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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신산업⑥ 고부가 섬유] 스마트 섬유로 新舊기술 함께 엮어라

[한국의 미래 신산업⑥ 고부가 섬유] 스마트 섬유로 新舊기술 함께 엮어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신원료 아라미드 섬유’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미국 듀폰과 2009년부터 아라미드 섬유 관련 소송을 하다 지난해 3800억원을 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신원료 아라미드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듀폰으로부터 기술 독립이 가능해졌다. 아라미드는 강철보다 6배 강하고, 섭씨 500도까지 견디는 첨단 섬유로 방탄복과 헬멧·케이블 등에 쓰인다. 이번에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개발한 신원료 아라미드는 기존 제품보다 강도는 강하면서 환경 친화적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섬유의 색깔도 노란색이 아니라 흰색이어서 다양하게 염색·가공할 수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중앙기술원의 김진일 그룹장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 기술로부터 독립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5년 뒤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반 섬유시장은 중국이 점령
고부가 섬유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일본 후지경제그룹에 따르면 탄소섬유나 아라미드 섬유 같은 수퍼 섬유의 시장만 현재 7조6400억원에서 2022년까지 11조53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정보기술(IT)과 결합한 스마트 섬유 등을 합치면 시장 규모는 훨씬 더 크다. 현재 일반 섬유는 세계 생산량의 70%를 중국이 점령했다. 차별화된 고부가 섬유로 하루 빨리 방향을 틀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김익수 박사는 “수십 년 쌓은 섬유 인프라를 바탕으로 고부가 섬유에 집중하지 않으면 한국 섬유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고부가 섬유 개발 전쟁이 불을 뿜고 있다. 세계 섬유산업 성장률은 연 3% 정도에 그친다. 더구나 세계 합성섬유의 70%(3926만t)를 중국이 생산한다. 하지만 탄소섬유·아라미드 등 고부가 섬유는 연간 두 자릿수 성장을 하고 있는데다 아직 중국이 따라오기엔 기술 격차가 있다.

일본의 섬유회사 데이진은 ‘입는 화장품’이라 불리는 피부 보호용 섬유를 개발 중이다. 말산(malic acid)를 함유한 화합물(폴리에스테르 폴리머)로 만든 섬유가 피부를 낮은 산성으로 유지해 미생물의 번식을 막고, 대신 피부에 이로운 화학 혼합물을 뿜어낸다. 일본 도레이는 심박수 등 신체 정보를 모니터할 수 있는 ‘히토에’란 이름의 내의를 개발하고 정부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지의 섬유 관련 기업이 주력하는 고부가 섬유는 탄소섬유·아라미드 등이 포함된 수퍼 섬유, 혈액필터와 같은 차별화 부직포, 섬유강화복합재, IT 기술과 결합한 스마트 섬유 등 4분야로 요약된다. ‘꿈의 신소재’라 불리는 탄소섬유는 강철보다 10배 강하면서 무게는 4분의1에 불과하다. 게다가 녹이 슬지 않고 열이나 약품에도 강하다. 이 때문에 ‘가볍고 튼튼한 소재’를 찾는 비행기·선박·자동차·우주선은 물론 골프채나 낚싯대에까지 쓰이고 있다. 탄소섬유 세계 1위는 일본의 도레이다. 2014년 보잉과 10년 간 약 10조원대의 항공기 사상 최대 공급 계약을 했다. 탄소섬유를 활용한 보잉787기는 기존 비행기보다 무게가 줄어 연비가 20% 향상됐다.

탄소섬유는 자동차로 쓰임새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에 탄소섬유강화복합재(CFRP)를 사용하면 자동차 무게가 약 400kg 정도 준다. 중형차(약 1400kg)를 기준으로 무게가 30% 줄어드는 셈이다. 가벼우면서도 강한 충격 에너지를 흡수해 안정성이 높아지고 공정 비용이나 시간도 단축된다. 세계의 탄소섬유 수요는 연평균 약 15% 늘어 2020년이면 현재의 2.5배인 14만t이 될 전망이다. 세계 탄소섬유 시장의 65~70%를 점유한 일본의 도레이·데이진·미쓰비시레이온은 최근 가열과정을 생략해 탄소섬유 생산성을 10배 이상 높인 신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효성이 2011년 자체 기술로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해 현재 전북 전주에 연간 2000t 규모의 공장을 갖추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우리가 세계 1위를 하고 있는 스판덱스의 연구원이 20명인데 탄소섬유 연구원은 80명이 넘는다”며 “탄소와 스판, 아라미드와 스판 등 앞으로 섬유간 융합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기능성 섬유에 속하는 차별화 부직포의 경우 미국과 유럽, 일본에 이어 우리가 세계 4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고강도 부직포의 경우 건물벽·도로표면·자동차 내부 등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쓰인다. 건축 공사 때 땅에 내리꽂아 박으면 땅 속 물이 빨려올라와 지반의 침하를 막고 강도를 높이는 역할도 한다.

섬유 업계에선 신소재를 개발해 양산하기까지 평균 10년이 걸린다고 본다. 세계 1위 탄소섬유 기업인 도레이만 해도 1960년대 초 탄소섬유를 개발하기 시작해 197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PAN(팬)계 탄소섬유를 상업 생산하기 시작했다. 도레이는 매년 매출의 약 3%인 약 60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도레이 내부에선 ‘히키다시(舌盒·서랍)의 묘’라는 말이 회자된다. 1926년 설립된 이래 90년 동안 갈고 닦은 연구개발 결과들이 너무 많아 서랍에 하나씩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활용한다는 뜻이다. 탄탄하게 쌓인 연구개발의 역사가 얼마나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도레이와 유니클로는 발열성 내의인 ‘히트텍’을 공동개발하면서 무려 1만 장이 넘는 시제품을 제작했다가 버린 끝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히트텍은 2003년 발매 이후 1억 장 넘게 판매됐다.
 신소재 개발까지 평균 10년 걸려
첨단 신소재 개발 못지않게 기존 기술과 산업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 숭실대 김주용 패셔노이드 연구센터장(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교수)은 “한국은 섬유 제조 기반과 첨단기술 연구 장소가 같은 땅 안에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며 “각 단계별 업체들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유리한 입지에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스마트 섬유의 경우 트렌드에 맞게 옛 기술과 신 기술을 결합해 ‘기획’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정부가 일괄적으로 스마트 섬유에 필요한 모듈을 지원하면 옷·모자·신발 등 전문화된 기존 섬유기업이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당 분야의 스마트 의류를 만들 수 있다. 일명 ‘완충지원체제’ 지원이 요구된다. 김주용 교수는 “부산의 봉제공장, 대구의 섬유공장, 포천의 가내수공업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며 “전자섬유를 미세하게 꼬는 작업 같은 것은 얼마든지 중소기업과 공동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몸에 걸치는 스마트 섬유는 결국 성능만큼 부드러운 촉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존 섬유산업의 역할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내 섬유산업의 고용인원은 약 17만 명으로 10인 이상 제조업의 약 6%를 차지한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당장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피해도 예상된다. 결국 고부가 섬유로 전환하되 신·구 산업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김익수 박사는 “기존 화학섬유 산업은 고성능 신소재, 차별화 부직포로 다각화하고 제직·염색산업은 3D프린팅 등 제작 프로세스를 혁신해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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