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0시대 (11) 식품업계] 경영 일선에 나선 식품업계 2·3세들
[재계 3.0시대 (11) 식품업계] 경영 일선에 나선 식품업계 2·3세들
어느 업계보다 시장에 민감한 곳이 식품산업이다. 맛과 가격, 영양 등 상품으로서 경쟁력뿐 아니라 위생과 안전의 역풍에 늘 노심초사해야 한다. 최근 경영 일선에 나선 오너 2·3세들은 사업 다각화와 시장 다변화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M&A와 글로벌 시장 진출이 활발한 이유다. 국내 시장에선 크게 늘어난 1인 가구를 겨냥한 상품으로 경쟁하고 있다. 그야말로 쿡방(cook+방송) 전성시대다. 지상파3사를 비롯해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 TV만 틀면 ‘음식’이라는 코드가 황금시간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단순히 맛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나와 삶거나 볶거나 지지며 진짜로 요리를 한다. 특히 방송에 소개되는 레시피를 집에서 적용하는 열풍이 일면서 식품업계엔 호재가 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는 간편 요리 시장을 키우고 있다. 최근엔 파우치 양념장(원터치 양념장)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전문 지식이 없어도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다양한 원터치 양념장이 나오면서 ‘집밥’이 유행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투상품(따라하기 상품)도 파이를 키운다. 올해 초 시작된 허니버터칩 열풍은 수많은 아류작에도 불구하고 원조와 미투상품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낳으면서 제과업계의 매출을 껑충 올려놓았다. 최근엔 짜장라면과 짬뽕라면에서 미투상품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부침이 강한 곳이다. 식품 안전이나 위생 문제로 시장이 싸늘하게 냉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10월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 연구소가 햄과 소시지 등 가공육 제품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 만에 국내 햄·소시지 매출이 20%까지 급락했다. 소비자들이 육가공품을 외면하자 CJ와 롯데, 대상, 목우촌, 사조, 진주햄 등 식품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육가공제품 매출은 한해 2조원 규모다. 상반기엔 ‘가짜 백수오 사태’로 천호식품, 국순당 등의 매출이 크게 떨어졌고, 건강식품 시장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 지난해엔 동서식품과 크라운제과에서 생산한 일부 스낵에서 식중독균이 검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식품업계 오너들은 사업 다각화와 시장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M&A를 통해 다품종을 출시하거나 이종 사업에 진출하고, K푸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핵심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오르며 경영일선에 나선 식품업계 2·3세들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외식사업은 식품업체의 오랜 ‘사이드 잡’이다.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있어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2009년 커피 사업 브랜드 ‘폴바셋’을 론칭하고 커피시장에 진출한 매일유업은 2013년 이를 독립법인으로 만들어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폴바셋의 법인 엠즈씨드의 지난해 매출은 285억원으로 전년보다 141.8%나 성장했다. 올해 매장 수를 7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김정완 회장은 지난 9월 ‘신 가치관 선포식’을 열고 매일유업을 유제품회사에 머물지 않고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조용한 행보를 보이던 김 회장이 공격 경영에 나선 것은 국내외 유가공 업계의 불황 탓이다. 매일유업의 매출액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줄었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 탓이다. 달, 부첼라, 크리스탈 제이드 등 그동안 펼쳐온 외식사업의 성과가 변변치 못하자 커피시장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남양유업도 아이스크림 카페 백미당으로 틈새사업을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 입점한 매장의 경우 하루 1000~1200개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가업을 물려받은 장남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최근 3세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장남 진석씨는 남양유업 경영기획 본부 상무로, 차남 범석씨는 생산전략부문장으로 실무를 익히고 있다.
