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향한 아베의 노림수] 부양책으로 민심 다독이며 분위기 조성
[개헌 향한 아베의 노림수] 부양책으로 민심 다독이며 분위기 조성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에게 이번 여름은 유난히 뜨거울 것이다. 연일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는데다, 습도마저 높아 불쾌지수가 치솟는 도쿄의 유난스러운 여름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아베 정권을 받치는 양대 기둥인 개헌과 경제 분야에 대한 노심초사가 핵심 요인이다. 올 여름 들어 도쿄 한복판 치요다구 나카다초에 위치한 총리대신관저는 이 두 분야 때문에 유난히 분주하다.
개헌 향한 첫 관문 통과한 아베: 분주한 여름은 7월 10일 아베의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시작됐다. 우호세력까지 합치면 아베는 중의원, 참의원 전체의 3분의 2 의석을 사실상 확보했다. 염원인 개헌을 할 수 있는 선이다. 전후 일본 체제를 결정지었던 평화헌법의 9조의 개정을 위해 아베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이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혹시나 평화헌법을 사수하자는 호헌론이 나올까 이 문제를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경제 회복을 위해 힘을 실어달라는 말만하고 다녔다. 그 결과 전후 일본 사회의 기둥이었던 평화헌법을 바꿀 수 있는 첫 단계를 통과했다.
문제는 민심이다. 국회의원 머릿수만 충분하다고 개헌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 개헌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시위와 홍보전으로 개헌으로 달려가려는 아베를 막아섰다. 일본의 양심과 진보 진영이 아베의 반대편에 섰다.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은 현재로선 국회에서 소수파다. 하지만 선전전에 따라 그 비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다음 선거를 걱정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국정을 이끌고 나가는 내각제에서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베가 조심하는 이유다.
27년 만에 국회 양원 장악한 연립 여당: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정치를 잠시 알아보자. 일본 국회는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참의원은 임기가 6년으로 한꺼번에 다 바꾸지 않고 3년마다 절반씩 교체하는 선거를 치른다. 중의원에선 자민당이 이미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참의원 선거까지 승리하면서 이제 아베는 개헌으로 가는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개헌 절차를 보면 이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개헌을 하려면 1단계로 중의원에서 100명, 참의원에서 50명 이상이 동의한 개헌안을 국회에 상정해야 하다. 그 다음 2단계로 양원의 재적 3분의 2가 찬성하면 국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다.
마지막 3단계는 18세 이상 유권자의 과반이 국민투표에서 찬성하면 개헌이 결정된다. 아베와 개헌 세력은 이번 참의원 선거 승리로 1단계에 이어 2단계 조건 둘째 조건까지 충족시켰다. 일본 정당 중 개헌에 찬성하는 정당은 자민당을 포함해 공명당, 오사카유신회,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이 있다. 이를 개헌 4당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개헌 세력이다. 개헌 세력은 참의원에서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석(162석) 이상을 확보했다. 중의원에선 이미 자민당이 전체 475석의 61%인 290석을 차지하고 있다. 연립 정권을 이루고 있는 공민당의 35석을 합치면 자민-공명 연립 여당은 전체의 68%인 325석을 차지하고 있다. 연립 여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참의원에서도 과반 고지에 올랐다. 자민당이 116석(48%), 공명당이 20석으로 전체 242석 중 136석으로 56%를 차지했다. 자민-공민 연립 여당은 1989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양원 단독 과반을 누리게 됐다.
아베노믹스 효과 시들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선거에선 인구 고령화에 따른 실버 민주주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선거권을 처음으로 18세 이상으로 2년 낮췄다. 하지만 역대 참의원 선거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젊은이들에게 참정권을 준다고 아베의 독주를 막지는 못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 유권자들의 관심은 개헌이 아니라 경제에 있었다. 재정확대, 금융완화, 구조개혁이란 세 개의 화살을 통해 일본을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 탈출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가 일본 국민에게 먹혀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시종 무력한 모습을 보인 야당도 문제였다. 헌법 개정을 반대하고 아베노믹스 무용론을 주장하는 민진당,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은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 단일 후보를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 대안세력으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해 참패했다.
