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카길 꿈꾸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브릿지론 2년 안에 조기 상환”
[한국판 카길 꿈꾸는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브릿지론 2년 안에 조기 상환”
김홍국(58) 하림그룹 회장이 팬오션 인수에 성공했다. 그의 꿈인 글로벌 곡물 메이저에 한 발 가까워진 것이다. 논란도 많은 인수였다. 인수 추진 초기 관련도 없는 축산 업체가 해운사를 인수한다는 인식이 짙었다. 이로 인해 승자의 저주라는 우려도 나왔고 ‘오버한다’는 비난도 들었다. 막판엔 소액주주들의 반발에도 부딪쳤다. 김 회장은 멈추지 않았다. 뚝심으로 밀고 나가 끝내 팬오션을 품에 안았다. 김홍국 회장을 6월 17일 만나 직접 얘기를 들어봤다. 그가 인수에 무작정 달려든 건 아니었다. 곡물 사업에 대한 비전과 함께 투자 효용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예상했나.
“전혀 못 했다. 감자로 인해 당장은 손해지만, 인수가 완료돼 회사가 정상화되면 주주에겐 이득이다. 반대로 인수가 무산돼 계속 법정관리에 있었으면 영업이익이 줄고 주주의 손해로 이어진다. 주주들이 당연히 이를 헤아릴 거라 생각했다. 반발은 있었지만 관계인집회의 결과를 보면 다행히 주주들이 마지막에 이런 점을 이해해준 것 같다. 앞으로 사업 열심히 해서 회사를 키우면 지금 반발하는 주주들도 고맙게 여길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 달 안에 그리 될 거라고 본다.”
인수대금(1조80억원)을 관계인집회 전에 전부 납부했다.
“재무적투자자(FI)인 JKL파트너스가 1700억원을 부담하고, 1580억원은 팬오션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체 조달한 자금이다. 나머지 6800억원이 하림의 부담 금액이다. 그룹의 인수 주체인 제일홀딩스가 보유자금 2900억원을 내고, 3900억원은 브릿지론을 빌려서 냈다. 인수금 중 9000억원가량을 회생채무 변제에 사용한다.”
브릿지론의 이자 부담이 있을텐데, 단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나.
“현행법상 지주사인 제일홀딩스가 계열사 자금을 맘대로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에 브릿지론을 쓴 것이다. 5년 만기 조건인데 2년 내에 조기 상환할 계획이다. 대출 조건을 재조정하는 리파이낸싱도 가능하다. 축산업을 시작하던 시절 경험으로 빚의 무서움은 누구보다 잘 안다. 철저히 계산해서 내린 결정이다.”
팬오션 인수로 재무 부담이 커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그룹 전체로 보면 현금성 자산이 8000억원 정도 있다. 일부에서는 자금이 모자라 NS쇼핑의 기업공개(IPO)를 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당시 신주 발행을 하나도 안 했다. 돈이 필요했으면 신주 발행을 하지 않았겠는가. 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졸업하면 부채비율이 120%, 올해 말이면 80%로 떨어진다. 그 덕에 오히려 그룹 전체의 재무건전성이 좋아질 것이다.”
인수가가 예상보다 4000억원가량 올랐다. 적정 가격이라고 보나.
“법원이 인수 조건으로 8500억원 이상 유상증자를 확정했을 때는 다소 비싸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회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정도는 돼야 채권단을 설득하고 인수가 가능할 것 같더라. 또 팬오션이 하림그룹에 그만큼 필요한 회사이기도 했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계산이 섰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그룹의 비전인 곡물 메이저가 되는데 꼭 필요하고, 내용면에서도 적합한 회사다. 팬오션을 인수하기 전 대한해운 인수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곡물 운송경험이 없어 접었다. 팬오션은 곡물 운송 경험이 많다. 범양상선 시절부터 보면 수십 년의 노하우가 있다. 규모도 크다. 한 해 우리나라의 곡물 수입량의 두 배 가까운 양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김홍국 회장은 그동안 팬오션 인수를 통해 ‘글로벌 곡물유통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왔다. 현재 축산업과 사료사업에 필요한 옥수수·대두박 등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곡물을 실어나르는 벌크선 인프라를 갖춘 팬오션을 인수하면 운송 비용을 절감하고 유통망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팬오션 인수를 곡물 메이저가 되기 위한 ‘착수’라고 했다.
