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의술 ‘바꿔치기’
아름다운 의술 ‘바꿔치기’
DNA: 질병을 유발하는 잘못된 유전자를 건강한 것으로 교체…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벤처투자업체 투자 급증 도미닉 게슬러는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실험용 쥐 두 마리를 들어 올렸다. 셰리 엡스타인은 주춤거렸지만 게슬러가 그녀를 설득해 손을 내밀도록 했다. 그가 엡스타인의 손에 쥐들을 내려놓자 그 두 마리는 손바닥 위를 빙빙 돌며 그녀의 손을 간지럽혔다. “어느 쥐가 카나 반병을 앓았는지 알 수 있겠느냐”고 게슬러는 물었다.
그로부터 몇 ㎞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에 위치한 엡스타인의 집엔 한 젊은 여성이 침상에 누워 있다. 그녀의 야윈 팔 다리는 구부러진 채로 미동도 없었고,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가 베개 너머로 뻗쳐 있다. 엡스타인의 딸 레이첼(17)이다. 레이첼은 치명적인 뇌 질환인 카나반병을 지니고 태어났다. 갓 태어났을 때 레이첼은 소리를 지르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유아기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잠만 잤다. 생후 6개월이 지나고도 머리를 들어올리지 못하자 치료사는 뇌성마비를 의심했다. 엡스타인은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그러나 레이첼은 부모로부터 ASPA라 불리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물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한 ASPA 유전자가 없는 한 레이첼의 세포는 뇌 속의 산(acid)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생성하지 못한다. 그러면 산이 뉴런을 보호하는 뇌 속 절연체를 서서히 파괴하며, 뇌 백질(white matter)을 액체로 가득한 스펀지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레이첼은 말을 하지도, 팔 다리를 움직이거나 여타 신체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게 됐다.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그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다.
현재 카나반병의 치료법은 없다. 그러나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에서 엡스타인은 레이첼과 같은 병을 갖고 있던 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금은 손바닥 위에서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쥐를 말이다. 몇 주 전 그 쥐는 게슬러 연구실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미생물학자 가오광핑이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를 정맥에 주입받았다. 이 치료제는 가오의 23년 유전자 치료 경력이 맺은 결실이다.
가오는 자신이 개발한 치료제가 연구실 밖에서 사용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유전자 치료 분야엔 환자의 사망 등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년 간 신경과학 분야에서 유전자 치료가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유전자 치료야말로 수많은 뇌 질환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약이 개발될 가능성을 확인한 노바티스, 샤이어, 아스트라제네카, GSK 등 거대 제약사들도 속속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20여 개 생명공학 업체가 유전자 치료 기술을 개발 중이다. 유전자를 직접 조작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업체도 있다. 3개 유전자 치료업체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업체 서드락벤처스의 공동설립자 케빈 스타는 “유전자 치료는 급속도로 발전한다”며 “머지 않아 주류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유전자 치료 개념은 아주 명확하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질병을 유발한 잘못된 유전자를 건강한 것으로 교체함으로써 치료한다는 것이다. 초기 단계였던 1900년대 인간 유전자 치료 실험은 중증복합형면역부전증(SCID)을 가진 두 소녀에게 환자 본인의 백혈구 세포를 조작 후 투입해 잘못된 유전자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실험은 성공했다. 두 소녀의 면역 체계는 복원됐고, 이후 그들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
가오는 1993년 처음 카나반병 환자를 만났다. 카나 반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한 그의 공로를 축하하는 파티에서다. 카나반병에 걸린 6세 소년이 가족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가오에게 다가갔다. 가오의 연구에 조직세포를 기증했던 소년이었다. “그 아이의 DNA가 내 손바닥 위에 있었다. 나는 그 DNA에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밝혀냈다”고 가오는 돌이켰다. 당시 그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러나 치료법까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때 난 남은 생애를 카나반병 치료법 개발에 헌신하리라고 느꼈다”고 가오는 말했다. “방법은 오직 유전자 치료밖에 없다.”
