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명품 노리는 일본 손목시계] 기계식 시계 내세워 스위스 넘는다
[최고급 명품 노리는 일본 손목시계] 기계식 시계 내세워 스위스 넘는다
일본 손목시계 업계에는 ‘운죠(雲上)’라는 말이 있다. 구름 위의 존재, 즉 최고 중의 최고에 해당하는 명품 브랜드(흔히 세계 3대 시계라고 말하는 바쉐론 콘스탄틴, 파텍 필립, 오데마피게)를 일컫는 말이다. 지금 일본 브랜드가 진지하게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세이코 홀딩스(이하 세이코)의 제조 자회사인 모리오카 세이코공업 시즈쿠이 공장에서 고급 손목시계 ‘그랜드 세이코(GS)’의 조립·조정 기사로 일하는 이토 츠토무는 “내가 시계 기술자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1991년 입사 당시 공장에는 쿼츠식(※흔히 시계는 구동 방식에 따라 태엽 구동으로 이뤄지는 기계식 시계와 수정 진동자를 이용하고 전지로 작동되는 쿼츠식 시계로 구분한다. 1970년대 이후 간편하고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정확도를 자랑하는 쿼츠형 시계가 널리 보급됐으나 최근엔 기계식 시계로 회귀하는 이용자가 늘고 있다) 손목시계 조립라인만 있었으며, 이토는 제조라인의 조작을 담당했다. 그러다 1999년 시즈쿠이 공장에 기계식 시계 제조 부문이 이전해오면서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 기회를 살려 시계 기술자로 돌아선 이토는 그로부터 15년에 걸쳐 기술을 연마했다. 지금은 장인 대우를 받는다. 그는 “기계식은 자신의 노력이 그대로 시계의 완성도에 반영되는 매력이 있다”라고 보람을 이야기한다.
세이코는 1998년 기계식 GS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신모델 중에는 50만엔(약 540만원)이 넘는 것도 등장했다. 핫토리 신지 세이코 CEO는 “GS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기계식으로의 회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세이코만이 아니다. 시티즌 홀딩스(이하 시티즌)도 올해 스위스의 최고급 시계 브랜드인 프레드릭 콘스탄트(이하 FC)를 인수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손목시계 시장은 불가사의하다. 쿼츠식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는’ 기본 성능 면에서 분명 기계식보다 월등하다. 기계식은 매일 수초에서 수십 초의 오차가 발생하는데 반해 쿼츠식의 오차는 한 달에 불과 20초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가격도 훨씬 싸다. 그럼에도 손목시계 시장에서 매출의 약 70%를 기계식이 차지한다. 그렇기에 브랜드 입장에서 고급 기계식 분야 공략은 꼭 필요하다.
일본의 손목시계산업은 1913년 세이코가 처음으로 일본산 손목시계 ‘로렐’을 발매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뒤이어 1931년 시티즌도 1호 손목시계를 발매했다. 당시 스위스·일본 제품과 더불어 미국·독일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기술이 정체됐다. 패전국은 설비 파괴 등으로 산업이 크게 후퇴해, 중립을 지키던 스위스가 시장을 주름잡게 된다. 하지만 1969년 세이코가 세계 최초로 쿼츠식 손목시계 ‘아스트론’을 발매하면서 산업구조가 격변한다. 특히 세이코가 특허를 공유해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가 크게 늘었다. 생산 기술의 발달로 가격도 떨어져 눈 깜짝할 새에 기계식에서 쿼츠식으로 시장 판도가 바뀌어갔다. 세이코와 함께 시티즌도 쿼츠 바람을 탔다. 시티즌은 1976년 세계 최초로 아날로그식 태양 전지 손목시계를 발매해 전지 교체 문제를 극복했다. 1980년대부터는 근간 부품인 무브먼트(동력장치)의 외판을 출시해 무브먼트 생산 개수로 세계 최고가 됐다. 그 과정에서 일본 브랜드는 기계식 개발을 축소하고 쿼츠로 경영 자원을 집중시켰다. “일본이 쿼츠 시계로 시계산업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도쿠라 토시오 시티즌 CEO).
