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전설·신화의 향 깊은 시후롱징차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전설·신화의 향 깊은 시후롱징차

서호를 바라보는 한 찻집.
시후롱징차(西湖龍井茶)는 중국 10대 명차 중에서도 으뜸이다. 시후와 롱징은 모두 물과 관련된 지명이다. 2011년 6월 2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시후는 저장성 성도 항저우 시내에 있는 아름다운 인공호수다. 본래 이름이 롱홍(龍泓)이던 롱징은 시후 서쪽 웡지아산(翁家山)기슭에 있는 맑은 샘의 이름이다. 시후롱징차는 시후를 겹겹이 둘러싼 산과 호수 주변이 차의 주생산지여서 시후롱징차(이하롱징차)로 부른다. 롱징차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롱징차가 중국10대 명차 선정에 빠짐없이 선두를 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명품을 명품답게 받쳐주는 전설과 설화가 풍성하게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 텔링’의 강력한 힘은 차의 세계에서도 적용된다.

인구 890만명의 도시에 전통찻집이 7000곳이 넘는 항저우는 ‘강남스타일’의 원조 강남이다. 실제로 중국의 강남지역이며 13세기 항저우에 온 마르코 폴로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도시’라고 감탄했다. 오늘도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항저우는 미인 생산기지로 불릴 만큼 미녀천국이다. 중국 4대 미녀 중 최고로 뽑히는 시스(西施)가 항저우 출신이다. 한국 영화감독과 결혼한 중국의 여신 탕웨이도 항저우에서 태어났다. 중국 10대 미향(美鄕)에 속하는 항저우는 2007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한 2007년 중국 최고의 관광도시로 뽑혔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항저우의 번영과 명성을 가져온 일등공신은 7세기 초에 완성된 징항따윈허(京杭大運河)다.
 경국지색 시스 이름에서 딴 시후
지금도 운영 중인 경항 대운하.
베이징에서 출발해 4개성을 지나 항저우까지 이어지는 1794㎞의 징항 따윈허는 세계에서 가장 긴 운하다. 604년 수(隋)나라의 양제(煬帝)가 6년에 걸쳐 5개강의 수로를 연결한 대역사(大役事)는 고구려 침략에 대비해 강남의 풍부한 물자와 병력을 북방으로 운반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세 번 실패한 고구려 침공의 후폭풍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에게 수양제는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수나라는 중원제패 38년 만에 멸망했다. 당나라 때부터 더욱 번성한 항저우는 수로를 따라 청나라 때 세워진 가옥과 새로 형성된 신시가지가 조화롭다. 따또우루(大兜路)역사문화 거리에는 항저우의 미식가와 관광객이 어우러져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룬다. 해 질 무렵 유람선을 타고 롱징차를 마시며 항저우의 야경을 감상하는 재미는 항저우 탐방의 백미(白眉)다.

시후는 오(吳)나라를 망하게 한 경국지색 시스의 이름에서 따온 호수다. 시스의 본명은 스이광(施夷光)으로 서촌(西村)에 살아서 서쪽마을의 ‘스’씨라는 뜻으로 시스라고 부른다. 가난한 나무꾼의 딸로 태어나 월(越)나라 고우지앤(句踐)의 충신인 판리가 캐스팅해 3년에 걸쳐 가무와 교태를 가르쳐 오(吳)나라왕 푸차(夫差)에게 상납한 스파이다. 고우지앤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힘을 키우는 동안 푸차는 미인계에 빠져 국력 소모와 정사 태만으로 나라를 잃고 결국 자결하고 만다. 시스의 죽음도 여러 설이 있을 뿐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중국 정부는 시스의 스토리를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시스에 대한 흠모와 연민은 역대 중국 최고 문인들의 단골소재로 등장한다. 당(唐)나라 시인 바이쥐이(白居易)와 중국문학의 최고로 인정받는 북송의 대문장가 수동포(蘇東坡)가 시스와 시후에 대한 예찬을 하자 중국의 수많은 도시에 ‘시후’라는 이름의 호수가 생겨났다.

