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코카콜라가 사랑한 ‘어니스트 티’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코카콜라가 사랑한 ‘어니스트 티’
“어니스트 티(Honest Tea)를 코카콜라 아류로 키우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코카콜라를 어니스트 티처럼 운영하려 합니다.” 무타 켄트(Muhtar Kent) 코카콜라 CEO가 어니스트 티의 공동 창업자인 세스 골드먼(Seth Goldman)과 배리 네일버프(Barry Nalebuff)에게 한 말이다. 2007년 7월부터 진행된 코카콜라의 끈질긴 구애가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2008년 3월 어니스트 티의 주식 40%를 4300만 달러에 매입한 코카콜라는 3년이 지난 2011년 어니스트 티의 나머지 주식을 모두 인수했다. 코카콜라가 투자를 시작한 2008년 어니스트 티를 취급하는 매장은 1만5000개였지만 지금은 10만개가 넘는다. 매출도 2013년 1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코카콜라의 판단은 옳았다.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탄산음료를 피하면서 탄산음료 판매량은 제자리 걸음인 반면 어니스트 티의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2015년 7월의 경우 북미시장에서 코카콜라의 매출이 전년도보다 3% 줄었지만 순이익은 20% 가까이 증가했다. 광고비 절감도 원인이었지만 어니스트 티의 판매 신장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니스트 티는 한국에는 생소한 브랜드지만 연매출 1500억원에 이르는 차(茶)음료 전문회사다. 상원의원 시절부터 버락 오바마의 입맛을 사로잡은 어니스트 티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와 헬기 안에도 구비돼 있다고 한다. 2009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받은 세스 골드먼은 오바마를 위한 한정판 차를 만들어 백악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의 요가 교실에서 우연히 오프라 윈프리를 만난 배리 네일버프는 시음용 차를 항상 휴대하는 습관 덕분에 윈프리에게 어니스트 티를 직접 권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어니스트 티의 팬이 된 윈프리는 자신이 발행하는 ‘오 매거진’에 어니스트 티를 소개했다. 어니스트 티의 자카르타 생강차는 오프라윈프리의 ‘잇 아이템(it item)’으로 유명하다.
매년 4000종이 넘는 새로운 음료가 선보이기 무섭게 사라져버리는 미국의 음료 시장은 대표적인 레드오션에 속한다. 살벌한 음료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어니스트 티의 출사표는 단순명료했다. ‘내가 마실 차를 내가 만들겠다’였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세스 골드먼은 땀을 흘리고 목이 말라도 딱히 마실 만한 건강음료가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설탕을 12스푼 이상 넣은 건강 음료와 과일 함유량 0.0002%만 넣은 과일 음료를 더 이상 몸이 원하지 않았다. 예일대 경영대학원에 재직 중인 스승, 배리 네일버프에게 달려가 목마름을 달래 줄 건강한 음료가 없음을 토로했다. 스승과 제자의 결론은 ‘우리가 직접 만들자’였다.
커피로 스타벅스가 성공했듯이 차로 성공해보자며 의기 투합한 두 사람은 상표등록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배리는 하나의 단어인 어니스트티(Honestea)로 상표등록을 신청했지만 네스티(Nestea) 상표를 침해한다고 등록거부 통지를 받았다. ‘Nestea’ 앞에 ‘Ho’만 붙은 것이 자신이 신청한 상표였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수많은 이름이 떠올랐지만 정직한 ‘Honest’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고심 끝에 궁여지책으로 ‘Honestea’를 두 단어로 변경하여 어니스트 티(Honest Tea)로 재신청해 상표등록에 마침내 성공했다. “정직한 차를 만들어 사업으로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어니스트 티는 1998년 2월 2일 난산 끝에 태어났다.
