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을 지향하는 킬러 사이트
CNN을 지향하는 킬러 사이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미디어 조직 중 하나에 사무실이 없다. 수습사원도 없고, 직원들은 일한 대가로 기본 생활비도 받아가지 못한다. 그들은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설립자는 기자 출신이 아니며 어느 모로 봐도 뉴스 사이트를 운영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인 라이브리크닷컴(LiveLeak.com)은 지난 8년 사이 세계에서 가장 멀리까지 영향력이 미치는 미디어 업체이자 인터넷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500대 사이트 중 하나로 성장했다. 광고가 없으며 미디어 중심지 뉴욕에든 첨단기술 허브 실리콘밸리에든 모두 관심이 없다.
그래도 라이브리크는 한 달에 2300만 명 안팎의 방문자수를 자랑한다. 그중 대다수가 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라이브리크는 무엇이든 다(그중 태반에 ‘성인용 콘텐트’라는 딱지가 붙었다) 보여주는 사이트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슬람국가’의 처형 동영상 게시에는 최근 선을 그었다. ISIS로 더 많이 알려진 단체다. 요즘엔 라이브리크의 편집자들이 “노골적인 폭력 미화”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삭제한다. 출발은 무시무시했지만 그동안 많이 진화한 셈이다.
불과 12년 전에는 사이트가 오그리시닷컴(Ogrish.com)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초기 화면에 접속하면 적나라한 콘텐트와 ‘성기제거(Genital Mutilation)’ 같은 분류 항목이 뜨곤 했다. 오그리시가 처음 출범했을 때는 여러 개의 ‘쇼크 사이트(예를 들면 Rotten, Stileproject 등)’ 중 하나였다.
절단된 사체, 자동차 사고, 화상 피해자, 유전적 기형을 비롯한 기괴한 이미지를 올리던 사이트들이다. 사이트는 종종 폭력성을 띤 포르노 후원광고를 게재하며 열성 팬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오그리시는 섬뜩한 동영상 자료를 게시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사악한 크니블(Evil Knevil)’로 알려진 오그리시의 웹마스터는 출처 불명의 동영상 콘텐트를 사이트 방문자들에게 새로 보여줄 수 있었다. 대역폭이 커진 네트워크 통신망 덕을 봤다. 세계 각지의 기숙사 방에서 경악과 탄식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그리시는 현실세계의 공포를 찾아 다니는 방문자들에게 전율을 안겨주려는 취지의 엽기적인 콘텐트를 게재했다. 아울러 전쟁과 테러리즘의 섬뜩한 이미지들을 올리며 이름을 날렸다. ‘살을 파먹는 벌레의 공격을 받는 남자 성기’ 같은 제목이 올려지는가 하면,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나 멕시코 마약조직이 집행한 처형 동영상이 올려지기도 했다. 동영상에는 선정적이고 엉성하게 쓰여진 사진설명을 붙여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웰 시코(Well Sicko)가 여러분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첫 동영상이다. 이라크에서 몰래 입수한 공개처형 장면이다. 희생자 바로 앞에서 총격을 가해 끝장을 내는 사담 후세인 붕어빵의 냉혹한 모습이 경이롭다.’ ~사악한 크니블
세월이 흐르면서 생생한 전쟁터 영상을 입수할 수 있었던 군인들 사이에서 오그리시의 팬이 많아졌다. 사이트의 기고자와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서서히 무작위적인 쇼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반면 전쟁의 공포에 더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런 관심과 함께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동영상 유출자와 책상머리 종군기자들의 커뮤니티가 새로 형성됐다.
2006년 사이트 운영자들은 오그리시의 브랜드를 바꿀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그중 한 명인 공동설립자 헤이든 휴이트의 근거지가 잉글랜드 맨체스터다. 괴팍하고 사적인 블로그를 운영한다. 라이브리크에서 자신이 하는 일과 언론 실태를 다룬다.
대다수 언론은 웹 포럼의 회의론자들이 말하는 ‘깨어나라, 무지몽매한 군중들아(Wake Up, Sheeple)!’ 모드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태도를 견지해 왔다. 화를 잘 내는 교사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가 15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제1차 걸프전 때 언론을 향한 환멸이 깊어졌다. 그 시기의 미디어엔 투명성이 결여돼 있었다고 그는 규정한다. 바로 그때 인터넷을 만나면서 그의 세상이 바뀌었다.
