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만에 끝났지만 정치·사회적 후유증은 오랜 기간 지속될 듯 터키 국민의 98%가 무슬림인데도 불구하고 군부는 종종 세속주의 가치의수호자로 자처해 왔다. 횃불과 국기를 들고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 몰려든 사람들.지난 15일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군부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축출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아침 TV에서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에서의 충돌로 300명 가까이 사망했다고 보도됐지만 상황이 “대체로 수습됐다”고 말했다.
이 날 새벽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시도가 “반역행위”이며 관련자는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레제프 에르도안 대통령 정부의 반응은 신속했다. 쿠데타 직후 6000여명의 군인이 체포되고 약 8000명의 경찰이 해고 또는 구속됐다. 사법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 공직자 수천 명이 정직 또는 체포됐다. 사형제도의 부활이 거론되고, 정부는 미국에 망명한 이슬람학자 페흘라흐 귈렌을 실패한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하며 송환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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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는 누구 지시를 받나?
터키는 공식적으로 세속주의 국가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종종 이슬람주의를 끌어안으려는 속내를 드러냈다.쿠데타는 2003년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터키 정정이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하던 시점에 발생했다. 군부는 오래 전부터 터키 정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왔지만 근년 들어 세력이 약화됐다.
법적으로 군부는 이을드름 총리와 피크리 으시크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군부 최고 지도자는 훌루시 아카르 군 총사령관이다. 그는 대표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임무로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에 파견 근무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군 지도자다.
아카르가 군 총사령관 직을 맡은 지 불과 1년 됐다. 그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긴밀한 사이인 듯했다. 시리아 접경 인근 쿠르드군과의 전투가 격화될 때 임명됐다. 지난 6월 에르도안의 한 만찬에선 그의 연설에 감동 받아 눈물을 흘렸다고도 전해진다. 그가 쿠데타에 어떻게 관련됐는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NATO에서 미국에 이어 제2위 규모의 병력을 자랑하는 터키 군부는 전통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다. 군부는 1960년대 이후 정권이 3번 교체되는 동안 계속 정치에 개입해 왔다. 그러나 2003년 에르도안이 총리에 취임한 뒤 군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데 성공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7년 군부는 진행 중인 선거에 개입하겠다고 온라인으로 엄포를 놓았다. E쿠데타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만에 수사관들은 5년 전 군인과 저명인사들이 꾸민 진짜 정부 전복 계획을 적발해 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시리아에서의 군사작전 확대나 그의 보수주의 강화는 군부에서 지지를 받지 못했다. 터키에서 반정부 세력이 약화함에 따라 군 장교들은“에르도안에 제동을 걸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건 자신들뿐이라고 본다고 이스탄불의 안보 분석가 메틴구르칸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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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흘라흐 귈렌은 누구인가?
귈렌은“지난 50년 동안 여러 번의 군사 쿠데타에 시달린 사람으로서 반란 시도에 관련됐다는 혐의는 특히 모욕적”이라고 말했다.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데타 기도 후 가진 첫 공식기자회견에서“터키는 이런 식의 반란에 놀라지 않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터키를 통치할 순 없다”고 말했다. 16일 이스탄불 공항 도착 직후에도 “그들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지시를 받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메시지는 명확했다. 정부는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었다. 귈렌은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지만 2013년 서로 상대방의 부패를 비난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귈렌은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망명 중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귈렌이 국내 관료체제 내의 지지자들을 통해 ‘제2의 국가’를 세우려 한다며 이번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다.
추종자들에게 지위 높은 학자(hocaefendi)로 알려진 귈렌은 분명 터키 공직사회, 언론계 내에 추총 세력이 있다. 그가 이끄는 히즈멧(봉사) 또는 자마트 운동으로 알려진 사립학교 네트워크는 140여 개국에 뻗쳐 있다.
그 자신 1999년 추종자들에게 “시스템의 동맥 안에서 모든 세력 중추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 기록이 있다. 그의 영향력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2003년 그의 총리 선출에도 힘이 됐다. 그러나 정부는 2013년 이후 귈렌파들을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최근 터키 최대 일간지 중 하나가 귈렌과 관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영권 인수를 명령했다.
터키는 미국에 귈렌의 송환을 거듭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 응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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귈렌이 쿠데타 배후인가
쿠데타 세력이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은 터키인들이 군부 권위주의로의 복귀 또한 원치 않기 때문이다. 사진은 터키 앙카라로 진입하는 탱크를 저지하려는 터키인들.에르도안 대통령 지지자들은 분명 귈렌이 배후라고 믿는다. 비날리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지난 16일 미국에 있는 귈렌 편을 드는 나라는 모두 터키와“교전 상대국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선포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귈렌의 히즈멧 운동 미국 단체 ‘가치공유연합(The Alliance for Shared Values)’은 쿠데타 기도 음모 혐의에 관해 “대단히 무책임한 발언”으로 일축했다. 귈렌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직접 보낸 이메일 답변에서 관련설을 부인했다.
그는“지난 50년 동안 여러 번의 군사 쿠데타에 시달린 사람으로서 그런 시도에 관련됐다는 혐의는 특히 모욕적”이라고 썼다.
