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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맞은 베트남의 속내] 어제의 적 미국과 손 잡고 오늘의 적 중국에 맞선다

[오바마 맞은 베트남의 속내] 어제의 적 미국과 손 잡고 오늘의 적 중국에 맞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 25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에서 ‘동 남아시아 청년 지도자 이니셔티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이 5월 23일부터 베트남을 방문한 후 26일 일본 이세시마에서 서방7개국(G7) 정상회의를 열고 27일 히로시마를 찾았다. 두 나라 모두 과거에 미국과 격렬하게 전쟁을 치른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순방이 ‘과거와의 화해를 위한 아시아 방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AF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아시아 방문은 태평양전쟁과 베트남전이라는, 20세기 치러진 두 개의 전쟁에 따른 고통스러운 장을 매듭짓는 목적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과거의 적도 얼마든지 친구로 삼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는 셈이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것은 오바마까지 세 차례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처음으로 하노이를 방문했다. 2006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베트남을 찾았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의 베트남 방문에 대해 ‘클린턴의 베트남 방문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더욱 야심차다’라고 평가했다. 오마바 행정부가 과거 전쟁 때문에 생긴 적대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미래를 위한 새롭고 광범위한 협력관계를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더욱 야심차다’
하지만 미국의 속셈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갈수록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인 의도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펼친 가장 큰 선물 보따리는 미국이 1975년 베트남 통일 직후부터 시행하고 있는 무기금수조치의 해제다. 사실 베트남은 안보상으로는 중국의 세력과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면서도 경제적인 실리를 위해서는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개혁 개방을 먼저 시작해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지키면서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중국은 베트남의 벤치마킹 대상이기도 하다. 중국에 진출한 상당수 글로벌 업체들은 중국의 임금이 높아지고 노조 결성 등으로 노무관리가 힘들어지자 인건비가 더욱 싼 베트남 등지로 공장을 이전하는 ‘차이나+1’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많은 중국 업체들도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생산 기지를 옮겼다. 이를 통해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미국보다 중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새 베트남의 여러 중국계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면서 국민 사이에서 반중 정서가 커지고 있다.

더구나 남중국해 도서의 영유권 갈등이 증폭되면서 베트남은 정치·군사적으로 미국 쪽으로 급속도로 기울고 있다. 베트남전 종전 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처음으로 지난해 7월 미국을 방문했다. 게다가 올 해초 실시됐던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도 친중파가 견제 받아도 친미파가 급속도로 부상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파트너로 베트남을 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 군함들이 베트남 항구들에 잇따라 기항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양국 간 군사협력이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의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내면서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는 베트남에서 미국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앞으로 사회기반시설 개발 지원과 투자 확대 등 당근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베트남에 미국은 1위의 수출시장이고, 미국에 베트남은 동남아의 핵심 시장이자 군사적 거점이기 때문에 두 나라는 앞으로 더욱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오바마의 이번 베트남 방문은 양국이 서로 실익을 노리고 진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가 전혀 없었던 이유다. 미국은 전쟁은 전쟁이고, 국익을 위한 협력은 협력이라는 분리 원칙을 지키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이 베트남전쟁 때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 문제 언급이다. 미군은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1년부터 1971년까지 7200만ℓ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베트남에서 고엽제 피해자는 300만~480만 명으로 추정된다. 신장질환과 뇌수종, 지적 장애 등의 선천성 장애아가 수없이 태어난 것으로 학계에 보고됐다. 하지만 미국은 고엽제와 베트남인의 건강 이상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고엽제 피해자와의 만남 같은 이벤트도 없었다. 국익은 언급했지만 고엽제 문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오바마 베트남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계속돼왔던 무기금수조치의 사실상 해제다. 오바마가 베트남 정부에 안긴 최대의 선물이자 중국에 대한 회심의 일격이다. 미국은 2014년 베트남에 P3C 초계기를 팔기로 하는 등 무기 수출을 단계적으로 해제해왔지만, 첨단 군사장비 판매는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미국 의회 등에서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패권 확장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무기금수 해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베트남의 인권 상황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 전투기 가장 원해
