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알베르토 베레타 보테가 베네타 회장
카를로 알베르토 베레타 보테가 베네타 회장
세계적인 경기 둔화가 럭셔리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보테가 베네타는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방한한 베레타 회장을 만나 보테가 베네타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얇은 가죽 끈을 촘촘하게 엮은 디자인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고급스러운,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최근 몇 년 새 최고급 럭셔리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가 럭셔리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운데 보테가 베네타는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말 발표된 2015년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은 2014년보다 13.7% 증가한 12억8600만 유로(약 1조7000억원)였다.
지금의 보테가 베네타의 화려한 면모를 보고 있자면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이 회사도 한때 어려움을 겪은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매출액 3500만 유로(약 463억원)수준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작지만 알찬 기업도 아니었다. 큰 손실을 내고 있는 부실기업이었다. 카를로 알베르토 베레타(52) 보테가 베네타 회장의 표현을 빌자면 “2001년 케어링그룹에 인수되기 직전 보테가 베네타는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 케어링그룹(옛 PPR그룹)은 구찌ㆍ보테가 베네타ㆍ입생로랑 등을 소유한 프랑스 럭셔리 그룹으로, 루이비통ㆍ디올 등을 보유한 LVMH그룹과 함께 명품업계 양대산맥이다. 케어링그룹에 2001년 인수된 이후 15년 만에 보테가 베네타는 매출액이 36배로 증가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브랜드가 됐다.
지난해 1월 취임한 카를로 알베르토 베레타 회장은 만 1년만에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최고경영자(CEO)직에 안착했다는 평을 듣는다. 보테가 베네타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서울에 도착한 베레타 회장을 삼성동 파크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1966년 출범한 보테가 베네타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를 성공적으로 살아낸 데 대한 축하 인사부터 건넸다.
창립 50주년을 축하한다. CEO로서 앞으로의 과제는.
2016년은 여러모로 보테가 베네타에 매우 중요한 해다. 50주년도 중요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토마스 마이어가 합류한지 15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이 더 의미 있다. 내게 당면한 과제는 이 브랜드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보테가 베네타는 가죽제품 분야에서 ‘앱솔루트 럭셔리(최상급 명품)’ 분야의 리더로 자리잡았는데, 이젠 다른 제품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하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란?
보테가 베네타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네토주에서 가죽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매출액의 87%를 차지하는 가죽 제품은 지금도 브랜드의 핵심 비즈니스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동시에 슈즈, 여성복, 남성복, 패션 주얼리 등으로 제품 카테고리를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남성 제품 카테고리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남성 부문이 여성 부문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홈 컬렉션을 강화하기 위해 작년에 밀라노에 첫번째 홈 컬렉션 전용 부티크를 열었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이유는.
고객의 요청이다.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두터운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고객들은 브랜드와 제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보테가 베네타의 스타일이나 가치, 철학을 다른 제품군에서도 만나고 싶어한다. 물론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좋은 기회가 된다. 럭셔리 시장에서는 상위 브랜드로 갈수록 브랜드에 대해 높은 충성도를 가진 고객이 많다.
‘앱솔루트 럭셔리’ 분야의 최근 트렌드는 뭔가.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이다. 한 시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즌, 나아가 수년이 지나도 함께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timeless)한 스타일을 말한다. 앱솔루트 럭셔리 고객들은 쇼핑을 할 때 제품이 아닌 가치를 찾는다. 높은 수준의 디테일을 원하는데,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바로 장인 정신이다. 뛰어난 소재나 스타일 못지 않게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경기 둔화 이후 고객들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객들의 구매 성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충동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제품은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이럴 때 고객들은 제품 그 자체보다 더 깊은, 진정한 가치를 얻기를 원한다.
성공한 명품 브랜드들은 100년,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많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성공한 비결을 꼽는다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일관되게 따르는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가 지난 50년 동안 지겨온 철학이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유지하면서 브랜드 본래의 가치에 충실한 결과 성공할 수 있다. 의사 결정할 때마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결정인지 심사 숙고하고 그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보테가 베네타의 가치는 뭔가.
우리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한 브랜드이다. 주요 제품은 숙련된 장인의 수작업으로만 만들 수 있다. 둘째는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다. 셋째로 현대적이면서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만든다. 이게 보테가 베네타의 진정한 가치이다. 세 가지에서 일관성을 가졌기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니처 디자인이자 장인 정신의 상징인 가죽끈 꼬임(woven) 기법은 ‘인트레치아토’라고 불린다. 이 기법이 만들어진 스토리는 이렇다. 이탈리아인 기업가인 미켈레 타데이와 렌조 젠지아로가 베네토주 비첸자에 보테가 베네타를 설립했을 당시 패션업계의 주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가죽업체들이었다. 안장과 선박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던 이들은 점차 수요가 줄자 핸드백 등 액세서리를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트렁크와 안장 재료로 사용하던 견고한 가죽을 그대로 가방 재료로 사용했다. 핸드백 모양도 각진 박스 모양이 대부분이었다.