아베노믹스는 시행 3년을 넘기면서 사실상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거기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등으로 엔화 값이 치솟으면서 수출마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로선 아베노믹스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중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비롯한 세력을 확대하고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까지 가중되면서 아베의 개헌 노선에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개헌 위한 민심 잡기: 일본에서 개헌은 ‘일본을 보통국가, 즉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로 바꾸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헌 세력이 노리는 것은 헌법 9조의 무력화다. 9조의 내용을 살펴보자. 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영구히 포기 한다’라고 되어 있다. 9조 2항은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 해, 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치 않는다’라고 명기돼 있다. 개헌 세력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을 점령 통치했던 연합국 최고사령부로부터 ‘전쟁과 군대 보유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평화헌법을 강요당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이 평화헌법은 1947년 제정 후 한 번도 개헌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행여나 9조를 손대자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아베 총리는 이를 문제삼고 있다. 그는 “일본 헌법은 일본이 점령당한 시대에 제정됐다”며 “이제는 21세기에 맞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는 개헌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국민투표를 통과하려면 국민 여론을 다독거려야 한다는 점이다. 아베의 목표는 ‘전쟁, 교전권, 군대 보유’를 포기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는 데 있지만 정작 국민 사이에선 이런 조항의 ‘평화헌법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55%(아사히 신문 5월 조사)에 이른다. 국민의 반대가 강하기 때문에 아베가 섣불리 9조를 바꾸자는 얘기를 입에 올리면 반개헌 세력, 반아베 세력이 집결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28조엔 쏟아 붓는 특단의 충격 요법: 8월이 되자 아베의 국민 다독거리기 대책이 면모를 드러냈다. 경제 살리기에 28조엔(약 305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기로 했다. 아베는 이러한 내용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8월2일 발표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이런 거액으로 위기에 처한 ‘아베노믹스’에 본격적인 재시동의 고전류를 흘려 보내겠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 등 극단적인 각종 정책을 계속 해도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는 경기를 일으켜 세우려는 특단의 충격 요법이다. 대형 인프라 정비와 저소득층 지원이 골자다. 재정지출과 금융회사의 대출 등을 포함한 사업 규모는 28조1000억엔에 이른다. 일본이 단행한 경기 부양책 중 역대 3번째 규모다. 아베 정부는 이번 경기 부양책이 단기적으론 실질 GDP를 1.3%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045년 개통 목표인 초고속 열차 ‘리니어 주오신칸센’ 개통을 최대 8년 앞당기는 등 ‘21세기형 인프라’ 정비 사업을 가속화한다.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효과도 있어 일반 인프라보다 보기에도 좋고 파급효과도 크다. 서민들이 쓸 돈을 늘리기 위해 고용보험료율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쳤다. 지금까지 일본에선 공적 연금을 받으려면 25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했다. 하지만 아베는 이를 ‘10년 이상’으로 완화해 17만 명이 추가로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8조엔 가운데 앞으로 2년 간 투입될 ‘새로운 돈’인 정부의 직접적 재정지출은 7조5000억엔이다. 8월 말 의회에 제출할 추경예산안에서 올해 4조엔을 확보해 쓰고 나머지는 2017년도 예산안과 특별회계에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간 기업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재정투융자’가 포함되고 브렉시트 대책으로 중소기업 대상 대출을 확대하면서 전체 사업 규모는 28조엔으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 규모는 아베의 의지를 반영한다. 직접적으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넓게 보면 이를 통해 민심을 다독거려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개헌을 밀어붙이겠다는 집념의 발현이다.
개각에서 강경파 전면 배치: 아베는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있다. 이미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임기 중 개헌을 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의원 선거 직후에도 후지TV 개표 방송에 출연해 “국회헌법 심사회가 개헌 논의를 심화시켜 어떤 조문을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개헌에 대한 찬반을) 국민투표에서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는 2006년 1차 집권 때 개헌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1년 만에 단명 정권으로 물러났다. 지금 아베 임기는 2018년 9월까지 2년여 남았다.
