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희 오텍그룹 회장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성공한 강성희 오텍그룹 회장. 특장차(특수 목적 차량)·에어컨·공조시스템·주차설비·터치스크린까지 16년 동안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온 그의 시선은 에너지·친환경 분야를 향하고 있다. 인터뷰는 7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오텍캐리어 연구소의 집무실과 1층 제품 전시장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4월 강성희(61) 오텍그룹 회장은 일본 출장지에서 이마를 ‘탁’쳤다. 바람 세기를 9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선풍기를 발견하고서다. 인버터전환기(모터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의 하나)를 사용해 전기료를 대폭 줄여주는 점도 눈에 들어왔다. ‘끼워주기 용’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선풍기와 비교해 일본 제품은 훨씬 다양하고 소비자에게 한 차원 높은 가치를 선사했다. 한국에 돌아온 강 회장은 9단계의 두 배인 18단계로 바람 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에어컨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올해 1월 출시한 ‘에어로(Aero) 18단 에어컨’이다. 이 제품은 세계 최초로 영유아와 노인을 위한 휴먼 케어 바람부터 초강력 허리케인 바람까지 미세하게 선택할 수 있는 ‘18단 패밀리 에어컨 컨트롤’시스템을 탑재했다. 물론 바람 세기를 약하게 할수록 전기료는 줄어든다. 이 제품에는 강 회장의 제품개발 전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품에서 불편한 점을 개선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에어로 18단 에어컨은 국내 최초로 버튼 한 번에 냉방과 공기청정·제습 기능을 따로 사용할 수 있는 원터치 기능도 탑재해 사계절 내내 전기료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 기능들을 별도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관심이 없었거나 한 곳에 기능을 모으면 각각의 제품이 안 팔리지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다들 개발하지 않았던 거지요.”
에어로 18단 에어컨은 업계에 화제를 일으키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구체적인 판매대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강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에어컨을 거실 중요한 자리에 두고 1년에 10번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며 “올해 더위가 일찍 오고 공기가 습해 환경적인 득을 보고 있지만 그런 운에 기대지 않고 사계절 내내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이 에어컨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11년 1월 캐리어에어컨을 인수하면서부터다. 현재 캐리어에어컨의 모 기업인 오텍그룹이 미국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UTC) 그룹 계열사인 미국 캐리어와 지분을 공동소유(오텍 80%, 캐리어 20%)하고 있다. 강 회장은 적자에 빠져 있던 캐리어에어컨을 인수 1년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매년 연구개발에 100억원을 투자해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한 결과다. 가정용 에어컨 매출은 매년 20% 성장했다. 현재는 시장 점유율 18%로 삼성·LG에 이은 3위로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는 “호텔·식당·선박·발전소 등 상업·산업용 에어컨의 점유율은 더 높다”면서도 “점유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효율, 친환경 냉매, 신선한 공기 등 미래의 화두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순 에어컨 판매에 그치지 않고 에어컨 공조(공기조화)기술을 이용해 국내 유일의 빌딩 공조시스템(BIS·Building & Industrial System)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BIS는 냉난방·공기·엘리베이터·보안·조명 등 빌딩 내 모든 설비를 건물 구조에 맞게 설계해 최대한 낮은 전력으로 높은 효율을 이끌어내는 기술이다. 캐리어에어컨은 국내 랜드마크 곳곳에 고효율 공조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국립중앙박물관, 킨텍스 전시관 등이 대표적이다. 고속철도(KTX)와 산천호 등 국내 고속전철에는 시속 350㎞ 이상에서도 냉·난방을 유지하는 트레인 쿨러를 공급한다. 6월에는 서울 여의도 IFC 몰의 빌딩 에너지 솔루션 프로젝트를 수주해 빌딩 에너지를 자동으로 절감하는 혁신 기술 ‘어드반택(AdvanTE3C)’을 공급할 예정이다. 