휴직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배수의 진을 치기로 한 세스는 투자회사를 박차고 나와 배리가 사준 보온병 5개를 집으로 가져와 차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유행하던 창업을 위한 그 흔한 차고도 필요 없었다. 차를 우릴 수 있는 주방이 사무실이자 공장이었다. 중국과 인도, 모로코산 찻잎을 산지별로 우려낸 시제품을 보온병에 담아 유기농 수퍼마켓으로 유명한 홀푸즈로 가져갔다. 액상이나 가루를 희석해 만든 음료가 아닌 진짜 찻잎으로 우린 차에 관심을 가진 홀 푸즈 구매담당자는 1998년 2월 27일 오전 11시에 어니스트 티 1만5000병을 주문했다. 창업한 지 25일 만에 받은 첫 주문이었다. 입소문 마케팅을 위한 무료시음회를 시작으로 25만 달러의 실적을 올린 첫해보다 4배 이상인 110만 달러의 매출을 다음 해에 기록했다. 2003년 최초의 공정무역 차 음료를 출시한 어니스트 티는 2004년 미 농무부 유기농 인증을 받으며 비즈니스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회공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어니스트 티는 이름처럼 ‘정직한 차’로 레드오션인 음료 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찾아냈다. 설탕과 인공감미료로 범벅인 달디 단 음료를 싫어하는 소비층이 생겼지만 음료회사들은 단맛에 빠진 대다수를 위해 점점 더 당도가 높은 음료를 출시했다. 어니스트 티는 대중 음료 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을 겨냥한 ‘달지 않은 차’로 틈새시장을 확대해갔다. 설탕보다 몇 배나 비싼 꿀과 메이플 시럽을 사용하면서도 원가 경쟁력을 갖게 된 비결은 달지 않은 차 음료의 특성을 살려 소량만 넣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은 보상으로 칼로리를 기존 음료의 6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정직’을 강조하는 어니스트 티는 미국의 대도시에 무인가판대를 설치하고 사람들이 정직하게 돈을 내고 차를 가져가는 것을 측정하는 정직지수 캠페인을 벌여 2011년 칸 국제광고제에서 아웃도어 부분 금상을 받았다. 캠페인 결과 미국 전체 평균은 92%였다. 정직지수 100%를 기록한 곳은 하와이와 앨라배마였다.
병에 담은 RTD(ready to drink, 개봉하여 바로 마시는 음료)차 매출이 상승세를 타면서 티백 차 제품을 요구하는 매장이 많아졌다. 티백 차를 고객들이 먼저 찾은 사실에 고무된 세스와 베리는 티백 차 시장에서 손쉽게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차 생산라인을 다각화하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 세일즈 팀에서도 티백 차의 승산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2000년부터 티백 차로 6년 동안 올린 매출은 겨우 35만 달러였다. 차에 대한 무지한 소양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정체성을 망각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온전한 찻잎으로 우려낸 차와 주머니 속에 마른 찻잎이 들어있는 티백의 간극에 대한 차이는 굳이 소비자 한계효용(限界效用) 체감의 법칙과 균등의 법칙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차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실책이었다. 더구나 티백 차 출시에 연연하면서 자신들의 강점이 ‘정직한 차’인 것을 망각하고 ‘차’에만 지나치게 집착했다. 티백 차 시장 진출은 “어니스트 티 역사상 최대의 전략적 실수였다”며 반성한 세스와 베리는 자신들도 미처 몰랐던 어니스트 티의 정체성이 ‘티’보다는 ‘어니스트’에 방점이 있음을 티백 차 시장 진입 실패로 확실히 알게 됐다. 폭 넓은 시각을 갖게 된 어니스트 티는 2005년 찻잎으로 우린 차를 넘어 차 사업을 대용차(代用茶) 개념으로 확대 재생산시킨다. 어니스트 에이드(Honest Ade)로 레몬차 시장에 진출하며 어린이용 주스 시장에도 어니스트 키즈(Honest Kids)를 출시했다. 대박이었다. 경쟁 기업이 서로 윈윈(winwin)하여 파이를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는 배리가 만든 합성 신조어 ‘코피티션(Coopetition)’이 실전에서 일어났다. 어니스트 키즈에 자극을 받은 경쟁사 제품 카프리 썬이 파우치 당 칼로리를 40%나 줄였다. 구매력이 있는 모심(母心)을 돌리기 위한 카프리 썬의 자구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사 제품이 모두 잘 팔리며 어린이 건강에 도움이 됐다. ‘설탕이 덜 들어간 유기농, 프리미엄 음료를 만들겠다’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이 경쟁회사에게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