삼양식품도 라면 외식브랜드 ‘라멘에스(LAMEN;S)’의 가맹사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다양한 신사업에 진출해왔지만 외식 프랜차이즈는 처음이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 직영하고 있는 호면당, 간접 투자한 크라제버거의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사업 부진으로 좀처럼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2세 경영자 전인장 회장이 비교적 리스크가 적은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부활’을 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천하장사’ 소시지로 유명한 육가공업체 진주햄도 외식사업 진출을 위해 내년 1월 테스트 매장 성격의 안테나숍을 열 계획이다. 지난 2월 인수한 수제맥주 제조업체 카브루의 수제맥주와 진주햄의 프리미엄 육가공제품을 한데 즐길 수 있는 다이닝 펍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박재복 회장이 2010년 10월 작고하면서 회사를 물려받은 형제 박정진 사장과 박경진 부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외식사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와 함께 올드한 기업 이미지를 벗겠다는 목표다.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위기의식은 이종산업과 결합으로 이어진다. 동원그룹은 지난해 이후 최근까지 한진피앤씨 등 포장재 기업, 온라인 축산물 유통전문기업 금천 등 6개 회사를 사들였다. 인수 금액만 5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포장재 관련 회사가 5곳으로, M&A를 통해 글로벌 종합 포장재회사로 본격 나선 셈이다. 주력으로 삼아온 수산식품 사업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판단에서다. 잇단 M&A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차남 김남정 부회장이 있다. 2013년 부회장에 오른 그는 확실하게 2세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동원그룹에서 금융부문이 떨어져 나오며 그룹과 이미 결별한 상황이다.
한국야쿠루트 창업주 윤덕병 회장의 외아들인 윤호중 전무도 그룹의 외연 확대를 이끌고 있다. 윤 전무는 2000년대 후반 한국야쿠르트가 추진했던 교육, 건강기능 식품, 의료기기 등 사업 다각화에 핵심 역할을 했다. 특히 2009년 능률교육 인수에 이어 한솔교육의 주니어랩스쿨, 베네세코리아를 차례로 인수하며 교육사업 시너지 효과를 꾀했다. 교육사업은 경영사정이 호전됐지만 커피전문점 ‘코코브루니, 의료기기 ‘큐렉소’ 사업은 수년째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엔 모바일게임 및 콘텐츠 개발업체인 투빗에 40억원을 투자해 지분 30%를 인수하기도 했다.
‘미원’ ‘청정원’ ‘종가집’ ‘순창’ 브랜드로 유명한 대상은 올해 백광산업으로부터 라이신(사료용 필수아미노산) 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17년 만에 라이신 사업 부활을 선언했다. 임창욱 명예회장은 두 딸을 경영 일선에 전진 배치했다. 장녀 임세령 상무는 대상 사업전략담당중역을, 차녀 임상민 상무는 대상 기획관리본부를 책임지고 있다. 특히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지분은 동생 임상민 상무(36.71%)가 임세령 상무(20.41%)보다 많다. 임세령 상무도 지난해 초록마을 개인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오는 12월 금융전문가와 결혼하는 임상민 상무는 미국 뉴욕 지사에서 근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지난 3분기 음식료업종은 지속적인 약세를 뚫고 양호한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쿡방 열풍과 더불어 K푸드의 해외시장 진출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매출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장성이 높은 할랄식품, 최근 쌀 김치 삼계탕 수입이 허용된 중국시장 등이 향후 식품산업의 성장세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다. CJ제일제당의 한식 브랜드인 ‘비비고’는 중동 시장에 진출했다. 식품계열사인 CJ푸드빌은 최근 ‘2020년 매출 8조원, 해외 매출 비중 44% 이상의 글로벌 외식 탑 10’이라는 비전을 정하고 해외시장 개척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CJ그룹은 4세인 장남 선호씨와 장녀 경후씨가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특히 2013년 CJ제일제당의 한 영업지점에 사원으로 입사한 선호씨는 지난해 말 출범한 CJ올리브네트웍스의 주요주주(지분 11.3%)로 올랐다. 장녀인 경후씨는 CJ에듀케이션즈에서 CJ오쇼핑 상품개발본부로 자리를 옮겨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두 남매가 20대 인만큼 본격적인 경영 참여는 아직 이르지만 이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경영 승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근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세계 1만2000개 매장을 보유하겠다는 목표를 선포한 SPC그룹도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중국·미국·베트남·싱가포르·프랑스에서 파리바게뜨 19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20여 개국으로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매장을 열 계획이다. SPC의 모태인 삼립식품은 지난 3월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파리크라상 전무와 차남인 허희수 비알코리아 전무를 비상근 등기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이번 등기이사 선임으로 두 형제는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됐다. <116쪽 기사 참조>
새로운 성장동력을 해외 시장 개척으로 삼은 오뚜기도 함영준 회장이 스포츠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한 함 회장은 “해외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함 회장은 부친인 창업자 함태호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000년 오뚜기 사장에 올랐고 2010년부터는 회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라면시장에서 삼양을 제쳤고, 가정 간편식 시장에서도 주력제품의 실적이 크게 성장했다.