어드반택은 UTC와 기술 공유로 도입한 시스템으로 건물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자동으로 최적의 에너지 소비량을 계산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한다. 이를 적용하면 빌딩 전체의 에너지를 10~40%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강 회장은 “설비는 물론 사람의 이동까지 빌딩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스마트 기기로 제어해 통합 에너지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며 “더 많은 상업·산업용 건물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0년에 경영자로 나선 강 회장은 ‘30·30·30 전략’에 따라 16년 동안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왔다. 30·30·30 전략은 매년 기존의 것에서 30%씩 혁신한다는 것이다. “창업 때 하던 사업을 5년 지나도록 그대로 하고 있었으면 벌써 문 닫았을 겁니다. 조금씩 변화해왔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거죠. 요즘 ‘변화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직원들 모르게 혼자 전율을 느끼곤 합니다(웃음).” 그의 말처럼 회사는 16년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첫 출발은 지금과 전혀 다른 특장차(특수한 목적에 맞게 개조한 자동차) 사업이었다.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한 강 회장은 1982년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인 서울차체에 입사했다. 그는 기아자동차에 특장차를 납품하는 특장차사업부에서 일했다. 1997년 기아차 부도로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영업이사였던 강 회장은 특장차사업부를 분리해 고용 승계를 약속하고 2000년 오텍을 설립했다. 오텍은 16년 동안 특장차 수십 종을 개발해 국내 1위 특장차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구급차, 장애인 차량, 냉장차, 냉동탑차 등의 개발 기술을 보유한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가 생산한 자동차를 목적에 맞게 개조해 판매한다.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할 만큼 특장차 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선두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5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확산으로 선진화된 응급 수송체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강 회장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음압구급차 개발에 나선 것. 음압장치는 기압을 외부보다 낮게 만들어 환자의 호흡을 통한 2차 감염성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아주는 장치다. “누구도 그런 구급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할 때였어요. 급히 외국에 시장조사를 나가보니 이미 유럽 국가에는 이런 제품이 다 있더라고요.” 독일에서 음압구급차를 들여와 차체를 뜯고 분해했다. “원천기술이 없으니 일일이 분해해서 연구하는 수밖에요.” 이렇게 연구해 기술을 확보한 음압구급차가 이르면 9월 출시된다. 강 회장은 “지난해 말 국립중앙의료원과 100억원 규모의 납품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상황을 상술에 이용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서 새로운 안전 시스템 구축에 의무감을 느껴 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한국형 구급차, 장애인 차량 모두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처음 구급차를 개발할 때도 미국·핀란드·독일 등 여러 곳에서 구급차를 사와 직접 뜯어보고 연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2007년에는 일본 도요타·닛산의 기술을 본따 장애인 차량용 슬라이딩 리프트를 개발하다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특장차를 구입해 오기도 쉽지 않아요.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폐차장에 있는 폐품도 가져올 수 없어요. 보이는 부분만 사진을 찍어서 개발하려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지요.” 차체의 하부를 너무 많이 절개한 탓에 제품을 쓰지 못하게 됐다. 강 회장은 “서울시에서는 벌써 장애인용 차량 운전기사 100명을 뽑아놨다고 하지, 차는 주저앉았지 눈 앞이 캄캄했어요.” 어렵게 지인에게 자금을 구해 한 달 만에 손실을 회복했지만 강 회장은 그때가 떠오르는 듯 “회사가 망할 뻔했다”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차량을 개발하고 보니 의자 하나에 1200만원이 들어가요. 안되겠다 싶어 세부 기술보다 실용성을 따지는 유럽회사와 제휴해 300만원까지 비용을 낮췄습니다. 이제는 기술의 상당 부분을 국산화했어요.”