코카콜라의 신규 사업투자 팀인 뱁(VEB, Venturing and Emerging Brands)은 3000개가 넘는 음료를 비교한 후 어니스트 티를 첫 번째 인수 대상으로 삼아 2007년 7월 세스와 베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 얼마 전 네슬레와 투자협상이 불발돼 좀 더 신중해진 두 사람에게 뱁은 적극 다가섰다. 레드삭스 팬인 세스에게 플레이오프게임에 초대해 함께 경기를 보며 구체적인 투자조건을 제시했다. 이 때 차 음료 분야에서 코카콜라를 앞지른 펩시에서도 M&A 제안이 들어왔다. 네슬레에서도 코카콜라보다 좋은 조건을 다시 제시했다. 세스의 최대 고민은 ‘어느 회사가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잘 살려줄 수 있느냐’였다. 해를 넘긴 협상 끝에 코카콜라 북미지역 사장인 샌디 더글러스(Sandy Douglas)가 나섰다. 샌디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보장했다. 세스는 최고 경영자인 TEA-EO로 남기로 했다. 혁신적 사고와 창조성에 목말랐던 코카콜라 CEO, 무타 켄트는 ‘음료로 세상을 바꾸려는’ 어니스트 티의 영입을 반겼다. 세스와 베리의 새로운 티파티의 시작이었다. 어니스트 티 회장직을 사임하고 나온 베리는 새로운 음료회사를 만들었다. 어니스트 티를 창업하기 전인 1996년 8월부터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한 베리는 최근 한국의 보리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바마 美 대통령 입맛 사로잡아
매년 4000종이 넘는 새로운 음료가 선보이기 무섭게 사라져버리는 미국의 음료 시장은 대표적인 레드오션에 속한다. 살벌한 음료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어니스트 티의 출사표는 단순명료했다. ‘내가 마실 차를 내가 만들겠다’였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세스 골드먼은 땀을 흘리고 목이 말라도 딱히 마실 만한 건강음료가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설탕을 12스푼 이상 넣은 건강 음료와 과일 함유량 0.0002%만 넣은 과일 음료를 더 이상 몸이 원하지 않았다. 예일대 경영대학원에 재직 중인 스승, 배리 네일버프에게 달려가 목마름을 달래 줄 건강한 음료가 없음을 토로했다. 스승과 제자의 결론은 ‘우리가 직접 만들자’였다.
커피로 스타벅스가 성공했듯이 차로 성공해보자며 의기 투합한 두 사람은 상표등록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배리는 하나의 단어인 어니스트티(Honestea)로 상표등록을 신청했지만 네스티(Nestea) 상표를 침해한다고 등록거부 통지를 받았다. ‘Nestea’ 앞에 ‘Ho’만 붙은 것이 자신이 신청한 상표였음을 뒤늦게 인지했다. 수많은 이름이 떠올랐지만 정직한 ‘Honest’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고심 끝에 궁여지책으로 ‘Honestea’를 두 단어로 변경하여 어니스트 티(Honest Tea)로 재신청해 상표등록에 마침내 성공했다. “정직한 차를 만들어 사업으로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어니스트 티는 1998년 2월 2일 난산 끝에 태어났다.
휴직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배수의 진을 치기로 한 세스는 투자회사를 박차고 나와 배리가 사준 보온병 5개를 집으로 가져와 차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유행하던 창업을 위한 그 흔한 차고도 필요 없었다. 차를 우릴 수 있는 주방이 사무실이자 공장이었다. 중국과 인도, 모로코산 찻잎을 산지별로 우려낸 시제품을 보온병에 담아 유기농 수퍼마켓으로 유명한 홀푸즈로 가져갔다. 액상이나 가루를 희석해 만든 음료가 아닌 진짜 찻잎으로 우린 차에 관심을 가진 홀 푸즈 구매담당자는 1998년 2월 27일 오전 11시에 어니스트 티 1만5000병을 주문했다. 창업한 지 25일 만에 받은 첫 주문이었다. 입소문 마케팅을 위한 무료시음회를 시작으로 25만 달러의 실적을 올린 첫해보다 4배 이상인 110만 달러의 매출을 다음 해에 기록했다. 2003년 최초의 공정무역 차 음료를 출시한 어니스트 티는 2004년 미 농무부 유기농 인증을 받으며 비즈니스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사회공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섰다.
