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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 <돈의 노예> 펴낸 만화가 김부일·이우영 - 숨 쉬고 일만 했는데 왜 나만 가난할까?

저자와의 대화 | <돈의 노예> 펴낸 만화가 김부일·이우영 - 숨 쉬고 일만 했는데 왜 나만 가난할까?

만화가 김부일(왼쪽)과 이우영.
2000년 톱니처럼 생긴 머리를 가진 기영이가 텔레비전에 등장했다. 1960~70년대 서울시 마포구에 사는 대가족을 그린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의 주인공이다. 전후 검정고무신을 신던 어려운 시절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잔잔한 감동을 줬다. 애니메이션이 나온 지 10년, 기영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기영이도 나이를 먹었다. 험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20대다. 작은 회사에 간신히 취직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했다. 하지만 월급봉투는 항상 쥐꼬리에 붙은 솜털만큼 가벼웠다. 돈은 모이지 않았다. 이에 더해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수술로 마이너스 대출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회사가 망했다. 기영이는 이후 서러운 비정규직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창업설명회에 간 기영이는 “차라리 사장이 돼서 정규직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부터다. “어떻게 돈을 벌지? 아니, 돈은 대체 뭐지? 왜 나는 숨만 쉬고 일했는데도 가난하지?” 기영이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한다. 이 물음에 기영이를 만든 작가가 답한다. “넌 부자가 될 수 없어. 넌 돈의 노예거든.”

<돈의 노예> 는 김부일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고 기영이 아빠 이우영 작가가 그림을 입혔다. 15세~40대 초반까지의 독자를 겨냥한 흔하지 않은 경제만화다. 그림은 명랑만화 풍인데 내용은 다소 섬뜩하다. 돈의 기원에서 시작해 대부분의 사람이 왜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한다. 국가가 만들어진 이유가 부자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정부 기관도 아니면서 한국에 있는 직장인의 주머니까지 털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돈의 노예로 사는 일반인들은 그의 자식에 그 손자에, 그 먼 후대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부자들의 노예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왜 이런 만화책을 냈을까? 김부일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10여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돈을 벌어 보려 했는데 정말 힘들었다. 만화만 그리던 사람이라 경제를 몰라서 돈을 못 버나 싶었다. 그래서 3년 동안 경제 관련 서적을 죽어라 읽었다. 그런데도 돈 버는 방법은 모르겠더라. 대신 왜 내가 돈을 벌 수 없는지는 알게 됐다. 그래서 돈벌이가 안 되는 만화를 내게 됐다.” 그는 이어 “40여 년간 이어진 신자유주의로 세상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더 팍팍해지는 걸 체험하니 분노가 일더라”면서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장인·자영업자들도 최소한 왜 부자가 될 수 없는지는 정도는 알아야 가난해져도 억울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만화에는 김 작가가 읽었던 여러 경제서 내용이 잘 요약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비결로 생각하고 읽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을 읽고서 경제에 눈을 뜬 작가의 모습도 담겨있다. 만화 안에 있는 기영이기 바로 김 작가를 대변하고 있다. 이우영 작가는 김 작가가 만든 콘티에 기영이를 입혔다. ‘국민만화가’로 불리던 이 작가 역시 콘티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검정고무신이 인기를 끌었지만 큰 돈이 되는 건 아니었다. 연재만화도 그리고 단행본도 여러 권 내며 말 그대로 숨만 쉬며 그림을 그렸는데도 대출이자 내기 부담스러웠다. 이제는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힘들게 살고 있는 내 모습 역시 비정규직으로 사는 기영이에 투영돼 있다.”이 작가의 말이다.

만화책을 모두 읽어보면 <공산당선언> 으로 이어지는 좌파 경제학 개론서처럼 읽힌다. 김 작가는 “좌인지 우인지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그냥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니 나의 실생활을 잘 설명해주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더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그냥 맞는 이야기를 쭉 그린 건데, 그게 좌파라면 나도 좌파작가가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돈의 노예> 라는 책 제목은 톨스토이의 이야기에서 따왔다. 종국엔 세상 사람 모두가 ‘돈의 노예’로 살 것이라는 의미다. 책은 그런 암울한 미래만 그린다. 그래서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김 작가는 나지막이 답했다. “허무하게도 나는 대안을 못 낸다. 그건 경제학자들이 내야 하는 거 아니냐. 책은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보는 징검다리 정도다. 최소한 젊은이들에게 도움될 이야기는 있다. 열심히 스펙만 쌓으면 행복한 인생을 살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마음대로 사는 것이 훌륭한 경제학적 대안이다.”

작가들의 바람과는 달리 <돈의 노예> 는 2권의 책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암울한 만화가 많이 팔리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기영이는? 다행히 올해 KBS에서 <검정고무신> 4기가 방영돼 다시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이 때 기영이는 30대로 성장한다. 나이가 들고 노안이 빨리 와 안경도 쓴다. 방송에 나올 기영이도 팍팍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다. 그리고 시집가는 여자친구 경주와의 러브스토리도 있다. 기영이와 경주, 그리고 반장과의 삼각관계가 주요 스토리가 될 예정이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 되었던 기영이가 비정규직을 거쳐 실직하게 될지, 경주와의 사랑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갈지 결말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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