유전자 치료는 유전적 뇌질환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우선 대부분의 약은 뇌를 보호하는 혈액 뇌관문(blood-brain barrier)을 돌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건강한 유전자를 주입한 바이러스처럼 작은 물질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게다가 뇌는 부분별로 철저히 구분됐기 때문에 유전자 치료의 위험도 최소화된다. 폐나 간 같은 다른 신체 장기가 피해 입을 걱정은 없다.
1990년대 초반 가오는 개인 연구실도 없는 학생이었다. 그는 유전자 치료계의 떠오르는 샛별인 펜실베니아대학의 제임스 왓슨을 찾아갔다. 가오는 13년 동안 윌슨 밑에서 일하며 유전자 치료에 적합한 새 바이러스를 개발했다. 바이러스 매개체라 불리는 이 분자 형태의 ‘택배 차량’은 건강한 유전자를 담아 신체 내의 필요한 부위까지 배송할 수 있다.
가오의 판단은 시의적절했다. 1999년까지 미국에선 155건이 넘는 유전자 치료 임상실험이 허가됐다. 암부터 혈액질환까지 분야는 다양했다. 윌슨은 실험실을 벗어나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개시했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조작해 다섯 건의 연구를 실시했다. 그 실험 대상 중 하나는 제스 겔싱어라는 10대였다.
유전적 간 질환을 약품과 식이요법으로 억제해왔던 겔싱어는 자신과 같은 병에 더 심하게 걸린 어린이들을 위한 치료법 개발을 돕기 위해 실험에 자원했다. 겔싱어가 1999년 9월 유전자 치료를 받았을 때 아데노바이러스 매개체는 맹렬한 면역 반응을 유발했고, 그 결과 그의 간과 폐가 손상됐다. 4일 뒤 겔싱어는 사망했다.
겔싱어의 죽음으로 미국에선 유전자 치료 후원과 연구가 중단됐다. 유럽에선 2000년 유전자 치료로 SCID 어린이 20명을 치료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연구가 계속 됐다. 그러나 수년 뒤 그중 5명이 백혈병에 걸려 1명이 사망했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치료 연구를 그만뒀다. 가오는 겔싱어의 임상실험에 직접 연관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 얘기를 꺼린다. 그저 윌슨의 잘못이 아니라고만 말할 뿐이다. 가오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보다 안전한 바이러스 매개체를 찾아 연구를 계속했다.
가장 유망한 후보는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AV)다. 아데노바이러스가 있는 곳에서 생겨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다. AAV는 인간 세포에 도달하기가 아데노바이러스처럼 효율적이진 않지만 훨씬 안전하다. 인간 면역 체계는 AAV의 외피를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또 AAV는 인간 세포 유전체와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SCID 환자들이 겪었던 백혈병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2008년 가오는 매사추세츠대학에 새로 설립된 유전자치료센터의 센터장으로 부임했다. 엡스타인이 이 건물을 찾았을 땐 아직 벽에 칠한 페인트가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 건물의 시간제 근무 직원이었던 엡스타인은 지역 신문에서 가오를 알게 됐다. 그녀는 가오를 찾아가 자신을 소개하고 레이첼이 과거에도 유전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음을 설명했다. 5년 전 의사들은 사상 첫 카나반병 유전자 치료를 시도하면서 레이첼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여섯 개 내고 흡입관을 설치한 뒤 뇌 속으로 약을 직접 주입했다. 안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첫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엡스타인은 레이첼을 데리고 연구실을 찾았다. 가오는 다시 한 번 절박한 부모와 죽어가는 아이 앞에 서게 됐다.
당시 세계에 유일하게 허가된 유전자 치료는 중국의 항암치료제뿐이었다.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은 유전자 치료의 안전과 효과에 매우 회의적이다. 가오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성급히 임상실험을 시도한 선배들의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그는 그로부터 8년 동안 실험실에서 연구에 골몰하며 카나반병을 치료할 새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했다. 카나반병에 걸린 쥐 수백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데 정부와 대학의 후원금 200만 달러(약 23억원) 이상을 썼다.