일본 시장과는 대조적으로 스위스 시계 업체들은 과반수가 도산에 직면했다. 그런 스위스 시계 업계가 부활하는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 스와치그룹이다. 1983년 ‘오메가’나 ‘해밀턴’을 중심으로 한 SSIH(시계산업스위스협회)와 ‘론진’을 중심으로 한 ASUAG(스위스시계산업연합)가 합병해 스와치그룹의 전신인 SMH가 탄생했다. 같은 해에 쿼츠 시계 ‘스와치’가 발매된 것도 큰 몫을 했다. 스와치는 독특한 디자인과 솔깃한 한정 모델 전략을 앞세워 세계적인 인기 시리즈가 됐다. 스와치그룹은 성공 자금을 토대로 ‘블랑팡’이나 ‘브레게’ 같은 기계식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했고, 대대적인 광고 공세와 함께 기계식 시계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 스와치그룹이 성공하자 보석·귀금속 업계도 시계 브랜드 인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제니스’와 ‘태그호이어’를 인수한 프랑스 LVMH(루이비통 모에헤네시) 그룹과 ‘까르띠에’와 ‘IWC’를 인수한 스위스 리슈몽 그룹이다. 브랜드화를 특기로 한 양사의 시장 참여로 1990년대 스위스 시계산업은 크게 부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본 업체가 수세로 돌아섰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저가 쿼츠 시계가 대량 유통되기 시작하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TV 등 각종 전자제품에 시계 기능이 탑재되면서 가격 파괴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자 세이코와 시티즌 모두 브랜드 육성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세이코는 기계식 GS를 부활시키고, 시티즌도 무브먼트 판매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의존에서 벗어나고자 ‘시티즌’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또한 외부 전파를 수신해 시각 오차를 자동 보정하는 전파시계를 개발했다. 2003년 시티즌이 세계 최초로 풀메탈 전파시계를 발매했을 당시 사내에서는 5만엔(약 54만원)이라는 가격 설정에 대해 ‘이렇게 비싼 시계가 팔릴 리가 없다’고 비관적인 의견이 강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크게 히트했다. 이듬해 세이코도 추격했지만 가격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오카자키 유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기술의 진화를 브랜드 가치 향상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12년엔 세이코가 세계 최초로 위성항법장치(GPS) 태양전지 손목시계를 발매했다. GPS를 통해 얻은 정보로 시각 오차를 보정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있게 됐다. 19만엔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이 또한 크게 히트했다. 2014년 시티즌도 GPS 대응 제품을 투입했다. 지금까지 양사 모두 20만엔이 넘는 모델을 판매 중이다.
