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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 키우지 않고 우유 생산한다

젖소 키우지 않고 우유 생산한다

효모나 박테리아를 조작해 미세공장으로 사용함으로써 원재료를 완제품으로 바꾸는 합성생물학이 차세대 신기술로 급부상
유전체의 DNA 염기서열 분석 비용이 지난 10년 동안 1200만 배 저렴해졌다.
흔히 경제 성장이라고 하면 아주 복잡한 과정을 상상하겠지만 번지르르한 얘기를 다 걷어내면 한마디로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저가치 원자재를 고가치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 상품은 흔치 않고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경제는 그렇게 돌아갔다.

그러다가 디지털 경제가 등장하면서 첫 번째 변칙이 생겼다. 디지털 복제품은 결함이 없으며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 그러면서 갑자기 상품의 희소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부 일회성 디지털 상품이다. 진짜 괜찮은 상품은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국부론’)가 이해한 것과 똑같은 규칙에 여전히 얽매어 있다.

이제 좀 더 강한 도전자가 등장했다. 요즘 급부상하는 과학 분야인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다. 어쩌면 이 신기술이 스미스의 지배를 끝낼 수 있을지 모른다. 진짜 괜찮은 ‘상품’을 더 많이 원한다고? 그냥 키워내면 된다.

합성생물학은 생명과학적 이해의 바탕에 공학적 관점을 도입한 학문으로 자연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 구성요소와 시스템을 설계·제작하거나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제작하는 두 가지 분야를 포괄한다. 인간의 미래를 바꿔놓을 신기술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합성생물학을 더 쉽게 말하자면 효모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을 조작해 미세공장으로 사용함으로써 원 재료를 완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빌 랴오는 아일랜드 코크에 있는 SOS벤처스의 파트너(이사)다. SOS벤처스는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물학을 활용하는 스타트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는 세계 최초의 액셀러레이터 ‘인디바이오(Indie. Bio)’의 투자기관이다. 랴오 이사는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가 연간 우유 7350억ℓ를 생산하는 세계의 낙농산업을 겨냥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의 우유 대부분은 넓은 들판을 돌아다니며 신선한 풀을 먹고 살져 행복한 아일랜드 젖소가 아니라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비참한 젖소에게서 얻는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을 강제로 먹인다. 산업화된 젖소의 추악한 삶이다.”

인디바이오가 지원하는 회사중 하나인 무프리는 실제 우유를 인공적으로 생산함으로써 동물을 대우하는 윤리 문제를 해결한다.

랴오 이사는 “무프리는 효모를 조작해 우유 단백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젖소의 DNA를 효모 세포 속에 입하면 효모가 우유의 주요 성분인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칼슘, 칼륨 등을 섞으면 진짜 우유 성분과 비슷해지고, 질감도 유사해진다. 지방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치즈나 버터도 만들 수 있다. 무프리 측은 “두유와 같은 현재의 우유 대체품보다 훨씬 더 실제 우유와 흡사하다”면서 “동물성이 아니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 없고 성분 조절도 가능한 만큼 우유에 소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랴오 이사는 무프리 측의 설명에 이렇게 덧붙였다. “맥주를 양조하듯이 효모의 DNA를 조작해 대형 나무통에 넣어 발효시킨다. 그러면 알코올 대신 우유 단백질인 카세인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몇 가지 미네랄과 오일, 갈락토스를 넣어 섞으면 락토스(대다수 사람은 소화하지 못한다)나 콜레스테롤이 없는 이상적인 우유가 생산된다. 우유맛도 그대로다. 열로 살균처리할 필요도 없고 젖소가 고통 받지도 않는다. 게다가 고객이 마시는 무프리 우유는 유전자 변형 부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효모의 유전자만 조작되는데 효모는 나중에 전부 걸러낸다. 이건 우유 대체품이 아니라 진짜 우유다.” 무프리는 내년 인공우유 시판을 목표로 한다.

