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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저우(杭州) 미술 투어

중국 항저우(杭州) 미술 투어

항저우(杭州)는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중심도시다. 예술향기 그윽한 항저우에서 문화를 꽃피우고 있는 4명의 미술가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의 값비싼 소장품들을 감상했다.
다이위샹 교수가 소장한 골동품 불상
저장성(浙江省) 남부의 원저우에서 성도 항저우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기로 했다.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한국의 카톡과 같은 위쳇(WeChat)의 번역 프로그램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 예매를 할 수 있었다. 항저우로 가는 기차 안, 젊은 청년이 다가와서 트렁크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고마워서 희망(HOPE)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금빛 책갈피를 건넸다. 청년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자신의 이름을 메모지에 적어 건넨다. 이름 가운데 바랄 희(希)자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동음이자(同音異字)로 읽는 법을 알면 사람들과 편해진다. 예를 들어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만 오다’라는 뜻의 신년보희(新年報喜)는 소나무, 까치, 표범이라는 그림의 소재를 사용하여 표현할 수 있다. 표범의 표(豹)와 고할 보(報)가 중국에서는 파오(pao)로 발음이 같고, 소나무는 정월, 까치는 기쁨을 뜻하기에 이것을 한 화면에 그린 그림은 신년의 희망에 대한 문장이 되는 것이다.

항저우시 기차역에 도착하니 후배 미술가 K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서 있다. 중국 최고의 예술대학이라는 중국미술학원에서 중국화를 전공하고 석·박사학위까지 취득해 15년이나 항저우에 살고 있는 작가다. 한국인이지만 저장성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작품활동도 한다. K의 안내를 받아 항저우에서 30여 년동안 중보갤러리를 운영해왔다는 천쉐져 부부를 만났다. 갤러리는 20층짜리 고급 상가주택의 8층에 있었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8이다. 8의 중국어 발음이 빠(ba)인데 돈을 벌고 재산을 모은다는 發(fa)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엔틱과 조각, 그림들이 어우러진 갤러리 안은 세련미가 물씬 풍겼다. 골동품과 미술품을 수집하고 사랑한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튿날, 천쉐져 부부가 자신들의 갤러리에서 작품 설치를 주도한 최고급 호텔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함께 찾아간 인터컨티넨탈항저우호텔의 외관은 둥근 원형으로 고급스런 재질로 빛났고, 내부는 나선형 구조로 중앙 부분이 오픈 되어 웅장함과 화려함을 극대화했다. 설치된 작품도 호텔 내부의 공간 구조에 적합한 크기와 형태로 잘 조화를 이루었다. 지난해 여름, 베이징에서 최고의 미술품으로 인테리어를 완성한 호텔에클라베이징에서 익히 체험한 적이 있지만 이곳 항저우에서도 중국의 막대한 자본력, 문화공간의 해석과 실행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VIP룸에는 서령인사 출신 작가의 작품이 걸려 VIP룸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었다. 항저우 구산(孤山)에 있는 서령인사(西玲印社) 건물에는 명·청 시대의 가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이 호텔이 중국 공산당 정부가 주관해 지은 건물로 민간기업이 위탁경영하기에 중국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화가가 소속된 서령인사 작가들과 함께 전시기획을 했다고 한다. 호텔을 나와 천쉐져 대표가 운영하는 갤러리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다는 루치(陆琦)작가의 작업실로 이동했다. 항저우교육대학 교수이자 서양화가인 그는 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는데, 물고기 그림이 특히 유명하다. 주로 기업인과 부유한 개인 컬렉터들이 구입한다고 했다. 2016년 붉은 원숭이해를 맞아 작업실 입구에 그려 놓은 화사한 꽃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작업실 한 켠에 있는 인민화 그림은 공산당 정부의 의뢰로 그린다고 했다. 루치 작가가 항저우의 대표적인 차인 용정차를 듬뿍 선물로 건넸다. 선물한 도록을 보니 한국에서도 2회 개인전과 그룹전을 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친한(親韓) 인사였다.
 진귀한 골동품으로 가득한 다이위샹 자택
서울 청담동의 최고급 빌라 뺨치는 그의 자택에는 진귀한 골동품과 그림으로 가득하다.
뒤이어 중국미술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강의도 하는 허리(何立) 작가를 찾았다. 작업실은 항저우 시내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으로 한국의 경기도창작센터처럼 건물이 큼직하고 작가의 작업실도 넓었다. 허리 작가는 파리에도 체류하면서 동서양 미술을 두루 배웠다고 했다. 세계적인 비엔날레에도 여러 차례 출품했는데, 작업의 중심 내용은 감성적인 추상작품이 많았다. 작가의 고향이 시골이고, 어릴 때부터 산과 강을 많이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 정서가 그립고 그 풍경을 추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작품에서는 잔잔한 물결의 진동이 느껴졌고, 다른 작품에서는 거대한 산과 폭포, 숲 속의 기운들이 꽉 차게 느껴졌다. 중국의 장자사상, 존 듀이의(John Dewey) 사상과 맞닿아 있는 자신의 예술철학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항주 미술투어의 백미는 중국미술학원 도예과 다이위샹(戴雨享)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작가를 만나기 전에 시후호(西湖) 근처의 대한(大瀚)갤러리를 방문했었는데, 엔틱과 전통화, 도자기, 현대미술 작품을 골고루 소장하고 있는게 인상적이었다. 소장품 중에 다이위샹 작가의 작품과 그의 선친인 다이롱화 작품도 몇 점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대를 잇는 도예가로서 항저우의 유명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명망가로 한국을 2~3차례 방문했고, 한·중·일 도예 교류전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다이위샹 교수와 대화를 나누다 작품에 관심을 보였더니 자신이 소장한 골동품을 특별히 보여주겠다고 했다. 학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고급 주택단지였다. 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고급 타운형 주택으로 엘리베이터가 각 집안 입구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은 서울 청담동의 최고급 빌라 그 이상이었다. 진귀한 골동품과 그림이 가득했다. 명품의 지존은 역시 시각예술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서실에는 한나라의 목마, 당나라의 도자기, 티벳의 탱화, 일본에서 구입한 은주전자, 고색창연한 다기 등이 가득했다. 감상에 집중하느라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욕실, 다락, 부엌, 테라스 등 집안 곳곳에 배치된 장식장과 가구는 서양식 엔틱과 그림, 중국 유명작가의 조각과 그림이 많았다. 오랜만에 안복(眼福)의 호사를 누렸다.