신기술이 사업을 이끌며 단가 상승과 수익 개선을 동시에 이뤄낸 일본 브랜드. 하지만 ‘외부로부터 얻은 정보로 시각을 보정’하는 기술 진화는 이제 한물갔다. 향후 성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시계 시장의 핵심인 기계식 시계다. 과제는 해외 시장에서 ‘1000달러(약 110만원)의 벽’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다. 1000달러 이상의 고가 시계시장을 봤을 때 세이코와 시티즌은 일본에서는 선전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스위스 시계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손목시계 저널리스트인 나미키 코이치 도인요코하마대학 교수는 “여전히 ‘일본 브랜드=쿼츠’라는 인상이 강해, 시계를 단순한 공업 제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위스 브랜드들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무브먼트 공급을 둘러싼 대립이다. 스위스 시계 업체 중 무브먼트를 개발·생산하는 기업은 드물다. 대부분 외부에서 사들인 무브먼트를 가공해 자사 제품으로 만들어낸다. 그 공급처 중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에타(ETA)다. 에타는 오래 전부터 스위스 시계 제조 업체에 무브먼트를 공급해왔다. 쿼츠 등장에 따른 재편 과정에서 스와치그룹에 인수된 에타는 이후에도 계속 공급을 해나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스와치그룹의 태도가 달라지면서 2002년 ‘2010년 부품 공급 정지를 위해 단계적으로 공급을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업체들은 맹렬하게 반발했다. 스위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면서 문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2013년 스와치그룹과 공정거래위원회 사이에 ‘2020년 이후는 공급 의무가 없어진다’는 취지의 협의 내용이 승인되면서 다시 논란이 확산됐다. 당장은 중국 시장 침체에 따른 시계 업계의 불황으로 스와치그룹의 태도가 누그러져 어느 정도 진정된 상황이지만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는 일본 브랜드에겐 커다란 기회다. 세이코는 자회사 모리오카가 고급 시계 무브먼트를 생산한다. 시티즌은 부품부터 일관 생산하는 체제를 갖춘데다 라주페레(La Joux-Perret), FC와 같은 무브먼트 제조 메이커를 산하에 두고 있다. 양사 모두 ‘뚜르비옹(오토매틱 무브먼트 시계에 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 오차를 보정하는 장치)’ 제작 등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향후 스와치그룹이 강경 태세를 취할 경우 일본 업체의 생산력은 큰 강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스위스의 뒷모습은 멀기만 하다. 세이코와 시티즌은 각각 정반대의 전략으로 스위스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시티즌은 인수합병(M&A)을 통한 멀티브랜드 전략을 취한다. 도쿠라 토시오 사장은 “시티즌 브랜드 하나만 가지고 다양한 가격대를 공략하는 것은 무리”라며 “해외에서 시티즌은 300~1000달러대 브랜드라고 인식돼 1000달러 이상 가격대에서 승부하려면 멀티브랜드 전략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티즌은 2008년 이미 미국 부로바(BULOVA)를 288억엔(약 3000억원)에 인수했다. 부로바는 아폴로 계획 당시 달 탐사기기에 채용된 것으로 유명한 브랜드다. 10만엔 이하의 가격대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높은 인지도와 강력한 판로를 갖고 있다. 이 M&A로 시티즌은 미국 중가격대 시장에서 점유율 1위가 됐다. 2012년에는 스위스 프로서(Prothor)를 품에 안았다. 프로서는 산하에 무브먼트 업체인 라주페레를 두고 있다. 고급 시계의 확대를 미리 내다보고 고품질의 무브먼트 기술을 확보했다. 일단 판로나 생산 과정을 정비했지만 브랜드 파워가 부족했다. 이를 보완하고자 FC를 인수한 것이다. 인수 금액은 130억엔. FC는 1988년 설립한 브랜드로 역사는 짧지만 무브먼트를 처음부터 생산하는 기술력을 무기로 40만~50만 엔의 중가격대 시장에서 세력을 확대 중이다. 3건의 M&A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는 어느 정도 갖춰졌다. 이제부터는 인수 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단계다. 유통 측면의 상승 효과는 바로 기대할 만하다. 예를 들어 FC는 유럽에서는 강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시장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낮다. 시티즌이 가진 유통망을 살린다면 매출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생산에 미치는 효과도 있다. 시티즌과 FC, 라주페레는 각각의 무브먼트를 제조한다. 서로의 장점을 살리면서 스위스의 기술을 투입해 일본제 고급 무브먼트를 육성할 수도 있다. 도쿠라 사장은 “아직 대형 스위스 시계 업체의 아성에 못 미치지만 2~3년 후부터는 조금씩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이코는 자체 브랜드 육성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2004년 쿼츠와 기계식을 융합시킨 독자 무브먼트 ‘스프링드라이브’를 실용화해 스위스 시계와의 차별화를 도모했다. 2010년부터는 소매점 개척을 본격화하면서 백화점이나 시계 전문점에 세이코 제품만 취급하는 ‘세이코 프리미엄 워치 살롱’을 선보였다. 그 결과 GS의 매출은 최근 5년 동안 3배나 신장했다. 일본에서 세이코의 기계식 시계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판매망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으며 유명 야구선수인 다르빗슈 유를 모델로 기용한 전략도 성공했다. 과거에는 50~60대 고객이 많았지만 최근엔 20~30대로까지 고객층이 확산됐다.
