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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고수는 속임수 익히되 쓰지 않는다

[정수현의 바둑경영] 고수는 속임수 익히되 쓰지 않는다

환경부는 9월 24일 오후 경기도 평택항에 입고된 폴크스바겐 제타·비틀·골프, 아우디A3 차량을 봉인 조치했다. 환경부는 이들 차량을 인천 교통환경 연구소로 옮겨 정밀 검사했다. 12월 초부터는 국산·수입산 디젤차 전체 차종을 대상으로 임의 조작여부를 검사할 예정이다. / 사진:교통환경연구소 제공
폴크스바겐이 배출가스 조작 파문으로 충격을 던지고 있다. 전 세계에 판매한 1100만대 가량이 배기가스 배출량을 속인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적 브랜드인 독일의 자동차 회사에서 이런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 속임수 파문으로 회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독일의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이 사태는 ‘속임수 경영’에 일대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바둑의 속임수를 통해 속임수 경영의 문제점을 알아보기로 한다.
 병법의 본질은 속이는 것?
조남철 9단이 지은 [속임수].
바둑에는 좋은 수를 가리키는 말과 함께 나쁜 수를 뜻하는 말도 많이 있다. 정수(正手)나 호수(好手) 묘수(妙手)는 좋은 수를 가리킨다. 악수(惡手)나 꼼수, 속임수는 나쁜 수를 가리킨다. 이 외에도 좋은 수와 나쁜 수를 가리키는 말이 많이 있다. 이 중에서 속임수는 상대를 속여 이득을 보려는 수를 말한다. 어감이 좋지 않지만 바둑에서 속임수가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전쟁의 게임인 바둑에서 적을 속이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도 병법의 본질은 속이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바둑기술 서적 중에는 ‘속임수’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이 여러 권 있다. 그림은 한국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이 쓴 2권의 속임수 책이다. 고수가 되려는 사람들은 정석서 등과 함께 이런 책을 필수적으로 공부한다. 다양한 속임수를 수순(手順)까지 정확하게 익힌다.

이 속임수들은 상당히 놀라운 효과를 가져 온다. 보통의 정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이문을 안겨주는 것이다. 예를 하나 보기로 하자. [1도]와 같은 모양에서 흑1로 지킬 때 백2에 들어가는 수는 속임수를 내포하고 있다. 흑이 별 생각 없이 응수를 하다 보면 백의 속임수에 걸려들 수 있다. [2도]는 여기서 나온 속임수가 통한 모습이다. 수순은 생략하고 결과만 보자. 흑이 백돌 여섯 점을 따내 귀 부분에 20여 집을 확보했다. 그러나 백의 바깥 세력은 그야말로 금성철벽이다. 백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모습이다. 이렇게 속임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외국산 소고기를 한우로 속여 큰 이득을 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는다. 비즈니스나 바둑에서 이런 대박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바둑 고수들은 누구나 여러 가지 속임수를 정식으로 공부한다. 그래서 속임수에 능통하다. 그러나 그들은 실전에서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열심히 배웠지만 트릭을 써 먹지 않는 것이다. 고수들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응징을 당하면 별 볼일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보통의 평범한 수로 둔 것보다 오히려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속임수에는 모두 대처법이 있어 대박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속임수를 쓰다가는 이 쪽이 오히려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프로기사들은 뭣 하러 속임수를 배울까? 그것은 속임수의 응징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즉,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다. 고수들은 속임수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상대방이 감히 속임수를 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실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에 대한 대처법을 잘 안다면 보이스피싱이 설 땅은 없을 것이다. 고객이 가짜 한우나 인삼을 감별할 수 있다면 고객을 기만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바둑에서 중급자들은 속임수를 배워 써먹으려는 유혹을 느낀다. 상대방이 속임수에 걸려들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대가 속임수에 말려들 하수라고 보는 관념이 들어 있다. 만일 상대가 고수라면 중급자들도 속임수를 쓰려는 생각을 못할 것이다. 기업에서도 고객을 하수라고 보기 때문에 제품이나 가격에서 속임수를 쓰는 것이 아닐까. 똑똑한 고객이라면 그것이 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점점 스마트해지는 고객들 속지 않아
속임수에 관한 불변의 진리를 요약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상대가 똑똑하다면 속임수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제대로 응징을 당하면 쓴 쪽이 망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소설이 있다. 일본에서 나온 바둑소설 중에 [방랑기객]이란 것이 있다. 내기 바둑꾼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이런 대목이 있다.

주인공 하다 겐스께와 아마추어 강자인 나구라 헤이사꾸가 큰 내기바둑 대결을 하는 장면이다. 헤이사쿠가 어마어마한 대형 속임수를 써서 겐스케의 대마를 잡자고 했다. 왼쪽 흑대마가 거의 빈사상태다. 그러나 겐스케가 흑1에 두자 헤이사쿠는 “졌습니다”하고 머리를 숙였다. 옆에 있던 물주 아까마 변호사 등 관전객들은 깜짝 놀랐다. 바둑판이 텅텅 비어있는 상황에서 돌을 던지다니. 헤이사쿠가 패배를 선언한 것은 흑1이 이 대형 속임수를 응징하는 묘수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이 수를 알고 있는 이상 더 두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본 것이다. 헤이사쿠는 “엉뚱한 짓을 해서 미안했소”라고 사과를 했다. 속임수를 잘 아는 고수에게 이런 수를 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단 뜻일 것이다.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속임수의 역학관계와 위험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상대가 스마트하다면 속임수는 불발이며 오히려 돌을 던져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활동이나 사업을 돌아보라. 혹시 고객을 속이거나 현혹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고객을 속이는 비즈니스는 스마트한 고객이 나타나는 순간 도산의 위기에 처한다. 스마트폰을 통하여 점점 더 스마트해지는 세상이다. 속임수로 돈을 벌겠다는 관념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당장 마인드를 바꾸도록 하자.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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