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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부지 얻은 현대차 - BMW·폴크스바겐 위상 꿈꾼다

한전 부지 얻은 현대차 - BMW·폴크스바겐 위상 꿈꾼다

한국전력 본사 부지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이라는 입지와 개발 면적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금싸라기 땅이다. 면적은 7만9342㎡로 축구장 12개를 합친 크기다.

지난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한국전력은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에 대한 입찰 가격과 입찰 보증금 납입 여부 등을 확인한 결과, 입찰가 10조5500억 원을 써낸 현대차 컨소시엄(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부지 감정가 3조3346억 원의 3배가 넘는 금액을 써내 강력한 경쟁자 삼성전자를 제친 것이다. 현대차는 성명을 통해 “한전 부지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하겠다. 글로벌 컨트롤타워로서 그룹 미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전 부지에 30여 계열사를 수용할 수 있는 신사옥과 호텔 등 컨벤션센터, 자동차전시관 등 한국판 자동차 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이튿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평소처럼 새벽 일찍 서울 양재동 본사로 출근했다. 오전 6시엔 밝은 표정으로 임원회의도 했다. 그는 회의에서 한국전력 부지 인수의 의미를 다시 강조했다고 한다. 현대차 측에 따르면 정 회장은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은 100년을 내다보고 하는 일이 다.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승자의 저주’ VS ‘미래가치 창출’인수 대금이 알려지자 시장에서는 ‘과도한 베팅’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한전 부지 개발에 투입해야 할 전체 비용은 부지 매입가 10조5500억 원, 서울 시에 제공해야 할 공공 기여 부분, 공사비 등을 합쳐 총 15 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애초 재계와 부동산 시장은 4조∼5조 원 정도로 낙찰가를 예상했다. 삼성전자 도 약 4조5000억 원을 썼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웅진그룹 등의 예에 비춰 ‘승자의 저주’라는 말 이 나오는 이유다.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 등의 기회비용을 잃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고 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핵심 부품사의 M&A, R&D, 생산 확대 등에 투자할 수 있는데 이번 투자결정은 수익창출 목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데다 그 규모가 경영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꼬집었다. 류연화 아이엠 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차 상품성 개선, 환율 문제, 중국 신공장 추진 등 그룹 역량을 집중해야 할 현안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이번 과도한 투자로 물적·인적 역량이 분산되면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훼손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부지 개발에 따라 창출될 미래 가치’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그룹의 자금력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룹 통합사옥이 없다 보니 각 계열사들이 부담하고 있는 임차료만 연간 2400억 원을 넘는다”며 “이는 8조 원을 보증금으로 맡겨놓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부담”이라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서울 양재 동 본사는 규모가 작아 30여 개 계열사, 임직원 1만 8000여 명 중 5개 계열사, 5000명 정도만 수용하고 있다. 현대모비 스 등 다른 계열사들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본사 부지를 늘 모색해왔던 현대차는 2006년 뚝섬의 삼표레미콘 부지에 110층짜리 신사옥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여러 이유로 무산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전 부지 확보에 실패했을 때 새로운 부지를 찾기 위해 치러야 할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0 년간 강남 지역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연평균 9∼10%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통합사옥이 완공되는 2020년 즈음에는 사옥 땅값이 15조 원에 달한다는 것도 투자 금액 산정의 근거다. 현대차 관계자는 “부지 매입비용을 제외한 건립비 및 제반비용은 30여 개 입주 예정 계열사가 8 년간 순차적으로 분산 투자할 예정”이라며 “수직계열화 된 계열사들이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어 단계적으로 발생 하는 향후 개발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한전 부지 활용 모델로 삼은 독일 뮌헨에 있는 BMW ‘BMW 벨트’
‘승자의 저주’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컨소시엄을 형성한 3개사는 부지 매입 이후에도 무차입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며 “추가 투자가 있다 해도 개발기간이 길어 재무 위험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무디스도 신용 등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인 수자금 지출에 따른 재무적 부담은 자체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볼프스부르크에 자리한 폴크스바겐 ‘아우토슈타트’ 전경.



인수·개발 통해 정의 선부회장 입지

‘BMW 벨트’는 콘서트홀·레스토랑·자동차전시관 등이 들어선 복합문화시설이다.
강화 이번 인수전에는 정몽구 회장의 ‘뚝심 경영’이 크게 작용했 다는 평가다. 19일 아침 임원회의에서 정 회장은 파격 입찰 가를 정한 배경에 대해 ‘민간 기업이나 외국인에게 돌아갈 돈이 아니라 나랏돈으로 쓰일 것이어서 결정에 대한 부담 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취지를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인수전 과정에서 “상대를 생각하지 말고 사업 미래 가치만 보고 결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의 뚝심 경영은 1988년 기아차 인수, 2000년 미국 앨라배마공장 건설, 2006년 민간제철소 현대제철 건립, 2010년 현대건설 인수 등에서 성과를 보였다.