“1990년대 후반 처음 PC를 들여놓고 33.3k 모뎀으로 온라인에 접속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황홀한 경험 중 하나였다”고 그가 말했다. “그 많은 정보와 사람들이 모두 내 손 안에 있었다. 지금도 원시적인 옛날 모델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소리를 들으면 향수에 젖는다.”
원래는 포럼을 이용하려고 오그리시에 가입했다. 휴이트에 따르면 오그리시의 파워 유저 중 다수는 유혈 폭력 콘텐트 수준을 뛰어넘어 지정학적 관심사를 다루는 콘텐트의 공유에 더 관심을 가졌다.
휴이트는 2003년 가입했을 때 오그리시 멤버 중 한 명이 그에게 한 말을 기억한다. “우리는 유혈 사이트의 CNN이 되고자 한다.” 지금은 이 같은 표현을 웃어넘기지만 당시엔 그들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꼈다. ‘뉴스’로 불릴 만한 유의미한 시사적 사건들로 초점을 옮기는 한편 어둡고 불가해한 세계에 대한 사이트의 끊임 없는 호기심을 살리는 방식이다.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감이 잡혔다”고 그가 말했다.
라이브리크의 공적인 얼굴은 휴이트뿐이다. 그는 제3차 개편 작업에 여념이 없다. 최대한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커뮤니티 관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커뮤니티는 관리하는 게 아니다.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협력한다.”
휴이트는 “드라마에 대처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사이트의 많은 논쟁에 개입해 진화하는 작업을 수반하는 포괄적인 표현이다. 혐오 발언, 위협 또는 일반적인 분열로 빠져드는 대화를 진정시킨다. 그러나 토론에 최소한의 교양이라도 남아 있는 한 휴이트는 유익한 논쟁에 참여하기를 좋아한다.
제시된 의견이 아무리 극단적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인터넷은) 포르노가 아니라 논쟁을 위해 발명됐다”고 그가 말했다.
라이브리크에선 40여 만 명의 회원들 간에 많은 논쟁이 벌어진다. 커뮤니티의 규모가 커지면서 ‘라이브리커’를 자처하는 하나의 대규모 집단을 뛰어넘는 단계로 올라섰다. 대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민족 또는 이해집단으로 이뤄진 다수의 작은 생태계가 존재한다. “때로는 그저 몇몇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려 끼어들었다가 마구 ‘비난을 퍼붓는’ 폭언의 한복판에 말려들기도 한다. 미국 국가안보국, 모사드(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러시아, 그리고 IS 모두와 동시에 연루됐다는 비난”이라고 그가 말했다.
커뮤니티가 종종 아수라장을 이루면서도 사이트는 성장했다. 유튜브에선 받아주지 않는 도발적인 콘텐트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담 후세인을 처형 하는 동영상 콘텐트는 사이트의 최대 히트작이었다.
라이브리크가 잠시 동안 세계 200대 웹사이트로 도약하기도 했다. “그런 일에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한번은 그것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비디오였다. 다른 기능은 모두 중단됐다”고 휴이트가 말했다.
라이브리크는 2008년 네덜란드 단편영화 ‘피트나(Fitna)’를 올리면서 악명을 떨쳤다. 코란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운영자들이 가해 위협을 받은 뒤 삭제됐다. 하지만 곧바로 영화를 다시 올렸다.
극히 최근에는 휴이트가 ‘IS 홍보 비디오’라고 부르는 온갖 끔찍한 참수 동영상의 게시를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다. 가족에 대한 배려 또는 다른 어떤 희한한 발상에서 삭제된 건 아니었다. 현 시점에선 대화에 새로운 관점을 전혀 보태지 않고 구태의연하다는 이유였다.
애당초 파문을 일으켰던 비디오는 여전히 올려져 있다.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의 참수 동영상이다. “우리의 원칙에서 벗어나기 않았기 때문에 보여줘야 했다. 때때로 자신은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휴이트가 말했다.
사람들이 전쟁의 섬뜩한 현실을 목도할 수 있을 때 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휴이트는 믿는다. 라이브리크에는 악의 없는 고양이 동영상도 많이 실린다. 사이트에 올려지는 자료가 모두 부패를 폭로하지는 않는다고 휴이트는 인정한다.
그러나 올려진 수천 개 동영상의 종합적 효과를 강조한다(거부감을 주는 콘텐트는 이용자가 신고할 수 있다. 신고를 받은 편집자가 삭제할지 결정한다). 이는 제도의 투명성을 나타낸다고 그는 말한다.