곡물 사업을 구상한 시점은.
“10년 정도 됐다. 하림이 사료 사업을 시작한 게 20년 전쯤이니까, 사료 사업을 10년 정도 하다가 본격적으로 구상했다. 곡물은 하림의 주력 사업인 축산업과 사료사업의 기초 원자재다. 곡물을 사서 사료를 만들고, 사료로 닭과 돼지를 키워 식품으로 가공한다. 당연히 곡물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유통구조를 연구하다가 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국내에 곡물 메이저가 하나쯤 필요하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이 23%다.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한다. 만약의 경우 식량파동의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일본도 식량 자급률이 28%에 불과하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전략적으로 자국 곡물메이저를 키워 여기에 대비했다.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곡물메이저를 키우고 있다.”
곡물 사업을 위해 굳이 해운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나.
“해운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낸다. 부가가치와 경쟁력이 운송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에서 옥수수를 사온다고 치자. 이때 미국에서 직접 사는 게 아니다. 계약 단계에서부터 ‘인천까지 실어다 준 옥수수’를 산다. 운송료가 포함된 가격이라는 얘기다. 시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곡물 가격의 30~40%, 많을 때는 절반가량이 운송료다. 게다가 곡물 자체의 가격은 시카고 곡물시장에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업체마다 줄이고 늘리고 할게 없다. 결국 가격경쟁력도 운송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세계 1위 곡물메이저 카길의 경쟁력도 자체 운영하는 00~600척의 벌크선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곡물 유통시장 상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지역 불균형 때문이다. 현재 주요 곡물 생산지는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 등지다. 소비는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와 중동·아프리카에서 늘고 있다. 결국 누군가는 곡물을 바다 건너로 실어 날라야 한다. 그만큼 전망이 좋다.”
기존 업체가 이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시장인데.
“틈새를 뚫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본 곡물메이저의 발자취를 봐도 그렇다. 국내에서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장벽에 막혀 실패한 바 있다. 그러나 하림이 유리한 점도 있다. 그룹 내에 확실한 수요처가 있다는 것이다. 하림의 축산업과 사료사업은 원가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팬오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곡물 유통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기초 체력은 갖춘 셈이다.”
하림그룹이 한 해 소모하는 곡물의 양이 얼마나 되나.
“1년에 320만t 정도의 사료를 생산한다. 여기 들어가는 곡물의 90%가 수입인데 이게 약 200만t, 금액으로 따지면 1조원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미국·일본의 곡물 업체로부터 사왔다.”
팬오션으로 곡물을 공급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절약 효과가 있을까.
“정확한 파악은 어렵다. 팬오션을 인수했다고 해서 그룹에 필요한 원료 전부를 팬오션을 통해 운송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팬오션이 운송한 곡물 전부를 계열사에만 공급하는 게 아니다. 자체 물량을 기반으로 다른 곳에도 공급할 예정이다. 국내만 하더라도 전체 곡물 수입물량이 1500만t, 5조원 규모다. 가까운 중국 시장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인수 과정에서 카길과도 미팅이 있었다고.
“인수 본계약 체결 이튿날(2월 13일) 카길 한국법인에서 연락이 왔다. 아시아태평양 총괄이 만나고 싶다더라. 동북아에서 곡물 수요가 늘고 있으니 협업하자는 제안이었다. 다만, 아직 원론적인 단계일 뿐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 아마 팬오션 인수가 확정되고 법정관리에서 벗어나면 본격적인 얘기가 오고 가지 싶다.”
