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여왕부터 할리우드 스타까지

이 위엄 있는 상점들의 문지방을 넘으려면 자신감이 필요했다. 이들 상점은 가부장적인 인물들이 운영했다. 앤더슨&셰퍼드의 노먼 홀시, 헨리 풀의 행거스 컨디(지금은 아들 사이먼이 운영한다), 그리고 가장 콧대 높고 가격이 비싸다고 알려진 헌츠맨의 콜린 해믹이 대표적이다.
해믹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14세 때인 1942년 견습생으로 헌츠맨에 입사한 후 우아함의 추구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웅변술을 배워 자신이 재단한 양복을 입는 귀족들만큼 말을 잘했으며 하루에 4번씩 양복을 갈아입었다. 1971년에는 자신의 고객이었던 배우 렉스 해리슨을 제치고 테일러&커터(맞춤 양복 전문 잡지)가 선정하는 ‘베스트 드레서’ 1위에 올랐다.
헌츠맨이 쟁쟁한 맞춤 양복점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디자인으로 알려진 것은 해믹 덕분이다. 스타일이나 재단이 뛰어난 양복점은 많았지만 헌츠맨은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잔니 아넬리(전 피아트 그룹 회장), 뷰포트 공작, 위베르 드 지방시(지방시의 창업자), 빌 블래스(빌 블래스의 창업자) 등 내로라하는 멋쟁이들이 이 양복점의 단골이 된 이유다.
헌츠맨의 클래식 재킷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징이 두드러진다. 싱글 버튼에 좁은 진동, 잘록한 허리, 똑 떨어지는 어깨선 등. 헌츠맨 재킷은 또 일반 제품보다 길이가 약간 더 길며 아래쪽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진다.
1849년 맞춤 반바지와 스포츠 의류 전문점으로 시작한 헌츠맨은 곧 유럽 왕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됐다. 영국의 웨일즈 왕자(나중에 에드워드 7세 국왕이 된다)와 그의 남동생인 에든버러공 알프레드 왕자를 시작으로 1887년엔 이들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도 이 양복점의 고객이 됐다. 여왕은 자신의 승마용 반바지와 가족을 위한 옷을 이곳에서 구입했다.
1900년대 들어서면서 에드워드 7세 국왕(1901)과 조지 5세 국왕(1910)을 비롯해 더 많은 왕족이 이 양복점의 단골이 됐다. 1919년 헌츠맨이 본드가에 있던 매장을 새빌 로우 11번지로 옮긴 후에는 20세기 왕족 중 가장 멋쟁이로 꼽히는 웨일즈 왕자(1921, 나중에 에드워드 8세 국왕이 된다)와 스페인의 알폰소 13세 국왕(1926)을 고객으로 맞았다.
그 후엔 할리우드 스타들이 헌츠맨을 찾기 시작했다. 영화배우 중 헌츠맨 최고의 단골 고객인 그레고리 펙은 이 양복점에서 약 160벌을 맞춰 입었다. 펙은 특히 헌츠맨 특유의 체크 무늬 정장을 좋아했다. 헌츠맨은 ‘밀리언 파운드 노트’(1954)부터 ‘오멘’(1976)까지 펙의 영화 의상도 다수 제작했다. 클라크 게이블은 영화 ‘모감보’에서 전문 사냥꾼 역할을 할 때 헌츠맨의 의상을 입어본 뒤 단골이 됐다.

라그란지는 헌츠맨을 사들이기 전 주문제작 업계와의 인연은 홀랜드&홀랜드의 20구경 산탄총 1자루와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1대를 주문해 구입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헌츠맨을 인수한 뒤 새로운 경영팀을 구성해 신속하게 매장을 리모델링했다.
고객에게 보이는 공간은 이전과 같은 신사 클럽의 이미지를 유지했다. 점판암 벽난로 위엔 1920년대 초 한 고객이 기증한 박제 사슴 벽걸이 한 쌍이 여전히 걸려 있다. 하지만 작업공간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대형 채광창 아래 놓인 새 재단대들은 런던 웨스트 엔드에서 최고다. 벽을 트위드 천으로 감싼 내실은 편히 쉴 수 있는 은신처처럼 꾸며졌다. 트위드 천을 씌운 당구대는 식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영화 크레딧을 세심하게 읽는 사람들은 라그란지가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콜린 퍼스 주연)의 책임 프로듀서였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라그란지는 헌츠맨을 사들였을 때 영화감독 겸 제작자인 친구 매튜 본(라그란지는 본과 함께 영화 ‘킥 애스’ 1편과 2편을 제작했다)이 자신의 단골 양복점인 헌츠맨을 모티프로 대본을 썼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헌츠맨의 기록보관소에는 오래된 원단과 고객 원장, 사진, 광고들이 보관돼 있다(새빌 로우의 대다수 양복점과 달리 헌츠맨의 기록은 대체로 잘 보존됐다). 이 회사는 또 기록보관소에 보관할 목적으로 과거에 제작했던 주요 제품들을 다시 사들였다. 가수 에릭 클랩튼을 위해 만들었던 사냥복이 대표적인 예다. 또 그레고리 펙이 좋아했던 체크 무늬 트위드 원단 등 과거에 사용했던 옷감들을 스코틀랜드 하이랜즈에서 다시 짰다.
지난해 라그란지는 새빌 로우 맞춤양복협회의 회장이 됐다. 새빌 로우 맞춤양복의 보호와 발전을 꾀하는 협회다. 당시 그는 내게 미국 워싱턴에 있는 영국 대사관에서 새빌 로우와 미국의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회의 기획을 요청했다. 요즘 새빌 로우는 박물관 같았던 첫 인상과는 사뭇 달라졌다. 라그란지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요즘 새빌 로우를 보면 매우 현대적인 분위기에 놀란다. 박물관이 화랑으로 변했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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