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얼음의 땅’ 그린란드 여행기를 싣는다. 한반도 10배 크기의 땅에 인구는 고작 5만5847명, 중앙아시아서 이주한 몽골 인종이 선조들로 한국인들과도 많이 닮았다. 그린란드 일루리사트의 빙산은 기암괴석 그 자체였다. 빙산은 깎아놓은 듯, 잘라놓은 듯, 쪼개놓은 듯 저마다 다른 형상으로 서 있었다.5월12일, 인천에서 9시간30분을 날아간 뒤 3시간30분 더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인천에서 아이슬란드까지 직항편이 없기에 먼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들러야 한다. 이곳까지 가는 데만 대기시간을 포함해 꼬박 15시간이 걸린다. 멀고도 먼 땅이지만 최근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슬란드가 소개된 뒤로 공항 곳곳에서 한국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올라푸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은 기자에게 “한국이 아이슬란드에 친근감을 느끼는 현상이 매우 반갑고 고맙다”고 했다.
영국의 서북쪽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눈과 얼음의 땅’ 그린란드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 중 하나다.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3시간30분쯤 더 날아가야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Nuuk)에 이른다. 레이캬비크에서 누크로 가는 비행기는 70~80년대 시골 완행버스 분위기였다. 프로펠러기인 이 비행기는 정원 41명에 시속도 300㎞ 남짓이다. 2시간 30~40분쯤 갔을까.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스튜어디스는 조종실 문을 열고 음료와 간식을 건넨 뒤 부기장과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스튜어디스라기보다 ‘안내양 누나’ 같았다. 스튜어디스가 조종실 문을 닫고 나온 뒤 비행기는 곧바로 착륙 준비에 들어갔으니 두 사람의 ‘수다’는 족히 30분을 넘겼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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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에 섭씨 15도 온난화 ‘실감’
매일 오전 누크 시내에 들어서는 시장.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물건값을 흥정하고 있다.드디어 ‘눈과 얼음의 땅’ 그린란드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버스 차창 밖으로 누크 시내가 펼쳐졌다. 이 땅의 주인은 대부분 이누이트(Inuit)라고 불리는 에스키모인들이다. 그 옛날 시베리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로부터 넘어온 그들의 선조는 우리와 닮은 몽골 인종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알래스카·캐나다·덴마크 등에서 이주해온 서양 사람들과 섞였다. 누크 시내를 걷다 보면 우리와 닮은 사람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그린란드는 국토 216만㎢ 가운데 80% 이상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땅의 대부분은 북극권 안에 있다. 그러다 보니 도시와 도시가 선(線)이 아닌 점(点)으로 연결돼 있다. 고속도로 건설이 불가능한 만큼 교통수단은 항공편이 유일하다. 한반도의10배에 이르는 넓은 땅에 인구는 5만5847명(그린란드 정부 공식통계)뿐이다. 주민들의 88%는 이누이트 혹은 이누이트-덴마크계 혼혈이고 12%는 유럽계로 파악된다. 언어는 그린란드어·덴마크어·영어를 쓴다. 종교는 루터파 기독교가 대부분이다.
그린란드를 덮고 있는 얼음의 두께는 평균 1500m, 최고 3000m가 넘는다. 만일 그린란드의 얼음층이 전부 녹는다면 지구 해수면이 7m 이상 높아져 해안에 자리한 세계 주요 대도시의 3분의 2가 물에 잠길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특히 올해는 온난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예년 같으면 5월 중순에도 누크 시내에 눈이 제법 쌓여 있었겠지만 올해는 4월 하순에 이미 다 녹았다고 한다. 5월 들어 낮 최고기온이 섭씨15도를 상회하는 날도 많았다. 눈을 구경하려면 산에 올라야 했다.
온난화를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여름이 길어지고 더운 날이 많아지면서 그린란드는 예전에 없던 풍요를 누리고 있다. 관광객과 연해(沿海)에 어종(魚種)이 늘었다. 반면 유빙들 때문에 조업일수는 현저히 줄어드는가 하면 전에 잡히던 어종이 실종되기도 했다. 온난화의 ‘빛과 그림자’다. 그린란드는 1979년 자치 의회를 세우기 전까지 덴마크 영토였으나 2009년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국방·외교권은 여전히 덴마크 정부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 독립국이라고는 하지만 재정의 50% 이상(33억 덴마크 크로네=약5900억원)을 덴마크로부터 원조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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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암 덩어리 바위산 위의 집들
누크 시내에 조성된 개인주택들. 빨강·파랑·노랑· 초록 등 형형색색이 인상적이다.누크 시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바위산과 빨강·파랑·초록·노랑 등 알록달록한 집들이다. 나무 한 그루 자라기 힘든 화산암 덩어리의 바위산 위에 어떻게 집들을 지었는지, 왜 저렇게 화려한 색상을 썼는지 궁금했다.
이누이트 아버지와 덴마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야콥 이스보세스센 산업통상외교부 과장의 말이다. “전통적으로 병원은 노란색, 쇼핑센터나 우체국은 빨간색으로 지었습니다.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색깔만으로도 건물을 구분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였죠. 그린란드는 암반 등으로 인해 건축비가 굉장히 비쌉니다. 건축비를 낮추기 위해 외벽을 부실하게 시공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외벽 두께 등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요.”