자민당 내에선 개헌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총재 자리를 2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는 당규를 고쳐 아베 총리가 더 오래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아베는 8월3일 이를 일축했다. 이날 개각한 아베는 총리관저에서 개각에 따른 기자회견을 열고 “임기가 2년이나 남았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임기 연장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해진 임기 내 개헌을 마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강경 우익 인사를 전면에 포진했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개각에서 주요 자리에 강경 우파 정치인을 등용했다. 방위상에는 과거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와 관련한 역사 인식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 우파 여성 정치인 이나다 도모미(57) 자민당 정조회장을 기용했다. 이나다는 태평양 전쟁의 일본인 전범들을 처벌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검증을 요구해왔다. 교과서를 책임지는 문부상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해온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성 부대신을 기용했다. 중의원 6선인 마쓰노는 2012년 미국 뉴저지주 지역 신문 ‘스타레저’에 당시 아베 자민당 총재, 이나다 도모미 전 정조회장 등과 더불어 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의견 광고를 내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는 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앞으로 교과서 검정 등에서 이런 역사 인식이 반영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미국에선 홍보회사·로비스트 동원해 반말 무마: 아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로비스트를 활용해 미국에서 평화헌법 개헌에 대한 반발 여론을 무마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것이 사사카와 재단 활용이다.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아베는 사사카와 재단 워싱턴 사무소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한국과 일본에선 이를 ‘미국 내 대표적 일본 홍보기관’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사사카와의 정체를 알면 소름이 끼친다. 역사 왜곡에 조직적으로 관여해왔다는 의혹이 있는 우익 거물인 사사카와 료이치의 이름을 딴 것이기 때문이다.
사사카와는 자타가 공인하는 파시스트다. 태평양전쟁 전 이탈리아 파시스트인 베니토 무솔리니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1931년 일본판 파쇼 정당인 국수대중당을 창당해 총재를 맡았다. 39년에는 이탈리아로 날아가 무솔리니와 회견해 유명해졌다. 비행기와 비행장을 군에 헌납하며 애국운동을 주도하다 42년 중의원에 당선했다. ‘한 사람의 목숨을 한 대의 비행기에 실어 적 군함 한 척과 바꾼다’는 개념을 주장해 가미가제 자살 공격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후 당연히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용의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3년 간 수감된 후 (진주만 공격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 내각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석방된 사사카와는 경정(조정 경주) 사업으로 거부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62년 닛폰재단의 전신인 일본선박진흥회를 세웠다. 닛폰재단은 약 2660억엔의 자산에서 발생하는 연간 220억엔 정도의 수익을 예산으로 쓰는 일본 최대의 재단이다. 사사카와는 197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파시스트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닛폰재단은 선박조사·민간교류·일본홍보·빈민지원 등의 일을 하는데 실상은 각국의 지식인·학자·정치인에게 파고들어 사사카와의 전범 행적과 일본의 전쟁범죄를 왜곡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이 재단이 출자한 도쿄재단이 난징대학살을 허구라고 왜곡하는 [난징 학살: 사실과 허구, 진실을 위한 역사학자의 탐구]라는 책을 전 세계에 뿌린 것을 들 수 있다. 미국을 방문한 아베가 하필 이런 단체에서 연설한 이유는 ‘지지기반 다지기’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민간단체를 앞세워 민간교류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끈질기게 역사왜곡 활동을 펴왔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도 미국의 홍보·로비 업체를 고용해 물밑에서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치밀하게 사전정지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 대형 홍보회사인 ‘대슐그룹’과 로비 전문 로펌인 ‘아킨 검프’ ‘호건로벨스’ ‘포데스타그룹’ 등과 계약했다는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 주류 사회와 연결되는 홍보·로비 업체를 고용해 미국의 정책입안자·의사결정권자·막후실력자·싱크탱크·미디어 등을 상대로 일본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노하우와 방안, 인맥을 제공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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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향한 첫 관문 통과한 아베: 분주한 여름은 7월 10일 아베의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시작됐다. 우호세력까지 합치면 아베는 중의원, 참의원 전체의 3분의 2 의석을 사실상 확보했다. 염원인 개헌을 할 수 있는 선이다. 전후 일본 체제를 결정지었던 평화헌법의 9조의 개정을 위해 아베는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이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혹시나 평화헌법을 사수하자는 호헌론이 나올까 이 문제를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경제 회복을 위해 힘을 실어달라는 말만하고 다녔다. 그 결과 전후 일본 사회의 기둥이었던 평화헌법을 바꿀 수 있는 첫 단계를 통과했다.
