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위스키의 르네상스

내가 왜 이 사람들 틈에 끼어들었을까 후회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빠져나갈 수도 없다. 난 체크인할 때 받은 배지를 이용해 이 복잡한 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배지에는 위스키페스트 뉴욕(WhiskyFest New York)-VIP 입장권이라고 써 있었다. 어깨로 사람들 틈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죽 조끼, 카우보이 모자, 시가 냄새를 헤치고 한 직원 앞까지 갔다. “VIP 줄이 따로 있나요?” 내가 배지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게 VIP 줄입니다.” 그가 말했다. 최근 미국의 위스키 르네상스에 관한 모든 것이 그 문 뒤에 있기 때문에 몇 분은 더 참고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다수 사람이 위스키 하면 떠올리는 스카치는 주로 보리로 만든다. 미국 위스키는 보통 버번이나 테네시 위스키를 말하는데 그 대표적인 업체가 잭 대니얼 디스틸러리다. 버번과 테네시 위스키는 옥수수로 만들며 스카치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난다. 톡 쏘는 맛이 더 강한 호밀 위스키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지만 버번과는 비교가 안 된다. 헤븐 힐 디스틸러리의 래리 카스는 음료 전문 잡지 ‘임바이브(Imbibe)’에 “호밀 위스키의 1년 판매량보다 버번 위스키의 하루 판매량이 더 많다”고 말했다.
위스키페스트 뉴욕은 올해 위스키 전문 잡지 ‘위스키 애드버킷’이 개최하는 유사한 3개 행사 중 하나다. 다른 2개 행사는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 내년엔 처음으로 워싱턴 DC에서 4번째 행사를 개최한다. 위스키페스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위스키 행사라고 일컬어지지만 유일한 행사는 아니다. 구글에서 미국의 어느 지역이든 대도시 이름과 ‘위스키’ ‘페스티벌’이라는 단어를 함께 검색해 보면 위스키 행사가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5년 동안 새로운 위스키 행사가 많이 생겼다”고 위스키 애드버킷의 편집장 루 브라이슨이 말했다. “요즘 위스키 시장의 상황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 위스키 시장은 어떨까? 미국 증류주협회에 따르면 2003년 버번과 테네시 위스키 업계의 연간 수입은 13억 달러를 조금 웃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그 액수는 2배 이상 늘어 27억 달러에 이르렀다. 2009~2014년 사이 연간 수입이 46.7% 늘었다. 1990년대 말 진·보드카 등 무색 증류주에 눌려 위스키 산업이 바닥을 친 뒤였기 때문에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위스키 산업의 상승세는 단순히 시장 조정(market correction)의 결과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유기농 식품과 지방에서 생산된 제품을 선호한다”고 브라이슨 편집장이 설명했다. “또 가업을 통해 수 세대 동안 같은 방식으로 제조된 제품이 각광 받는다. 위스키는 그 모든 요소를 갖췄다.”
리드 마이텐뷸러는 저서 ‘버번 제국: 미국 위스키의 과거와 미래(Bourbon Empire: The Past and Future of American Whiskey)’에서 위스키 인기 상승의 요인으로 증류주 산업의 주기적 변화와 과거에 대한 향수를 꼽았다. 버번 잔만큼 삶이 단순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다. 사실 위스키만큼 미국인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드물다. “위스키는 다른 증류주에 비해 미국 혁명과 관련된 상징적 의미가 더 크다”고 마이텐뷸러는 말했다. “이런 점이 위스키에 낭만적인 매력을 더해줘 이야깃거리가 된다.”
짐 빔을 생산하는 빔 선토리는 미국 위스키 업계에서 가장 신화적인 업체로 꼽을 수 있다. 위스키페스트에서 빔의 부스는 연회장 입구 바로 앞의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았다. 축제 참가자들은 값비싼 하비스트 컬렉션부터 짐 빔 데블스 컷까지 빔의 신제품들을 시음했다. 짐 빔 데블스 컷은 위스키를 증류시킨 오크통에서 추출한 버번으로 만들었다.