하지만 해외 사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10년 GS를 투입했으니 6년 밖에 안 됐다. 특히 개별 소매점을 파고 들지 못한 것이 과제다. 시계 저널리스트나 수집가의 평가는 높지만, 일반 소비자는 아직 세이코에 대해 중급품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경우가 많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려면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가전 매장처럼 폭넓은 가격대의 상품을 진열하는 소매점이 일반적인 일본과 달리, 해외는 가격대마다 유통망이 분리된 지역이 많아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이에 세이코는 직판망 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파리나 프랑크푸르트 등 세계 71개 매장에 ‘세이코 부티크’를 만들었다. 2018년에는 100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핫토리 CEO는 “실제로 제품을 구입해보면 세이코의 매력을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해외 사업에서 특별히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지역은 없다. 시장이 큰 일본과 미국, 중국에서 모두 각자의 전략을 구사할 것이며 어느 한 곳에 집중시키지는 않을 계획이다. 부티크 매장 역시 아시아를 중심으로 출점했으나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매장을 늘리고 있다. 핫토리 CEO는 “브랜드 가치 향상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므로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2020년에는 GS가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이코는 1998년 기계식 GS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신모델 중에는 50만엔(약 540만원)이 넘는 것도 등장했다. 핫토리 신지 세이코 CEO는 “GS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기계식으로의 회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세이코만이 아니다. 시티즌 홀딩스(이하 시티즌)도 올해 스위스의 최고급 시계 브랜드인 프레드릭 콘스탄트(이하 FC)를 인수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티즌, 스위스 최고급 시계 프레드릭 콘스탄트 인수
일본의 손목시계산업은 1913년 세이코가 처음으로 일본산 손목시계 ‘로렐’을 발매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뒤이어 1931년 시티즌도 1호 손목시계를 발매했다. 당시 스위스·일본 제품과 더불어 미국·독일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기술이 정체됐다. 패전국은 설비 파괴 등으로 산업이 크게 후퇴해, 중립을 지키던 스위스가 시장을 주름잡게 된다. 하지만 1969년 세이코가 세계 최초로 쿼츠식 손목시계 ‘아스트론’을 발매하면서 산업구조가 격변한다. 특히 세이코가 특허를 공유해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가 크게 늘었다. 생산 기술의 발달로 가격도 떨어져 눈 깜짝할 새에 기계식에서 쿼츠식으로 시장 판도가 바뀌어갔다. 세이코와 함께 시티즌도 쿼츠 바람을 탔다. 시티즌은 1976년 세계 최초로 아날로그식 태양 전지 손목시계를 발매해 전지 교체 문제를 극복했다. 1980년대부터는 근간 부품인 무브먼트(동력장치)의 외판을 출시해 무브먼트 생산 개수로 세계 최고가 됐다. 그 과정에서 일본 브랜드는 기계식 개발을 축소하고 쿼츠로 경영 자원을 집중시켰다. “일본이 쿼츠 시계로 시계산업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도쿠라 토시오 시티즌 CEO).