현대차그룹은 한전 부지에 ‘한국판 아우토슈타트’ ‘한국 판 BMW 벨트’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2000년 7월 독일 볼프스부르크 시에 오픈한 폴크스바겐의 ‘아우토슈타트’에 는 폴크스바겐 본사는 물론 박물관·공원·전시관·체험 장·호텔 등이 있어 매년 20만 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250 만 명이 찾는다. 자동차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시간의 집’에는 연간 3만여 명의 학생이 견학한다. 독일 뮌헨 시의 ‘BMW 벨트’는 BMW 브랜드의 모든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복합공간이다. 이곳은 설계 당시부터 미래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화제가 됐다. 소용돌이치는 물살 형태의 더블 콘(Double Corn)과 유리로 뒤덮인 건물은 뮌헨의 랜드마크다. 벨트에는 차량딜리버리센터·콘서트홀·쇼핑 몰·디자인 스튜디오·자동차전시관이 마련됐다. 2007년 문을 연후 매년 200만 명이 방문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 세계 5000명이 참여하는 ‘현대자동차 세계 딜러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국내에 마땅한 장소가 없어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모나코 등 해외 휴양지에서 진행한다”며 “이들을 비롯해 자동차 산업 관련 외국인, 대규모 관광객을 유치하면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기준 연간 10만 명 방문, 1조 3000억 원의 경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한전 부지를 포함한 서울 동남권을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번 현대차그룹의 한전 부지 인수와 향후 개발 과정에서 정의 선 현대차 부회장의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 회장의 강한 의지가 피력된 만큼 장남인 정 부 회장은 한전 부지 인수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재계에서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계동 시대에 이어 정몽구 회장의 양재동 시대를 지나 정의선 부회장의 삼성동 시대로 본격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현대차그룹의 삼성동 사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은 정 부회장으로 의 경영승계가 마무리될 시점으로 보인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의 공사는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등이 맡고 호텔 운영은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옥 관리는 현대엔지니어링 자산관리부문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양재동 사옥은 남양연구소 지원 업무 등을 맡고 금융계열사는 여의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신용평가는 “향후 부지 개발과 운영 과정에서 건설, 호텔 사업 등을 영위하는 계열사들은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삼성동 일대에 5성급 특급호텔 건설 붐이 일고 있어 정 회장 셋째 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의 행보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운·돈 모이는 ‘산진수회(山盡水廻)’의 터

“삼성동은 관악산의 거대한 용트림이 물을 만난 곳이자 한강과 탄천이 만나 지대를 감싸 안은 ‘산진수회(山盡水 廻)’의 터다. 재물 운이 따르는 지역이다.”

전항수 한국풍수지리연구원장


“한국전력 부지는 풍수적으로 명당 중의 명당, 즉 길지다. 남향으로 건물을 짓고 동향으로 정문을 내면 승승장구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가 사무실을 옮기면 더욱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박민찬 도선풍수지리연구원장


풍수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땅을 ‘명당’으로 꼽는다. 재물을 뜻하는 물(江)이 감싸고 도는 길지라는 것이다. 부동산업계 전문가들은 삼성동이 뜨는 이유를 자산가치 변동에 따른 투자 위험도가 낮고 사생활 보호, 풍수지리학상 명당, 쾌적한 주거환경 등에서 찾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평소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 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정 회장이 직접 고른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도 구룡산의 정기와 여의천 물이 만나 재물이 쌓이는 완벽한 풍수를 자랑한다. 풍수전문가들은 삼성동 한전 부지가 좋은 풍수라는 걸 정 회장이 몰랐을 리 없다고 말한다.

삼성동에 둥지를 튼 기업 오너들이 많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강정석 동아쏘시오 홀딩스 대표, 허기호 한일시멘트 부회장, 박세준 한국암웨이 대표,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이금기 일동제약 회장, 이동건 리홈쿠첸 회장 등이 단독주택을 갖고 있 다. 최근엔 국내 IT 기업 오너들이 잇달아 삼성동에 단독 주택을 신축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새 집을 지었다. 이준호 NHN엔터테인먼트 회장도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 단독주택을 신축 중이다.

한국전력 본사 부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 인근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동에 자리한 현대산업개발의 사옥 아이파크타워, 대웅제약 사옥, 오로라 사옥 등이 혜택을 볼 것으로 보인다. 성도이엔지, 케이씨텍, 풍국주정, 대신증권도 삼성동 일대에 토지와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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