또 다른 스타트업 벤틱 랩스는 대장균(E. coli)을 조작해 먹장어가 공격당할 때 방어 기제로 방출하는 필라멘트를 이용해 새로운 고분자 화합물(폴리머)을 생산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먹장어는 위기 상황에 처하면 방어용 점액을 분사한다. 케라틴(각질 단백질)으로 만들어진 소형 필라멘트가 그 구성 성분이다. 무게 기준으로 그 필라멘트는 강철보다 5배나 강하다.

195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 밝혀낸 이래 DNA 이해에서 이뤄진 큰 발전이 합성생물학의 바탕이 됐다. 랴오 이사는 “유전체의 DNA 염기 서열 분석 비용이 지난 10년 동안 1200만 배 저렴해졌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늘날의 디지털 스타트업이 무료 툴과 클라우드 컴퓨팅(창업하기 위해 독자적인 웹 서버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의 기초 위에 세워지듯이 합성생물학도 마찬가지다. 완전 자동화되고 상호 연결된 로봇 실험실, 공개소스 생물학 데이터, DNA를 기초 차원에서 합성하는 저렴한 기계는 생물학의 민주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합성생물학은 열광주의자들의 몽상도 아니다. 랴오 이사를 비롯한 스타트업 투자자과 함께 기존 금융사도 이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뉴먼 하크는 실리콘밸리은행 영국 지점의 의료‘생명과학 담당 국장이다. 그는 합성생물학 분야의 전망을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그에 따르면 합성생물학에는 비현실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초기에 이 기술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곳은 좀 더 현실적인 응용 분야다. “생물학과 의학에서 재현률(실험 결과를 반복 측정했을 때 오차 없이 일관성 있는 수치를 나타내는 정도)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 기법은 사실상 지난 200년 동안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반면 로봇 실험실을 사용하면 합성생물학 실험은 똑같이 수없이 반복될 수 있다. 신뢰성과 정확도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뜻이다. “프로토콜을 컴퓨터 언어로 암호화하면 실험실의 연결된 기계가 매번 정확한 시간에 작동한다.”

생명공학자들이 세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무프리는 우유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낸다.
하크 국장은 제약사와 약품 개발과 관련된 분야가 앞으로 모든 합성생물학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합성생물학 기술의 한가지 중요한 초점은 에너지 부문이다. 하크 국장은 “제약과 화학 부문 다음으로 생물연료에 이 기술이 적용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에너지 부문에서 이 기술을 ‘성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세계의 석유시장을 뒤흔들면 곧바로 지정학에 문제가 생긴다. 또 랴오 이사에 따르면 지금의 생물연료 생산 방식은 산업 규모도 커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든다. 그렇다면 연료 수천ℓ를 생산하기 위해 대형 생물반응장치를 사용하기보다 그냥 집에서 자신이 사용할 만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 아닐까? 랴오 이사는 “음식물쓰레기와 물이 가득찬 167ℓ짜리 드럼통에 박테리아 여러 종을 섞어 넣어 이틀 뒤 디젤 2∼3ℓ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대단치 않게 들리겠지만 개발도상국에선 디젤 2∼3ℓ면 밭을 갈거나 오랫동안 발전기를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경제성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군에서도 합성생물학 기술에 관심을 갖는다. 올해 초 영국 국방과학기술실험실은 1800만 파운드를 투자해 합성생물학 기술로 장갑부품에 필요한 신소재를 개발하거나 기존 소재 생산의 비용을 낮추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그들은 개선된 탄화붕소 장갑 소재와 연료전지 촉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랴오 이사는 합성생물학의 잠재력을 확신한다. “앞으로 컴퓨터 산업 전체보다 합성생물학에서 더 많은 수익이 나올 것이다.”

- 벤 루니 아이비타임즈 기자



[ 필자는 월스트리트저널 유럽판의 기술 담당 에디터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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