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르는 돌’은 멈추지 않는다

전시회 개막을 며칠 앞둔 지난 3월 말 대표 큐레이터 아일린 갤러거가 뉴스위크에 상세한 전시 내용을 밝혔다. 사치 갤러리의 2개 층에 자리 잡은 9개 전시실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회에서 팬들은 롤링스톤즈가 처음 합숙했던 아파트와 녹음실, 공연 무대 뒤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모형을 둘러볼 수 있다. 한 3D 비디오는 관람객을 롤링스톤즈가 공연 중인 무대로 데려간다. 또 악기와 메모장, 점프슈트(바지와 상의가 하나로 붙어 있는 옷), 사진 등 밴드 멤버들이 수십 년 동안 수집한 물건 수백 가지가 전시된다.
‘엑시비셔니즘’은 여러모로 보통과는 수준이 다른 특급 전시회다. 영화 감독 마틴 스콜세지, 패션 디자이너 안나 수이와 토미 힐피거, 존 바바토스, 가수 겸 기타리스트 버디 가이 등 각계의 유명인사들이 참여했으며 앞으로 4년 동안 세계 11개 도시를 돌며 순회 전시할 예정이다. 극단적이고 과도한 것을 사랑하는 롤링스톤즈의 성향을 조명하는 측면에서 2013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V&A) 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보위 회고전을 능가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전시회가 이미 알려진 사실 외에 뭘 더 보여줄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보위와 달리 롤링스톤즈는 언론 노출을 꺼리지 않았다. 비록 멤버들은 들락날락했지만 세계에서 최장기간 활동 중인 이 밴드는 지난 50여 년 동안 줄곧 논란을 몰고 다녔다. 2010년에는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회고록 ‘라이프(Life)’에서 멤버들의 방탕한 생활을 공개했다. 섹스와 마약, 로큰롤을 사랑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낱낱이 털어놨다.
그러나 ‘엑시비셔니즘’은 반세기에 걸친 롤링스톤즈의 역사를 깊이 있고 진실되게 파헤쳤다. “우리는 이 밴드의 지난날을 연대순이 아니라 주제별로 조명했다”고 갤러거는 말했다. “관람객이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다.”
‘레이디스 앤 젠틀먼(Ladies and Gentlemen)’과 ‘익스피어리언스(Experience)’라는 이름이 붙은 두 전시실이 전시회의 도입부 역할을 한다. ‘레이디스 앤 젠틀먼’ 전시실에 들어가면 2편의 짧은 만화영화를 보게 된다. 첫 번째 작품은 롤링스톤즈의 세계 순회공연과 관객을, 두 번째는 그들이 발표한 노래와 앨범의 수를 보여준다.
‘익스피어리언스’ 전시실에 들어서면 반원형의 벽면에 설치된 60개의 비디오 스크린이 눈에 띈다. 롤링스톤즈의 작품을 연대순으로 볼 수 있다. 때때로 60개의 스크린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가 뜨거나 5~10장의 사진이 펼쳐지기도 한다.
도입부를 지나면 관람객은 터널을 통해 ‘미트 더 밴드(Meet the Band)’ 전시실로 간다. 터널을 통과할 때 리드 싱어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가 자신들이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 트랙을 듣는다. 터널을 지나면 런던 첼시 지역의 이디스 그로브에 있던 롤링스톤즈의 첫 번째 합숙소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전시실이 나온다. “재미있으면서도 역겨운 곳”이라고 갤러거는 말했다. “집안 곳곳에 핀 곰팡이, 여기저기 널린 더러운 양말, 맥주병과 담배, 코를 찌르던 냄새까지 모든 걸 재현했다.” 전시회의 공동 큐레이터이자 30년 동안 롤링스톤즈 라이브 공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해온 패트릭 우드로프에 따르면 드러머 찰리 와츠는 이 아파트에 대해 “내 평생 가장 더럽고 구역질 나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시실의 나머지 부분은 영국 순회공연을 시작하던 당시 밴드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팬들이 찍은 사진을 바닥에 전시해 멤버들을 소개하고 와츠의 첫 번째 드럼 세트도 선보인다. 또 리처즈의 1963년 일기장과 과거 롤링스톤즈의 베이스 주자 빌 와이먼이 오디션 때 썼던 앰프도 볼 수 있다. 한쪽에선 버디 가이와 재거, 리처즈의 내레이션이 들어간 비디오가 상영된다. 그들은 블루스가 롤링스톤즈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이 밴드는 그 음악 장르에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를 설명한다.롤링스톤즈가 음악 전반에 미친 영향은 엄청나다. 이 밴드는 라이브와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외한 정규 앨범만 29장을 발표했다. ‘리코딩(Recording)’ 전시실에서는 이들의 음악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롤링스톤즈가 사용했던 녹음실과 똑같이 꾸며진 방으로 들어가 그들이 썼던 악기를 구경하고 연주 실황을 담은 비디오 프로젝션을 감상한다. 또 리처즈와 제작자 돈 워즈의 녹음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대화형 아이패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전시실엔 지난 수십 년 동안 멤버들이 연주했던 악기들이 전시됐다. 리처즈와 재거가 작곡에 관해 이야기하는 오디오를 들을 수 있고 재거의 메모장도 볼 수 있다.