신경외과의를 목표로 공부 중인 젊은 독일 과학자 게슬러는 2012년 가오의 프로젝트에 참가해 치료법을 최적화하는 작업을 주도한다. 뇌에 주입할 이상적인 AAV 매개체 후보군을 좁히고(현재 AAV9가 선정됐다) 이전보다 10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유전자 구조를 개량했다. 최신 유전자 치료법은 뇌로 주입하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게슬러는 약을 혈관에 주입해 혈액 뇌 관문을 뚫고 뇌 어디든 보낼 수 있다. 이젠 두개골에 구멍을 뚫을 필요가 없다.
게슬러는 최적화된 치료법을 처음으로 살아 있는 동물에 실험했을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그는 새로 개발한 약을 어리고 병든 쥐에 주입했다. 근육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웅크리고 있던 쥐였다. 게슬러가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는 웅크리고 있던 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 이름표를 잘못 붙였나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잘못된 것은 없었다. 그 쥐는 다른 쥐들처럼 건강하게 우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치료법은 카나반병에 걸리도록 조작된 쥐 두 종을 치료했다. 보존된 세포조직과 바이러스로 가득찬 냉동고 10여 개가 가오의 연구실 앞에 길게 줄 서 있다. “우리는 치료법을 찾았다. 이제 준비가 다 됐다”고 가오는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은 재정 문제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오는 첫 임상실험을 하는 데 100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잠재적인 수익성은 이미 생명공학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오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기업이 이미 그와 접촉했다.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의 보이저세라퓨틱스의 사무실은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모습이다. 투명한 유리 문, 화이트보드 벽, 미니멀리즘적인 오렌지색 장식에 무료 다과가 비치된 공용 공간도 있다. 커피 냄새와 돈 냄새가 함께 풍기는 곳이다.
그러나 IT스타트업과 달리 이 사무실은 양쪽으로 현미경과 바이러스가 가득한 연구실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회사는 파킨슨병, 헌팅턴 무도병, 루게릭병 등 중추신경계 질환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한다. 스티븐 폴 CEO는 제약업체에서 35년간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종사하며 유전자 치료가 겪는 시련을 지켜봤다. 그는 이제야 유전자 치료의 때가 도래했다며 열의를 불태운다.
투자자들도 동의한다. 벤처투자업체들은 2010년 이후로 유전자 치료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뇌 질환 치료가 단연 중심이다. 지난 2월 창업 1주년이 된 보이저는 미 제약업체 젠자임과 선불 1억 달러, 향후 성과에 따라 최대 7억4500만 달러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4월엔 투자자들로부터 6000만 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오는 11월엔 투자자 공개 모집을 통해 8100만 달러를 추가로 모금할 계획이다. 희귀 안구 질환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하는 필라델피아 소재 스파크세라퓨틱스는 설립 2년만에 기업공개(IPO)를 하고 2억6800만 달러 투자를 받았으며 제약업체 화이자와 대규모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블루버드 바이오는 지난해 8억6600만 달러 상당의 투자를 받았다.
그동안 거대 제약회사는 희귀병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희귀병 시장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고 폴 CEO는 말했다. 그러나 가격만 잘 정하면 적은 수의 환자에게만 판매되는 치료제라도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다. 유럽에서 최초로 승인된 유전자 치료제 질베라는 주사 1회 당 140만 달러로 책정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보건당국과 보험업체들은 이 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고심 중이지만, 시장이 존재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전자 치료에 투자가 밀려들자 일부 연구자들은 정부 지원 대신 벤처캐피털의 투자에 의존한다. 1980년대 최초로 유전자 치료용 AAV를 개발한 R 주드 새멀스키는 최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생명공학업체 뱀부세라퓨틱스를 설립하며 투자 열기에 합류했다. 이 업체는 뒤센 근위축증, 카나반병, 프리드라이히 운동실조, 거대 축색돌기 신경병증 등 희귀 유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 내년부터 임상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유럽에선 유전자 치료법 허가가 늘고 있다. 지난 4월엔 SCID 치료법 허가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의 업계 관계자들은 긍정적인 임상실험 데이터를 기다린다. “2년 내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유전자 치료제가 나올 것”이라고 가오는 말했다. “틀림없다.” 그 첫 대상은 안구질환 치료제가 될 듯하다. 지난해 10월 스파크는 선천적 맹인 21명의 시력을 성공적으로 회복시키면서 최종 단계 직전인 3단계 임상실험을 통과했다. 올해 내로 FDA 승인을 받는 것이 목표다.
