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 교수의 ‘실리콘밸리 창업마피아’ 데이비드 삭스 - 무섭게 몰입하며 도전 즐기는 워커홀릭
홍익희 교수의 ‘실리콘밸리 창업마피아’ 데이비드 삭스 - 무섭게 몰입하며 도전 즐기는 워커홀릭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이 쓴 <제로 투 원> 에 보면, 그가 페이팔의 초창기 멤버를 채용할 때 고려했던 건 재능만이 아니었다. ‘즐겁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최우선 목표였다. 사실 유명 로펌이나 컨설팅 회사에 재능 있는 인재들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업무를 떠나서는 서로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 틸이 원했던 건 그런 직업적 관계가 아니었다. 재능이 있으면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뭉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그 결과 페이팔 마피아들은 회사를 팔고 나서 헤어진 후에도 누가 창업을 하거나 투자할 때 서로 발 벗고 나서 성공을 돕는다. 피터 틸이 페이팔 대표가 된 뒤 맨 먼저 떠오른 친구가 바로 데이비드 삭스(David Sacks)였다. 당시 삭스는 맥킨지 컨설팅사에서 잘 나가던 컨설턴트였다. 그럼에도 친구 틸이 부르자 군말없이 달려와 페이팔에 전략이사로 합류했다. 삭스는 틸과 스탠퍼드에서 만났다. 둘은 생각이 비슷해 이내 친해졌다. 스탠퍼드대학의 다문화 학생에 대한 편협한 정책을 비판하는 책 <다양성 신화(the diversity myth)> 를 함께 썼다. 또한 피터 틸이 만든 교내신문 <스탠퍼드리뷰> 에서 편집자로 함께 활동하며 피터 틸에 이어 후임 편집장을 지냈다. 스탠퍼드 졸업 후에는 시카고대학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고 1999년 1월 맥킨지에 입사해 주로 통신과 금융서비스 기업을 담당했다. 그리고 채 1년도 안 돼 그 해 11월 페이팔에 합류했다.
삭스는 페이팔에서 제품을 책임졌다. 이를 위해 디자인·영업·마케팅·사업개발·해외사업·고객대응과 인력자원 등 모든 방면을 관리했다. 페이팔의 성장과 함께 삭스의 역할도 확장돼 2002년 초엔 COO(운영총괄이사)의 직책을 맡게 된다. 그는 페이팔 내에서도 일 중독자로 유명했다. 새벽3시에 퇴근하기 일쑤였고, 다음날 오전 11시면 다시 책상에 앉아있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무서울 정도로 몰입했다. 사람들과도 가벼운 대화보다는 무거운 얘기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내는 타입으로 유명하다.
페이팔이 이베이에 인수 합병된 뒤 삭스는 틸과 같은 시기에 페이팔을 나와 영화제작을 하겠다며 할리우드로 이사 갔다. 그는 2003년에 이라는 코미디 풍자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Room 9 Entertainment’라는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여기에 페이팔 마피아 동료들인 피터 틸, 엘론머스크, 맥스 레브친과 함께 투자하고 이사회에 합류했다. 영화는 2006년에 나와 좋은 평가를 받고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코미디·뮤지컬 부문 ‘올해의 영화’를 포함해 2개 부문 수상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데이비드 삭스는 다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2006년 그는 ‘지니닷컴(Geni.com)’이라는 가족의 혈통과 족보를 형성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창업했다. 지니닷컴을 운영하던 그는 조직내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직원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업무용 툴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마트폰 확산에 맞추어 모바일과도 연동했다. 이툴이 주목받자, 데이비드 삭스와 아담 피소니(Adam Pisoni)는 이 내부용 커뮤니케이션 툴을 갖고 별도의 회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야머’(Yammer)다.