타데이와 젠지아로의 생각은 달랐다. 이 지역은 직물과 남성복 제조 산업이 중심이었던터라 얇고 섬세한 작업에 쓰이는 재봉 장비가 많았다. 장비의 바늘이 얇아 두꺼운 가죽 바느질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해법은 가죽 장갑을 만들 때 쓰는 얇고 부드러운 이탈리아산 가죽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부드러운 가죽은 내구성이 떨어져 가방을 만들기엔 부적절하다는 점이었다. 부드럽지만 견고한 가방을 만들기 위해 가죽끈을 안팎으로 엮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인트레치아토라는 훌륭한 기술 자산이 빛을 볼 수 있게 한 주인공은 토마스 마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인트레치아토를 어떻게 제품에 반영하게 됐나.
토마스 마이어는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기능성도 갖춤과 동시에 내부도 외부만큼 아름다운 가방을 만들고자 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직후 브랜드와 아카이브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인트레치아토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렇게 탄생한 심플한 직사각형 토트백 ‘까바’가 보네가 베네타 혁신의 출발점이 됐다. 솔기와 프레임은 없어 부드러우면서도 바닥에 놨을 때 형태를 유지하는 획기적인 핸드백이었다. 연구 끝에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안과 밖에서 두 겹으로 제작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보테가 베네타는 제품에 로고를 표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가 있나.
스타일과 기능성, 퀄리티가 있으면 로고는 필요없지 않나. 사람들은 훌륭한 디자인만으로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다. 제품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로고보다 필요한 건 고객의 이니셜이다. 이니셜이 들어가면 가방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된다. 토마스 마이어가 찾은 보테가 베네타의 70년대 광고 캠페인 속 문구 ‘당신의 이니셜만으로도 충분할 때(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가 브랜드 모토가 됐다. ‘노(No) 로고’ 정책이 혁신의 출발점이었다.
무슨 의미인가.
보테가 베네타 50년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는 2001년 케어링그룹에 인수되기 직전이었다.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고 브랜드는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를테면, 당시 보테가 베네타는 브랜드 역사상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을 저질렀는데, 바로 제품에 로고를 넣기 시작한 것이었다. 브랜드 정체성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로고는 당시의 빅 트렌드였는데, 남들 하는 대로 그냥 따라한 것이다. 트렌드를 쫓다 보면 자신의 가치와 타협하게 되고 결국 실패한다.
한 때는 ‘명품=로고‘였는데 요즘엔 고객들이 로고를 선호하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고객들의 소비 성향이 성숙해졌다고 본다. 패션업계가 진화할수록 고객들은 로고보다는 로고 이면의 가치를 더 이해하고 중시하게 됐다.
럭셔리가 장인 정신이나 희소성을 의미한다면 디지털은 대중적이다. 디지털과 럭셔리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디지털은 대중성이고 럭셔리는 희소성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제 패션산업은 디지털 측면에서 성숙 단계에 도달했다. 디지털과 럭셔리는 밀접하며 상호보완적이다. 전략적으로 일관성이 유지된다면 디지털에서도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 디지털을 단순히 유통 채널로만 활용할 게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고객들과 브랜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디지털과 오프라인 부티크에서의 경험은 동일해야 한다.
어떤 디지털 전략이 있나.
올해부터 ‘원격 고객 안내 서비스(Remote Customer Concierge Service)’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실제 매장에서와 마찬가지로 1대1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는 올 하반기에 시작할 것이다. 디지털을 통해 브랜드를 접한 고객이 직접 매장에 와서 손으로 만지고 느껴볼 수 있게 만들겠다.
보테가 베네타는 직원 복지를 위한 노력이 남다르다.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대기업 부문)으로 선정됐다. 2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다. 2013년 비첸자 근처 몬테벨로 비첸티노로 옮긴 본사 아뜰리에는 수려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이름 났다. 거의 모든 건물에서 바깥을 조망할 수 있게 창을 배치했고, 대학 캠퍼스에서 영감을 얻어 부서간 벽을 없애 열린 공간을 만든 것도 특징이다.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보테가 베네타의 신조 중 하나이다. 직원들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걸 기본 철학으로 한다. 특별한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회사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 더욱 생산적이 된다. 그리고 이런 열정은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직접 전달된다. 고객이 제품 이면에 있는 열정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직원과 제품, 고객간에는 다이렉트 커넥션(direct connection)이 존재한다.