하지만 장애인 차량을 개발하고 나니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 문제였다. “2003년에 처음 장애인 차량을 만들었는데 여기저기서 기증해달라는 얘기만 많지 주문을 안 하더군요. 심지어 기증하지 않으면 차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곳도 있었죠.” 그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실망했지만 대한장애인보치아(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컬링과 비슷한 스포츠 종목)연맹 회장을 맡는 등 꾸준히 장애인 단체들과 교류하며 이해의 폭을 넓혔다. 현재는 주요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강 회장은 “일본에서는 장애인 차량이 연간 5만대 정도 판매되지만 한국에서는 1000대도 팔기 어렵다”며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본 닛산의 모터쇼에 가보면 최신 차량 옆에 장애인용 차량을 함께 전시해요. 우리나라는 장애인용 차량 환경이 너무 취약합니다. 국토해양부·보건복지부에 의견을 내도 예산이 없다고만 해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들을 생각하면 고령화 시대에 꼭 확대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시장성 면에서도 지금은 시장이 작지만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강 회장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기술력이 세계시장에서 상위권에 든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에어컨, 특장차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혁신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영역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제 없었던 길은 아닙니다. 길이 있었지만 관심이 없어 보지 못했을 뿐이지요.”
그는 각 사업 분야별 시너지를 창출해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오텍그룹은 캐리어에어컨·캐리어냉장·한국터치스크린·오텍-오티스 파킹시스템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냉장·냉동 전문기업 캐리어냉장은 국내 최초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주는 인버터 기술을 적용한 상업용 쇼케이스(냉장·냉동고)를 내놨다. 강 회장은 “계열사인 캐리어에어컨의 인버터 제어 기술을 활용한 덕분”이라며 “기존 제품보다 최고 49%까지 전력소비를 줄여줘 전국 모든 편의점에 이 제품을 설치한다면 화력발전소 한 개를 대체할 만큼 에너지 효율이 높다”고 말했다. 오텍의 물류차량 제조 기술과 캐리어냉장의 냉장·냉동 시스템 기술을 더해 차량용 냉동기도 개발했다. 이 냉동기는 차량이 주차한 상태에서도 가동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음압구급차 역시 캐리어에어컨의 공조기술을 응용한 결과물이다. 오텍그룹은 지난 3월 UTC그룹 계열사인 오티스가 설립한 오티스 엘리베이터 코리아(OEK)의 파킹시스템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강 회장은 “건물의 자동화 주차설비 제조·판매·관리 분야의 선두 기업으로 이 주차설비 기술로 빌딩통합솔루션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시장 진출은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강 회장은 “가장 자신 있는 지역은 중동”이라며 “중동에서 캐리어에어컨의 인지도는 삼성·LG와 비교해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근 개방된 이란 시장을 중심으로 점차 수출 규모를 늘려갈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수출 지역뿐 아니라 수출 품목도 확대할 생각이다. “캐리어에어컨은 고속전철용 트렌인 쿨러를 설계·생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기업입니다. 2014년 브라질 상파울루에 철도차량용 에어컨 합작공장을 지어 올해 말까지 상파울루 광역 교통공사와 메트로 살바도르에 트레인 쿨러 830여 대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이 지역에 상업용 인버터 쇼케이스를 함께 수출하려고 합니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공을 들인 제품이 있다. 강 회장은 연구소 1층에 마련된 제품 전시장에서 캐리어에어컨의 ‘인버터 하이브리드 보일러’를 가리켰다. 그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로 저장된 물을 80℃ 까지 데워 바닥을 따뜻하게 해주는 원리를 이용했다”며 “기존 보일러 대비 에너지를 60% 절감해주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절반 수준인데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유럽시장에 진출한 이 제품은 중동·러시아·호주·북미 시장에도 선보일 계획이다.
