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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 예술 만든다”

“투쟁이 예술 만든다”

시모어 번스타인과 에단 호크(오른쪽). 호크는 번스타인 곁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J K 시몬스는 영화 ‘위플래시’에서 폭군 같은 가학적인 음악교사 역할을 잘 소화해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가 연기한 교사 플레처는 학생들의 두려움과 비밀을 교묘히 이용한다. 오디션을 보려는 학생들에게 면박을 주고, 머리에 물건을 집어던지기도 한다. 학생들은 그런 심술을 무던히 견뎌낸다. 음악으로 출세하기 위해서다. 폭언과 학대 속에서 좌절과 성취를 동시에 안겨주는 지독한 교육방식은 천재 드러머가 되길 갈망하는 한 학생의 집착을 끌어내며 그를 광기로 몰아넣는다.

시모어 번스타인(87)은 그와 정반대의 음악교사다. 예를 들자면 ‘스타워스’의 요다 같은 피아노 선생님이다. 에단 호크가 최근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모어(Seymour: An Introduction)’의 주인공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우리는 80분 동안 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본다. 수도원 같은 그의 집은 공중전화 박스 크기의 주방과 침실 겸 거실(소파 침대를 펼치면 침실이 된다)이 있는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의 작은 아파트다. 그는 학생을 자애로운 인내심으로 가르친다. 그런데도 플레처의 광기만큼 학습 효과가 좋다. “무엇보다 고른 박자가 중요하지”라고 그는 부드럽게 타이른다. 때로는 학생이 연주하는 동안 리듬을 타듯이 피아노를 손가락으로 조용히 두드리며 그렇게 반복해서 가르친다. 그 공간에선 광기를 찾아볼 수 없다. 광기는 바깥 세상에서 이미 넘쳐나지 않는가.

이 다큐멘터리는 한 학생이 번스타인을 초대한 만찬에서 시작된다. 그 학생은 번스타인에게 에단 호크도 참석한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누군데?” 번스타인이 되묻는다. 하지만 그는 호크의 옆자리에 앉자 그가 영화 ‘보이후드’에 나온 배우란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한다.

호크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연기 학생들을 모아 놓고 “최근 들어 내가 왜 연기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고 고심한다”고 말한다. 그는 돈이나 인기 같은 피상적인 요소는 진짜가 아니라는 건 잘 안다. “하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 번스타인 곁에 앉아 있으니 금세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 한 번의 만찬으로 그는 어느 누구보다 내게 더 많은 도움을 줬다.”

호크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무대공포증과 씨름했다. 사실 번스타인도 그랬다. 어린 시절 신동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줄곧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지만 말이다. 1969년 11월 링컨센터 앨리스 튤리홀 데뷔부터 그는 극찬만 받았다. 그러나 어떤 호평도 “연주가 시작되기 전과 연주하는 중에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억누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번스타인은 다큐멘터리에서 말한다. “무대 위를 걸어가는 데도 그처럼 두려움에 떤다면 인생의 우여곡절과 맞서는 문제에선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까?”

신동 피아니스트였던 시모어 번스타인은 요즘 차세대 음악가들의 양성에 헌신한다.
번스타인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는 어려서 뉴저지주의 산업도시 뉴어크에서 성장했다.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떼를 썼다. 우리집엔 피아노도 없었다. 여섯 살 때 낡은 작은 피아노를 누가 우리에게 줬다. 우리집에선 음악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음반도 한 장 없었다.”

그렇다면 음악 재능은 어디서 나왔을까?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나도 알 수 없다”며 “아마 타고난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슈베르트의 소나타를 듣고 울먹였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왜 우느냐고 묻자 그는 “지금까지 들은 음악 중 가장 아름답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즉시 그에게 피아노 선생님을 붙여줬다(번스타인은 그 교사가 “형편없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재능을 무시했다(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집엔 딸 셋과 피아니스트 한 명이 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호크가 번스타인에게 아버지의 그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묻자 그는 “모욕적이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피아노 치는 아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번스타인은 자신이 반투명 돔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까마귀(잔소리와 혹평)가 쪼아도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말이다. 번스타인은 재능이 있다고 해도 연습을 통해 갈고닦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일찍 깨달았다. “열다섯 살쯤 됐을 때 연습이 잘 되면 다른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고 번스타인은 다큐멘터리에서 돌이킨다. “하지만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나 부모님과 갈등을 빚었다.”