“최근에 시리아 내전이 크게 확대됐을 때가 기억난다. [자유 시리아군은] 완전히 착한 사람들이며 아사드의 군대는 악의적이고, 못된 짓을 하는 끔찍한 사람들이라고 서방 미디어가 우리에게 줄기차게 세뇌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앞에 날아든 미디어 메시지 내용은 달랐다. 사실상 양쪽 모두 서로에게 정말로 악랄하고 더럽고 끔찍한 사람들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전쟁 범죄는 우리가 후원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그런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휴이트 팀은 도덕적으로 중립성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이는 종종 그냥 뒤로 물러나 이용자들 스스로 의견을 제시하도록 한다는 의미도 된다. 라이브리크 이용자들은 나름의 편견을 갖고 있다. 누군가 선동적인 동영상을 올리면 사이트의 누구나 논평이나 대응 동영상을 만들어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줄리안 어샌지(위키리크스 설립자)나 에드워드 스노든(국가안보국 기밀 폭로자) 같은 사람들의 뒤를 이어 폭로계의 스타로 떠오르고자 하는 욕구는 휴이트에겐 전혀 없다. “그것은 사람 중심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고 그가 말했다.
“이용자들이 콘텐트를 올리기 때문에 언론 플레이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나머지 일을 처리할 뿐이다. 우리가 편집을 하지 않는 한 모두 순수하다. 우리가 앞에 나서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줄리안 어샌지가 산 증인이다.”
2010년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 공개될 때까지는 위키리크스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휴이트는 말한다. 2007년 미국의 아파치 헬리콥터 2대가 바그다드에서 10여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는 동영상이다. 어샌지는 그 제목을 선택한 이유를 “ 정치적 영향 극대화”로 표현했다.
“거기에 붙일 만한 최선의 제목은 ‘부수적 과실치사(Collateral Manslaughter)’라고 생각한다”고 휴이트가 말했다. “그만큼 여론을 정말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는 그것을 사용할 때 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이 설정된 순간에 이미 게임은 끝났다. 사람들에게 선입관을 불어넣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이트의 규모가 커지면서 휴이트나 라이브리크의 다른 운영자에 관한 소식을 듣기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듯하다. 그들이 시민 저널리즘 세계의 주축으로 기반을 다지더라도 말이다. “많은 사람 앞에 설 때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외치면 그것을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버스에서 바퀴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게 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지만 이들의 작품인 라이브리크닷컴(LiveLeak.com)은 지난 8년 사이 세계에서 가장 멀리까지 영향력이 미치는 미디어 업체이자 인터넷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500대 사이트 중 하나로 성장했다. 광고가 없으며 미디어 중심지 뉴욕에든 첨단기술 허브 실리콘밸리에든 모두 관심이 없다.
그래도 라이브리크는 한 달에 2300만 명 안팎의 방문자수를 자랑한다. 그중 대다수가 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다.
라이브리크는 무엇이든 다(그중 태반에 ‘성인용 콘텐트’라는 딱지가 붙었다) 보여주는 사이트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슬람국가’의 처형 동영상 게시에는 최근 선을 그었다. ISIS로 더 많이 알려진 단체다. 요즘엔 라이브리크의 편집자들이 “노골적인 폭력 미화”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삭제한다. 출발은 무시무시했지만 그동안 많이 진화한 셈이다.
불과 12년 전에는 사이트가 오그리시닷컴(Ogrish.com)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초기 화면에 접속하면 적나라한 콘텐트와 ‘성기제거(Genital Mutilation)’ 같은 분류 항목이 뜨곤 했다. 오그리시가 처음 출범했을 때는 여러 개의 ‘쇼크 사이트(예를 들면 Rotten, Stileproject 등)’ 중 하나였다.
절단된 사체, 자동차 사고, 화상 피해자, 유전적 기형을 비롯한 기괴한 이미지를 올리던 사이트들이다. 사이트는 종종 폭력성을 띤 포르노 후원광고를 게재하며 열성 팬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오그리시는 섬뜩한 동영상 자료를 게시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사악한 크니블(Evil Knevil)’로 알려진 오그리시의 웹마스터는 출처 불명의 동영상 콘텐트를 사이트 방문자들에게 새로 보여줄 수 있었다. 대역폭이 커진 네트워크 통신망 덕을 봤다. 세계 각지의 기숙사 방에서 경악과 탄식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오그리시는 현실세계의 공포를 찾아 다니는 방문자들에게 전율을 안겨주려는 취지의 엽기적인 콘텐트를 게재했다. 아울러 전쟁과 테러리즘의 섬뜩한 이미지들을 올리며 이름을 날렸다. ‘살을 파먹는 벌레의 공격을 받는 남자 성기’ 같은 제목이 올려지는가 하면,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나 멕시코 마약조직이 집행한 처형 동영상이 올려지기도 했다. 동영상에는 선정적이고 엉성하게 쓰여진 사진설명을 붙여 호기심을 부채질했다.