미술 투어의 마지막 날, 중국미술학원 중국화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는 웨이샤오롱 교수를 어렵게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임대료가 명동이나 청담동 이상으로 비싸다는 서호 옆 하얏트레지던시호텔 안에 작업실을 2개나 가지고 있었다. 미술대학 교수가 어떻게 이렇듯 비싼 곳에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을까?
 중국의 문화도시를 빛내는 최고의 예술인들
1. 항저우 구산(孤山)에 있는 서령인사(西泠印社) 건물에는 명·청 시대의 가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 2. 중국미술학원 중국화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웨이샤오롱 교수. 임대료가 명동이나 청담동 이상으로 비싸다는 서호 옆 하얏트레지던시호텔 안에 2개의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역시 그의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골동품이었다. 그 역시 컬렉터로서 큰 손임에 틀림없다. 작업실 중앙에 걸린 대련 족자는 명대의 작품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탱화와 옥, 서양의 고대악기와 고색창연한 가구는 눈이 다 동그래질 정도였다. 작가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해 항저우가 문화 도시로 번창하고 명맥을 유지해온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웨이샤오롱 교수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붓을 들고 작업을 한다고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붓을 놓지 않는데, 인터뷰 당일 아침에 그렸다는 그림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중국미술학원은 중국 내 최고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와 작가를 초빙하는 특강, 그리고 예술정신에 대한 이론과 실기의 병행을 강조하고 있다. 웨이샤오롱 교수는 “현대적인 것은 결국 전통을 잇는 것”이라며 “전통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현대적인 실험을 병행한다면 그 작가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즉석에서 피아노를 치며 한국의 ‘아리랑’을 연주했다. 어떤 음악이든 들으면 악보로 그려낼 수 있는 실력자라고 후배가 귀띔해 준다. 서예와 중국화의 전문가를 넘어 그는 최고 수준의 예술인이었다.

다음날, 나는 글을 쓰고, 후배는 그림을 그렸다. 눈 앞에 보이는 서호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고, 중국의 문화중심이라는 항저우의 예술 향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호수에서는 뱃놀이가 한창이다. 서호는 예로부터 뱃놀이가 유명해 전통적인 작은 배에서부터 최신 유람선까지 떠다닌다. 고요히 찰랑거리는 서호의 물결을 따라 상념에 잠기다 보니 어느 순간 당나라 백거이가 백성을 위해 제방을 쌓고 있었다. 다시 물길을 따라 흐르다보니 송나라에 다다르니 소동파가 서호의 뛰어난 경관을 중국 4대 미인인 서시의 아름다움에 빗대어 시를 짓고 있다. 높은 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서호의 물처럼 항저우의 문화예술도 시민들이 골고루 예술을 체감할 수 있도록 끝없이 흐르고 또 흐를 것이다.

- 글·사진 정영숙(갤러리세인 대표. 문화예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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