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지도층으로 부상한 스타 셰프들

음식은 미식가와 대식가를 동시에 매혹시키지만 음식의 역사 연구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다. 중세사를 전문으로 하는 예일대학 역사학 교수 폴 프리드먼은 이 대학에서 유일하게 음식의 역사를 학부에서 강의한다. 2009년 시작한 ‘음식의 역사(The History of Food)’ 강의는 환경과학부터 공학, 역사까지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을 끌어 모은다.
프리드먼 교수를 만나 중세 시대의 음식, 음식 역사가 미국 문화에 끼친 영향, 스타 요리사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음식의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음식은 한 사회의 과거와 현재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이 뭘 먹고 살았는지, 어떻게 음식을 장만했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 다수가 사람들의 음식 취향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설탕의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차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 차와 핫초코, 커피 등의 음료에 설탕을 넣어 먹기 시작한 건 유럽인이었다. 그들은 세계 설탕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주로 카리브해 연안과 브라질에)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인을 데려다 노예로 부렸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구 이동 중 하나가 사소한 취향의 변화에서 시작된 셈이다. 비슷한 예로 중세인의 향신료 사랑을 들 수 있다.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항해에 나선 것은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중세 시대 향신료에 관한 책을 편집하면서 음식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값비싼 상품이 그렇게 인기를 끌게 된 이유를 알고 싶었다.
뉴욕 공공도서관의 연구원으로 있을 때 그곳에서 레스토랑 메뉴 전시회가 열렸다. 뉴욕시 등지에서 수집한 약 4만 개의 메뉴가 전시됐는데 아주 매혹적이었다. 다양한 디자인과 시대에 따른 음식 종류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그때 현대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런던의 출판사 템즈 앤 허드슨의 편집자가 내게 음식 역사에 관한 책을 편집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 첫 번째 대답(대개 학술적이다)은 “내 전공 분야가 아니다”였다. 하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그 프로젝트가 내게 중세 이외의 시대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줄 것 같아 맡겠다고 했다. 2007년에 나온 그 책[음식: 입맛의 역사(Food: The History of Taste)]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음식 역사를 다뤘다.
중세사 전문가로서 중세 시대의 음식에 관해 말해 줄 수 있나?

육류 중엔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 고기와 돼지고기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 육류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금식일이 연간 100일이 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선을 많이 먹었다. 대다수가 청어나 대구 또는 말리거나 소금을 뿌려 저장할 수 있는 생선을 먹었다.
연회는 지나치게 흥청거렸다. 귀족은 50~100코스로 이뤄진 매우 호사스러운 식사를 했다. 예를 들면 기름이 번들번들한 새끼 돼지 구이의 등에 통닭을 얹은 요리가 그중 한 코스로 나올 수도 있었다. 부유하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에 비해 음식 낭비가 훨씬 적었다. 그 많은 음식은 결국 누군가가 다 먹었다. 주방 일꾼이나 다른 하인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농부는 귀족보다 더 균형 잡힌 식사를 했다. 그들은 채소와 곡물을 더 많이 먹었다. 중세 시대 농부는 배를 굶주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또 상류층의 음식 소비 문화를 흉내 낸 부유한 상인 계층도 있었다.
요즘 음식은 그때와 어떤 점이 다른가?