‘웰 시코(Well Sicko)가 여러분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첫 동영상이다. 이라크에서 몰래 입수한 공개처형 장면이다. 희생자 바로 앞에서 총격을 가해 끝장을 내는 사담 후세인 붕어빵의 냉혹한 모습이 경이롭다.’ ~사악한 크니블
세월이 흐르면서 생생한 전쟁터 영상을 입수할 수 있었던 군인들 사이에서 오그리시의 팬이 많아졌다. 사이트의 기고자와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서서히 무작위적인 쇼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반면 전쟁의 공포에 더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런 관심과 함께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동영상 유출자와 책상머리 종군기자들의 커뮤니티가 새로 형성됐다.
2006년 사이트 운영자들은 오그리시의 브랜드를 바꿀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 그중 한 명인 공동설립자 헤이든 휴이트의 근거지가 잉글랜드 맨체스터다. 괴팍하고 사적인 블로그를 운영한다. 라이브리크에서 자신이 하는 일과 언론 실태를 다룬다.
대다수 언론은 웹 포럼의 회의론자들이 말하는 ‘깨어나라, 무지몽매한 군중들아(Wake Up, Sheeple)!’ 모드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태도를 견지해 왔다. 화를 잘 내는 교사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가 15세 때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제1차 걸프전 때 언론을 향한 환멸이 깊어졌다. 그 시기의 미디어엔 투명성이 결여돼 있었다고 그는 규정한다. 바로 그때 인터넷을 만나면서 그의 세상이 바뀌었다.
“1990년대 후반 처음 PC를 들여놓고 33.3k 모뎀으로 온라인에 접속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황홀한 경험 중 하나였다”고 그가 말했다. “그 많은 정보와 사람들이 모두 내 손 안에 있었다. 지금도 원시적인 옛날 모델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소리를 들으면 향수에 젖는다.”
원래는 포럼을 이용하려고 오그리시에 가입했다. 휴이트에 따르면 오그리시의 파워 유저 중 다수는 유혈 폭력 콘텐트 수준을 뛰어넘어 지정학적 관심사를 다루는 콘텐트의 공유에 더 관심을 가졌다.
휴이트는 2003년 가입했을 때 오그리시 멤버 중 한 명이 그에게 한 말을 기억한다. “우리는 유혈 사이트의 CNN이 되고자 한다.” 지금은 이 같은 표현을 웃어넘기지만 당시엔 그들의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꼈다. ‘뉴스’로 불릴 만한 유의미한 시사적 사건들로 초점을 옮기는 한편 어둡고 불가해한 세계에 대한 사이트의 끊임 없는 호기심을 살리는 방식이다.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감이 잡혔다”고 그가 말했다.
라이브리크의 공적인 얼굴은 휴이트뿐이다. 그는 제3차 개편 작업에 여념이 없다. 최대한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커뮤니티 관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커뮤니티는 관리하는 게 아니다.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협력한다.”
휴이트는 “드라마에 대처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사이트의 많은 논쟁에 개입해 진화하는 작업을 수반하는 포괄적인 표현이다. 혐오 발언, 위협 또는 일반적인 분열로 빠져드는 대화를 진정시킨다. 그러나 토론에 최소한의 교양이라도 남아 있는 한 휴이트는 유익한 논쟁에 참여하기를 좋아한다.
제시된 의견이 아무리 극단적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인터넷은) 포르노가 아니라 논쟁을 위해 발명됐다”고 그가 말했다.
라이브리크에선 40여 만 명의 회원들 간에 많은 논쟁이 벌어진다. 커뮤니티의 규모가 커지면서 ‘라이브리커’를 자처하는 하나의 대규모 집단을 뛰어넘는 단계로 올라섰다. 대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민족 또는 이해집단으로 이뤄진 다수의 작은 생태계가 존재한다. “때로는 그저 몇몇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려 끼어들었다가 마구 ‘비난을 퍼붓는’ 폭언의 한복판에 말려들기도 한다. 미국 국가안보국, 모사드(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러시아, 그리고 IS 모두와 동시에 연루됐다는 비난”이라고 그가 말했다.