식품산업은 업력이 긴 까닭에 오너가 2·3세 경영인이 혼재되어 있다. 역사가 긴 기업에선 이미 3세 경영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인스턴트커피와 시리얼 시장 점유율 1위인 동서식품은 3세인 김종희 동서 사장의 지분을 늘리면서 3세 승계를 가속화하고 있다. 동서의 지분은 김재명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상헌 동서 회장이 20.61%, 차남인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이 20.08%, 김상헌 회장의 아들인 김종희 동서 사장이 10.28%를 보유하고 있다. 김 사장은 경영지원 상무로 일하다 퇴사한 지 1년 6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복귀하면서 지분율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크라운해태제과 역시 3세 경영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창업자 고(故) 윤태현 회장의 손자이자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장남인 윤석빈 크라운제과 상무를 지난 2010년 대표이사로 승진 발령했다. 스낵 허니버터칩의 단맛 감자칩 아이디어부터 브랜드 네이밍까지 개발을 주도한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는 윤 회장의 사위다. 그는 만년 꼴찌 해태제과를 일약 최강자로 변모시켰다.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도 3세 경영을 시작했다. 정성수 회장의 장남 정연호씨가 지난해 4월 오쎄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것. 오쎄는 화장품제조, 온라인쇼핑몰, 광고대행을 하는 업체로, 최근 매출이 부진하다. 그의 위기극복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3남2녀를 둔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형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달리 일찌감치 후계 구도 틀을 마련했다. 현재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의 지분을 36.88% 보유해 최대주주다. 쌍둥이 동생인 신동윤 부회장의 지분은 19.69%로 절반 수준이다.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은 지분이 없다. 계열사는 농심을 신동원 부회장이, 율촌화학은 신동윤 부회장, 메가마트는 신동익 부회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사조그룹은 주진우 회장의 장남인 주지홍 사조대림 총괄본부장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그는 지난 3월 사조대림 등 4개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선임됐다. 2006년 사조 인터내셔날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시작해 사조해표 기획실장, 사조해표 경영지원본부장을 역임한 그가 상장계열사 등기이사 직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경영 승계 밑작업이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재계에서는 한국 식품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신제품 출시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니와 왕교자, 짜장, 과일믹스에 이어 최근 짬뽕까지 식품업계의 인기 제품 베끼기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aT가 함께 발표한 ‘식품산업 연구개발 현황 조사’에 따르면 식품기업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0.69%(2012년)로, 전체 제조업(3.09%)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식품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최근 3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미투, 짝퉁 제품이 쏟아지는 것은 기업들이 위험 부담이 큰 신제품 개발보다는 성공 사례를 보고 따라 하는 안전성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나 IT 등에 비해 식품산업은 제품 개발에 엄청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제품을 대부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다수 업체들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새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시장 파이를 키우고 해외 수출 등에 힘써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안정적으로 쉽게 돈 벌려는 버릇에 젖어 있다.” 정연승 단국대학교 교수(경영학)의 말이 식품업계에 주는 메시지가 크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대부분의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고령임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뛰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식품업계 창업자 중 최고령은 1917년도에 태어난 정재원 정식품 명예 회장이다. 우리 나이로 99세. 이를 기념해 올 1월 ‘백수연’을 치렀다. 그는 현재 ‘콩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 경북 영주 ‘콩세계과학관’에 2억원을 후원하고, 올 4월에는 직접 개관식에 참석했다. 반신욕과 산책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한다.
1922년생인 박승복(93) 샘표식품 명예회장은 대외활동이 활발하다. 2004년 9월부터 ‘바른 사회, 바른 기업을 위한 경영인 포럼’을 이끌고 있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경영자총협회 부회장으로 재임 중이고, 국무총리실 출신 친목모임인 ‘국총회’ 회장을 1993년 출범 당시부터 맡고 있다. 요즘에도 서울 충무로 사옥에 종종 들러 회의를 주재하고 제품 개발에 대한 의견을 낸다.