문제는 민심이다. 국회의원 머릿수만 충분하다고 개헌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 개헌 반대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시위와 홍보전으로 개헌으로 달려가려는 아베를 막아섰다. 일본의 양심과 진보 진영이 아베의 반대편에 섰다.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은 현재로선 국회에서 소수파다. 하지만 선전전에 따라 그 비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다음 선거를 걱정해야 하는 정치인들이 국정을 이끌고 나가는 내각제에서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베가 조심하는 이유다.
27년 만에 국회 양원 장악한 연립 여당: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정치를 잠시 알아보자. 일본 국회는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참의원은 임기가 6년으로 한꺼번에 다 바꾸지 않고 3년마다 절반씩 교체하는 선거를 치른다. 중의원에선 자민당이 이미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참의원 선거까지 승리하면서 이제 아베는 개헌으로 가는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개헌 절차를 보면 이를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일본에서 개헌을 하려면 1단계로 중의원에서 100명, 참의원에서 50명 이상이 동의한 개헌안을 국회에 상정해야 하다. 그 다음 2단계로 양원의 재적 3분의 2가 찬성하면 국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다.
마지막 3단계는 18세 이상 유권자의 과반이 국민투표에서 찬성하면 개헌이 결정된다. 아베와 개헌 세력은 이번 참의원 선거 승리로 1단계에 이어 2단계 조건 둘째 조건까지 충족시켰다. 일본 정당 중 개헌에 찬성하는 정당은 자민당을 포함해 공명당, 오사카유신회,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이 있다. 이를 개헌 4당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개헌 세력이다. 개헌 세력은 참의원에서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석(162석) 이상을 확보했다. 중의원에선 이미 자민당이 전체 475석의 61%인 290석을 차지하고 있다. 연립 정권을 이루고 있는 공민당의 35석을 합치면 자민-공명 연립 여당은 전체의 68%인 325석을 차지하고 있다. 연립 여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참의원에서도 과반 고지에 올랐다. 자민당이 116석(48%), 공명당이 20석으로 전체 242석 중 136석으로 56%를 차지했다. 자민-공민 연립 여당은 1989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양원 단독 과반을 누리게 됐다.
아베노믹스 효과 시들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선거에선 인구 고령화에 따른 실버 민주주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 선거권을 처음으로 18세 이상으로 2년 낮췄다. 하지만 역대 참의원 선거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젊은이들에게 참정권을 준다고 아베의 독주를 막지는 못한 것이다. 더구나 일본 유권자들의 관심은 개헌이 아니라 경제에 있었다. 재정확대, 금융완화, 구조개혁이란 세 개의 화살을 통해 일본을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 탈출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가 일본 국민에게 먹혀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시종 무력한 모습을 보인 야당도 문제였다. 헌법 개정을 반대하고 아베노믹스 무용론을 주장하는 민진당, 공산당, 사민당, 생활당은 개헌 저지선을 확보하기 위해 단일 후보를 내세웠다. 하지만 집권 대안세력으로서의 믿음을 주지 못해 참패했다.