그린란드에도 주말이 찾아왔다. 토요일 오후가 되니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형마트에서는 ‘없는 것 빼고’는 다 팔았다.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에 서양 음식과 식재료가 주를 이뤘지만 라면·냉동볶음밥 등 동양 음식도 눈에 띄었다. 한국이나 일본 제품은 없었지만 태국 라면은 지천이었다. 고작 1만6000명이 사는 누크 시내에만 태국 식당이 2곳이나 있을 정도로 이곳에서 태국 음식은 인기다. 태국·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까지 많이 온 데다 그들의 음식이 원주민들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국 식당에 들러 카레에 쌀밥 한 술 비벼먹으니 어느 정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누크에서 가장 큰 호텔인 ‘한센 에게드’의 길 건너편에는 거의 매일 장이 선다. 한국의 오일장과 비슷하다. 점심 전에 서는 장은 오후 5~6시까지 이어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두 사람이 좌판을 깔다 보면 노점은 어느새 10여 개가 된다. 털실로 짠 장갑과 바지·셔츠 등을 파는 옷가게, DVD를 파는 길거리 비디오숍, LP레코드 가게, 머리핀과 반지·귀걸이를 파는 액세서리 가게, 대구·광어(핼리벗) 등을 파는 어물전 등이 있다. 빛바랜 표지의 루이 암스트롱의 LP 1장이 75덴마크 크로네, 우리 돈으로 1만3500원쯤 한다.
누크에서 일주일 동안의 일정을 마친 뒤 4500여 명이 사는, 그린란드 내 세 번째 도시인 일루리사트로 이동했다. 일루리사트에는 현대식 이글루가 있다. 하룻밤 자는 데만 30만원 이상이다. 북극의 바다와 빙산을 병풍 삼아 잠들 수 있다. 북위 66도 33분부터 북극까지가 북극권이다. 북극권에 있으면 1년 중 최소 하루에서 많게는 다섯 달 동안 해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여름엔 백야(白夜), 겨울엔 흑주(黑晝)가 생기는 지역이다. 일루리사트는 북위 69도에 위치해 있다. 일행이 찾은 5월 하순에 이미 백야가 시작됐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진다’는 말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해가 하루 종일 머리 위로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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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지지 않는다?
오빌리마크 씨는 수많은 관광객을 상대하지만 동양인, 특히 한국인을 보면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진다고 했다.일루리사트에서는 빙하 크루즈를 놓칠 수 없다. 오후 1시30분 항구를 출발한 배는 유빙(流氷) 사이를 유유히 빠져 나갔다. 높이가 5m 이상이면 빙산, 그 이하면 유빙이라고 한다. 빙산은 깎아놓은 듯, 잘라놓은 듯, 쪼개놓은 듯 저마다 다른 형상으로 서 있었다. 그 자체로 스핑크스·사자·호랑이·물개·거북이·용이었다. 현실의 동물이든, 상상의 동물이든 모두 빙산으로 표현된 듯했다.
북극의 바다 위에서 간간이 마주치는 고깃배는 객지에서 만난 오랜 벗만큼이나 반가웠다. 망망대해를 2시간쯤 갔을까. 사방 온 하늘이 시커멓게 물들더니 이내 빗방울이 쏟아졌다. 일행은 적잖이 놀랐지만 일생을 바다에서 보낸 여든 살 노(老)선장은 미동도 없었다. “바다가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와 내 가족을 먹고 살게 해준 바다가 그저 고마울 뿐”이라며 웃었다.
잠시 배를 멈춘 선장은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내왔다. 선장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빙산 중 작고 깨끗한 것을 골라 커피를 끓였다”고 했다.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一角)’으로 만든 커피였다. 북극의 빙산으로 커피를 맛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튿날 다시 배를 타고 일루리사트의 전통마을 일리마나크로 갔다. 이곳은 개썰매로 유명한 곳이다. 주민은 500명인데 개가1000마리라고 하니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개썰매만으로 1만2000㎞를 횡단해서 북극점에 발을 디뎠던 일본인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는 “그린란드의 썰매개는 같은 북극권 개들 가운데 가장 강인하고 충성심이 강하다”고 했다. 얼핏 보면 진돗개처럼 생겼지만 녀석들은 덩치가 훨씬 더 크고 울음소리는 늑대와 비슷했다. 여름철에 개들은 푹 쉰다. 방학인 셈이다. 밥은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인다. 배가 부르면 ‘서열 본능’이 살아나 서로 물어뜯고 싸운다. 주민들이 잡은 광어 중 큰 것은 사람들이 먹고 작은 것은 말려서 개에게 먹인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이 마을을 개척했다는 주민 우이 오빌리마크 씨와 그의 아내 애니 씨는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그의 집은 전망이 매우 좋은 ‘호화주택’이었다. 부부는 우리 일행에게 고래고기 수프를 내놓았다. 비릴 것 같아 조금 망설여졌지만 막상 먹어보니 꽤 고소했다. 요즘에야 당근·양파 등 채소를 듬뿍 넣지만 옛날에는 고래고기에 소금만 넣고 끓였다고 한다.
오빌리마크 씨는 수많은 관광객을 상대하지만 동양인, 특히 한국인을 보면 왠지 모를 친숙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닻을 올린 뒤 점점 멀어지는 우이 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숙였다. 목례는 동양식 인사법이다. 특히 정중한 목례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예법이다. 그린란드에서도 목례는 전통예법이라고 한다. 우리와 많이 닮은 오빌리마크 씨. 어떤 인연으로 그를 지구 반대편에서 만났을까.
- 그린란드=글·사진=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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