1927년생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올해로 미수(88세)를 맞았다. 윤 회장은 매일 오전 10시 서울 잠원동 본사로 출근한 뒤 오후 4시 퇴근한다. 소식과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한 덕분에 그 흔한 성인병 하나 없다고 한다. 매월 한두 차례 본사 강당이나 계단 등을 순회하며 안전 여부까지 꼼꼼히 점검하는 남다른 열정도 과시하고 있다.
1930년생인 함태호(85) 오뚜기 명예회장도 서울 대치동 본사뿐 아니라 안양, 음성 등 생산공장도 자주 방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갑내기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 역시 매일 회사로 출근한다. 구 회장은 일찌감치 막내딸을 후계자로 선택했지만 회사 안팎에서 잡음이 나오자 최근 본부장직에서 경질시켰다.
1932년생 신춘호(83) 농심 회장은 요즘도 주 3회 이상 서울 신대방동 본사로 나온다. 신 회장은 주요 임원 인사나 신사업, 신제품 개발, 해외사업 등 주요 현안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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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증가는 간편 요리 시장을 키우고 있다. 최근엔 파우치 양념장(원터치 양념장)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전문 지식이 없어도 쉽게 요리할 수 있는 다양한 원터치 양념장이 나오면서 ‘집밥’이 유행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투상품(따라하기 상품)도 파이를 키운다. 올해 초 시작된 허니버터칩 열풍은 수많은 아류작에도 불구하고 원조와 미투상품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낳으면서 제과업계의 매출을 껑충 올려놓았다. 최근엔 짜장라면과 짬뽕라면에서 미투상품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식품업계는 부침이 강한 곳이다. 식품 안전이나 위생 문제로 시장이 싸늘하게 냉각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 10월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 연구소가 햄과 소시지 등 가공육 제품을 ‘1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 만에 국내 햄·소시지 매출이 20%까지 급락했다. 소비자들이 육가공품을 외면하자 CJ와 롯데, 대상, 목우촌, 사조, 진주햄 등 식품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육가공제품 매출은 한해 2조원 규모다. 상반기엔 ‘가짜 백수오 사태’로 천호식품, 국순당 등의 매출이 크게 떨어졌고, 건강식품 시장 전체가 침체에 빠졌다. 지난해엔 동서식품과 크라운제과에서 생산한 일부 스낵에서 식중독균이 검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식품업계 오너들은 사업 다각화와 시장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M&A를 통해 다품종을 출시하거나 이종 사업에 진출하고, K푸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핵심 계열사의 등기이사에 오르며 경영일선에 나선 식품업계 2·3세들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외식사업은 식품업체의 오랜 ‘사이드 잡’이다.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있어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2009년 커피 사업 브랜드 ‘폴바셋’을 론칭하고 커피시장에 진출한 매일유업은 2013년 이를 독립법인으로 만들어 브랜드를 키우고 있다. 폴바셋의 법인 엠즈씨드의 지난해 매출은 285억원으로 전년보다 141.8%나 성장했다. 올해 매장 수를 70개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김정완 회장은 지난 9월 ‘신 가치관 선포식’을 열고 매일유업을 유제품회사에 머물지 않고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조용한 행보를 보이던 김 회장이 공격 경영에 나선 것은 국내외 유가공 업계의 불황 탓이다. 매일유업의 매출액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줄었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 탓이다. 달, 부첼라, 크리스탈 제이드 등 그동안 펼쳐온 외식사업의 성과가 변변치 못하자 커피시장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남양유업도 아이스크림 카페 백미당으로 틈새사업을 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 입점한 매장의 경우 하루 1000~1200개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가업을 물려받은 장남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최근 3세 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장남 진석씨는 남양유업 경영기획 본부 상무로, 차남 범석씨는 생산전략부문장으로 실무를 익히고 있다.