인상시후.
시후의 또 다른 전설은 천년 묵은 뱀과 가난한 서생과의 사랑을 다룬 백사전이다. 여러 차례 영화화 됐으며 ‘백사’역할은 당대 중국 최고의 여배우가 맡는 것이 관례다. 2007년 3월 30일부터 중국 영화감독 장이모(張藝謀)와 2명의 연출자가 백사전을 소재로 인상시후(印象西湖)라는 대형 수상 가무극을 매일 밤 시후에서 공연해 보는 이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둘레가 16Km인 서호로 흘러들어오는 물줄기 중 하나가 롱징이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감미롭기로 유명한 롱징의 탄생에도 설화가 있다. 곤륜산(崑崙山)에 사는 신화 속의 서왕모가 키운 불로장생 복숭아를 신선들에게 대접하는 성대한 하늘나라 잔치에서 땅의 신이 실수로 마시던 찻잔을 떨어뜨렸다. 찻잔을 찾으러 땅의 신이 인간세계로 내려왔더니 대나무 숲에 홀로 사는 노파가 절구로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찻잔임을 확인했지만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땅속 깊이 들어가 버려 그냥 빈손으로 돌아갔다. 찻잔이 땅에 파묻힌 자리에 먼 훗날 샘물이 나왔다는 전설이다.
 청명 전에 따는 명전이 최고
롱징차.
롱징 옆에 롱징사란 절이 생기고 스님이 차를 재배하자 그 맛과 향이 소문이 나며 차를 주업으로 만드는 롱징촌이 1500년 전에 생겼다. 롱징차는 이른 봄 청명 전에 따는 명전(明前)을 최고로 분류한다. 최고급 녹차, 롱징차 100g을 만들려면 1만8000개의 어린 눈아(嫩芽)와 눈엽(嫩葉)이 필요하다. 송(宋)나라 시대부터 시작한 재배기술과 제다기술은 원(元)나라가 들어서며 널리 알려졌다. 청(淸)나라 건륭(乾隆)황제가 여섯 차례나 강남순행을 하며 롱징을 방문하여 음다와 찻잎채취까지 하게 되자 롱징차는 황금기를 맞이해 중국 최고의 명차로 등극했다. 황태후의 병을 낫게 했다는 18그루의 차나무는 시빠커위차위앤으로 보호받으며 매년 황제에게만 진상했다. 지금도 보호받는 이 나무들은 현대에 와서는 장쩌민, 시진핑과 같은 국가 영도자가 즐겨 방문하는 장소다. 2003년 10월 15일 발사된 중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에서 롱징차 종자로 우주환경에서의 유전자변이 실험이 있었다. 기대치를 웃도는 좋은 롱징차가 나왔는지는 미지수지만 롱징차의 명성은 다시 한 번 각인됐다. 명품과 스토리는 함께 간다.
보호받고 있는 18그루의 롱징차나무.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삼성전자 HBM 승인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 중”

2‘꽁꽁 얼어붙은’ 청년 일자리...10·20대 신규 채용, ‘역대 최저’

3'로또' 한 주에 63명 벼락 맞았다?...'네, 가능합니다', 추첨 생방송으로 불신 정면돌파

4LG·SK·GC…국내 바이오 산업 네트워크 이곳으로 통한다

5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6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7“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8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9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실시간 뉴스

1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삼성전자 HBM 승인 위해 최대한 빨리 작업 중”

2‘꽁꽁 얼어붙은’ 청년 일자리...10·20대 신규 채용, ‘역대 최저’

3'로또' 한 주에 63명 벼락 맞았다?...'네, 가능합니다', 추첨 생방송으로 불신 정면돌파

4LG·SK·GC…국내 바이오 산업 네트워크 이곳으로 통한다

5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