앞으로 성장 전략은?
엄선된 부티크에서 모든 제품 카테고리를 선보이기 위해 부티크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부티크 숫자를 늘리겠다는 게 아니다. 한 매장 안에 가죽 가방 뿐 아니라 슈즈, 기성복, 주얼리, 홈 컬렉션 등을 모두 선보이는 ‘메종’을 늘려 나가되 부티크 수는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관리할 생각이다. 2013년 밀라노에 첫 메종을 열었고, 오는 5월 미국 베럴리힐즈에 두번째를 연다. 내년 뉴욕 맨해튼에 이어 아시아에 네번째 메종을 열 계획이다.
서울도 후보 도시인가.
현재로서는 아니다. 모든 제품군을 소개할 수 있는 큰 공간이 필요한데, 서울은 그럴만한 곳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서울 부동산 가격은 비슷한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다. 현재 한국의 유통 채널은 백화점과 독립 매장 간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매우 특별한 곳이다. 한 도시 안에 이처럼 많은 구매지점(Point of Sales)을 가진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
중국 등 해외 관광객이 한국 보테가 베네타의 매출에 기여하는가.
지금까지는 한국인 고객들이 매우 강한 편이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 여행객들도 매장을 찾는데, 현지인과 여행객의 균형이 잘 맞는 편이다. 여행객들이 들릴 수 있도록 나라별로 제품과 매장을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상이나 스페셜 제품을 갖춰 놓는다. 우리 고객들이 여행 중에 쇼핑을 하는 이유다. 꼭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베레타 회장은 밀라노 보코니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1993년 이탈리아 백화점 라 리나센테에 시니어 바이어로 입사해 유통업계에 몸담았다. 이후 발렌티노에서 남성복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하고 에르메네질도 제냐로 옮겼다. 제냐에서는 시니어 머천다이징 디렉터로 시작해 리테일 개발 디렉터까지 11년간 근무했다.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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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보테가 베네타의 화려한 면모를 보고 있자면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이 회사도 한때 어려움을 겪은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매출액 3500만 유로(약 463억원)수준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작지만 알찬 기업도 아니었다. 큰 손실을 내고 있는 부실기업이었다. 카를로 알베르토 베레타(52) 보테가 베네타 회장의 표현을 빌자면 “2001년 케어링그룹에 인수되기 직전 보테가 베네타는 파산 직전의 상태”였다. 케어링그룹(옛 PPR그룹)은 구찌ㆍ보테가 베네타ㆍ입생로랑 등을 소유한 프랑스 럭셔리 그룹으로, 루이비통ㆍ디올 등을 보유한 LVMH그룹과 함께 명품업계 양대산맥이다. 케어링그룹에 2001년 인수된 이후 15년 만에 보테가 베네타는 매출액이 36배로 증가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브랜드가 됐다.
지난해 1월 취임한 카를로 알베르토 베레타 회장은 만 1년만에 우수한 성적표를 받아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최고경영자(CEO)직에 안착했다는 평을 듣는다. 보테가 베네타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서울에 도착한 베레타 회장을 삼성동 파크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1966년 출범한 보테가 베네타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반세기를 성공적으로 살아낸 데 대한 축하 인사부터 건넸다.
창립 50주년을 축하한다. CEO로서 앞으로의 과제는.
2016년은 여러모로 보테가 베네타에 매우 중요한 해다. 50주년도 중요하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토마스 마이어가 합류한지 15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이 더 의미 있다. 내게 당면한 과제는 이 브랜드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보테가 베네타는 가죽제품 분야에서 ‘앱솔루트 럭셔리(최상급 명품)’ 분야의 리더로 자리잡았는데, 이젠 다른 제품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도약하려고 한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란?
보테가 베네타는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네토주에서 가죽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매출액의 87%를 차지하는 가죽 제품은 지금도 브랜드의 핵심 비즈니스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이다. 동시에 슈즈, 여성복, 남성복, 패션 주얼리 등으로 제품 카테고리를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남성 제품 카테고리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남성 부문이 여성 부문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홈 컬렉션을 강화하기 위해 작년에 밀라노에 첫번째 홈 컬렉션 전용 부티크를 열었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이유는.