미국이 대베트남 무기금수조치를 해제한 것은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나는 동남아 지역에서 새로운 군비경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우선 베트남은 그동안 사용해왔던 낡은 옛 소련제 무기체계를 대신해 비교적 최신형인 미국제 무기를 바탕으로 전력을 새롭게 증강할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동남아 지역에 새로운 미국의 무기 수출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베트남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의 전투기다. 이번에 무기금수조치가 사실상 해제되자마자 베트남은 발 빠르게 미국 전투기와 드론, 그리고 해군 장비의 도입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군사 전문 매체인 디펜스뉴스는 3월25일 미국 방위산업 소식통을 인용해 베트남이 미국산 F-16 전투기와 잠수함 공격용 어뢰를 장착해 잠수함 킬러로 이름 높은 P-3C 오라이언 대잠초계기, P-8A 포세이돈 대잠초계기(포세이돈) 및 해상정찰용 드론 등의 구매 가능성을 미국에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거론된 무기 체계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 남중국해에 대한 정보·감시·정찰(ISR) 역량을 확대하고 유사시 이 지역을 방어할 수 있는 공중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다. 특히 F-16은 다목적으로 활용할 있는데다 대당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이라 베트남이 공중 전력을 신속하게 증강할 수 있는 최선의 공중 무기체계로 평가된다. 베트남은 해안 및 해상을 감시할 수 있는 고성능 레이더 체계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미국산 무기체계를 구입하면 관련 훈련, 보수, 업그레이드를 위해 미국과 꾸준히 군사협력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동맹은 아니더라도 서로 속을 상당히 보여주는 관계로 진전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은 최대 무기 공급원이던 소련이 사라지고 중국이 갈수록 패권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남중국해 방어가 최대 국방 과제다. 이에 따라 자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한때 최대의 적이었던 미국과 손을 잡는 과감한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에 따르면 베트남은 오바마 행정부가 동남아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적용한 것과 동일한 방식인 잉여방위물자(EDA) 구매 형식으로 관련 무기체계를 도입하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2011년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아 EDA 방식으로 중고 F-16 C/D 24대를 들여와 실전 배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5대는 중국과의 분쟁 수역인 나투나 제도에 배치돼 있다. P-3C 대잠초계기도 지난 2013년 미국이 대만에 적용한 EDA 방식으로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베트남은 그동안 스웨덴과 해상초 계기와 공중조기경보기 도입을 논의했다. 에어버스와는 C-295의 해상 초계형, 록히드마틴의 C-130의 해상초계형인 시허큘리스 등의 검토를 각각 논의해왔다.
 베트남, 2020년까지 국방비 증액할 듯
중국에 맞서는 베트남 전력증강의 핵심은 공중전력 확대다. 베트남 공중 전력의 대부분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소련제 제트 전투기다. 베트남 공군의 핵심 전력은 1958년 옛 소련이 처음 실전 배치한 미그-21 전투기 144대와 1970년 실전 배치된 Su-22 38대 등이다. 음속으로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레이더 수준이나 전투력에서 한 시대 전의 무기체계에 불과하다. 국익이 걸려있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맞서기에는 절대 전력에서 열세다. 최근 Su-27 기종 12대와 Su-30MK2 36 대를 도입해 일선에 배치했지만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베트남은 지난해부터 스웨덴의 4세대 전투기인 사브 JAS-39E/F(그레펜 NG)나 유럽연합(EU) 유로파이터 등 유럽 군수업체들을 접촉해 도입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러면서 미국과도 무기수출 금지가 해제되는 것을 전제로 단발 엔진의 F-16은 물론 쌍발 엔진으로 추력이 더 좋은 F-18E/F의 구매 가능성을 줄기차게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한국 항공우주가 개발한 초음속 경공격기인 FA-50 전투기의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디펜스뉴스는 베트남이 3000만 달러를 들여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고주파 표면파 레이더 도입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베트남은 러시아로부터 배수량 3000t 정도의 킬로급 잠수함 6척을 도입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2005년 개발한 최신 자수함으로 척당 2억~2억5000만 달러나 되는 고가의 무기체계다. 깊지 않은 바다에서 적국의 수상함과 잠수함에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간단히 말해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상 전력에 대응하는 것이 이 잠수함의 전략적 목적이다.

