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미국인들의 풍성한 저녁 식탁을 책임졌던 칠면조구이는 조상에 대한 감사와 가족의 사랑을 상징하던 요리였다. 윌리엄 하넷 ‘일요일 저녁식사를 위한 것’ 1888.미국에서 닭은 귀하고 세련된 것과 관련 없는 존재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흔해빠진, 심지어 진부한 것이 닭이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에게 ‘chicken’이라고 부르면 ‘촌닭’이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새고기 요리 중에서 귀족들의 연회에 올라가는 사치스러운 것은 공작이나 백조로 만든 파이인데, 보통은 테이블 가운데에 박제된 공작이나 백조 장식을 곁들여서 그 고기가 무엇인지 밝히곤 한다. 여럿이 나누어 먹는 요리가 아니라, 개별 요리로 제공되는 새고기는 메추라기 요리다. 이런 고급 새고기들의 서민 버전이 바로 닭고기다.
아일랜드 태생의 미국화가 윌리엄 하넷(William Michael Harnett, 1848~1892)이 눈속임기법으로 진짜와 똑같이 그린, 털이 제거되어 문에 거꾸로 매달린 닭고기에도 서민적인 정서가 엿보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고기의 면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실에 매달아 보관했다. 덕분에 공기 중에서 자연스럽게 건조 숙성되어 고기가 더 맛있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는 사냥터에서 잡은 동물을 자랑스럽게 문고리에 매달아 두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문에 매달아 놓은 고기만 봐도 그 집의 메뉴를 대충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림의 제목인 ‘일요일 저녁식사를 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닭고기는 일요일 저녁 식탁 앞에 모이는 가족을 위한 특별한 메뉴다. 교회에 다녀온 날이니 평소보다 길게 감사기도를 드릴 것이고, 서로를 축복하는 덕담을 나눌 것이다. 하지만 여럿이 나누어 먹기에 닭고기 한 마리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하넷의 가족은 아일랜드 감자기근이 있었던 1840년대 말에 굶어죽지 않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가 그린 이 닭고기 그림은 그 시절의 굶주림과 헐벗음의 기억을 담고 있다. 토끼나 사슴, 꿩처럼 취미삼아 사냥해서 얻은, 털 있는 채로 걸어놓는 근사한 포획물이 아니다. 집에 있는 것을 잡은, 털을 다 뽑아낸 초라한 이 닭고기는 이주 노동자층이 낯선 땅에서 정착하기까지의 서글픈 추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일랜드 기근 때에도 이주가 많았지만, 유럽이 화염에 휩싸였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도 어려운 시절을 견디지 못해 미국이라는 꿈의 땅으로 이주해 온 유럽인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실향인의 외로움을 달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기 위해서 미국은 그들을 품어야 했다. 결코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있다는 든든한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 국가가 해야 할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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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을 치유한 요리
노만 록웰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1942.이런 시기에 등장한 그림이 바로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1894~1978)의 ‘궁핍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번에는 양이 모자란 닭고기가 아니라, 온가족이 나누어 먹어도 남을 만큼 푸짐한 칠면조구이다. 모두들 행복한 표정으로 식탁에 둘러앉아 있다. 이 그림은 가족과 함께 풍성하고 따스한 저녁을 보내던 향수를 자극하면서,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효과까지 있었다.
만인의 잡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evening post)> 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던 록웰은 194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서 영감을 얻어 인간의 네 가지 자유에 대한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이 그중 하나다. 이 그림은 ‘언론의 자유’, ‘예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와 함께 대중적으로 호소력 있는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전시되면서 전쟁자금으로 1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후원금을 모으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록웰이 전쟁 시기에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가 묘사해내는 따스한 일상에 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뿐이었다. 전쟁은 가족을 데려갔고, 인간다운 생활을 앗아갔고, 인간 본연의 자유를 그 개념부터 헤집어 놓았다.
전쟁 중에는 여성의 이미지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생산되었는데, ‘궁핍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보여 주듯이 가족을 위해 푸짐한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도 그 중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애인과 멀리 떨어져 있는 병사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목적으로 제작된 관능적인 포즈의 젊은 여자 이미지도 많이 돌아다녔고, 광고나 포스터에는 나라를 지켜줄 것을 호소하는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어린 소녀 이미지도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미지들은 궁극적으로는 멀리 있는 소중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날처럼 미국인들에게는 온가족이 모이는 국가 차원의 명절이다. 우리에게 송편이나 떡국이 있다면 그들에겐 칠면조구이가 있다. 칠면조구이는 추수감사절이 국가기념일로 정해진 1864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미 미국인들 사이에서 조상에 대한 감사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요리로 굳혀져 있었다. 그들은 오븐에 반나절 이상 익힌 칠면조고기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선친들의 고생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이 지금처럼 잘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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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주는 명암
알리스 닐 ‘추수감사’ 1965 하지만, 가족모임이란 그리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가족이란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떤 이는 끝도 없이 섭섭한 상황에 처하고, 어떤 이는 말도 안 되는 부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로 가족은 개인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남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시도 있다.
난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 아래/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김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이젠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 될 수도 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 순식간에 비정상인으로 전락한다-유하, ‘달의 몰락’ 중에서-
형제들이 결혼해서 배우자들을 얻게 되면, 가족은 쉽지 않은 집단으로 변모한다. 같이 자라던 시절에는 형제끼리 서로 편하게 무슨 말이든 했겠지만, 결혼해서 분가하고 나면 쓸데없는 오해가 싹틀까봐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세대 차이, 윗사람의 내리사랑과 아랫사람의 윗사람 대우, 남과 여의 역할 분담 등의 문제가 끼어들면 더 조심스럽다.
칠면조라고 해서 그런 달라진 가족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가족의 힘과 미국이라는 단결된 국가의 가치를 대변하며 휘광에 둘러싸여 있던 칠면조는 어느 순간 그냥 칠면조로 바뀌어 있다. 이런 사실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은 알리스 닐(Alice Neel, 1900~1984)의 ‘추수감사’다. 싱크대 수조 안에, 세제와 스펀지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칠면조는 우리가 늘 알고 있던 그 칠면조 이미지가 아니다.
붉은 색의 잘린 목을 드러내고 있는 칠면조의 모습은 마치 기요틴에서 막 내려놓은 사형수의 시신처럼 창백하고 처절하다. 가족의 가치를 죽도록 지키려다 결국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려야 했던 상처받은 개인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 이주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새터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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