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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촌 열전] 성북동→압구정동→대치 · 도곡동→반포동→?

[대한민국 부촌 열전] 성북동→압구정동→대치 · 도곡동→반포동→?

“성북동입니다.” 과거 TV 드라마 속 부잣집 사모님들이 집에서 전화를 받을 때 자주 등장하던 대사다. 굳이 누구의 집인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거주지를 얘기하는 것만으로 신분을 드러낸다. 그 정도로 부자에게 ‘○○ 주민’이라는 건 큰 자부심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부자들이 모여 사는, 이른바 ‘부촌(富村)’이 늘 궁금하다. 일종의 시기와 질투,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부촌은 어디일까. 한 곳만 딱 꼽기는 쉽지 않다. 부촌의 중심이 시대에 따라, 크게 10년 주기로 세대 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난 50여년 간 역동적으로 변해온 대한민국 부촌의 흐름을 짚어봤다.
대한민국 부촌의 역사는 1960년대 서울 성북동과 한남동에 권력 실세들이 하나둘 자리를 틀면서 시작됐다. 특히 성북동은 권력의 중심지였다. 당시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양택식 전 서울시장 등 정계 주요 인사가 청와대가 가까운 성북동에 자리를 잡았다. 한남동 역시 군 출신 엘리트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과거 육군본부가 용산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주변에는 ‘돈’이 모여 들게 마련. 70년대 고성장 시대를 거치면서 이들 지역에는 재계 인사들이 속속 집결했다. 특히 삼성·LG 가문이 한남동에 몰렸고, 성북동에는 주로 현대가(家) 출신이 둥지를 틀었다. 분양마케팅업체인 내외주건의 정연식 부사장은 “성북동과 한남동은 부촌 라이벌로 유명했다”며 “성북동 부촌엔 재벌 1세대가, 한남동에는 재벌 2·3세대가 오래 살았다”고 설명했다.
 권력 실세 둥지 튼 성북동·한남동
70년대 들어선 동부이촌동이 인기를 모았다. 당시 강북의 부촌이 단독주택 등으로 이뤄진 것과 달리 이곳은 아파트촌이었다. 원래 한강변 백사장이던 동부이촌동은 60년대 후반 수자원공사의 공유수면매립공사로 인해 아파트가 연이어 들어섰다. 이 일대 ‘터줏대감’이자 고가 아파트인 한강맨션은 1970년 입주 당시에 ‘사치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교통 여건이 뛰어난데다 주변에 용산가족공원·국립중앙박물관 같은 편의시설이 많아 성북동 등 다른 부촌 못지 않게 거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70년대 후반 이후엔 강남권(서초·강남·송파구)이 부촌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에 부촌의 중심이 강북에서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내려간 것이다. 온통 논밭이었던 강남권에 부자가 몰리기 시작한 건 정부가 한강 이남 개발을 본격화하면서다.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서울 인구가 급증하자 이들을 수용할 대체 주거지로 현재의 강남권이 개발된 것이다. 그렇다고 강남권 전역이 인기 지역이었던 것은 아니다.

개발 초기에는 압구정동이 ‘강남권 부촌 1번지’로 꼽혔다. 강북과 맞닿은데다 한강변 입지를 갖췄고, 당시에는 많지 않던 중대형(전용면적 85㎡ 초과)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선 덕분이다. 1976년부터 79년까지 입주를 마무리한 현대 1~7차를 비롯해 한양·미성아파트 등이 대표 단지다. 당시 사회 고위층 특혜 분양 시비에 휘말렸을 만큼 재력가들이 몰렸다. 이들 단지 주변으로 교육·편의시설이 대거 들어서면서 압구정동은 90년대까지 명성을 날렸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당시 지금의 한남대교와 동호대교가 지어지고 고급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앞다퉈 자리를 잡았다”며 “전직 고위 관료와 기업인이 다수 거주한 것으로 알려진다”고 전했다.
 강남 개발로 압구정동 급부상
하지만 20년 가까이 강남의 ‘전통 부촌’으로 명성을 날리던 압구정동은 2000년대 들어 대치·도곡동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가 노후한 틈을 타, 두 지역에 최첨단의 새 아파트가 속속 들어섰기 때문이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 위로 올라간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인 타워팰리스(66층)를 비롯해 대림아크로빌·대치센트레빌 등이 2000년대 초 입주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초고층 주상복합에 대한 선망과 주변 압구정동 등보다 녹지가 넉넉한 점이 부자를 불러모을 만한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자녀 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도 한몫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교육열이 뜨거워지면서 대규모 학원가가 조성됐고, 이른바 ‘강남 학군’이 형성됐다. 대치동의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고등교육을 받고 유학 경험이 많은 전문직 종사자가 많이 산다”며 “자녀 교육이 집터를 잡는 기준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대치·도곡동의 명성도 10년을 넘기진 못했다. 한강변 입지를 자랑하는 서초구 반포동에 ‘강남 맹주’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곳은 지하철 3·7·9호선 이용이 편리하고 교육·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주거 여건이 뛰어나다. 특히 2008년과 2009년에 반포동 주공2·3단지를 재건축한 반포자이·래미안퍼스티지가 잇따라 입주한 공이 컸다. 이들 단지는 뛰어난 입지 여건과 학군·브랜드파워 등으로 단숨에 강남권 랜드마크(대표) 아파트로 떠올랐다. 이곳엔 유산을 물려받거나 사업으로 자산을 일군 전통 부자보다는 젊은 대기업 임원이나 판·검사, 연예인 같은 신흥 부자가 많이 산다. 익명을 원한 은행권 반포지점 PB센터 팀장은 “반포 래미안퍼스티지나 반포자이 등에 거주하는 주택 수요자의 상당수가 의사나 변호사, 대학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라고 귀띔했다. 이어 2013년 신반포1차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의 분양 성공으로 반포동은 신흥 부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강남구 개포동이 반포동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개포주공아파트 재건축이 속속 진행되면서다.