분명 귈렌과 군부의 이해는 과거 크게 엇갈렸다. 군부가 정치에 마지막으로 군사적 개입을 시도한 것은 2007년이었다. 에르도안과 귈렌이 지지하는 후보가 승리할지 모른다고 우려해 대선에 개입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군부는 대선 개입선언을 통해 터키 세속주의의 최후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했다. 한편으론 영향력 있는 이슬람학자인 귈렌을 항상 상당히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는 세속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터키 군부는 그가 청년층을 ‘세뇌’하고 정교일치를 추진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집권당 진영이 귈렌파의 심장부로 지목한 터키 서부 일부 지역에서도 쿠데타 공모 혐의자들이 체포된 듯하다. 16일 아침 이른 시각 부르사에서 치안군(잔다르마) 사령관 유르다쿨 아쿠스 대령을 비롯해 군 장교 8명이 체포됐다.
국영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부르사에서 귈렌파 운동가 11명이 구금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5월 귈렌의 조카를 포함해 귈렌 지지세력으로 알려진 29명이 체포된 이즈미르 인근에서도 귈렌 운동이 활발했다.
쿠데타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군 내부의 쿠데타 주동 세력을 자처하는 단체인 이른바 ‘평화위원회’ 지도자 중 귈렌과 관련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터키 관영 미디어는 무하렘 코세 대령을 쿠데타 지도자로 지목했다. 그는 지난 3월 관련 의혹으로 군복을 벗은 뒤 귈렌 운동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했다. 국영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쿠데타 계획은 주로 치안군 대원들 사이에서 계획됐다. 한편 DHA 통신사는 2013~2015년 터키 공군 사령관을 지낸 아킨 외즈튀르크가 쿠데타 주동자였다고 보도했다.
쿠데타 시도의 배후를 밝히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귈렌을 배후로 지목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전문가들 사이에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런던 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마이클 스티븐슨 연구원은 정부의 주장에 결함이 있으며 반체제 세력 탄압에 이용될 수 있다고 본다.
“터키 정부는 처음부터 내내 귈렌이 배후라고 말해 왔다. 그들은 누구든 원하는 대로 배후를 지목할 수 있다. 현재로선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 배후 조종자가 누구든 이번 쿠데타 기도는 군부 내에 에르도안의 집권을 원치 않는 세력이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으며 이번 일의 배후일지 아닐지 불분명한 미국 내의 이슬람학자는 그 시작도 끝도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건 지난 2년 사이 터키가 맞닥뜨린 헌법상의 상당히 실질적인 문제 그리고 지난 12개월 동안의 치안 문제를 외면하는 셈이다.”
지난 몇 년 사이 경찰과 교육계 내 상당수 귈렌파의 존재를 묵인해 놓고 이제 와서 정부가 귈렌파를 비난하는 건 역설적이다. 그리고 군부가 터키 내 세속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자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이 귈렌의 지시를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부가 증거를 제시하겠지만 귈렌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은 터키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터키 정부는 3개월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앞으로 쿠데타 기도 원인에 대한 대처보다는 안보체제 내 이 그룹의 동조자들에 대한 숙청 작업이 전개될 듯하다. 서방 동맹들은 터키 정부에 법적 절차를 따르도록 촉구해야 한다. 정부가 안보 위협을 구실로 다른 분야의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며 더 억압적이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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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앞날은?
많은 희생자와 피해가 발생했지만 앙카라와 이스탄불 그리고 서방 국가 정치인들은 대체로 쿠데타의 실패에 안도하는 분위기인 듯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중동 ‘문제’의 일부이면서도 어쩌면 어떤 ‘해결책’에든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여겨지는 대립적인 인물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방 군대에 공군 기지를 내줘 IS를 폭격하도록 했다. 하지만 IS 전사들은 시리아 접경을 마음대로 넘나든다. 터키는 변함없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남동쪽의 쿠르드족 도시를 수시로 폭격한다.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반체제 세력을 가차없이 짓밟는다. 난민 위기로 유럽과 협력할 때도 에르도안이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한다는 불만이 유럽 쪽에서 많이 터져 나왔다. 정치인들은 부인하지만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찬성자 중 일부는 최소한 조금이라도 터키의 EU 가입 전망에 영향 받았을 가능성이 컸다.
터키는 공식적으로는 세속주의 국가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종종 이슬람주의를 끌어안으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쿠데타 가담자들이 내세운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다. 터키 국민의 98%가 무슬림인데도 불구하고 군부가 종종 세속주의 가치의 수호자로 자처해 왔기 때문이다. 군부는 가장 최근인 1997년의 거사를 포함해 그동안 수 차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서방 입장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유럽과 아시아, 중동과 서방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는 인구 8000만 명의 터키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게 딱 한 가지 있다. 에르도안이 통제하지 않는 터키다. 터키가 남쪽 시리아처럼 전면적인 내전으로 빠져들면 중동 전역의 정정이 불안정해지고,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유럽 진입 장벽이 무너지고, 시리아와 이라크의 폭력사태의 불똥이 튀면서 이스라엘·이란·미국과 러시아가 휘말릴 수 있다.
따라서 서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하지만 터키 상황은 여전히 위험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군부와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게 뻔하다. 군부뿐 아니라 터키 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유주의 세력의 적대감이 커질 것이다. 군부가 굴욕감을 느끼고 쿠데타 지도자들이 처형되면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소셜미디어·휴대전화로 연결된 세상에선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쿠르드족은 계속 탄압 종식과 어쩌면 자치권까지 요구하고, 이슬람국가(IS)는 터키를 계속 비교적 손쉬운 표적으로 여길 것이다. 게다가 키프로스를 둘러싼 분쟁도 계속된다.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실패한 쿠데타로 파손된 건물과 교량 공사가 벌써 시작됐지만 터키의 손상된 대외 이미지를 복구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 대미언 샤코브 뉴스위크 기자, 마크 피곳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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