일본 시장과는 대조적으로 스위스 시계 업체들은 과반수가 도산에 직면했다. 그런 스위스 시계 업계가 부활하는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 스와치그룹이다. 1983년 ‘오메가’나 ‘해밀턴’을 중심으로 한 SSIH(시계산업스위스협회)와 ‘론진’을 중심으로 한 ASUAG(스위스시계산업연합)가 합병해 스와치그룹의 전신인 SMH가 탄생했다. 같은 해에 쿼츠 시계 ‘스와치’가 발매된 것도 큰 몫을 했다. 스와치는 독특한 디자인과 솔깃한 한정 모델 전략을 앞세워 세계적인 인기 시리즈가 됐다. 스와치그룹은 성공 자금을 토대로 ‘블랑팡’이나 ‘브레게’ 같은 기계식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했고, 대대적인 광고 공세와 함께 기계식 시계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
해외 시장서 ‘1000달러의 벽’ 공략하는 게 관건
또한 외부 전파를 수신해 시각 오차를 자동 보정하는 전파시계를 개발했다. 2003년 시티즌이 세계 최초로 풀메탈 전파시계를 발매했을 당시 사내에서는 5만엔(약 54만원)이라는 가격 설정에 대해 ‘이렇게 비싼 시계가 팔릴 리가 없다’고 비관적인 의견이 강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크게 히트했다. 이듬해 세이코도 추격했지만 가격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오카자키 유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기술의 진화를 브랜드 가치 향상에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2012년엔 세이코가 세계 최초로 위성항법장치(GPS) 태양전지 손목시계를 발매했다. GPS를 통해 얻은 정보로 시각 오차를 보정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수 있게 됐다. 19만엔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이 또한 크게 히트했다. 2014년 시티즌도 GPS 대응 제품을 투입했다. 지금까지 양사 모두 20만엔이 넘는 모델을 판매 중이다.
신기술이 사업을 이끌며 단가 상승과 수익 개선을 동시에 이뤄낸 일본 브랜드. 하지만 ‘외부로부터 얻은 정보로 시각을 보정’하는 기술 진화는 이제 한물갔다. 향후 성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시계 시장의 핵심인 기계식 시계다. 과제는 해외 시장에서 ‘1000달러(약 110만원)의 벽’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다. 1000달러 이상의 고가 시계시장을 봤을 때 세이코와 시티즌은 일본에서는 선전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스위스 시계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손목시계 저널리스트인 나미키 코이치 도인요코하마대학 교수는 “여전히 ‘일본 브랜드=쿼츠’라는 인상이 강해, 시계를 단순한 공업 제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위스 브랜드들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무브먼트 공급을 둘러싼 대립이다. 스위스 시계 업체 중 무브먼트를 개발·생산하는 기업은 드물다. 대부분 외부에서 사들인 무브먼트를 가공해 자사 제품으로 만들어낸다. 그 공급처 중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에타(ETA)다. 에타는 오래 전부터 스위스 시계 제조 업체에 무브먼트를 공급해왔다. 쿼츠 등장에 따른 재편 과정에서 스와치그룹에 인수된 에타는 이후에도 계속 공급을 해나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스와치그룹의 태도가 달라지면서 2002년 ‘2010년 부품 공급 정지를 위해 단계적으로 공급을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업체들은 맹렬하게 반발했다. 스위스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면서 문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2013년 스와치그룹과 공정거래위원회 사이에 ‘2020년 이후는 공급 의무가 없어진다’는 취지의 협의 내용이 승인되면서 다시 논란이 확산됐다. 당장은 중국 시장 침체에 따른 시계 업계의 불황으로 스와치그룹의 태도가 누그러져 어느 정도 진정된 상황이지만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기술력과 생산체계 장점 살리면 가능성 충분
그러나 아직 스위스의 뒷모습은 멀기만 하다. 세이코와 시티즌은 각각 정반대의 전략으로 스위스를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시티즌은 인수합병(M&A)을 통한 멀티브랜드 전략을 취한다. 도쿠라 토시오 사장은 “시티즌 브랜드 하나만 가지고 다양한 가격대를 공략하는 것은 무리”라며 “해외에서 시티즌은 300~1000달러대 브랜드라고 인식돼 1000달러 이상 가격대에서 승부하려면 멀티브랜드 전략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티즌은 2008년 이미 미국 부로바(BULOVA)를 288억엔(약 3000억원)에 인수했다. 부로바는 아폴로 계획 당시 달 탐사기기에 채용된 것으로 유명한 브랜드다. 10만엔 이하의 가격대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높은 인지도와 강력한 판로를 갖고 있다. 이 M&A로 시티즌은 미국 중가격대 시장에서 점유율 1위가 됐다. 2012년에는 스위스 프로서(Prothor)를 품에 안았다. 프로서는 산하에 무브먼트 업체인 라주페레를 두고 있다. 고급 시계의 확대를 미리 내다보고 고품질의 무브먼트 기술을 확보했다. 일단 판로나 생산 과정을 정비했지만 브랜드 파워가 부족했다. 이를 보완하고자 FC를 인수한 것이다. 인수 금액은 130억엔. FC는 1988년 설립한 브랜드로 역사는 짧지만 무브먼트를 처음부터 생산하는 기술력을 무기로 40만~50만 엔의 중가격대 시장에서 세력을 확대 중이다.