그들은 2008년 9월에 열린 ‘TechCrunch50’ 행사에서 스타트업 배틀 형식의 대회에 참가해 야머로 대상을 탔다. 이것이 야머를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였다. 그런데 이 행사의 평가위원 가운데 ‘세일즈포스’ CEO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가 있었다. 베니오프는 야머의 발표에서 영감을 얻어 경쟁 서비스 업체인 ‘채터’를 출시해 야머의 경쟁사가 됐다. 2009년 1월 피터 틸이 운영하는 ‘파운더스펀드(Founders Fund)’는 ‘CRV’와 함께 야머에 500만 달러의 시리즈A 투자를 했다. 페이팔 마피아 동료 키스 라보이스(Keith Rabois)도 함께 투자에 참여했다. 100명의 사람들의 혈연관계를 한 뿌리로 잇는데 성공한 지니닷컴은 혈통을 중시하는 이스라엘 기업 ‘마이헤리티지닷컴(MyHeritage.com)’에 2012년 인수됐다. 그 뒤에도 데이비드삭스는 여전히 이사회 이사로 활동했다.
삭스는 야머를 운영하며 ‘열린 문 정책’을 도입했다. 어느 직원이든 언제나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직원들과 가까워야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럽게 된다고 믿어 월·수·금은 2층, 화·목은 3층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등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이러한 수평적이고 차별 없는 평등문화는 유대계가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특징이다. 동시에 이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밑바탕이 됐다.
야머의 첫 기업 고객은 2만5000 달러로 시작했지만 이내 굉장한 속도로 성장했다. 4년도 채 안 돼 30만개 회사, 500만명의 사용자를 모았다. 야머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시리즈E까지 5번에 걸쳐 총 1억4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마침내 2012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야머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현재 야머는 직원 400명이 넘는 거대 조직으로 컸으며 사용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
매각 직후 삭스는 자신의 40번째 생일과 야머 매각을 동시에 자축하는 파티를 미국에서 가장 비싼 저택 중 하나인 플르드리에서 열었다. 이러한 파티는 사치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사람임을 입증하는 자리다. 많은 리스크를 안고 엄청난 고생을 한 만큼 이런 좋은 자리에 친한 사람을 모두 초대해 다함께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다 야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소셜 전략의 핵심이 됐다. 삭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무용프로그램 오피스 부서의 이사로 2014년 7월까지 일하고 그만뒀다. 보통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으로 크게 성공하면 이후 밴처캐피털 투자가가 된다. 삭스의 페이팔 마피아 동료 피터 틸과 리드 호프만이 대표적인 예다. 삭스도 우버(Uber)·이벤트브라이드(Eventbrite) 등을 포함해 27개 스타트업에 엔젤투자를 했다. 그러던 그는 지난해 10월 다시 창업기업에 몸을 담았다. 이제 태어난 지 18개월 된 클라우드 인사관리 서비스업체인 ‘제네핏(Zenefits)’의 COO를 맡았다. 페이팔과 야머 때와 같이 이번에도 초고속 성장기업에 합류한 것이다. 투자자들은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SaaS(정기적으로 결제하는 서비스 형태의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제네핏에 직접 투자도 하고 이사회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홍익희 배재대 교수. KOTRA 근무 32년 가운데 18년을 뉴욕·밀라노·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보내며 유대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유대인들의 경제사적 궤적을 추적한 <유대인 이야기> 등을 썼으며 최근에 <달러 이야기> , <환율전쟁 이야기> , <월가 이야기> 를 출간했다. 월가> 환율전쟁> 달러> 유대인> 스탠퍼드리뷰> 다양성>제로>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탠퍼드 동문 피터 틸의 절친
삭스는 페이팔에서 제품을 책임졌다. 이를 위해 디자인·영업·마케팅·사업개발·해외사업·고객대응과 인력자원 등 모든 방면을 관리했다. 페이팔의 성장과 함께 삭스의 역할도 확장돼 2002년 초엔 COO(운영총괄이사)의 직책을 맡게 된다. 그는 페이팔 내에서도 일 중독자로 유명했다. 새벽3시에 퇴근하기 일쑤였고, 다음날 오전 11시면 다시 책상에 앉아있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무서울 정도로 몰입했다. 사람들과도 가벼운 대화보다는 무거운 얘기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내는 타입으로 유명하다.