커뮤니티가 종종 아수라장을 이루면서도 사이트는 성장했다. 유튜브에선 받아주지 않는 도발적인 콘텐트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담 후세인을 처형 하는 동영상 콘텐트는 사이트의 최대 히트작이었다.
라이브리크가 잠시 동안 세계 200대 웹사이트로 도약하기도 했다. “그런 일에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한번은 그것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비디오였다. 다른 기능은 모두 중단됐다”고 휴이트가 말했다.
라이브리크는 2008년 네덜란드 단편영화 ‘피트나(Fitna)’를 올리면서 악명을 떨쳤다. 코란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운영자들이 가해 위협을 받은 뒤 삭제됐다. 하지만 곧바로 영화를 다시 올렸다.
극히 최근에는 휴이트가 ‘IS 홍보 비디오’라고 부르는 온갖 끔찍한 참수 동영상의 게시를 거부해 파문을 일으켰다. 가족에 대한 배려 또는 다른 어떤 희한한 발상에서 삭제된 건 아니었다. 현 시점에선 대화에 새로운 관점을 전혀 보태지 않고 구태의연하다는 이유였다.
애당초 파문을 일으켰던 비디오는 여전히 올려져 있다.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의 참수 동영상이다. “우리의 원칙에서 벗어나기 않았기 때문에 보여줘야 했다. 때때로 자신은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휴이트가 말했다.
사람들이 전쟁의 섬뜩한 현실을 목도할 수 있을 때 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휴이트는 믿는다. 라이브리크에는 악의 없는 고양이 동영상도 많이 실린다. 사이트에 올려지는 자료가 모두 부패를 폭로하지는 않는다고 휴이트는 인정한다.
그러나 올려진 수천 개 동영상의 종합적 효과를 강조한다(거부감을 주는 콘텐트는 이용자가 신고할 수 있다. 신고를 받은 편집자가 삭제할지 결정한다). 이는 제도의 투명성을 나타낸다고 그는 말한다.
“최근에 시리아 내전이 크게 확대됐을 때가 기억난다. [자유 시리아군은] 완전히 착한 사람들이며 아사드의 군대는 악의적이고, 못된 짓을 하는 끔찍한 사람들이라고 서방 미디어가 우리에게 줄기차게 세뇌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우리 앞에 날아든 미디어 메시지 내용은 달랐다. 사실상 양쪽 모두 서로에게 정말로 악랄하고 더럽고 끔찍한 사람들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전쟁 범죄는 우리가 후원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다. 사람들이 그런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휴이트 팀은 도덕적으로 중립성을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이는 종종 그냥 뒤로 물러나 이용자들 스스로 의견을 제시하도록 한다는 의미도 된다. 라이브리크 이용자들은 나름의 편견을 갖고 있다. 누군가 선동적인 동영상을 올리면 사이트의 누구나 논평이나 대응 동영상을 만들어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줄리안 어샌지(위키리크스 설립자)나 에드워드 스노든(국가안보국 기밀 폭로자) 같은 사람들의 뒤를 이어 폭로계의 스타로 떠오르고자 하는 욕구는 휴이트에겐 전혀 없다. “그것은 사람 중심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고 그가 말했다.
“이용자들이 콘텐트를 올리기 때문에 언론 플레이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나머지 일을 처리할 뿐이다. 우리가 편집을 하지 않는 한 모두 순수하다. 우리가 앞에 나서기 시작할 때 그때부터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줄리안 어샌지가 산 증인이다.”
2010년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 공개될 때까지는 위키리크스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휴이트는 말한다. 2007년 미국의 아파치 헬리콥터 2대가 바그다드에서 10여 명의 민간인을 살해하는 동영상이다. 어샌지는 그 제목을 선택한 이유를 “ 정치적 영향 극대화”로 표현했다.
“거기에 붙일 만한 최선의 제목은 ‘부수적 과실치사(Collateral Manslaughter)’라고 생각한다”고 휴이트가 말했다. “그만큼 여론을 정말 좌지우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때는 그것을 사용할 때 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프레임이 설정된 순간에 이미 게임은 끝났다. 사람들에게 선입관을 불어넣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이트의 규모가 커지면서 휴이트나 라이브리크의 다른 운영자에 관한 소식을 듣기가 앞으로 더 어려워질 듯하다. 그들이 시민 저널리즘 세계의 주축으로 기반을 다지더라도 말이다. “많은 사람 앞에 설 때 사람들이 ‘위대하다’고 외치면 그것을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버스에서 바퀴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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