잠재 경쟁사인 카길이 협업을 원하는 이유가 있나
“커져가는 동북아 시장에 관심이 크다. 해당 지역에 대해 잘 아는 업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접근하려는 것이다. 또 카길은 곡물 유통과 함께 재배도 직접 하는 곡물메이저다. 이런 관점에서 하림과도 충분히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사업 연관성이 있지만, 해운사는 처음인데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큰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건 팬오션에 맡길 생각이다. 국내 주요 기업 회장들이 모든 계열사 사업에 전문가는 아니지 않나. 나 역시 그렇다. 일단 팬오션이 스스로 잘 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기존 사업을 정상화하고, 조금씩 곡물 운송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팬오션에 곡물사업부를 신설할 것이다. 이미 여기서 일할 전문가진도 일부 채용했다.”
현재 하림의 자산총액은 4조8000억원.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기준인 5조원에 약간 못 미친다. 팬오션을 인수하면 9조원을 웃돌아 대기업 집단에 편입된다. 김 회장은 지금은 대기업에서 찾기 힘든 창업주다. 11살 때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시장에 내다 판 것을 계기로 젊은 시절부터 양계사업을 시작했다. 두세 차례의 위기를 넘기며 재무 안전성의 중요함을 깨달았고, 농장(사료·사육)-공장(도계·가공)-시장(유통·홈쇼핑)으로 이어지는 사업모델을 구상해 하림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놨다.
대기업 집단 편입이 부담스럽진 않나.
“솔직히 부담된다. 중견기업일 때보다 규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가로서 도전과 성장을 회피할 수는 없다. 대기업 기준에 따라 새로 규제에 저촉이 되는 것은 사안마다 처리할 시간이 주어진다. 규정 기한에 맞춰 하나씩 해소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자수성가형 대기업 오너의 신화가 잇따라 무너졌다. 자신 있나.
“모르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 팬오션 인수도 사료사업을 하면서 긴 시간 고민하고 연구했던 분야다. 필요하고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곡물 사업의 규모가 워낙 크다. 이걸 완성시키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당분간은 여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병아리 10마리를 키울 때 내 꿈은 병아리 100마리를 키우는 것이었다. 100마리를 키우고 나서는 1000마리가 꿈이 됐다. 결국 사업이란 게 그렇더라. 지금은 먼저 곡물 메이저를 만드는 게 꿈이다. 다음 목표는 그 뒤에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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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들의 반발을 예상했나.
“전혀 못 했다. 감자로 인해 당장은 손해지만, 인수가 완료돼 회사가 정상화되면 주주에겐 이득이다. 반대로 인수가 무산돼 계속 법정관리에 있었으면 영업이익이 줄고 주주의 손해로 이어진다. 주주들이 당연히 이를 헤아릴 거라 생각했다. 반발은 있었지만 관계인집회의 결과를 보면 다행히 주주들이 마지막에 이런 점을 이해해준 것 같다. 앞으로 사업 열심히 해서 회사를 키우면 지금 반발하는 주주들도 고맙게 여길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 달 안에 그리 될 거라고 본다.”
인수대금(1조80억원)을 관계인집회 전에 전부 납부했다.
“재무적투자자(FI)인 JKL파트너스가 1700억원을 부담하고, 1580억원은 팬오션이 회사채를 발행해 자체 조달한 자금이다. 나머지 6800억원이 하림의 부담 금액이다. 그룹의 인수 주체인 제일홀딩스가 보유자금 2900억원을 내고, 3900억원은 브릿지론을 빌려서 냈다. 인수금 중 9000억원가량을 회생채무 변제에 사용한다.”
브릿지론의 이자 부담이 있을텐데, 단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나.
“현행법상 지주사인 제일홀딩스가 계열사 자금을 맘대로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에 브릿지론을 쓴 것이다. 5년 만기 조건인데 2년 내에 조기 상환할 계획이다. 대출 조건을 재조정하는 리파이낸싱도 가능하다. 축산업을 시작하던 시절 경험으로 빚의 무서움은 누구보다 잘 안다. 철저히 계산해서 내린 결정이다.”
