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나마 스캔들의 몸통은 따로 있다

(뉴스 기사 외엔) 별로 없을 성싶다. 조세 회피 문건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 스캔들의 핵심인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조차 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지난 4월 초까지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거의 없던 피라미 조직이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약 1150만 건의 문건으로 이뤄진 사상 최대 규모인 자료유출 사건의 한복판에 선 처지가 됐다.
이들 자료는 지난 4월 3일 독일 뮌헨의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 그리고 미국 워싱턴 DC의 비영리단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를 통해 협력하는 약 400명의 언론인이 처음 공개했다. 유사 자료유출 사건 중 사상 최대 규모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 배후에 있는 파나마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는 조세 피난처에 수조 달러를 은닉하는 훨씬 더 크고 화려한 거물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꼬리에 지나지 않는다.
“파나마 페이퍼스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사람들이 아주 간단한 문제를 간과한다”고 미국 뉴욕 주에 있는 경제·법률·조세 전략 전문 컨설팅 업체 색 하버 그룹의 제임스 헨리 대표가 말했다. “모색 폰세카는 세계 각지에 허름한 작은 매장을 열고 단순 반복작업을 하는 파나마의 말단 법무법인이었다. 1% 부자 고객들은 세계 일류 투자은행을 찾아간다. 모두가 이름을 들어본 은행들, 2008년 구제금융을 받은 온갖 은행들 말이다.”
세계 0.1% 부자들의 20조 달러를 웃도는 금융자산이 어떤 나라와 지역의 조세 피난처에 숨겨졌는지는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졌다(혹시 아직도 모른다면 스위스·홍콩·미국 순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 부자들 곁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근 실세들에 관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의 베일을 벗기려 시도한 극소수 그룹 중 하나가 영국에 기반을 두고 글로벌 조세 피난처를 조사하는 비영리단체 조세정의네트워크(TJN)다(뉴욕 금융 컨설팅 업체 매킨지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헨리 대표가 고문이기도 하다).
TJN의 추산에 따르면 전체 역외 개인자산 중 75% 가까이가 세계 50대 프라이빗 은행(개인자산 종합 관리 서비스)에 직·간접적으로 집중돼 있다. 그중에서도 1000억 달러의 역외 개인 자산을 관리하는 약 20개 은행에서 그런 현상이 특히 두드러진다. 이는 은행들의 보고서, 그리고 업계 분석가와 프라이빗 은행 관계자들과 인터뷰에 근거한 추산이다보고서에 따르면 2005~2010년 UBS, 크레딧 스위스, 시티그룹, 모건 스탠리, 도이체 방크,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 린치, JP모건 체이스, BNP 파리바, HSBC, 골드만 삭스, ABN 암로, 소시에테 제네랄, 바클레이스 등이 그런 은행으로 꼽혔다. 헨리 대표에 따르면 이들 은행이 관리하는 개인자산 총액은 12조2000억 달러에 달했으며 그 뒤로 더 불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헨리 대표는 최대 조세 회피 도시로 미국 뉴욕·영국 런던·스위스 제네바를 꼽는다. “하지만 이것이 아주 널리 분산된 네트워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조세 피난처는 세계 각지에 분포됐으며 국내외 어디에든 존재한다.”
조세 피난처(tax shelter)의 개념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보통은 합법적인 수단이다. 예컨대 기업퇴직연금 401(k)도 엄밀히 말해 그중 하나다. 그러나 금융활동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막아주기 때문에 뇌물, 중대 금융사범, 또는 탈세 등과 같은 더 불법적인 행태를 은닉할 가능성이 있다.
대다수 글로벌 대형 은행들은 말 그대로 ‘조세 피난처’ 컨설팅 서비스를 드러내놓고 광고하지는 않지만 이런 서비스를 포함하는 자산관리 설계 서비스를 알리면서 최근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2012년 한 미국인 사업가는 UBS 은행에서 받은 세무법률 컨설팅이 부실했던 탓에 자신의 불법 탈세 혐의를 인정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막대한 ‘파나마 페이퍼스’ 문건(대부분 이메일) 유출의 여파로 이미 지난 4월 6일 아이슬란드의 시그뮌뒤르 다비스 귄뢰이그손 총리가 물러났다. 며칠 뒤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가족이 세운 조세 피난처를 통해 개인적인 이익을 취했음을 시인했다.
이번 문건 유출은 아시아·중동·남미 국가들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페루 대선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지난 4월 12일 사법 당국이 모색 폰세카의 리마 지국을 급습했다. 오는 6월 결선 투표에서 맞붙는 두 대선 후보가 연루됐기 때문이다.
헨리 대표는 “지금껏 아무도 이 문제에 실질적으로 취재 인력을 투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 비밀주의의 토대 위에 번영을 구가하고 금융정보 내부고발을 금지하는 법제도를 바탕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경우 형벌을 가할 수 있는 스위스 같은 나라가 대표적이다.”
- 리 맥그래스 굿먼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이재명 “‘국가폭력 범죄 공소시효 배제법’ 국회 통과 시 즉각 사인할 것”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이데일리
故 오요안나 가해자 지목 기캐, 끝내 결말은…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바람 불면 날릴 정도” 삼성, 업계 최고 수준 OLED 내놨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롯데카드부터 애경산업까지…내달 M&A 큰장 선다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파미셀, 줄기세포 치료제 업체에서 AI 첨단산업소재 업체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