문제는 고가의 잠수함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베트남이 미제 무기를 새로 구입할 능력이 있느냐다. 영국 국방정보업체인 IHS제인스의 자료를 바탕으로 했을 때 베트남의 올해 국방비 지출은 50억 달러(약 5조9440억원) 정도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해 베트남은 국방비에 군비 지출 규모를 총 정부 지출의 8%에 해당하는 44억 달러(5조2천307억 원)로 추정했다. 국방비 규모로 보면 킬로급 잠수함 구입에 10억 달러 이상의 국방비를 쏟아 부은 베트남이 다시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할 여력이 있을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2020년까지 국방비를 62억 달러(약 7조3700억원)로 늘릴 것으로 IHS제인스는 전망했다. 늘어난 국방비의 상당수는 미국산 무기 구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의 미제 무기 도입에 따른 군비확장은 중국에 압박을 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동남아 국가에도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눈길이 가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에 따르면 인구 540만 명인 싱가포르의 2013년 국방비는 97억5900만 달러다. 국내총생산(GDP) 2979억4100만 달러의 3.3%이고 정부 예산의 25%다. 동아시아에서 중국(1884억 달러)·일본(486억400만 달러)·한국(339억3700만 달러)·대만(105억300만) 다음이다. 한국의 국방비가 GDP 2.42%임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국방치 지출 비율이다. 한때 GDP의 4.9%까지 지출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3000만 인구의 60% 이상이 무슬림인 말레이시아와 2억5200만 인구의 87.2%가 무슬림인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 인도네시아에 둘러싸였다. 이런 싱가포르가 독립과 번영, 그리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선 ‘군사강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레서 싱가포르군은 건국 초 이스라엘의 도움으로 군대를 건설하면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징병제 국가라는 점이 그 하나다. 모든 남자는 18세가 되면 입대해 사병은 22~24개월, 장교는 3년 복무한다. 인구가 540만인데 병력이 7만1600명이다. 인구의 1.33%다. 90만에 이르는 예비군을 운용하는 것도 닮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싱가포르의 공군력이다. 싱가포르는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공군력에 집중 투자했다. 전체 1만3500명의 공군 병력에 143대의 항공기를 보유한다. 한국 공군이 60대를 가진 F-15 전투기가 무려 32대나 있다. 이를 조만간 40대로 늘릴 예정이다. F-16 74기와 F-5 41기도 운용한다. 20대의 아파치 헬기에 107대의 이스라엘제 무인 정찰기까지 갖췄다. 국토가 좁아 군 훈련이 어렵자 1975년 대만과 군사협정을 맺고 현지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90년 정식 수교한 뒤에도 변함이 없다. 중국이 남부 하이난섬에 부지를 줄 테니 옮기라고 권유했지만 듣지 않고 있다. 싱가포르 공군은 미국·호주·프랑스와 협약을 맺고 해외 훈련장을 이용한다. 심지어 공군 130비행대는 호주 서부 퍼스에, 126비행대는 호주 퀸즐랜드에, 150비행대는 프랑스 남부 카조에 각각 본부를 두고 있다. 장비와 훈련 모두에서 막강 공군의 모습이다.
 베트남 공군력 증강되면 주변국은 불편한 동거
베트남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산 F-16 전투기, P-3C 대잠초계기, 러시아산 킬로급 잠수함(왼쪽부터).
이웃 말레이시아의 공군은 러시아제 수호이-30 18대, 미그-2912대, 미국제 F/A-18 8대, F-5 18대, 영국제 경공격기 호크 20대를 갖췄다. 인도네시아 공군은 러시아제 수호이-27 5대, 수호이-30 11대, 미국제 F-16 15대, F-5 9대 영국제 호크 14대를 운용한다. 물량으로 보면 싱가포르가 두 이웃 나라를 합친 것과 필적하는 전력을 보유했다. 인근의 베트남이 다수의 미제 F-16를 갖춘다면 이들 나라들은 불편해 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손잡고 중국에 맞서겠다는 베트남의 미래 전략 앞에 등장한 동남아의 딜레마다.

-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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