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현대 패션의 DNA ‘빈티지 쿠튀르’

현대 패션의 DNA ‘빈티지 쿠튀르’

디오르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은 메리-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자매.
“구조적인 미가 돋보이는 독특한 의상이다.” 영국의 패션 전문가 윌리엄 뱅크스-블레이니는 빈티지 쿠튀르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의상들은 소비자가 특정 디자이너의 최신 컬렉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구매할 수 있도록 자유를 선사한다.”

뱅크스-블레이니는 런던 메릴본에서 예약제 부티크 윌리엄 빈티지를 운영한다. 그는 아름다운 빈티지 드레스들이 ‘낡고 추레하다’는 인식을 벗고 명품을 뛰어넘는 새롭고 고급스런 이미지로 거듭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렌티노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은 앤 해서웨이.
뱅크스-블레이니의 책 ‘25벌의 드레스: 20세기 패션의 상징적인 순간들(25 Dresses: Iconic Moments in 20th-Century Fashion)’에는 그의 부티크를 거쳐간 최고의 의상들이 실렸다. 1924년에 제작된 샤넬의 ‘리본 드레스’[검은색 뷰글 비즈(막대 모양의 구슬 장식)와 실크 리본을 이용한 1920년대 신여성 패션]와 연분홍색 뒤셰스 수자직(새틴)으로 만든 티에리 머글러의 1999년작 무도회 드레스를 비롯해 모두 기막히게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부제가 역사 서적 같은 느낌을 주지만 이 책은 누가 어떤 옷을 디자인했고 그 옷들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흥미로운 정보로 가득하다. 책에 실린 드레스 대다수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디자이너 장 데세의 어깨끈 없는 주홍색 시폰 드레스가 대표적이다. 1953년 제작된 오트 쿠튀르 드레스지만 주름을 잡은 몸통 부분과 무릎까지 내려오는 주름 스커트는 요즘 입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10년 전만 해도 빈티지 의류는 보헤미안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고 뱅크스-블레이니는 말했다. “당시엔 빈티지 의상을 입는 것이 특이했지만 요즘 여성들은 옷장에 환상적인 빈티지 드레스 한 벌쯤은 갖춰놓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빈티지 패션은 소수만 즐기는 아이템에서 주류로 올라섰다. 나는 책에서 빈티지 의류가 현대 패션의 생명선이자 DNA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빈티지 의류에 대한 반응은 나라마다 다르다. 온라인 부티크 러블리스 빈티지로 유럽 곳곳의 고객을 상대하는 리네트 펙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빈티지 의상의 인기가 매우 높지만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지역이 파리에 국한돼 있다. 프랑스 고객은 샤넬, 디오르, 에르메스 등을 주로 구매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고객은 보헤미안 스타일이나 1970년대 히피 스타일을 선호하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는 제품을 팔아본 적이 없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독일은 어떨까? “독일은 하나로 뭉뚱그려 말할 수 없다”고 보그 독일판의 편집위원 에스마 딜이 말했다.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됐던 역사가 패션에 반영됐다. 생활방식으로 볼 때 베를린은 독일의 다른 대도시보다 미국 LA와 공통점이 더 많다. 베를린 사람들은 색다른 브랜드와 빈티지 패션에 관심이 많다. 뮌헨, 슈튜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등 부유한 서부 도시들은 전통적인 분위기를 선호한다. 개성보다는 사회적 적합성과 품질을 중시한다.”

1924년 제작된 샤넬의 ‘리본 드레스’.
일반적으로 동유럽으로 갈수록 빈티지 의류를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짙다. 어떤 디자이너의 옷이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인구학적 변화가 일고 있다”고 뱅크스-블레이니가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아름다운 패션의 역사가 길고 다른 지역보다 훨씬 오래 전에 빈티지 의상이 인기를 끌었다. 최근 일본과 중국은 개인 소득이 높아지면서 빈티지 오트 쿠튀르의 큰 시장이 됐다. 러시아의 신흥부자도 유럽의 여론주도층이 어떤 옷을 입는지 주목한다. 아랍 고객은 오트 쿠튀르 수준의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를 원한다. 그 가치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빈티지 의류에 대한 상류층 고객의 관심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레드 카펫에 등장하는 회수의 증가다. 줄리아 로버츠가 200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발렌티노의 빈티지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을 때 사람들은 호기심에 찬 눈초리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제 빈티지는 똑똑한 선택이다. 메리-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자매는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의상연구소 갈라 행사에 빈티지 디오르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다. “유명인사들은 빈티지가 ‘난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나만의 개성과 특색을 드러낼 줄 안다’고 말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뱅크스-블레이니는 말했다.

빈티지 의상의 유행에 따른 또 다른 추세는 중고품의 유통이다. 빈티지라고 할 만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고급 의상을 계속 사들이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옷장을 비우기 위해 처분해야 할 아이템이다. 런던의 더 드레서 같은 상점이나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같은 온라인 부티크들은 그런 중고 의상을 비교적 싼값에 사들여 판매한다. 구매자로서는 유명 디자이너 의류 진품을 싼값에 살 수 있으니 모두가 윈-윈이다.

- 번역 정경희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6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7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8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9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

실시간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