어니스트 티는 이름처럼 ‘정직한 차’로 레드오션인 음료 시장에서 블루오션을 찾아냈다. 설탕과 인공감미료로 범벅인 달디 단 음료를 싫어하는 소비층이 생겼지만 음료회사들은 단맛에 빠진 대다수를 위해 점점 더 당도가 높은 음료를 출시했다. 어니스트 티는 대중 음료 시장에서 소외된 계층을 겨냥한 ‘달지 않은 차’로 틈새시장을 확대해갔다. 설탕보다 몇 배나 비싼 꿀과 메이플 시럽을 사용하면서도 원가 경쟁력을 갖게 된 비결은 달지 않은 차 음료의 특성을 살려 소량만 넣어도 되기 때문이었다. 설탕을 사용하지 않은 보상으로 칼로리를 기존 음료의 6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음료 시장의 블루오션 개척
병에 담은 RTD(ready to drink, 개봉하여 바로 마시는 음료)차 매출이 상승세를 타면서 티백 차 제품을 요구하는 매장이 많아졌다. 티백 차를 고객들이 먼저 찾은 사실에 고무된 세스와 베리는 티백 차 시장에서 손쉽게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차 생산라인을 다각화하는 좋은 기회로 생각한 세일즈 팀에서도 티백 차의 승산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대참패였다. 2000년부터 티백 차로 6년 동안 올린 매출은 겨우 35만 달러였다. 차에 대한 무지한 소양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정체성을 망각한 당연한 귀결이었다. 온전한 찻잎으로 우려낸 차와 주머니 속에 마른 찻잎이 들어있는 티백의 간극에 대한 차이는 굳이 소비자 한계효용(限界效用) 체감의 법칙과 균등의 법칙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차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실책이었다. 더구나 티백 차 출시에 연연하면서 자신들의 강점이 ‘정직한 차’인 것을 망각하고 ‘차’에만 지나치게 집착했다. 티백 차 시장 진출은 “어니스트 티 역사상 최대의 전략적 실수였다”며 반성한 세스와 베리는 자신들도 미처 몰랐던 어니스트 티의 정체성이 ‘티’보다는 ‘어니스트’에 방점이 있음을 티백 차 시장 진입 실패로 확실히 알게 됐다.
어니스트 티 창업자는 한국 보리차에 관심
코카콜라의 신규 사업투자 팀인 뱁(VEB, Venturing and Emerging Brands)은 3000개가 넘는 음료를 비교한 후 어니스트 티를 첫 번째 인수 대상으로 삼아 2007년 7월 세스와 베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 얼마 전 네슬레와 투자협상이 불발돼 좀 더 신중해진 두 사람에게 뱁은 적극 다가섰다. 레드삭스 팬인 세스에게 플레이오프게임에 초대해 함께 경기를 보며 구체적인 투자조건을 제시했다. 이 때 차 음료 분야에서 코카콜라를 앞지른 펩시에서도 M&A 제안이 들어왔다. 네슬레에서도 코카콜라보다 좋은 조건을 다시 제시했다. 세스의 최대 고민은 ‘어느 회사가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잘 살려줄 수 있느냐’였다. 해를 넘긴 협상 끝에 코카콜라 북미지역 사장인 샌디 더글러스(Sandy Douglas)가 나섰다. 샌디는 어니스트 티의 창업 미션을 보장했다. 세스는 최고 경영자인 TEA-EO로 남기로 했다. 혁신적 사고와 창조성에 목말랐던 코카콜라 CEO, 무타 켄트는 ‘음료로 세상을 바꾸려는’ 어니스트 티의 영입을 반겼다. 세스와 베리의 새로운 티파티의 시작이었다. 어니스트 티 회장직을 사임하고 나온 베리는 새로운 음료회사를 만들었다. 어니스트 티를 창업하기 전인 1996년 8월부터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한 베리는 최근 한국의 보리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0만 달러선 실패한 비트코인, 9만 달러선도 위협…하락세 지속
2뉴욕 유가,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에 하락 반전…WTI, 0.25%↓
3"중견기업, 트럼프 2기 무역장벽에 수출시장 다변화해야"
4삼성전자, ‘위기론’ 이후…들려온 ‘이 소식’ 구원투수 될까
5BTS 뷔·박효신 명동 뜬다...신세계스퀘어, K-컬처 명소 도약
6롯데지주, 밸류업 계획 공시…“주주환원율 35% 이상 지향”
7젝시믹스 매각설에…이수연 대표 “내 주식 겨우 1만원 아냐” 반박
8“뉴진스 성과 축소”…민희진, 하이브 최고홍보책임자 등 고발
9수요일 출근길 ‘대설’…시간당 1∼3㎝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