삼양식품도 라면 외식브랜드 ‘라멘에스(LAMEN;S)’의 가맹사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다양한 신사업에 진출해왔지만 외식 프랜차이즈는 처음이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 직영하고 있는 호면당, 간접 투자한 크라제버거의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사업 부진으로 좀처럼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2세 경영자 전인장 회장이 비교적 리스크가 적은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부활’을 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사업·M&A 나선 중견기업 2·3세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위기의식은 이종산업과 결합으로 이어진다. 동원그룹은 지난해 이후 최근까지 한진피앤씨 등 포장재 기업, 온라인 축산물 유통전문기업 금천 등 6개 회사를 사들였다. 인수 금액만 5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포장재 관련 회사가 5곳으로, M&A를 통해 글로벌 종합 포장재회사로 본격 나선 셈이다. 주력으로 삼아온 수산식품 사업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판단에서다. 잇단 M&A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차남 김남정 부회장이 있다. 2013년 부회장에 오른 그는 확실하게 2세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동원그룹에서 금융부문이 떨어져 나오며 그룹과 이미 결별한 상황이다.
한국야쿠루트 창업주 윤덕병 회장의 외아들인 윤호중 전무도 그룹의 외연 확대를 이끌고 있다. 윤 전무는 2000년대 후반 한국야쿠르트가 추진했던 교육, 건강기능 식품, 의료기기 등 사업 다각화에 핵심 역할을 했다. 특히 2009년 능률교육 인수에 이어 한솔교육의 주니어랩스쿨, 베네세코리아를 차례로 인수하며 교육사업 시너지 효과를 꾀했다. 교육사업은 경영사정이 호전됐지만 커피전문점 ‘코코브루니, 의료기기 ‘큐렉소’ 사업은 수년째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엔 모바일게임 및 콘텐츠 개발업체인 투빗에 40억원을 투자해 지분 30%를 인수하기도 했다.
‘미원’ ‘청정원’ ‘종가집’ ‘순창’ 브랜드로 유명한 대상은 올해 백광산업으로부터 라이신(사료용 필수아미노산) 사업부문을 인수하면서 17년 만에 라이신 사업 부활을 선언했다. 임창욱 명예회장은 두 딸을 경영 일선에 전진 배치했다. 장녀 임세령 상무는 대상 사업전략담당중역을, 차녀 임상민 상무는 대상 기획관리본부를 책임지고 있다. 특히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지분은 동생 임상민 상무(36.71%)가 임세령 상무(20.41%)보다 많다. 임세령 상무도 지난해 초록마을 개인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오는 12월 금융전문가와 결혼하는 임상민 상무는 미국 뉴욕 지사에서 근무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지난 3분기 음식료업종은 지속적인 약세를 뚫고 양호한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쿡방 열풍과 더불어 K푸드의 해외시장 진출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매출규모는 크지 않지만 성장성이 높은 할랄식품, 최근 쌀 김치 삼계탕 수입이 허용된 중국시장 등이 향후 식품산업의 성장세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다.
K푸드 수출로 내수 부진 뚫는다
이재현 회장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는 CJ그룹은 4세인 장남 선호씨와 장녀 경후씨가 실무 경험을 쌓고 있다. 특히 2013년 CJ제일제당의 한 영업지점에 사원으로 입사한 선호씨는 지난해 말 출범한 CJ올리브네트웍스의 주요주주(지분 11.3%)로 올랐다. 장녀인 경후씨는 CJ에듀케이션즈에서 CJ오쇼핑 상품개발본부로 자리를 옮겨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 두 남매가 20대 인만큼 본격적인 경영 참여는 아직 이르지만 이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경영 승계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근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세계 1만2000개 매장을 보유하겠다는 목표를 선포한 SPC그룹도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중국·미국·베트남·싱가포르·프랑스에서 파리바게뜨 19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20여 개국으로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최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2000개 이상의 매장을 열 계획이다. SPC의 모태인 삼립식품은 지난 3월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파리크라상 전무와 차남인 허희수 비알코리아 전무를 비상근 등기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이번 등기이사 선임으로 두 형제는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됐다. <116쪽 기사 참조>
새로운 성장동력을 해외 시장 개척으로 삼은 오뚜기도 함영준 회장이 스포츠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한 함 회장은 “해외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함 회장은 부친인 창업자 함태호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000년 오뚜기 사장에 올랐고 2010년부터는 회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라면시장에서 삼양을 제쳤고, 가정 간편식 시장에서도 주력제품의 실적이 크게 성장했다.
