람 요가를 하면서 흘린 땀에서 나온 향수로, 가장 ‘원숙한’ 향기를 가졌다.

하퍼스바자 5월호 광고를 통해 1달간 이어질 전시회의 핵심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알린 바프르지니아크는 이렇게 말했다. “대중에게 ‘스멜 미’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서는 실체가 있는 대상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판매부수가 95만 부에 달하는 하퍼스바자에 시향 종이가 들어간 전면 광고를 넣어 향수처럼 보이게 만드는 후각 게릴라 전술을 통해 ‘스멜 미’라는 자화상 전시회가 가진 예술의 지평을 한 단계 더 넓힐 수 있었다. 시향 종이에 코팅된 건 내가 흘린 땀에서 나온 향수다. 광고를 통해 내 체취의 정수가 전국으로 펴져나가고, 이를 통해 대중시장은 의식하지 않은 상태로 예술작품을 소비할 것이다.”

그럼 ‘대중시장’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온라인 향수 포럼 Fragrantica.com에서 한 향수 애호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이상하다. 처음에는 오래된 고양이 오줌 냄새가 나더니 갈수록 향이 좋아진다”고 글을 남겼다. 다른 사용자가 맞장구를 치며 끼어든다. “아직은 공식 출시가 안 된 게 분명하지만, 조만간 바니스 백화점에서 팔 것 같다. 처음에는 분명 고양이 오줌냄새가 나는데, 조금 있으면 매력적인 향으로 변한다. 향수를 뿌린 팔목 냄새를 자꾸 맡고 싶다.”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 한나 히긴스 교수는 이메일에서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예술역사학을 가르치는 히긴스 교수의 전문 분야는 20세기 아방가르드 예술이다. 마르틴카닷컴에 오드M 향수 구매를 문의했던 여성과 대화를 나누었고, 처음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여성이 오드 M이 실제 향수가 아니라는 내 말에 분노를 터뜨렸다고 전하자 히긴스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 기이하고 묘한 느낌이 있다. 누군가 몸을 살며시 밀착하며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다. 손길이 내 몸을 맴돌고 오래도록 체취의 인상이 남는다. 오드 M은 미끄러지듯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향수가 뇌리에 박혀버린다. 그래서 기이하고 묘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다. 예술이 이런 느낌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본능적이고 원초적이며, 비시각적이고 즉각적인 ‘냄새’라는 인상은 예술계에서 오래 전부터 흥미롭게 변주한 주제이기도 하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시작부터 냄새에 흥미를 가졌다”고 히긴스는 말했다. 이탈리아의 미래파 예술가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는 1920년대에 후각으로 다양한 맛을 느끼는 만찬을 선보인 적이 있고, 1960년대 다카코 사이토는 풍미를 돋우는 음식 냄새와 달콤한 냄새가 체스판에서 함께 겨루는 ‘스멜 체스(Smell Chess)’를 만들었다. 예술가 주디 시카고는 1972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을 공동 설립한 동료 미리암 샤피로와 함께 페미니스트 설치 및 공연예술 공간 우먼하우스를 열고 피 냄새가 나는 ‘생리 화장실’을 전시하기도 했다.

“제 2의 페미니스트 흐름과 연관해 생각하면 정말 급진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고 히긴스 교수는 말했다.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예술가이자 향수 컨설턴트인 지젤 톨라스는 2006년 MIT 리스트 비주얼 아트센터에서 ‘두려움의 냄새’라는 예술 전시회를 연적이 있다. 불안장애를 겪는 남성 9명의 땀에서 추출한 냄새를 인공 원료로 재현하고, 이를 페인트에 넣어 벽에 칠한 전시회였다. 방문객들이 벽을 긁거나 마찰을 주면 다양한 두려움의 냄새가 공간에 퍼지는 전시회였다.

오드 M은 냄새를 주제로 한 과거 여러 전시회들의 계보를 잇는다. 동시에 전시 장소도 깊은 의미를 주는 예술, 다시 말해 작품이 만들어진 맥락이 새로운 의미를 더하는 예술이 된다. 마르셀 뒤샹이 ‘R. 머트’라고 서명한 변기를 ‘샘(Fountain)’이란 제목과 함께 1917년 전시회에 제출한 것이나 예술가 엘그린과 드라그세트가 황량한 텍사스 마르파 근처 고속도로 바로 옆에 설치예술 작품 프라다 샵을 세운 의도를 생각하면 된다.

오드 M은 미국인의 체취에 대한 두려움과 쇼핑중독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향수로 가장한 다른 사람의 체취를 뿌리게 유도함으로써 여성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 다른 여성의 체취를 즐기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체취에 대해서도 당당할 수 있도록 해준다. 패션잡지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상업 공간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아트포럼 5월호에는 시향 종이를 뺀 오드 M 광고가 실렸다. 두 개 광고 모두 바프르지니아크 작품 수집가 중 한 명이 비용을 지불했다.)

광고가 나간 후 가장 먼저 웹사이트에 여러 문의 글을 남긴 NH와 호의적인 쪽지를 몇 번 주고 받은 후, 오드 M이 사실은 예술 프로젝트라고 알려주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말을 의심하더니 화를 냈다. “향수 회사 담당자나 관계자라도 되나요?”라는 메일이 왔다. 그래서 사실은 내가 오드 M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으며, 예술 작품이어서 구매할 수 없다는 답을 보내줬다.

“지금 내 손에 하퍼스바자를 들고 있단 말이에요”라고 그녀가 답했다. “이건 새로 출시된 향수 광고지, 예술 작품이 아니에요. 이상한 사람 같으니까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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