프랑스 전통 요리는 중세 요리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다. 17~18세기 프랑스 요리사들은 이전의 요리를 조롱했다. 맛보다는 눈길을 끄는 데 더 신경을 쓴 유치하고 먹기에 적절치 않은 음식이라고 비난했다.
프랑스 요리는 단순성을 매우 중시한다. 말 그대로 단순하다는 뜻이 아니라 원재료인 농산물의 맛이 살아나도록 만든다는 의미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지켜진다. 1970년대 누벨 퀴진 역시 지나치게 복잡한 요리나 많은 재료를 써서 낮은 품질을 감추려는 경향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요즘 다시 유행했으면 하는 중세 요리가 있다면?
야생동물 고기 요리다. 왜 다시 유행하지 않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미국에는 사슴이 넘쳐난다. 현재 개체수가 많고 먹기에 적합한 야생동물 중에 과거에는 식용으로 애용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종류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오리와 공작이 좋은 예다. 19세기에 즐겨 먹던 테라핀(북미의 강이나 호수에서 사는 작은 거북)을 요즘 미국인은 먹지 않는다. 댕기흰죽지(오릿과의 중형 새) 요리도 1800년대엔 매우 귀했던 음식이다.
스타 요리사의 기원에 대한 강의도 했는데 역사가 얼마나 되나? 사람들은 왜 그들을 스타로 떠받드는가?
어떤 예술이나 기술 분야에서도 유독 뛰어난 사람이 있다. 스타 요리사는 특정 요리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듯한 솜씨로 만들기 때문에 명성을 얻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요리의 기술’이라는 책을 쓴 마르쿠스 가비우스 아키피우스가 있었다. 바그다드에는 칼리프(이슬람 통치자)를 위한 훌륭한 요리사들이 있었고, 중국에는 황제의 요리사들이, 오스만제국에는 관리들을 위한 요리사들이 있었다.
서양 최초의 스타 요리사로는 14세기 프랑스 궁정 요리사였던 기욤 티렐(일명 타이유방)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귀족의 작위를 받았으며 ‘르 비앙디에(Le Viandier)’라는 요리책을 썼다. 지금도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 중에 그의 이름을 딴 곳(‘타이유방’)이 있을 정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댄 바버, 르네 레드제피 등 오늘날의 스타 요리사와 과거의 요리사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타이유방이나 앙토냉 카렘(19세기 초 프랑스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9세기 말~20세기 초 프랑스 요리사), 알렉시스 수아예(19세기 초 프랑스 요리사)에게 환경이나 사회 문제에 관한 의견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리사들이 이런 분야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은 새로운 현상이다.
최초의 레스토랑은 언제 생겼나?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60~1770년쯤 파리에서 생겨났다. 레스토랑이라는 말은 (건강·체력의) 회복이라는 의미를 지닌 ‘레스토라시옹(restoration)’에서 유래했다. 건강염려증 환자나 몸이 허약한 사람이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것이 차츰 발전해 상류층과 중산층을 위한 고가의 건강 요리를 파는 곳이 됐다.
레스토랑의 특징 중 하나가 여관과 달리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정에서와 달리 동행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으며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주문할 수 있다.
미국의 레스토랑은 1830년쯤 시작됐다. 뉴욕 최초의 본격적인 레스토랑으로 알려진 델모니코는 1835년부터 1923년까지 영업했다. 1920년대 당시 미국의 많은 레스토랑이 그랬듯이 금주법 시행에 따른 외식문화 변화로 문을 닫았다.
레스토랑에는 음식평론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런 전통도 프랑스에서 시작됐나?
최초의 음식평론가는 프랑스인 알렉상드르 발타자르 그리모 드 라 레이니에르였다. 그는 19세기 초에 여러 권으로 된 ‘미식 연감’을 썼다. 미국에서는 레스토랑 평가가 훨씬 더 늦게 시작됐다. 사실 음식서적 편집자인 크레이그 클레이본이 뉴욕타임스에 음식평론을 연재하기 전엔 미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음식평론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이전에는 광고에 가까운 지나친 칭찬의 글 일색이었다.
오늘날 음식이라는 주제는 50년 전과 비교할 때 더 복잡해졌나?
음식이란 늘 복잡한 문제였다. 상류층과 하류층이 먹는 음식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었다. 미국은 이민자의 음식이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하지만 미국인은 품질보다 다양성을 더 중시했다. 햄버거의 품질은 낮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하게 만든다. 산업 경제에서는 품질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음식은 늘 복잡한 문제다. 하지만 요즘은 그것을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여기는 경향이 짙어졌다. 지금까지 음식이 이런 관점에서 연구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흔해서 눈길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학구적인 주제로 여긴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동시에 어느 곳에도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나
그렇다. 별로 숙련된 솜씨는 아니지만 우리 집의 음식 대부분을 내가 만든다.
좋아하는 요리책은?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애용하는 요리책 3~4권이 있다. 그중 하나가 비아나 라 플라스와 에반 클라이만이 쓴 ‘쿠치나 프레스카(Cucina Fresca)’다. 실온으로 서빙하는 이탈리아 요리들을 소개한 책이다. 또 내가 갓 결혼했을 때 나온 피에르 프레이니의 ‘60분 구어메이(The 60-Minute Gourmet)’도 여전히 좋아한다. 1980년대에는 (식사 준비 시간으로) 1시간이 짧다고 여겨졌다는 사실이 좋다. 요즘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데 60분밖에 안 걸렸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또 요탐 오토렝기가 쓴 요리책 ‘플렌티(Plenty)’와 ‘예루살렘(Jerusalem)’도 애용한다. 그리고 중국 음식과 그리운 옛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comfort food) 만들기를 좋아한다.
현재 계획 중인 일은?
음식 관련 학문에서 내가 정말 관심 있는 분야는 미국 레스토랑 연구다. 현재 ‘미국을 바꾼 10개의 레스토랑(Ten Restaurants that Changed America)’이라는 책을 쓰고 있다. 2016년이나 2017년 초에 출간할 예정이다.
필자 에이미 에이시 맥도널드는 예일대 예술·인문학·사회과학 수석 커뮤니케이션 담당관이다.- 번역 정경희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신평 “尹, 사형수 쓰는 독방에 넣어”…전한길엔 “잠재력 대단”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손흥민, 토트넘 떠난다…"내 선택 존중해줘"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진성준 "코스피 안 망한다"…'대주주 기준 상향' 반대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IPO 실패시 회수 어떻게?…구다이글로벌 CB 투자 딜레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구독하면 200만원 주식 선물', 팜이데일리 8월 행사 시작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