아베노믹스는 시행 3년을 넘기면서 사실상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거기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등으로 엔화 값이 치솟으면서 수출마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로선 아베노믹스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중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비롯한 세력을 확대하고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까지 가중되면서 아베의 개헌 노선에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개헌 위한 민심 잡기: 일본에서 개헌은 ‘일본을 보통국가, 즉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로 바꾸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헌 세력이 노리는 것은 헌법 9조의 무력화다. 9조의 내용을 살펴보자. 9조 1항은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영구히 포기 한다’라고 되어 있다. 9조 2항은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 해, 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치 않는다’라고 명기돼 있다. 개헌 세력은 태평양전쟁 패전 후 일본을 점령 통치했던 연합국 최고사령부로부터 ‘전쟁과 군대 보유를 포기한다’는 내용의 평화헌법을 강요당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이 평화헌법은 1947년 제정 후 한 번도 개헌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행여나 9조를 손대자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아베 총리는 이를 문제삼고 있다. 그는 “일본 헌법은 일본이 점령당한 시대에 제정됐다”며 “이제는 21세기에 맞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는 개헌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국민투표를 통과하려면 국민 여론을 다독거려야 한다는 점이다. 아베의 목표는 ‘전쟁, 교전권, 군대 보유’를 포기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는 데 있지만 정작 국민 사이에선 이런 조항의 ‘평화헌법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55%(아사히 신문 5월 조사)에 이른다. 국민의 반대가 강하기 때문에 아베가 섣불리 9조를 바꾸자는 얘기를 입에 올리면 반개헌 세력, 반아베 세력이 집결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28조엔 쏟아 붓는 특단의 충격 요법: 8월이 되자 아베의 국민 다독거리기 대책이 면모를 드러냈다. 경제 살리기에 28조엔(약 305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붓기로 했다. 아베는 이러한 내용의 경기부양 패키지를 8월2일 발표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이런 거액으로 위기에 처한 ‘아베노믹스’에 본격적인 재시동의 고전류를 흘려 보내겠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도입 등 극단적인 각종 정책을 계속 해도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는 경기를 일으켜 세우려는 특단의 충격 요법이다. 대형 인프라 정비와 저소득층 지원이 골자다. 재정지출과 금융회사의 대출 등을 포함한 사업 규모는 28조1000억엔에 이른다. 일본이 단행한 경기 부양책 중 역대 3번째 규모다. 아베 정부는 이번 경기 부양책이 단기적으론 실질 GDP를 1.3%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2045년 개통 목표인 초고속 열차 ‘리니어 주오신칸센’ 개통을 최대 8년 앞당기는 등 ‘21세기형 인프라’ 정비 사업을 가속화한다.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는 효과도 있어 일반 인프라보다 보기에도 좋고 파급효과도 크다. 서민들이 쓸 돈을 늘리기 위해 고용보험료율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쳤다. 지금까지 일본에선 공적 연금을 받으려면 25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했다. 하지만 아베는 이를 ‘10년 이상’으로 완화해 17만 명이 추가로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8조엔 가운데 앞으로 2년 간 투입될 ‘새로운 돈’인 정부의 직접적 재정지출은 7조5000억엔이다. 8월 말 의회에 제출할 추경예산안에서 올해 4조엔을 확보해 쓰고 나머지는 2017년도 예산안과 특별회계에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간 기업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재정투융자’가 포함되고 브렉시트 대책으로 중소기업 대상 대출을 확대하면서 전체 사업 규모는 28조엔으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 규모는 아베의 의지를 반영한다. 직접적으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만, 넓게 보면 이를 통해 민심을 다독거려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는 개헌을 밀어붙이겠다는 집념의 발현이다.
개각에서 강경파 전면 배치: 아베는 자신의 임기 중에 개헌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있다. 이미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임기 중 개헌을 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의원 선거 직후에도 후지TV 개표 방송에 출연해 “국회헌법 심사회가 개헌 논의를 심화시켜 어떤 조문을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개헌에 대한 찬반을) 국민투표에서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베는 2006년 1차 집권 때 개헌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1년 만에 단명 정권으로 물러났다. 지금 아베 임기는 2018년 9월까지 2년여 남았다.