빔 부스 옆 의자에 앉은 프레드 노는 짐 빔의 증손자로 현재 이 회사의 증류 책임자다. 대머리에 몸집이 큰 그는 염소 수염과 켄터키주 특유의 느릿한 말투가 인상적이다. 노는 짐 빔 브랜드의 소박한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다. 위스키페스트에서 그의 존재는 소비자에게 술병에 적힌 회사 전통이 단순히 마케팅 수법만은 아니라는 믿음을 준다. “요즘 소비자는 이야기를 원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은 자신이 마시는 술이 어떤 역사와 전통을 지녔는지 알고 싶어 한다.”
“버번의 별이 뜨고 있다”

하지만 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버번 위스키 마케팅은 국내 마케팅과는 다르다. “우리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것이 다른 곳에서도 꼭 그러라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노는 말했다. “곳곳마다 인기를 끄는 맛이 달랐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됐고 거기에 맞춰 사업 전략을 바꿨다.”
지금까지는 벨기에와 브라질, 호주 등지가 미국 버번 위스키 수출의 주요 타깃이었다. 선토리는 국산 위스키의 인기가 세계 시장에서 급상승 중인 일본에서 미국 위스키를 확산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짐 빔은 지난해 여배우 밀라 쿠니스를 미국의 사업 부문 대변인으로 고용했다. 섹스어필 작전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세련된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멋지게 차려 입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짐 빔 화이트 레이블 광고에 등장했다.
스카치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다. 하지만 마이텐뷸러의 말마따나 “버번의 별이 뜨고 있다.” 잭 대니얼(숯에 여과시켜 깊은 맛을 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버번이 아니라 테네시 위스키다)은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조니 워커의 위상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짐 빔 역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모든 버번 위스키 회사들이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수출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한다”고 브라이슨 편집장이 말했다. “향후 10~20년 동안 성장 전망을 아주 좋게 보는 이유다.”
소비자 교육의 필요성이 노를 시골뜨기 버번 증류 전문가에서 유명인사 대변인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1년에 9개월은 출장을 간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증류주의 성장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위스키페스트 행사다. 그는 행사장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잘 안다. 참가자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세심하게 시음 계획을 짜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거나 술 한잔하자는 팬들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노에게 위스키 페스티벌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하지만 그런 팬들은 늘 즐거움을 준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서서 행사장을 바라보면 정말 가관”이라고 말했다.
노가 주최하는 고가의 시음 세미나에 잠깐 들른 뒤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와서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모두가 술에 취해 있었다. 각 부스에 술을 맛본 뒤 뱉어내는 양동이가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크래프트 증류주 업체의 창업자들이 자사 제품의 차별성을 열심히 설명했다. 미국에선 15년 전만 해도 수십 개에 불과하던 업체 수가 지금은 500개를 웃돈다. 사람들은 특정 브랜드의 ‘토탄향(peaty-ness)’을 논하고 패피 밴 윙클(병당 가격이 수천 달러에 이르는 초특급 버번 위스키)을 시음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행사장 안을 둘러보다가 손에 시음 잔을 들고 입을 벌린 채 통로 한가운데 서 있는 남자와 마주쳤다. 단추가 반쯤 풀어진 그의 셔츠에 벌건 소스가 묻은 스테이크 한 조각이 붙어 있었다. 옷매무새에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만취한 이 남자는 최근 미국에서 버번 위스키의 인기가 상승한 이유를 말해준다. 그는 위스키에서 바닐라향을 감지하는 섬세한 애주가가 아니다. 어떤 위스키든 닥치는 대로 마시고 예의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부류다. 스카치 위스키는 마실 때 격식이 있지만 달콤한 맛 덕분에 마시기가 더 쉬운 버번 위스키는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그래서인지 유럽 위스키보다 더 폭넓게 인기를 끈다.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의미다.
노는 어느 누구보다 이런 경향을 잘 안다. 버번 위스키는 각자의 취향대로 즐길 수 있는 술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고가의 칵테일로 마시든 허름한 술집 한 귀퉁이에서 스트레이트로 들이켜든 상관없다. “이런 다양성이 버번 위스키의 특징”이라고 그는 말했다. “칵테일 업계가 버번 위스키의 인기에 한몫한다. 버번을 넣은 위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현재 미국 위스키 업체들 앞에 놓인 가장 큰 숙제는 세계인이 미국인만큼 위스키를 즐길 수 있도록 그 술의 가치와 매력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 RYAN BORT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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