오텍그룹의 매출은 캐리어에어컨을 인수한 2011년 4350억원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 6370억원을 기록했다. 강 회장은 “올해 91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한다”며 “매일 창업 때 초심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뒤로 물러선 적 없다”고 강조했다. “언제나 생존에 사력을 다합니다. 제가 아니라 1200명 직원, 1만6000여 명 협력 업체 직원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사람을 사업을 하며 항상 사람을 가장 우선에 둔다. 캐리어에어컨 인수 당시에도 구조조정 없이 직원 모두의 고용을 보장했다. 지난해 신기술 도입으로 구조조정을 했을 때도 대상자 전원의 재취업을 보장했다. 여러 제품에 적용한 그의 아이디어 역시 사람에게서 나온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요.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얻는 게 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대기업 기획실에 다니는 친구가 귀찮다고 할 만큼 경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사람을 잘 활용하는 것도 그의 능력이다. 강 회장은 서울차체가 부도나고 창업하기 전 포드자동차 사업부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미국 자동차가 한국에서 잘 안 팔리던 때였어요. 이유를 들여다보니 딜러들이 영어만 잘하지 차를 팔겠다는 의지가 없더군요. 영업사원들은 ‘포드’가 찍힌 명함에 취해 거들먹거리기만 하고요.” 강 회장은 마케팅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차 한 대를 팔면 150만원을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때 영업사원 월급이 150만원이었어요. 자동차 가격을 낮추는 것보다 인력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거죠.” 그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한 달에 20~30대 팔리던 차가 100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것. 또 그는 평소 인간관계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되 불공정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직원들에게 협력업체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지 말라고 늘 당부합니다. 저 역시 18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원칙을 지켰고요. 대신 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10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며 분기에 한번은 먼저 연락해 만납니다. 그러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누군가는 손을 내밀더군요.” 5년 전 강 회장이 캐리어에어컨을 인수한 것은 글로벌화를 위해서였다. 그는 “처음에는 자동차 관련 사업을 염두에 뒀지만 규모를 키우고 해외에서 인지도를 확보하는데 캐리어 브랜드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오텍그룹은 180개국에 진출한 미국 캐리어와 기술 교류, 신제품 공유 등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앞으로 해외 신시장 개척에도 170여 개 UTC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강 회장은 “2017년까지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을 현재 25%에서 50%로 늘려 그룹 매출을 30% 이상 끌어올리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기업인으로 성공한 강 회장은 안주를 모른다. “불안정해야 도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문을 앉아서 본 적이 없어요. 결재는 10분 안에 늘 끝냅니다. 아직도 캐리어에어컨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안정됐다고 느끼는 순간 끝입니다 끝.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사진 주기중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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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18단계 풍량 조절 에어컨
에어로 18단 에어컨은 업계에 화제를 일으키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구체적인 판매대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30% 증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강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에어컨을 거실 중요한 자리에 두고 1년에 10번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며 “올해 더위가 일찍 오고 공기가 습해 환경적인 득을 보고 있지만 그런 운에 기대지 않고 사계절 내내 필요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이 에어컨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11년 1월 캐리어에어컨을 인수하면서부터다. 현재 캐리어에어컨의 모 기업인 오텍그룹이 미국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UTC) 그룹 계열사인 미국 캐리어와 지분을 공동소유(오텍 80%, 캐리어 20%)하고 있다. 강 회장은 적자에 빠져 있던 캐리어에어컨을 인수 1년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매년 연구개발에 100억원을 투자해 기능과 디자인을 개선한 결과다. 가정용 에어컨 매출은 매년 20% 성장했다. 현재는 시장 점유율 18%로 삼성·LG에 이은 3위로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그는 “호텔·식당·선박·발전소 등 상업·산업용 에어컨의 점유율은 더 높다”면서도 “점유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 효율, 친환경 냉매, 신선한 공기 등 미래의 화두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단순 에어컨 판매에 그치지 않고 에어컨 공조(공기조화)기술을 이용해 국내 유일의 빌딩 공조시스템(BIS·Building & Industrial System)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BIS는 냉난방·공기·엘리베이터·보안·조명 등 빌딩 내 모든 설비를 건물 구조에 맞게 설계해 최대한 낮은 전력으로 높은 효율을 이끌어내는 기술이다.
에어컨 기업 넘어 BIS 전문기업으로 도약
2000년에 경영자로 나선 강 회장은 ‘30·30·30 전략’에 따라 16년 동안 꾸준히 변화를 시도해왔다. 30·30·30 전략은 매년 기존의 것에서 30%씩 혁신한다는 것이다. “창업 때 하던 사업을 5년 지나도록 그대로 하고 있었으면 벌써 문 닫았을 겁니다. 조금씩 변화해왔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거죠. 요즘 ‘변화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직원들 모르게 혼자 전율을 느끼곤 합니다(웃음).” 그의 말처럼 회사는 16년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첫 출발은 지금과 전혀 다른 특장차(특수한 목적에 맞게 개조한 자동차) 사업이었다.