고객의 요청이다.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두터운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고객들은 브랜드와 제품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보테가 베네타의 스타일이나 가치, 철학을 다른 제품군에서도 만나고 싶어한다. 물론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좋은 기회가 된다. 럭셔리 시장에서는 상위 브랜드로 갈수록 브랜드에 대해 높은 충성도를 가진 고객이 많다.
‘앱솔루트 럭셔리’ 분야의 최근 트렌드는 뭔가.
‘유행을 타지 않는 스타일’이다. 한 시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즌, 나아가 수년이 지나도 함께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timeless)한 스타일을 말한다. 앱솔루트 럭셔리 고객들은 쇼핑을 할 때 제품이 아닌 가치를 찾는다. 높은 수준의 디테일을 원하는데,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바로 장인 정신이다. 뛰어난 소재나 스타일 못지 않게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이다.
현대적이면서 기능성을 갖춘 제품
경기 둔화 이후 고객들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객들의 구매 성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충동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제품은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이럴 때 고객들은 제품 그 자체보다 더 깊은, 진정한 가치를 얻기를 원한다.
성공한 명품 브랜드들은 100년,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 많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성공한 비결을 꼽는다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원칙을 일관되게 따르는 것이다. 보테가 베네타가 지난 50년 동안 지겨온 철학이다. 일관성 있는 모습을 유지하면서 브랜드 본래의 가치에 충실한 결과 성공할 수 있다. 의사 결정할 때마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결정인지 심사 숙고하고 그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되는 보테가 베네타의 가치는 뭔가.
우리는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한 브랜드이다. 주요 제품은 숙련된 장인의 수작업으로만 만들 수 있다. 둘째는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다. 셋째로 현대적이면서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만든다. 이게 보테가 베네타의 진정한 가치이다. 세 가지에서 일관성을 가졌기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테가 베네타의 시그니처 디자인이자 장인 정신의 상징인 가죽끈 꼬임(woven) 기법은 ‘인트레치아토’라고 불린다. 이 기법이 만들어진 스토리는 이렇다. 이탈리아인 기업가인 미켈레 타데이와 렌조 젠지아로가 베네토주 비첸자에 보테가 베네타를 설립했을 당시 패션업계의 주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중부 지역의 가죽업체들이었다. 안장과 선박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던 이들은 점차 수요가 줄자 핸드백 등 액세서리를 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트렁크와 안장 재료로 사용하던 견고한 가죽을 그대로 가방 재료로 사용했다. 핸드백 모양도 각진 박스 모양이 대부분이었다.
타데이와 젠지아로의 생각은 달랐다. 이 지역은 직물과 남성복 제조 산업이 중심이었던터라 얇고 섬세한 작업에 쓰이는 재봉 장비가 많았다. 장비의 바늘이 얇아 두꺼운 가죽 바느질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해법은 가죽 장갑을 만들 때 쓰는 얇고 부드러운 이탈리아산 가죽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부드러운 가죽은 내구성이 떨어져 가방을 만들기엔 부적절하다는 점이었다. 부드럽지만 견고한 가방을 만들기 위해 가죽끈을 안팎으로 엮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고안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인트레치아토라는 훌륭한 기술 자산이 빛을 볼 수 있게 한 주인공은 토마스 마이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No 로고’ 정책이 혁신의 출발점
인트레치아토를 어떻게 제품에 반영하게 됐나.
토마스 마이어는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기능성도 갖춤과 동시에 내부도 외부만큼 아름다운 가방을 만들고자 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직후 브랜드와 아카이브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인트레치아토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렇게 탄생한 심플한 직사각형 토트백 ‘까바’가 보네가 베네타 혁신의 출발점이 됐다. 솔기와 프레임은 없어 부드러우면서도 바닥에 놨을 때 형태를 유지하는 획기적인 핸드백이었다. 연구 끝에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안과 밖에서 두 겹으로 제작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보테가 베네타는 제품에 로고를 표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가 있나.
스타일과 기능성, 퀄리티가 있으면 로고는 필요없지 않나. 사람들은 훌륭한 디자인만으로도 브랜드를 알아볼 수 있다. 제품이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로고보다 필요한 건 고객의 이니셜이다. 이니셜이 들어가면 가방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 된다. 토마스 마이어가 찾은 보테가 베네타의 70년대 광고 캠페인 속 문구 ‘당신의 이니셜만으로도 충분할 때(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가 브랜드 모토가 됐다. ‘노(No) 로고’ 정책이 혁신의 출발점이었다.
무슨 의미인가.