영화 다음으로는 롤링스톤즈가 미술에 미친 영향이 소개된다. 이 전시실에서는 존 패쉬가 디자인한 유명한 롤링스톤즈의 로고 ‘혀와 입술(Tongue & Lips)’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또 이 밴드의 앨범 커버와 순회공연 포스터 등이 재거의 설명으로 소개된다.
롤링스톤즈의 창조적인 성향은 라이브 공연과 무대 디자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늘 크고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고자 했다. 재거는 입술 로고처럼 생긴 무대에서, 혹은 객석 위 높은 곳에 설치한 가설 무대에서 독특한 의상을 한껏 뽐내며 노래했다. ‘엑시비셔니즘’은 롤링스톤즈의 이런 특성을 전달하기 위해 ‘부두 라운지(Voodoo Lounge)’와 ‘스틸 휠즈(Steel Wheels)’ ‘브리지스 투 바빌론(Bridges to Babylon)’ 등 순회공연 당시 무대의 축소 모형들을 전시한다.
롤링스톤즈는 눈길 끄는 라이브 공연뿐 아니라 멤버들(특히 재거)의 특이한 무대 의상으로도 잘 알려졌다. 재거는 초창기엔 점프슈트와 반짝이 의상을, 나중엔 최신 유행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롤링스톤즈의 의상에 초점을 맞춘 전시실 ‘스타일(Style)’은 그들의 활동 기간을 4시기로 나눠 시대에 따른 의상의 변화를 조명했다.제1기는 1960년대 그들이 첼시의 킹스 로드에 살던 시절이다. “당시 멤버들의 무대 의상은 일상복과 똑같았다”고 갤러거가 말했다. 제2기는 1969~1989년의 글램 록(남성 뮤지션들이 특이한 옷차림과 화장을 하고 무대에 섰다) 시대다. 1968년 런던 하이드 파크의 롤링스톤즈 콘서트와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린 알타몬트 스피드웨이 프리 페스티벌(객석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해 4명이 사망했다) 무대에서 멤버들이 입었던 의상이 전시됐다. 제3기는 롤링스톤즈가 최신유행의 고급 패션을 사랑했던 시기다. 알렉산더 매퀸, 크리스티앙 디오르, 오시 클라크, 이브 생로랑, 르렌 스콧(2014년 사망할 때까지 재거의 파트너였다)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의상이 전시됐다. 끝으로 재거가 ‘Sympathy for the Devil’을 부를 때 입었던 의상 8벌이 소개됐다. 그 옆에선 재거가 여러 공연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상영된다. 익명을 요구한 롤링스톤즈의 한 측근은 갤러거가 재거의 의상을 전시하기 위해 그의 옷장을 살피러 갔을 때 중요한 옷들이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재거의 딸들이 패션 하우스에 갈 때 입으려고 아버지의 옷을 슬쩍했다”고 그 측근은 말했다.

이 전시실엔 재거가 순회공연 때 분장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집어온 이발소 의자가 전시됐다. 순회공연 때마다 해당 공연의 제목을 새겨 넣었던 와츠의 목욕 가운과 로니 우즈의 세트 리스트(콘서트에서 공연할 곡의 곡목과 순서를 적어 놓은 표)도 볼 수 있다. 1970년 발표한 앨범 ‘Get Yer Ya-Ya’s Out!’의 커버 이미지에 사용됐던 당나귀 봉제인형도 전시됐다.
마지막 전시실 ‘퍼포먼스(Performance)’는 공연 무대 뒤에서 멤버들이 이용하던 공간을 재현했다. 재거의 탈의용 텐트와 기타, 의상 트렁크들도 볼 수 있다. “공개된 적이 없는 장소와 물건들”이라고 우드로프는 말했다. “밀실공포증을 일으킬 듯한 어둡고 좁은 곳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라이브 공연이 진행되는 무대로 걸어나갈 수 있다.”
현란한 조명과 롤링스톤즈의 2013 하이드 파크 공연 실황이 담긴 3D 비디오를 이용한 이 무대는 우드로프의 감독 아래 ‘퍼포먼스’ 전시실 팀이 3~4개월의 작업 끝에 완성했다. 우드로프는 관람객이 무대 위에 서는 기분이 어떤지, 롤링스톤즈 멤버들이 하는 일이 어떤 건지 직접 느껴보기를 바란다.
갤러거는 “롤링스톤즈가 아직 활동 중이기 때문에 연대순 전시를 피했다”고 말했다. “전시회를 소개하는 글에서 리처즈가 한 말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롤링스톤즈의 업적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듯하다.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아직 이루지 못한 한 가지는 우리 같은 록밴드가 얼마나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지금도 롤링스톤즈의 일원이라는 게 큰 기쁨이다.”
- 미렌 지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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