블루버드는 로렌조 오일병이라고도 불리는 부신백질 형성장애증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병은 카나반병처럼 뇌 속 백질에 이상을 일으킨다. 이 회사의 렌티D 치료법은 체외에서 실시되는데, 우선 환자의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를 뽑아내 유전자 치료법으로 치료한 뒤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다시 환자의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치료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 접근법은 유전자 하나 이상에 문제가 있거나 원인이 불명인 경우엔 효과가 적다.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질환들은 증상이 완화되긴 하지만 치료는 안 된다.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떤 치료를 받든 항상 효과와 위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폴 CEO는 말했다. “우리는 치료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질병만 표적으로 삼는다.”
카나반병을 앓는 어린이 대부분은 열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지만 20·30대까지 생존하는 사례도 있다. 가오와 게슬러는 자신들의 치료법이 돌연변이 판정을 받은 신생아에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지만, 레이첼처럼 보다 나이 많은 카나반병 환자도 잊을 수는 없다. 게슬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보다 나이 많은 쥐도 실험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얼마나 나이 들고 병이 진행된 쥐까지 치료할 수 있을까? 게슬러는 6주(인간 나이로 10대), 12주(인간 나이 성인), 24주(인간 나이 장년)된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지난 2월의 어느 춥고 맑은 날, 나는 가오의 건물 6층 사무실에서 게슬러를 만났다. 그는 웃고 있었다. “방금 생후 6주차에 치료 받은 쥐들에 대한 1년치 자료를 손에 넣었다”고 게슬러는 말했다. “그 쥐들은 모두 정상이다.”
게슬러와 만난 뒤 나는 북쪽으로 1시간 동안 달려 레이첼이 사는 아동요양원을 찾았다. 레이첼은 보라색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다. 발 아래엔 유니콘 모양 베개가 보였다. TV에선 드라마 ‘프렌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엡스타인은 레이첼의 손톱을 칠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TV화면을 레이첼에게 더 가깝게 움직였다. “레이첼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엡스타인은 말했다. 그녀는 약간의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더 나이 든 쥐를 치료하는 게슬러의 실험 결과에 대해 물었다. 엡스타인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이첼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엡스타인은 항상 자녀에게 가장 좋은 길을 원한다. 쥐 실험 결과를 들려주자 그녀는 미소 지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엡스타인은 다시 딸의 손톱을 칠하기 시작했다. 밝은 분홍색이었다.
- 메간 스쿠들라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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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에 위치한 엡스타인의 집엔 한 젊은 여성이 침상에 누워 있다. 그녀의 야윈 팔 다리는 구부러진 채로 미동도 없었고, 곱슬곱슬한 붉은 머리가 베개 너머로 뻗쳐 있다. 엡스타인의 딸 레이첼(17)이다. 레이첼은 치명적인 뇌 질환인 카나반병을 지니고 태어났다. 갓 태어났을 때 레이첼은 소리를 지르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유아기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잠만 잤다. 생후 6개월이 지나고도 머리를 들어올리지 못하자 치료사는 뇌성마비를 의심했다. 엡스타인은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그러나 레이첼은 부모로부터 ASPA라 불리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물려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건강한 ASPA 유전자가 없는 한 레이첼의 세포는 뇌 속의 산(acid)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생성하지 못한다. 그러면 산이 뉴런을 보호하는 뇌 속 절연체를 서서히 파괴하며, 뇌 백질(white matter)을 액체로 가득한 스펀지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레이첼은 말을 하지도, 팔 다리를 움직이거나 여타 신체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게 됐다. 종종 발작을 일으키는 그녀는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거의 없다.
현재 카나반병의 치료법은 없다. 그러나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에서 엡스타인은 레이첼과 같은 병을 갖고 있던 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금은 손바닥 위에서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쥐를 말이다. 몇 주 전 그 쥐는 게슬러 연구실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미생물학자 가오광핑이 개발한 유전자 치료제를 정맥에 주입받았다. 이 치료제는 가오의 23년 유전자 치료 경력이 맺은 결실이다.