보테가 베네타 50년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는 2001년 케어링그룹에 인수되기 직전이었다.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고 브랜드는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를테면, 당시 보테가 베네타는 브랜드 역사상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을 저질렀는데, 바로 제품에 로고를 넣기 시작한 것이었다. 브랜드 정체성이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로고는 당시의 빅 트렌드였는데, 남들 하는 대로 그냥 따라한 것이다. 트렌드를 쫓다 보면 자신의 가치와 타협하게 되고 결국 실패한다.
한 때는 ‘명품=로고‘였는데 요즘엔 고객들이 로고를 선호하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고객들의 소비 성향이 성숙해졌다고 본다. 패션업계가 진화할수록 고객들은 로고보다는 로고 이면의 가치를 더 이해하고 중시하게 됐다.
럭셔리가 장인 정신이나 희소성을 의미한다면 디지털은 대중적이다. 디지털과 럭셔리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디지털은 대중성이고 럭셔리는 희소성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제 패션산업은 디지털 측면에서 성숙 단계에 도달했다. 디지털과 럭셔리는 밀접하며 상호보완적이다. 전략적으로 일관성이 유지된다면 디지털에서도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 디지털을 단순히 유통 채널로만 활용할 게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고객들과 브랜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해 이용할 수도 있다. 다만, 디지털과 오프라인 부티크에서의 경험은 동일해야 한다.
어떤 디지털 전략이 있나.
올해부터 ‘원격 고객 안내 서비스(Remote Customer Concierge Service)’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실제 매장에서와 마찬가지로 1대1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는 올 하반기에 시작할 것이다. 디지털을 통해 브랜드를 접한 고객이 직접 매장에 와서 손으로 만지고 느껴볼 수 있게 만들겠다.
보테가 베네타는 직원 복지를 위한 노력이 남다르다.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이탈리아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대기업 부문)으로 선정됐다. 2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다. 2013년 비첸자 근처 몬테벨로 비첸티노로 옮긴 본사 아뜰리에는 수려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이름 났다. 거의 모든 건물에서 바깥을 조망할 수 있게 창을 배치했고, 대학 캠퍼스에서 영감을 얻어 부서간 벽을 없애 열린 공간을 만든 것도 특징이다.
일하기 좋은 직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보테가 베네타의 신조 중 하나이다. 직원들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걸 기본 철학으로 한다. 특별한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낸다. 회사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 더욱 생산적이 된다. 그리고 이런 열정은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직접 전달된다. 고객이 제품 이면에 있는 열정을 알아본다는 뜻이다. 직원과 제품, 고객간에는 다이렉트 커넥션(direct connection)이 존재한다.
나라별로 제품과 매장을 차별화
앞으로 성장 전략은?
엄선된 부티크에서 모든 제품 카테고리를 선보이기 위해 부티크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부티크 숫자를 늘리겠다는 게 아니다. 한 매장 안에 가죽 가방 뿐 아니라 슈즈, 기성복, 주얼리, 홈 컬렉션 등을 모두 선보이는 ‘메종’을 늘려 나가되 부티크 수는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관리할 생각이다. 2013년 밀라노에 첫 메종을 열었고, 오는 5월 미국 베럴리힐즈에 두번째를 연다. 내년 뉴욕 맨해튼에 이어 아시아에 네번째 메종을 열 계획이다.
서울도 후보 도시인가.
현재로서는 아니다. 모든 제품군을 소개할 수 있는 큰 공간이 필요한데, 서울은 그럴만한 곳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서울 부동산 가격은 비슷한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다. 현재 한국의 유통 채널은 백화점과 독립 매장 간 균형이 잘 잡혀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은 매우 특별한 곳이다. 한 도시 안에 이처럼 많은 구매지점(Point of Sales)을 가진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
중국 등 해외 관광객이 한국 보테가 베네타의 매출에 기여하는가.
지금까지는 한국인 고객들이 매우 강한 편이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 여행객들도 매장을 찾는데, 현지인과 여행객의 균형이 잘 맞는 편이다. 여행객들이 들릴 수 있도록 나라별로 제품과 매장을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색상이나 스페셜 제품을 갖춰 놓는다. 우리 고객들이 여행 중에 쇼핑을 하는 이유다. 꼭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베레타 회장은 밀라노 보코니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1993년 이탈리아 백화점 라 리나센테에 시니어 바이어로 입사해 유통업계에 몸담았다. 이후 발렌티노에서 남성복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하고 에르메네질도 제냐로 옮겼다. 제냐에서는 시니어 머천다이징 디렉터로 시작해 리테일 개발 디렉터까지 11년간 근무했다.
-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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