부촌의 중심이 시대에 따라 달라진 만큼 부자들이 선호하는 주택 유형도 차츰 변했다. 크게 ‘단독주택→아파트→주상복합’ 순으로 변해왔다. 물론 성북동이나 한남동의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이도 여전히 많지만, 최근 부자들은 대형 아파트나 주상복합을 선호하는 추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과거 집을 고를 때 전통적인 부자들이 프라이버시(사생활 보호)를 최고 가치로 꼽았다면, 그 이후에는 도시생활의 편의성이나 교육 인프라 등을 거주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잡아왔다”고 설명했다.
 단독주택→아파트→주상복합으로 선호 주택 변화
현재 강남권 ‘최고 부촌’ 자리를 놓고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과 개포동, 서초구 반포동이 ‘3파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부촌 경쟁은 우선 집값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8월 중순 기준으로 3.3㎡당 평균 아파트값이 가장 비싼 곳은 개포동(4402만원)으로 집계됐다. 압구정동(4155만원)과 반포동(4141만원)이 뒤를 이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압구정동 아파트값이 개포동과 반포동에 비해 3.3㎡당 100만원 안팎 비쌌지만, 지난해 이후 개포동과 반포동 일대 재건축 사업이 착착 진행된 영향에 추월당했다.

하지만 개별 단지별로 보면 반포동이 다소 우위에 있다. 9월 입주 예정인 아크로리버파크의 경우 분양권에 최고 6억원의 웃돈(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전용 84㎡형(옛 34평) 로열층이 20억~21억원대에 매물로 나온다. 3.3㎡당 가격이 최고 6200만 원에 달하는 셈이다. 반포타운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물이 거의 없지만 수요가 많아 9월 입주 때까진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 뒤를 개포가 바짝 따라붙고 있다. 개포동 시영아파트 전용 50㎡형(옛 16평)은 10억원으로, 3.3㎡당 6100만원 정도다. 최근 고분양가 논란을 일으킨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3단지 재건축)는 전용 84㎡형(옛 34평)이 14억6800만원에 일반분양됐다. 3.3㎡당 4300만원대다. 압구정동 현대 13차 전용 108㎡형(옛 36평)은 현재 3.3㎡당 5500만원 수준인 20억원에 매물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개별 단지의 가격만을 보면 강남권에서 반포 아크로리버 파크가 독보적”이라고 말했다.

부촌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가 ‘비싼 집값’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갖춰야 한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교통 등 입지여건과 교육환경이 좋고 주거환경이 쾌적한 곳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신흥 부촌인 반포와 전통 부촌인 압구정은 모두 한강변을 끼고 있고 주변 편의시설 이용이 수월하며 강남과 강북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대치동은 학군이 좋고, 대모산과 가까운 개포는 쾌적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중대형 주택형이 많아야 부촌의 조건이 갖춰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압구정동 일대와 도곡동 일대엔 전용 120~150㎡(옛 40~50평)를 넘는 아파트가 많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로 개포동을 부촌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도곡스타PB센터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개포동에는 중대형 물량이 드물고 전용 60㎡ 이하 소형 주택형이 많다”며 “단순히 3.3㎡당 집값이 높다는 이유로 부촌의 반열에 오를 순 없다”고 주장했다.
 소형 주택 많은 개포동은 부촌으로 보기 어려워
그렇다면 10년 후 최고 부촌은 어느 곳이 될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압구정동을 꼽는다. 압구정 일대 낡은 아파트가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숲으로 바뀌면 반포 등에 내줬던 타이틀을 되찾을 것이란 전망이다. 아직 사업 초기 단계인 만큼 재건축이 마무리되려면 10년은 걸릴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박합수 위원은 “개발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명실상부한 전국구 부촌으로서의 입지를 굳힐 것”이라며 “아파트값이 3.3㎡당 7000만원 선에 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새로운 부촌 후보지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하다. 우선 서울 용산 일대가 신흥 부촌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용산은 미래 부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췄다”며 “서울의 중심 입지에다 미군기지 이전부지 개발, 신분당선 연장선 추진, 초고층 주상복합 건립 등 개발 호재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도 후보지로 물망에 오른다. 한강과 가까운데다 제2롯데월드 개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등으로 전망이 밝다는 얘기다. 수도권에서는 제2테크노밸리 조성 등의 호재가 있는 판교신도시와 새 아파트가 속속 입주 중인 위례신도시가 새로운 부촌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방에서는 부산 해운대가 차세대 부촌에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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