가오는 자신이 개발한 치료제가 연구실 밖에서 사용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유전자 치료 분야엔 환자의 사망 등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년 간 신경과학 분야에서 유전자 치료가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 과학자들은 유전자 치료야말로 수많은 뇌 질환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약이 개발될 가능성을 확인한 노바티스, 샤이어, 아스트라제네카, GSK 등 거대 제약사들도 속속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20여 개 생명공학 업체가 유전자 치료 기술을 개발 중이다. 유전자를 직접 조작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업체도 있다. 3개 유전자 치료업체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업체 서드락벤처스의 공동설립자 케빈 스타는 “유전자 치료는 급속도로 발전한다”며 “머지 않아 주류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의 질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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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는 1993년 처음 카나반병 환자를 만났다. 카나 반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발견한 그의 공로를 축하하는 파티에서다. 카나반병에 걸린 6세 소년이 가족들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가오에게 다가갔다. 가오의 연구에 조직세포를 기증했던 소년이었다. “그 아이의 DNA가 내 손바닥 위에 있었다. 나는 그 DNA에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밝혀냈다”고 가오는 돌이켰다. 당시 그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러나 치료법까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때 난 남은 생애를 카나반병 치료법 개발에 헌신하리라고 느꼈다”고 가오는 말했다. “방법은 오직 유전자 치료밖에 없다.”
유전자 치료는 유전적 뇌질환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우선 대부분의 약은 뇌를 보호하는 혈액 뇌관문(blood-brain barrier)을 돌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건강한 유전자를 주입한 바이러스처럼 작은 물질은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게다가 뇌는 부분별로 철저히 구분됐기 때문에 유전자 치료의 위험도 최소화된다. 폐나 간 같은 다른 신체 장기가 피해 입을 걱정은 없다.
1990년대 초반 가오는 개인 연구실도 없는 학생이었다. 그는 유전자 치료계의 떠오르는 샛별인 펜실베니아대학의 제임스 왓슨을 찾아갔다. 가오는 13년 동안 윌슨 밑에서 일하며 유전자 치료에 적합한 새 바이러스를 개발했다. 바이러스 매개체라 불리는 이 분자 형태의 ‘택배 차량’은 건강한 유전자를 담아 신체 내의 필요한 부위까지 배송할 수 있다.
가오의 판단은 시의적절했다. 1999년까지 미국에선 155건이 넘는 유전자 치료 임상실험이 허가됐다. 암부터 혈액질환까지 분야는 다양했다. 윌슨은 실험실을 벗어나 인체를 대상으로 실험을 개시했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아데노바이러스를 조작해 다섯 건의 연구를 실시했다. 그 실험 대상 중 하나는 제스 겔싱어라는 10대였다.
유전적 간 질환을 약품과 식이요법으로 억제해왔던 겔싱어는 자신과 같은 병에 더 심하게 걸린 어린이들을 위한 치료법 개발을 돕기 위해 실험에 자원했다. 겔싱어가 1999년 9월 유전자 치료를 받았을 때 아데노바이러스 매개체는 맹렬한 면역 반응을 유발했고, 그 결과 그의 간과 폐가 손상됐다. 4일 뒤 겔싱어는 사망했다.
겔싱어의 죽음으로 미국에선 유전자 치료 후원과 연구가 중단됐다. 유럽에선 2000년 유전자 치료로 SCID 어린이 20명을 치료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연구가 계속 됐다. 그러나 수년 뒤 그중 5명이 백혈병에 걸려 1명이 사망했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치료 연구를 그만뒀다. 가오는 겔싱어의 임상실험에 직접 연관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 얘기를 꺼린다. 그저 윌슨의 잘못이 아니라고만 말할 뿐이다. 가오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보다 안전한 바이러스 매개체를 찾아 연구를 계속했다.