유통 채널 다양한 유럽 시장 공략이 관건
세이코는 자체 브랜드 육성에 힘을 쏟는 모양새다. 2004년 쿼츠와 기계식을 융합시킨 독자 무브먼트 ‘스프링드라이브’를 실용화해 스위스 시계와의 차별화를 도모했다. 2010년부터는 소매점 개척을 본격화하면서 백화점이나 시계 전문점에 세이코 제품만 취급하는 ‘세이코 프리미엄 워치 살롱’을 선보였다. 그 결과 GS의 매출은 최근 5년 동안 3배나 신장했다. 일본에서 세이코의 기계식 시계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판매망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으며 유명 야구선수인 다르빗슈 유를 모델로 기용한 전략도 성공했다. 과거에는 50~60대 고객이 많았지만 최근엔 20~30대로까지 고객층이 확산됐다.
하지만 해외 사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010년 GS를 투입했으니 6년 밖에 안 됐다. 특히 개별 소매점을 파고 들지 못한 것이 과제다. 시계 저널리스트나 수집가의 평가는 높지만, 일반 소비자는 아직 세이코에 대해 중급품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경우가 많다.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려면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갈 필요가 있다. 가전 매장처럼 폭넓은 가격대의 상품을 진열하는 소매점이 일반적인 일본과 달리, 해외는 가격대마다 유통망이 분리된 지역이 많아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이에 세이코는 직판망 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파리나 프랑크푸르트 등 세계 71개 매장에 ‘세이코 부티크’를 만들었다. 2018년에는 100개로 확대할 예정이다. 핫토리 CEO는 “실제로 제품을 구입해보면 세이코의 매력을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해외 사업에서 특별히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지역은 없다. 시장이 큰 일본과 미국, 중국에서 모두 각자의 전략을 구사할 것이며 어느 한 곳에 집중시키지는 않을 계획이다. 부티크 매장 역시 아시아를 중심으로 출점했으나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매장을 늘리고 있다. 핫토리 CEO는 “브랜드 가치 향상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므로 꾸준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2020년에는 GS가 럭셔리 브랜드 중 하나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이세영, 과감한 비주얼로 순정남 '쥐락펴락'
2"HUG 보증 요건 강화하면 빌라 70%는 전세보증 불가"
3서현진X공유, 베드신 수위 어떻길래…"흥미로웠다"
4“‘非아파트’를 아파트처럼” 규제 완화 본격 나선 정부…주택공급 효과 있을까?
5미래에셋, ‘TIGER 미국필라델피아AI반도체나스닥 ETF’ 신규 상장
6KB자산운용, ‘RISE 미국AI테크액티브 ETF’ 출시
7한투운용 ACE 인도컨슈머파워액티브, 순자산액 500억원 돌파
8교보증권, STO사업 위한 교보DTS·람다256 MOU 체결
9"누나는 네가 보여달래서…" 연애한 줄 알았는데 잠적?