식품산업은 업력이 긴 까닭에 오너가 2·3세 경영인이 혼재되어 있다. 역사가 긴 기업에선 이미 3세 경영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 인스턴트커피와 시리얼 시장 점유율 1위인 동서식품은 3세인 김종희 동서 사장의 지분을 늘리면서 3세 승계를 가속화하고 있다. 동서의 지분은 김재명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상헌 동서 회장이 20.61%, 차남인 김석수 동서식품 회장이 20.08%, 김상헌 회장의 아들인 김종희 동서 사장이 10.28%를 보유하고 있다. 김 사장은 경영지원 상무로 일하다 퇴사한 지 1년 6개월 만인 지난해 8월 복귀하면서 지분율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크라운해태제과 역시 3세 경영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창업자 고(故) 윤태현 회장의 손자이자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장남인 윤석빈 크라운제과 상무를 지난 2010년 대표이사로 승진 발령했다. 스낵 허니버터칩의 단맛 감자칩 아이디어부터 브랜드 네이밍까지 개발을 주도한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는 윤 회장의 사위다. 그는 만년 꼴찌 해태제과를 일약 최강자로 변모시켰다. 베지밀로 유명한 정식품도 3세 경영을 시작했다. 정성수 회장의 장남 정연호씨가 지난해 4월 오쎄의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것. 오쎄는 화장품제조, 온라인쇼핑몰, 광고대행을 하는 업체로, 최근 매출이 부진하다. 그의 위기극복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3남2녀를 둔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형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달리 일찌감치 후계 구도 틀을 마련했다. 현재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의 지분을 36.88% 보유해 최대주주다. 쌍둥이 동생인 신동윤 부회장의 지분은 19.69%로 절반 수준이다.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은 지분이 없다. 계열사는 농심을 신동원 부회장이, 율촌화학은 신동윤 부회장, 메가마트는 신동익 부회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R&D 투자로 독창적인 상품 개발
재계에서는 한국 식품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신제품 출시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니와 왕교자, 짜장, 과일믹스에 이어 최근 짬뽕까지 식품업계의 인기 제품 베끼기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와 aT가 함께 발표한 ‘식품산업 연구개발 현황 조사’에 따르면 식품기업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0.69%(2012년)로, 전체 제조업(3.09%)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식품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최근 3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미투, 짝퉁 제품이 쏟아지는 것은 기업들이 위험 부담이 큰 신제품 개발보다는 성공 사례를 보고 따라 하는 안전성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나 IT 등에 비해 식품산업은 제품 개발에 엄청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제품을 대부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다수 업체들이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길을 택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새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시장 파이를 키우고 해외 수출 등에 힘써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안정적으로 쉽게 돈 벌려는 버릇에 젖어 있다.” 정연승 단국대학교 교수(경영학)의 말이 식품업계에 주는 메시지가 크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박스기사] 노익장 발휘하는 식품업계 창업자들
1922년생인 박승복(93) 샘표식품 명예회장은 대외활동이 활발하다. 2004년 9월부터 ‘바른 사회, 바른 기업을 위한 경영인 포럼’을 이끌고 있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경영자총협회 부회장으로 재임 중이고, 국무총리실 출신 친목모임인 ‘국총회’ 회장을 1993년 출범 당시부터 맡고 있다. 요즘에도 서울 충무로 사옥에 종종 들러 회의를 주재하고 제품 개발에 대한 의견을 낸다.
1927년생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올해로 미수(88세)를 맞았다. 윤 회장은 매일 오전 10시 서울 잠원동 본사로 출근한 뒤 오후 4시 퇴근한다. 소식과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한 덕분에 그 흔한 성인병 하나 없다고 한다. 매월 한두 차례 본사 강당이나 계단 등을 순회하며 안전 여부까지 꼼꼼히 점검하는 남다른 열정도 과시하고 있다.
1930년생인 함태호(85) 오뚜기 명예회장도 서울 대치동 본사뿐 아니라 안양, 음성 등 생산공장도 자주 방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갑내기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 역시 매일 회사로 출근한다. 구 회장은 일찌감치 막내딸을 후계자로 선택했지만 회사 안팎에서 잡음이 나오자 최근 본부장직에서 경질시켰다.
1932년생 신춘호(83) 농심 회장은 요즘도 주 3회 이상 서울 신대방동 본사로 나온다. 신 회장은 주요 임원 인사나 신사업, 신제품 개발, 해외사업 등 주요 현안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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