팬오션 인수로 재무 부담이 커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그룹 전체로 보면 현금성 자산이 8000억원 정도 있다. 일부에서는 자금이 모자라 NS쇼핑의 기업공개(IPO)를 한 것 아니냐고 하는데, 당시 신주 발행을 하나도 안 했다. 돈이 필요했으면 신주 발행을 하지 않았겠는가. 팬오션이 법정관리를 졸업하면 부채비율이 120%, 올해 말이면 80%로 떨어진다. 그 덕에 오히려 그룹 전체의 재무건전성이 좋아질 것이다.”
인수가가 예상보다 4000억원가량 올랐다. 적정 가격이라고 보나.
“법원이 인수 조건으로 8500억원 이상 유상증자를 확정했을 때는 다소 비싸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회사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정도는 돼야 채권단을 설득하고 인수가 가능할 것 같더라. 또 팬오션이 하림그룹에 그만큼 필요한 회사이기도 했다.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계산이 섰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그룹의 비전인 곡물 메이저가 되는데 꼭 필요하고, 내용면에서도 적합한 회사다. 팬오션을 인수하기 전 대한해운 인수도 검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곡물 운송경험이 없어 접었다. 팬오션은 곡물 운송 경험이 많다. 범양상선 시절부터 보면 수십 년의 노하우가 있다. 규모도 크다. 한 해 우리나라의 곡물 수입량의 두 배 가까운 양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김홍국 회장은 그동안 팬오션 인수를 통해 ‘글로벌 곡물유통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왔다. 현재 축산업과 사료사업에 필요한 옥수수·대두박 등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곡물을 실어나르는 벌크선 인프라를 갖춘 팬오션을 인수하면 운송 비용을 절감하고 유통망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팬오션 인수를 곡물 메이저가 되기 위한 ‘착수’라고 했다.
곡물 사업을 구상한 시점은.
“10년 정도 됐다. 하림이 사료 사업을 시작한 게 20년 전쯤이니까, 사료 사업을 10년 정도 하다가 본격적으로 구상했다. 곡물은 하림의 주력 사업인 축산업과 사료사업의 기초 원자재다. 곡물을 사서 사료를 만들고, 사료로 닭과 돼지를 키워 식품으로 가공한다. 당연히 곡물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유통구조를 연구하다가 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식량안보 차원에서도 국내에 곡물 메이저가 하나쯤 필요하다. 한국의 곡물 자급률이 23%다.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한다. 만약의 경우 식량파동의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일본도 식량 자급률이 28%에 불과하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전략적으로 자국 곡물메이저를 키워 여기에 대비했다.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곡물메이저를 키우고 있다.”
곡물 사업을 위해 굳이 해운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나.
“해운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낸다. 부가가치와 경쟁력이 운송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에서 옥수수를 사온다고 치자. 이때 미국에서 직접 사는 게 아니다. 계약 단계에서부터 ‘인천까지 실어다 준 옥수수’를 산다. 운송료가 포함된 가격이라는 얘기다. 시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곡물 가격의 30~40%, 많을 때는 절반가량이 운송료다. 게다가 곡물 자체의 가격은 시카고 곡물시장에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업체마다 줄이고 늘리고 할게 없다. 결국 가격경쟁력도 운송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세계 1위 곡물메이저 카길의 경쟁력도 자체 운영하는 00~600척의 벌크선에서 나오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곡물 유통시장 상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지역 불균형 때문이다. 현재 주요 곡물 생산지는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 등지다. 소비는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와 중동·아프리카에서 늘고 있다. 결국 누군가는 곡물을 바다 건너로 실어 날라야 한다. 그만큼 전망이 좋다.”
기존 업체가 이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시장인데.
“틈새를 뚫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본 곡물메이저의 발자취를 봐도 그렇다. 국내에서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장벽에 막혀 실패한 바 있다. 그러나 하림이 유리한 점도 있다. 그룹 내에 확실한 수요처가 있다는 것이다. 하림의 축산업과 사료사업은 원가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팬오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곡물 유통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기초 체력은 갖춘 셈이다.”
