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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대기업 사내 벤처] 웬만하면 밀어준다 회사도 직원도 윈윈

[늘어나는 대기업 사내 벤처] 웬만하면 밀어준다 회사도 직원도 윈윈

삼성전자가 창의적 문화를 퍼뜨리고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만든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의 사무실. / 사진:중앙포토
다양한 스타트업이 모여있기로 유명한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수입차 차주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벤처기업 한 곳이 있다. 자동차 외장수리 O2O(Online to Offline, 온라인 연계 오프라인 서비스) 업체 ‘카닥’이 그 주인공이다. 카닥은 이용자가 자동차의 파손 부위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 수리 업체의 견적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자동차 외장수리 견적 비교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자가 애플리케이션(앱)에 사진을 올리면 평균 7분 안에 견적을 받아볼 수 있다. 접수 건당 평균 3개 이상의 견적을 비교해볼 수 있고, 견적 제공 업체와 채팅 상담을 하면서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카닥을 통해 직접 수리를 의뢰할 수도 있다. 월별 견적 요청 건수는 약 1만2000건으로 이르면 올해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전망이다.
 사내 혁신 자극하고 신종 사업 모색
카닥은 사내 벤처의 대표적 모델로 손꼽힌다. 2012년 카카오(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근무하던 이준노 카닥 대표는 사내 벤처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1위를 한 것을 계기로 카닥을 창업하게 됐다. 카닥은 지난해 카카오의 투자를 받으며 카카오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 대표는 “사내 공모전이 아니었다면 창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며 “카닥은 카카오라는 브랜드를 통해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카카오는 새로운 O2O 서비스를 확충하는 ‘윈윈’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IT(정보기술) 기업이 잇따라 사내 벤처나 기존 사업을 떼내 독립시키고 있다. 스타트업의 유연한 조직 문화를 활용해 사내 혁신을 돕고 대규모 투자 기회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이 적은 투자로 최선의 효과를 얻으려는 시도다. 삼성전자는 올해 사내 창업 지원 조직인 C랩에서 설립된 5개 사내 스타트업을 분사해 독립시켰다. 분사한 스타트업의 업종은 스마트 기기부터 앱, 건축자재까지 다양하다. ‘웰트’는 허리둘레와 활동량을 측정해 비만을 막아주는 스마트벨트를 개발했으며, 망고슬래브는 입력한 문구를 포스트잇으로 출력해 주는 ‘아이디어 프린터’를 만들었다. ‘에임트’는 유리섬유로 만든 건축용 진공단열재를 개발했다. 삼성전자 측은 “현재까지 130여 개의 C랩 과제가 선정돼 480여 명의 직원이 참여하고 있다”며 “하반기에도 4∼5개 스타트업이 추가로 분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C랩에서는 지난해에도 9개 스타트업이 분사했다. 진동을 통해 손끝으로 통화할 수 있는 손목밴드를 개발해 삼성전자로부터 독립한 ‘이놈들연구소’는 중국의 벤처 투자 업체 창업방·DT캐피털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걸음걸이나 운동 자세를 교정해주는 스마트슈즈를 개발한 ‘솔티드벤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CES)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LG전자도 스타트업·벤처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측정하는 기기를 개발한 ‘인핏앤컴퍼니’는 LG전자 산하 연구소에서 개발하던 사업을 분사한 사례다. LG전자 신사업육성팀 관계자는 “연구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선발해 5개월의 개발 기간과 1000만원의 개발비를 지원하는 아이디어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자 액자를 만든 ‘에이캔버스’는 LG전자가 사내에서 나온 창업 아이디어를 2년 간 키운 후 ‘스타트업으로 홀로 서 보라’며 지원한 사례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김평철 전 소프트웨어 플랫폼 연구소장과 “북미 지역에서 잘 팔릴 것 같다”며 의기투합한 댄 리 북미 서비스·R&D센터 매니저 등 7명이 창립 멤버다. 에이캔버스는 일반 소비자들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는 서비스인 ‘킥스타터’에서 300여 명으로부터 12만5074달러를 유치했다. LG전자 측은 “성공을 돕기 위해 관련 특허 및 기술을 제공하고 창업전문가들의 컨설팅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원할 경우 멤버들은 3년 안에 언제든 회사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패해도 복귀 가능해 과감하게 도전
네이버는 2013년 캠프모바일을 독립시켰다. 폐쇄형 소셜네트 워킹서비스(SNS) ‘밴드’를 운영하는 업체다. 지난해에는 웍스 모바일을 기업용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문서 관리 소프트웨어 등을 제공하는 전문 업체로 분사시켰다. 온라인·모바일 만화 서비스 ‘웹툰’도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분리해 독립 경영하고 있다. 카카오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서 쓰는 캐릭터를 인형·스티커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카카오프렌즈를 분사해 운영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도 지난해 하반기 출범한 스타트업 태스크포스팀(TFT)을 통해 임산부 전용 화장품과 아웃도어 스포츠용 화장품 브랜드를 온라인에서 출시했다.

삼성SDS는 최근 사내벤처 프로그램 공모전 ‘씨드랩’을 개최하고 ‘제2의 이해진 키우기’에 나섰다. 공모 범위는 제조·유통·IT 등 현재 수행 중인 사업 관련 아이디어뿐 아니라 증강현실(AR)·가상현실(VR)·드론·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 발굴을 위한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아이디어가 선정된 팀에는 기획자·개발자 등 전문가를 지원해 6개월 간 스타트업 형태로 운영하고 이후 사업성이 검증되면 사내 벤처와 분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삼성SDS는 분사하는 사내 벤처에 대해 지분 투자도 고려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삼성SDS 출신의 대표적인 IT 기업인이다. 이 의장은 입사 5년 차인 1997년 동료 사원 3명과 함께 사내 벤처 1호인 ‘웹글라이더팀’을 만들었고 이후 삼성SDS 지원을 받아 네이버컴(현 네이버)를 설립하며 인터넷 포털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의장과 회사 동기인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퇴사 후 한게임을 창업하며 국내 IT업계 큰 축으로 거듭났다.

기업들의 사내 벤처가 활성화되는 것은 불투명한 경기 상황과도 관련이 깊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창업을 돕는 소규모 투자로 새로운 시장 창출에 나선다는 것이다. 네이버의 웹툰이나 카카오의 캐릭터 상품 판매 등은 기존 인터넷 서비스와는 성격이 달라 독립해 운영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분석도 있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수록 많은 대기업이 벤처 형태의 소규모 사업 조직을 키울 거란 게 업계의 전망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은 의사결정 속도나 과감성에서 스타트업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에 취약하다”며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사내 벤처 육성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도 별로 손해볼 게 없다. 최현철 이놈들연구소 대표는 “창업 준비에 대기업의 기술과 자금이 뒷받침되는데다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도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진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내부에 창의적이고 민첩하게 운영되는 스타트업 조직을 키우는 것은 오늘날처럼 변화무쌍한 경영환경 속에서는 매우 중요하다”며 “거대 기업 내부에서 스타트업을 키워내려는 시도는 기존 제도와 고정관념을 스스로 벗어나 하나의 혁신을 이루려는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기업 내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일은 1차 성공까지가 핵심”이라며 “여기에는 거대한 고정관념의 성에 둘러싸여 있는 사업 방식, 조직 운영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기존과 전혀 다르게 얼마나 오랫동안 시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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