가장 유망한 후보는 아데노 연관 바이러스(AAV)다. 아데노바이러스가 있는 곳에서 생겨나지만 완전히 다른 종류다. AAV는 인간 세포에 도달하기가 아데노바이러스처럼 효율적이진 않지만 훨씬 안전하다. 인간 면역 체계는 AAV의 외피를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또 AAV는 인간 세포 유전체와 결합하지 않기 때문에 SCID 환자들이 겪었던 백혈병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2008년 가오는 매사추세츠대학에 새로 설립된 유전자치료센터의 센터장으로 부임했다. 엡스타인이 이 건물을 찾았을 땐 아직 벽에 칠한 페인트가 마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 건물의 시간제 근무 직원이었던 엡스타인은 지역 신문에서 가오를 알게 됐다. 그녀는 가오를 찾아가 자신을 소개하고 레이첼이 과거에도 유전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음을 설명했다. 5년 전 의사들은 사상 첫 카나반병 유전자 치료를 시도하면서 레이첼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여섯 개 내고 흡입관을 설치한 뒤 뇌 속으로 약을 직접 주입했다. 안전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첫 만남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엡스타인은 레이첼을 데리고 연구실을 찾았다. 가오는 다시 한 번 절박한 부모와 죽어가는 아이 앞에 서게 됐다.
당시 세계에 유일하게 허가된 유전자 치료는 중국의 항암치료제뿐이었다.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은 유전자 치료의 안전과 효과에 매우 회의적이다. 가오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성급히 임상실험을 시도한 선배들의 실수를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그는 그로부터 8년 동안 실험실에서 연구에 골몰하며 카나반병을 치료할 새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했다. 카나반병에 걸린 쥐 수백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하는 데 정부와 대학의 후원금 200만 달러(약 23억원) 이상을 썼다.
신경외과의를 목표로 공부 중인 젊은 독일 과학자 게슬러는 2012년 가오의 프로젝트에 참가해 치료법을 최적화하는 작업을 주도한다. 뇌에 주입할 이상적인 AAV 매개체 후보군을 좁히고(현재 AAV9가 선정됐다) 이전보다 10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유전자 구조를 개량했다. 최신 유전자 치료법은 뇌로 주입하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게슬러는 약을 혈관에 주입해 혈액 뇌 관문을 뚫고 뇌 어디든 보낼 수 있다. 이젠 두개골에 구멍을 뚫을 필요가 없다.
게슬러는 최적화된 치료법을 처음으로 살아 있는 동물에 실험했을 때를 결코 잊지 못한다. 그는 새로 개발한 약을 어리고 병든 쥐에 주입했다. 근육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웅크리고 있던 쥐였다. 게슬러가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는 웅크리고 있던 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 이름표를 잘못 붙였나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다. 잘못된 것은 없었다. 그 쥐는 다른 쥐들처럼 건강하게 우리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이 치료법은 카나반병에 걸리도록 조작된 쥐 두 종을 치료했다. 보존된 세포조직과 바이러스로 가득찬 냉동고 10여 개가 가오의 연구실 앞에 길게 줄 서 있다. “우리는 치료법을 찾았다. 이제 준비가 다 됐다”고 가오는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은 재정 문제지만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가오는 첫 임상실험을 하는 데 100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잠재적인 수익성은 이미 생명공학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가오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기업이 이미 그와 접촉했다.
거대 제약업체의 투자 밀려들어
그러나 IT스타트업과 달리 이 사무실은 양쪽으로 현미경과 바이러스가 가득한 연구실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 회사는 파킨슨병, 헌팅턴 무도병, 루게릭병 등 중추신경계 질환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한다. 스티븐 폴 CEO는 제약업체에서 35년간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종사하며 유전자 치료가 겪는 시련을 지켜봤다. 그는 이제야 유전자 치료의 때가 도래했다며 열의를 불태운다.
투자자들도 동의한다. 벤처투자업체들은 2010년 이후로 유전자 치료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뇌 질환 치료가 단연 중심이다. 지난 2월 창업 1주년이 된 보이저는 미 제약업체 젠자임과 선불 1억 달러, 향후 성과에 따라 최대 7억4500만 달러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4월엔 투자자들로부터 6000만 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오는 11월엔 투자자 공개 모집을 통해 8100만 달러를 추가로 모금할 계획이다. 희귀 안구 질환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하는 필라델피아 소재 스파크세라퓨틱스는 설립 2년만에 기업공개(IPO)를 하고 2억6800만 달러 투자를 받았으며 제약업체 화이자와 대규모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했다.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블루버드 바이오는 지난해 8억6600만 달러 상당의 투자를 받았다.