하림그룹이 한 해 소모하는 곡물의 양이 얼마나 되나.
“1년에 320만t 정도의 사료를 생산한다. 여기 들어가는 곡물의 90%가 수입인데 이게 약 200만t, 금액으로 따지면 1조원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미국·일본의 곡물 업체로부터 사왔다.”
팬오션으로 곡물을 공급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절약 효과가 있을까.
“정확한 파악은 어렵다. 팬오션을 인수했다고 해서 그룹에 필요한 원료 전부를 팬오션을 통해 운송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팬오션이 운송한 곡물 전부를 계열사에만 공급하는 게 아니다. 자체 물량을 기반으로 다른 곳에도 공급할 예정이다. 국내만 하더라도 전체 곡물 수입물량이 1500만t, 5조원 규모다. 가까운 중국 시장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인수 과정에서 카길과도 미팅이 있었다고.
“인수 본계약 체결 이튿날(2월 13일) 카길 한국법인에서 연락이 왔다. 아시아태평양 총괄이 만나고 싶다더라. 동북아에서 곡물 수요가 늘고 있으니 협업하자는 제안이었다. 다만, 아직 원론적인 단계일 뿐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 아마 팬오션 인수가 확정되고 법정관리에서 벗어나면 본격적인 얘기가 오고 가지 싶다.”
잠재 경쟁사인 카길이 협업을 원하는 이유가 있나
“커져가는 동북아 시장에 관심이 크다. 해당 지역에 대해 잘 아는 업체와 파트너십을 통해 접근하려는 것이다. 또 카길은 곡물 유통과 함께 재배도 직접 하는 곡물메이저다. 이런 관점에서 하림과도 충분히 사업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사업 연관성이 있지만, 해운사는 처음인데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큰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건 팬오션에 맡길 생각이다. 국내 주요 기업 회장들이 모든 계열사 사업에 전문가는 아니지 않나. 나 역시 그렇다. 일단 팬오션이 스스로 잘 하도록 여건을 만들어 기존 사업을 정상화하고, 조금씩 곡물 운송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팬오션에 곡물사업부를 신설할 것이다. 이미 여기서 일할 전문가진도 일부 채용했다.”
현재 하림의 자산총액은 4조8000억원. 공정위의 대기업 집단 기준인 5조원에 약간 못 미친다. 팬오션을 인수하면 9조원을 웃돌아 대기업 집단에 편입된다. 김 회장은 지금은 대기업에서 찾기 힘든 창업주다. 11살 때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시장에 내다 판 것을 계기로 젊은 시절부터 양계사업을 시작했다. 두세 차례의 위기를 넘기며 재무 안전성의 중요함을 깨달았고, 농장(사료·사육)-공장(도계·가공)-시장(유통·홈쇼핑)으로 이어지는 사업모델을 구상해 하림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놨다.
대기업 집단 편입이 부담스럽진 않나.
“솔직히 부담된다. 중견기업일 때보다 규제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가로서 도전과 성장을 회피할 수는 없다. 대기업 기준에 따라 새로 규제에 저촉이 되는 것은 사안마다 처리할 시간이 주어진다. 규정 기한에 맞춰 하나씩 해소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자수성가형 대기업 오너의 신화가 잇따라 무너졌다. 자신 있나.
“모르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 팬오션 인수도 사료사업을 하면서 긴 시간 고민하고 연구했던 분야다. 필요하고 잘 할 수 있는 것만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곡물 사업의 규모가 워낙 크다. 이걸 완성시키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당분간은 여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병아리 10마리를 키울 때 내 꿈은 병아리 100마리를 키우는 것이었다. 100마리를 키우고 나서는 1000마리가 꿈이 됐다. 결국 사업이란 게 그렇더라. 지금은 먼저 곡물 메이저를 만드는 게 꿈이다. 다음 목표는 그 뒤에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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