자민당 내에선 개헌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총재 자리를 2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는 당규를 고쳐 아베 총리가 더 오래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아베는 8월3일 이를 일축했다. 이날 개각한 아베는 총리관저에서 개각에 따른 기자회견을 열고 “임기가 2년이나 남았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임기 연장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해진 임기 내 개헌을 마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번 개각의 특징은 강경 우익 인사를 전면에 포진했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개각에서 주요 자리에 강경 우파 정치인을 등용했다. 방위상에는 과거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와 관련한 역사 인식 논란을 일으킨 대표적 우파 여성 정치인 이나다 도모미(57) 자민당 정조회장을 기용했다. 이나다는 태평양 전쟁의 일본인 전범들을 처벌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검증을 요구해왔다. 교과서를 책임지는 문부상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해온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성 부대신을 기용했다. 중의원 6선인 마쓰노는 2012년 미국 뉴저지주 지역 신문 ‘스타레저’에 당시 아베 자민당 총재, 이나다 도모미 전 정조회장 등과 더불어 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의견 광고를 내기까지 한 인물이다. 그는 군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앞으로 교과서 검정 등에서 이런 역사 인식이 반영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미국에선 홍보회사·로비스트 동원해 반말 무마: 아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로비스트를 활용해 미국에서 평화헌법 개헌에 대한 반발 여론을 무마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대표적인 것이 사사카와 재단 활용이다. 지난해 미국을 방문한 아베는 사사카와 재단 워싱턴 사무소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한국과 일본에선 이를 ‘미국 내 대표적 일본 홍보기관’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사사카와의 정체를 알면 소름이 끼친다. 역사 왜곡에 조직적으로 관여해왔다는 의혹이 있는 우익 거물인 사사카와 료이치의 이름을 딴 것이기 때문이다.
사사카와는 자타가 공인하는 파시스트다. 태평양전쟁 전 이탈리아 파시스트인 베니토 무솔리니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1931년 일본판 파쇼 정당인 국수대중당을 창당해 총재를 맡았다. 39년에는 이탈리아로 날아가 무솔리니와 회견해 유명해졌다. 비행기와 비행장을 군에 헌납하며 애국운동을 주도하다 42년 중의원에 당선했다. ‘한 사람의 목숨을 한 대의 비행기에 실어 적 군함 한 척과 바꾼다’는 개념을 주장해 가미가제 자살 공격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 후 당연히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용의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3년 간 수감된 후 (진주만 공격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 내각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석방된 사사카와는 경정(조정 경주) 사업으로 거부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62년 닛폰재단의 전신인 일본선박진흥회를 세웠다. 닛폰재단은 약 2660억엔의 자산에서 발생하는 연간 220억엔 정도의 수익을 예산으로 쓰는 일본 최대의 재단이다. 사사카와는 1974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파시스트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닛폰재단은 선박조사·민간교류·일본홍보·빈민지원 등의 일을 하는데 실상은 각국의 지식인·학자·정치인에게 파고들어 사사카와의 전범 행적과 일본의 전쟁범죄를 왜곡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이 재단이 출자한 도쿄재단이 난징대학살을 허구라고 왜곡하는 [난징 학살: 사실과 허구, 진실을 위한 역사학자의 탐구]라는 책을 전 세계에 뿌린 것을 들 수 있다. 미국을 방문한 아베가 하필 이런 단체에서 연설한 이유는 ‘지지기반 다지기’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민간단체를 앞세워 민간교류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끈질기게 역사왜곡 활동을 펴왔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도 미국의 홍보·로비 업체를 고용해 물밑에서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치밀하게 사전정지 작업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 대형 홍보회사인 ‘대슐그룹’과 로비 전문 로펌인 ‘아킨 검프’ ‘호건로벨스’ ‘포데스타그룹’ 등과 계약했다는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 주류 사회와 연결되는 홍보·로비 업체를 고용해 미국의 정책입안자·의사결정권자·막후실력자·싱크탱크·미디어 등을 상대로 일본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노하우와 방안, 인맥을 제공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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