페이팔이 이베이에 인수 합병된 뒤 삭스는 틸과 같은 시기에 페이팔을 나와 영화제작을 하겠다며 할리우드로 이사 갔다. 그는 2003년에
하지만 데이비드 삭스는 다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2006년 그는 ‘지니닷컴(Geni.com)’이라는 가족의 혈통과 족보를 형성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창업했다. 지니닷컴을 운영하던 그는 조직내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직원들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업무용 툴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마트폰 확산에 맞추어 모바일과도 연동했다. 이툴이 주목받자, 데이비드 삭스와 아담 피소니(Adam Pisoni)는 이 내부용 커뮤니케이션 툴을 갖고 별도의 회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야머’(Yammer)다.
그들은 2008년 9월에 열린 ‘TechCrunch50’ 행사에서 스타트업 배틀 형식의 대회에 참가해 야머로 대상을 탔다. 이것이 야머를 세상에 널리 알린 계기였다. 그런데 이 행사의 평가위원 가운데 ‘세일즈포스’ CEO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가 있었다. 베니오프는 야머의 발표에서 영감을 얻어 경쟁 서비스 업체인 ‘채터’를 출시해 야머의 경쟁사가 됐다. 2009년 1월 피터 틸이 운영하는 ‘파운더스펀드(Founders Fund)’는 ‘CRV’와 함께 야머에 500만 달러의 시리즈A 투자를 했다. 페이팔 마피아 동료 키스 라보이스(Keith Rabois)도 함께 투자에 참여했다. 100명의 사람들의 혈연관계를 한 뿌리로 잇는데 성공한 지니닷컴은 혈통을 중시하는 이스라엘 기업 ‘마이헤리티지닷컴(MyHeritage.com)’에 2012년 인수됐다. 그 뒤에도 데이비드삭스는 여전히 이사회 이사로 활동했다.
삭스는 야머를 운영하며 ‘열린 문 정책’을 도입했다. 어느 직원이든 언제나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직원들과 가까워야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럽게 된다고 믿어 월·수·금은 2층, 화·목은 3층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등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냈다. 이러한 수평적이고 차별 없는 평등문화는 유대계가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특징이다. 동시에 이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밑바탕이 됐다.
야머의 첫 기업 고객은 2만5000 달러로 시작했지만 이내 굉장한 속도로 성장했다. 4년도 채 안 돼 30만개 회사, 500만명의 사용자를 모았다. 야머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시리즈E까지 5번에 걸쳐 총 1억4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마침내 2012년 7월 마이크로소프트가 야머를 12억 달러에 인수했다. 현재 야머는 직원 400명이 넘는 거대 조직으로 컸으며 사용자가 1000만명이 넘는다.
매각 직후 삭스는 자신의 40번째 생일과 야머 매각을 동시에 자축하는 파티를 미국에서 가장 비싼 저택 중 하나인 플르드리에서 열었다. 이러한 파티는 사치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사람임을 입증하는 자리다. 많은 리스크를 안고 엄청난 고생을 한 만큼 이런 좋은 자리에 친한 사람을 모두 초대해 다함께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다
창업 18개월 된 기업에 다시 합류
홍익희 배재대 교수. KOTRA 근무 32년 가운데 18년을 뉴욕·밀라노·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보내며 유대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유대인들의 경제사적 궤적을 추적한 <유대인 이야기> 등을 썼으며 최근에 <달러 이야기> , <환율전쟁 이야기> , <월가 이야기> 를 출간했다. 월가> 환율전쟁> 달러> 유대인>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코스닥협회, 제16회 대한민국코스닥대상 시상식...최고상 클래시스
2서울경제진흥원, 2024년 중기벤처부·산업부 장관 표창
3삼성바이오에피스, 차기 수장에 김경아 내정...고한승 삼성전자로
4"콧물 찍, 재채기도? 반려견 면역력 이렇게 하세요"
5트럼프, '관세전쟁' 주도 무역대표부 대표에 '그리어' 내정
6진에어, ‘블랙프라이데이’ 진행...국제선 최대 15% 할인
7테일즈런너RPG, 사전 공개 서비스 시작
8현대차, 인도네시아 EV 충전 구독 서비스 시작
9베이글코드, 2024년 ‘벤처천억기업’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