한양대 사학과를 졸업한 강 회장은 1982년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인 서울차체에 입사했다. 그는 기아자동차에 특장차를 납품하는 특장차사업부에서 일했다. 1997년 기아차 부도로 회사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영업이사였던 강 회장은 특장차사업부를 분리해 고용 승계를 약속하고 2000년 오텍을 설립했다. 오텍은 16년 동안 특장차 수십 종을 개발해 국내 1위 특장차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구급차, 장애인 차량, 냉장차, 냉동탑차 등의 개발 기술을 보유한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가 생산한 자동차를 목적에 맞게 개조해 판매한다. 시장 점유율이 90%에 달할 만큼 특장차 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선두를 지키고 있다.
모기업 오텍, 메르스 사태 때 음압구급차 개발
처음 구급차를 개발할 때도 미국·핀란드·독일 등 여러 곳에서 구급차를 사와 직접 뜯어보고 연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2007년에는 일본 도요타·닛산의 기술을 본따 장애인 차량용 슬라이딩 리프트를 개발하다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특장차를 구입해 오기도 쉽지 않아요.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폐차장에 있는 폐품도 가져올 수 없어요. 보이는 부분만 사진을 찍어서 개발하려다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었지요.” 차체의 하부를 너무 많이 절개한 탓에 제품을 쓰지 못하게 됐다. 강 회장은 “서울시에서는 벌써 장애인용 차량 운전기사 100명을 뽑아놨다고 하지, 차는 주저앉았지 눈 앞이 캄캄했어요.” 어렵게 지인에게 자금을 구해 한 달 만에 손실을 회복했지만 강 회장은 그때가 떠오르는 듯 “회사가 망할 뻔했다”며 이마를 쓸어 올렸다. “차량을 개발하고 보니 의자 하나에 1200만원이 들어가요. 안되겠다 싶어 세부 기술보다 실용성을 따지는 유럽회사와 제휴해 300만원까지 비용을 낮췄습니다. 이제는 기술의 상당 부분을 국산화했어요.”
하지만 장애인 차량을 개발하고 나니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 문제였다. “2003년에 처음 장애인 차량을 만들었는데 여기저기서 기증해달라는 얘기만 많지 주문을 안 하더군요. 심지어 기증하지 않으면 차를 판매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곳도 있었죠.” 그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실망했지만 대한장애인보치아(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컬링과 비슷한 스포츠 종목)연맹 회장을 맡는 등 꾸준히 장애인 단체들과 교류하며 이해의 폭을 넓혔다. 현재는 주요 공공기관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강 회장은 “일본에서는 장애인 차량이 연간 5만대 정도 판매되지만 한국에서는 1000대도 팔기 어렵다”며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일본 닛산의 모터쇼에 가보면 최신 차량 옆에 장애인용 차량을 함께 전시해요. 우리나라는 장애인용 차량 환경이 너무 취약합니다. 국토해양부·보건복지부에 의견을 내도 예산이 없다고만 해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들을 생각하면 고령화 시대에 꼭 확대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시장성 면에서도 지금은 시장이 작지만 잠재력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강 회장은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제는 기술력이 세계시장에서 상위권에 든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에어컨, 특장차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혁신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영역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제 없었던 길은 아닙니다. 길이 있었지만 관심이 없어 보지 못했을 뿐이지요.”
그는 각 사업 분야별 시너지를 창출해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오텍그룹은 캐리어에어컨·캐리어냉장·한국터치스크린·오텍-오티스 파킹시스템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냉장·냉동 전문기업 캐리어냉장은 국내 최초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주는 인버터 기술을 적용한 상업용 쇼케이스(냉장·냉동고)를 내놨다. 강 회장은 “계열사인 캐리어에어컨의 인버터 제어 기술을 활용한 덕분”이라며 “기존 제품보다 최고 49%까지 전력소비를 줄여줘 전국 모든 편의점에 이 제품을 설치한다면 화력발전소 한 개를 대체할 만큼 에너지 효율이 높다”고 말했다.