그동안 거대 제약회사는 희귀병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희귀병 시장이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고 폴 CEO는 말했다. 그러나 가격만 잘 정하면 적은 수의 환자에게만 판매되는 치료제라도 수십억 달러를 벌 수 있다. 유럽에서 최초로 승인된 유전자 치료제 질베라는 주사 1회 당 140만 달러로 책정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보건당국과 보험업체들은 이 비용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고심 중이지만, 시장이 존재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전자 치료에 투자가 밀려들자 일부 연구자들은 정부 지원 대신 벤처캐피털의 투자에 의존한다. 1980년대 최초로 유전자 치료용 AAV를 개발한 R 주드 새멀스키는 최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생명공학업체 뱀부세라퓨틱스를 설립하며 투자 열기에 합류했다. 이 업체는 뒤센 근위축증, 카나반병, 프리드라이히 운동실조, 거대 축색돌기 신경병증 등 희귀 유전 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 내년부터 임상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유럽에선 유전자 치료법 허가가 늘고 있다. 지난 4월엔 SCID 치료법 허가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의 업계 관계자들은 긍정적인 임상실험 데이터를 기다린다. “2년 내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유전자 치료제가 나올 것”이라고 가오는 말했다. “틀림없다.” 그 첫 대상은 안구질환 치료제가 될 듯하다. 지난해 10월 스파크는 선천적 맹인 21명의 시력을 성공적으로 회복시키면서 최종 단계 직전인 3단계 임상실험을 통과했다. 올해 내로 FDA 승인을 받는 것이 목표다.
블루버드는 로렌조 오일병이라고도 불리는 부신백질 형성장애증을 치료할 유전자 치료법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병은 카나반병처럼 뇌 속 백질에 이상을 일으킨다. 이 회사의 렌티D 치료법은 체외에서 실시되는데, 우선 환자의 골수에서 조혈모세포를 뽑아내 유전자 치료법으로 치료한 뒤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다시 환자의 체내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치료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 접근법은 유전자 하나 이상에 문제가 있거나 원인이 불명인 경우엔 효과가 적다.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같은 질환들은 증상이 완화되긴 하지만 치료는 안 된다.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어떤 치료를 받든 항상 효과와 위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폴 CEO는 말했다. “우리는 치료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한 질병만 표적으로 삼는다.”
카나반병을 앓는 어린이 대부분은 열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하지만 20·30대까지 생존하는 사례도 있다. 가오와 게슬러는 자신들의 치료법이 돌연변이 판정을 받은 신생아에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지만, 레이첼처럼 보다 나이 많은 카나반병 환자도 잊을 수는 없다. 게슬러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보다 나이 많은 쥐도 실험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얼마나 나이 들고 병이 진행된 쥐까지 치료할 수 있을까? 게슬러는 6주(인간 나이로 10대), 12주(인간 나이 성인), 24주(인간 나이 장년)된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지난 2월의 어느 춥고 맑은 날, 나는 가오의 건물 6층 사무실에서 게슬러를 만났다. 그는 웃고 있었다. “방금 생후 6주차에 치료 받은 쥐들에 대한 1년치 자료를 손에 넣었다”고 게슬러는 말했다. “그 쥐들은 모두 정상이다.”
게슬러와 만난 뒤 나는 북쪽으로 1시간 동안 달려 레이첼이 사는 아동요양원을 찾았다. 레이첼은 보라색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다. 발 아래엔 유니콘 모양 베개가 보였다. TV에선 드라마 ‘프렌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엡스타인은 레이첼의 손톱을 칠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TV화면을 레이첼에게 더 가깝게 움직였다. “레이첼은 앞을 보지 못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엡스타인은 말했다. 그녀는 약간의 희망이 담긴 목소리로 더 나이 든 쥐를 치료하는 게슬러의 실험 결과에 대해 물었다. 엡스타인은 절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레이첼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엡스타인은 항상 자녀에게 가장 좋은 길을 원한다. 쥐 실험 결과를 들려주자 그녀는 미소 지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엡스타인은 다시 딸의 손톱을 칠하기 시작했다. 밝은 분홍색이었다.
- 메간 스쿠들라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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