그의 첫 후원자 중 한 명은 밀드레드 부스라는 부유한 뉴욕 여성이었다. 부스는 맨해튼 이스트 79번가에 고풍스러운 저택을 갖고 있었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있는 것을 본뜬 대형 음악실까지 갖춰져 있었다.

번스타인은 부스를 ‘공작부인’이라고 불렀다. 부스는 번스타인의 유럽 데뷔를 주선했다. 번스타인이 유럽에서 돌아오자 부스는 그에게 뉴욕주 동남부 스카스데일에 있는 방 10개짜리 저택의 열쇠를 건네며 “원할 때까지 당신 집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다(부스가 소유한 여러 저택 중 작은 집이라고 번스타인은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부스는 번스타인에게 보석과 옷 등 많은 선물을 안겼고, 자신의 집을 그의 사진으로 도배했다. “내게 반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 집에 1년쯤 살자 덫에 걸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끝은 고통스러웠다. 번스타인이 돌아서자 부스는 신경쇠약에 걸렸다. “공작부인은 사실상 내게 이 세상을 가져다 주었다. 그 집을 내가 물려받을 수도 있었지만 난 돈을 목적으로 교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번스타인은 한국전쟁을 앞두고 징병되자 “죽으러 간다”고 느꼈다. 훈련소에서 영하 18℃의 추위 속에 32㎞ 행군을 할 때 동료들이 길가에 고꾸라지는 데 어떻게 행군을 마칠 수 있을지 암담했다고 돌이켰다(그는 한국의 전선에서 피아노 연주로 장병을 위로했다). “그때 나는 음악가의 의식구조가 그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번스타인은 재능보다 연습을 더 중시한다. “투쟁이 예술을 만든다”고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말한다. “기교가 없으면 예술성도 없다.” 자신이 아직 공연하기에 부족하다고 느끼면 스스로 훈련교관이 돼 연습시간을 하루 4시간에서 8시간으로 늘렸다. 제자들이 무대공포증과 불안을 이야기하면 훌륭한 예술가 대다수가 그랬다고 말한다. 호크의 연기 학생들에게 그는 한 젊은 여배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여배우는 프랑스의 유명한 연극 배우 사라 베르나르에게 공연 전 사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디바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다. 그러자 베르나르는 “연기를 배우면 불안해지게 마련”이라고 이야기해준다.

번스타인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서 곧 공연을 그만둔 듯하다. 맨해튼 92번가 Y 문화센터에서 그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다. 당시 50세였던 그는 교육과 작곡에 헌신하고 싶었다. “아주 끔찍한 슬럼프에 빠졌다”고 그는 당시를 돌이킨다. “부족함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음악가로서 부족하다고 느끼면 인간으로서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아니 인간으로 부족하면 음악가로서도 부족하다는 게 더 옳을지 모른다. 다큐멘터리 ‘시모어’(‘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한 작가 J D 샐린저의 중편소설 제목에서 따왔다)의 메시지는 생존과 인내, 그리고 명상의 대가 스즈키 로시가 말한 ‘초심’ 찾기다. 번스타인을 전화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 다큐멘터리의 시사회를 위해 LA로 가기 직전이었다. 그 다음은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저서 ‘자기발견을 향한 피아노 연습(With My Own Two Hands)’으로 음악교사협회의 상을 받기로 돼 있었다. 그 다음 워싱턴DC에서 마지막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다. “마치 젊었을 때처럼 나다니게 됐다”고 번스타인은 말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번스타인은 호크의 학생들에게 음악은 불협화음(dissonance)과 협화음(harmony), 그 사이의 전환(resolution)을 둘러싸고 펼쳐진다고 말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불협화음이 없으면 그 전환을 즐길 수 없다. 불협화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그 사이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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