에너지 효율화 사업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
해외시장 진출은 이미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강 회장은 “가장 자신 있는 지역은 중동”이라며 “중동에서 캐리어에어컨의 인지도는 삼성·LG와 비교해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근 개방된 이란 시장을 중심으로 점차 수출 규모를 늘려갈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수출 지역뿐 아니라 수출 품목도 확대할 생각이다. “캐리어에어컨은 고속전철용 트렌인 쿨러를 설계·생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기업입니다. 2014년 브라질 상파울루에 철도차량용 에어컨 합작공장을 지어 올해 말까지 상파울루 광역 교통공사와 메트로 살바도르에 트레인 쿨러 830여 대를 공급할 예정입니다. 이 지역에 상업용 인버터 쇼케이스를 함께 수출하려고 합니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공을 들인 제품이 있다. 강 회장은 연구소 1층에 마련된 제품 전시장에서 캐리어에어컨의 ‘인버터 하이브리드 보일러’를 가리켰다. 그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로 저장된 물을 80℃ 까지 데워 바닥을 따뜻하게 해주는 원리를 이용했다”며 “기존 보일러 대비 에너지를 60% 절감해주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절반 수준인데다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유럽시장에 진출한 이 제품은 중동·러시아·호주·북미 시장에도 선보일 계획이다.
오텍그룹의 매출은 캐리어에어컨을 인수한 2011년 4350억원에서 꾸준히 늘어 지난해 6370억원을 기록했다. 강 회장은 “올해 91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한다”며 “매일 창업 때 초심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뒤로 물러선 적 없다”고 강조했다. “언제나 생존에 사력을 다합니다. 제가 아니라 1200명 직원, 1만6000여 명 협력 업체 직원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사람을 사업을 하며 항상 사람을 가장 우선에 둔다. 캐리어에어컨 인수 당시에도 구조조정 없이 직원 모두의 고용을 보장했다. 지난해 신기술 도입으로 구조조정을 했을 때도 대상자 전원의 재취업을 보장했다. 여러 제품에 적용한 그의 아이디어 역시 사람에게서 나온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요.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얻는 게 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대기업 기획실에 다니는 친구가 귀찮다고 할 만큼 경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사람을 잘 활용하는 것도 그의 능력이다. 강 회장은 서울차체가 부도나고 창업하기 전 포드자동차 사업부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미국 자동차가 한국에서 잘 안 팔리던 때였어요. 이유를 들여다보니 딜러들이 영어만 잘하지 차를 팔겠다는 의지가 없더군요. 영업사원들은 ‘포드’가 찍힌 명함에 취해 거들먹거리기만 하고요.” 강 회장은 마케팅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차 한 대를 팔면 150만원을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때 영업사원 월급이 150만원이었어요. 자동차 가격을 낮추는 것보다 인력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거죠.” 그의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한 달에 20~30대 팔리던 차가 100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것. 또 그는 평소 인간관계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되 불공정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직원들에게 협력업체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지 말라고 늘 당부합니다. 저 역시 18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원칙을 지켰고요. 대신 저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10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며 분기에 한번은 먼저 연락해 만납니다. 그러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누군가는 손을 내밀더군요.”
중동에서 인지도 삼성·LG에 뒤지지 않아
강 회장은 “2017년까지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을 현재 25%에서 50%로 늘려 그룹 매출을 30% 이상 끌어올리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기업인으로 성공한 강 회장은 안주를 모른다. “불안정해야 도약할 수 있습니다. 저는 신문을 앉아서 본 적이 없어요. 결재는 10분 안에 늘 끝냅니다. 아직도 캐리어에어컨을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안정됐다고 느끼는 순간 끝입니다 끝.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사진 주기중 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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